누가 용의 비늘을 건드렸나?
누가 용의 비늘을 건드렸나?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1.03.24 20:07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들이 TV 예능 프로그램에 흥분한 이유

▲ 하승립 lipha@laborplus.co.kr

TV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대한민국 온라인 공간을 초토화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방송된 MBC 「일밤」의 한 코너인 <나는 가수다>가 파문의 주체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의 내로라하는 가수 일곱 명이 출연해 500명의 청중평가단 앞에서 노래를 선보이고 7위를 한 가수가 탈락하는 ‘서바이벌’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일어난 것은 지난 일요일 방송분에서 첫 번째 탈락자가 결정됐기 때문입니다. 그 탈락자는 방송 전의 예상을 벗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출연 가수 중 나이와 경력에서 최고참이고 한때 ‘국민 가수’라는 칭호까지 들었던 이가 탈락했으니 충격을 받을만도 했습니다.

이 결과를 놓고 출연했던 가수들이 술렁였고, 담당 PD는 고심 끝에 재도전 기회를 주되 본인이 선택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탈락하게 된 가수는 재도전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김이 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어 보입니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국내에서 노래라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가수들을 모아 놓고 단 한 번의 평가로 탈락시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다시 한번 도전 기회를 줘서 더 좋은 무대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요.

선배 가수의 탈락에 충격을 받은 후배 가수들과 개그맨들도, 애초부터 서바이벌이라는 포맷을 알고 출연했다고 하더라도 그 ‘첫 경험’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웃자고 시작한 TV 프로그램이…

하지만 방송이 끝난 직후부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는 물론 트위터를 포함한 소셜 네트워크들도 이 일로 도배가 되기 시작합니다. 체감상으로는 거의 80~90%의 지분을 차지했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처음에는 허무하다, 어이없다 정도의 반응이었지만 점점 강도를 더해 출연 가수, 개그맨, 그리고 담당 PD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습니다. 담당 PD는 원칙을 저버린 사람이 됐고, 탈락 후 재도전을 받아들인 가수는 노력하지 않고 기회를 얻었다고, 눈물을 보인 가수는 사석이 아닌 방송에서 떼를 썼다고, 재도전 기회를 요청한 개그맨은 룰을 깨뜨린 주범으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방송 직후의 반응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여파가 며칠간 계속 이어졌습니다.

결국 방송사는 담당 PD의 교체를 발표했고, 재도전에 응했던 가수마저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웃으며 좋은 노래를 듣자고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이 죽자고 덤비는 양상으로 바뀐 것입니다.

방송 출연자의 발언이나 행동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대생이 “남자가 키 180cm가 안 되면 루저”라고 발언했다가 발언 당사자는 물론 그 학생이 속한 대학까지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한 인디밴드가 생방송 도중 바지와 속옷을 내려 당사자가 구속되는 사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한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김병조 파동’입니다. 87년 당시 정부여당이던 민정당 전당대회에 참가한 개그맨 김병조가 “민정당은 국민에게 정을 주는 당이고, 통민당(통일민주당)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당”이라고 발언했다가 엄청난 반발에 부딪히고 끝내 방송 진행자에서 물러나 1년 간 아예 방송 출연 자체를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던 정부여당의 행사에 불려간 개그맨이 써준 대본을 읽은 것뿐이었고, 기분이 나쁘기는 하지만 일종의 말장난식 개그 정도로 볼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당대의 가장 잘 나가던 개그맨 하나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으니 말입니다.

87년 ‘김병조 파동’과 역린(逆鱗)

그러면 이 두 사건은 대체 왜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온 것일까요?

역린(逆鱗)이라는 단어 아십니까? 한비자(韓非子) 세난편(說難篇)에 나오는 얘깁니다. 이 책에 따르면 용이란 동물이 본디 온순해서 잘 길들이면 사람이 타고 다닐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용의 목덜미에 다른 비늘과 달리 거꾸로(逆)난 비늘(鱗)이 하나 있는데 이걸 건드리면 용이 그 상대를 반드시 죽인다고 합니다.

초기에 역린을 건드린다는 말은 주로 임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경우를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의미가 확장돼 이제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뜻하는 의미로 쓰입니다.

김병조의 발언도, <나는 가수다>의 재도전 기회 부여도 어쩌면 사람들의 역린을 건드린 건 아닐까요. 김병조의 문제의 발언이 있었던 그 민정당 전당대회는 87년 6월 10일이었습니다. 이날 민정당은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합니다.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에도 불구하고 4.13 호헌조치를 단행했습니다. 6월 9일에는 연세대생 이한열이 직격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바로 그날인 6월 10일에는 전국적인 국민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개그맨이 집권여당의 전당대회에서 한 발언은 군사독재 정권에 억눌려 있던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계기로 작용한 셈입니다. 개인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상에 대해 무기력했던 시민들이 반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도 87년의 그 일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위정자들은 원칙과 룰의 준수를 외치지만 정작 적용 대상은 가지지 못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공정한 사회를 화두로 던지지만 공정성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재도전의 기회조차 ‘그들만의 리그’에 한정됩니다.

이런 사회 현실에 대한 좌절감, 거부감, 분노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폭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쏟아진 비판들의 대부분이 왜 스스로 세워놓은 원칙을 지키지 않느냐는 것이었으니 말이죠. 재도전 기회를 준 것이 청중평가단, 즉 대중의 선택과 결정을 무시한 처사라는 반발도 심했습니다.

‘듣는 즐거움’ 계속되기를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87년의 그 일과 지금의 일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87년의 그 일은 좌절감의 반영이라기보다는 행동의 과정이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그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엉뚱한 화풀이의 양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많은 노력과 준비 끝에 정말 놀라운 무대를 보여준 가수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방송 끝무렵에 잠깐 비친 모습에 대한 비난만 난무하는 상황입니다.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 에너지로 작용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본적 질문이 필요해 보입니다. 기왕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김에 출연자나 연출자 개개인의 잘못을 따지고 들기보다는 왜 이런 반향을 불러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라건데, 이번 일로 해서 ‘듣는 즐거움’을 제대로 알게 해준 이 기회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몸을 드러내는 옷차림에 동작을 맞춘 율동을 추면서 알아듣기 힘든 가사를 쏟아내는 ‘보는 즐거움’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모처럼 만난 듣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