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연맹 위상과 역할, 다시 정립하자
총연맹 위상과 역할, 다시 정립하자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1.0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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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식 의제 나열로는 미래 없어
모든 것 꺼내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
[인터뷰 2] 김태현 VS 이주호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표현이 됐다. 위기는, 그저 상투적으로 한 번 써보는 말이 됐다. 노동운동은 늘 위기 속에 있었고 노동운동 주변에서는 위기라는 말이 떠나질 않았다. 때로는 위기가 전면화 되기도 하고 때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도 하지만, 노동운동은 항상 위기와 함께 있었다.

위기가 항상 존재했던 것처럼 많은 토론회를 통해서, 또 많은 실천을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 역시 끊이지 않았다. 그런 활동을 통해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위기를 완전히 걷어내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끊임없는 연구와 실천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노동조합 활동가들 중 두 명이 외국에 다녀왔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안식휴가를 이용해 남미와 유럽을 돌며 각국의 사례를 직접 보고 왔고,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은 미국에 머무르며 현지의 노동운동에 대해 연구하고 돌아왔다. <참여와혁신>은 두 활동가를 만나 외국 노동운동의 경험을 들어봤다.

▲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법외노조 CTA, 지역에 집중하다

김태현 원장이 다녀온 남미와 유럽은 여러 모로 대비되는 지역이다. 경제수준은 유럽이 남미에 비해 훨씬 더 발전돼 있고,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특히 남미의 많은 나라들은 극심한 빈부격차가 나타나는 데 비해 유럽의 나라들은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운동이란 측면에서 보면 남미 경우에는 노동조합운동이 새로운 고민도 많이 하고, 운동이 역동적으로 살아있습니다. 또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답이) 아니라는 의식이 굉장히 강합니다. 거기에 비해서 유럽의 노동운동은 사회 속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높지만, 뭐랄까 좀 느긋하고 늙었다고 할 수 있죠.”

김 원장은 이번에 남미 국가들 중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다녀왔다. 아르헨티나에는 아직까지 사회 전반에 페론주의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데, 페론주의는 요즘 들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의 대표 격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페론주의는 여전히 정당은 물론 노동조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으로는 좌파 노동운동을 억누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복지 향상이라는 시혜를 베푸는 과정에서 등장한 페론주의는 아르헨티나에서 여전히 대중의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노동운동에도 그런 페론주의는 큰 영향을 끼쳤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기존의 페론주의 노동조합들은 대부분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대신 일정한 떡고물을 챙기면서 타협하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일부 노동조합은 그런 페론주의 노동조합에 저항하는 운동을 시작했고, 결국 별도의 노총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아르헨티나 노총(CTA)다.

“CTA가 만들어진 게 1992년의 일이니까 민주노총보다 빨랐어요. 그런데 그 CTA가 아직까지 합법화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하고 비교하자면, 민주노총이 출범했지만 합법화되지 못했던 1996년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CTA 산하에는 합법화된 조직도 있고, 일부는 여전히 법외상태인 조직도 있어요. CTA는 전체 시민사회로부터는 합법성을 부여받았지만 정부로부터는 여전히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요.”

합법화되지 못한 조직이지만 CTA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남미대륙의 나라들에는 비공식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자신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소득과 고용이 창출되지만 자본에 고용돼 있지 않아 전통적인 노동자의 개념으로 포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본으로 분류할 수도 없는 영역을 일컫는 말이 비공식부문이다. 예컨대 노점상이나 가족노동으로 운영되는 영세 자영업 같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CTA는 이런 부문을 포괄하기 위해 노동자 개념을 확장했다. 김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자본가가 아니면 노동자’라는 것이다. CTA는 산별조직의 틀로는 담아낼 수 없는 비공식부문 종사자를 노총에 직가맹시키고 있다. 이들을 포괄한 CTA는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런 CTA가 주력하고 있는 부분은 지역사업이다. 예컨대 지역의 아이들에게 우유와 빵을 나눠준다든지 실업자에 대한 직업훈련을 직접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비록 CTA 자체는 법외상태이지만, 이 같은 CTA의 활동에 대해서는 지역사회의 호응이 높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다. 김 원장이 방문했던 날, 마침 수도 인근에 위치한 지역 직업훈련학교의 졸업식이 있었다. 직업훈련학교의 졸업식은 졸업생들의 작품 전시회로 진행됐는데, 김 원장이 보기에도 상당히 수준이 높더란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운동이 산별조직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지역조직은 상대적으로 활동 폭이 좁은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하면, 노동자 개념을 확장해 비공식부문까지 포괄하고 있는 CTA의 지역 활동은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물론 CTA의 활동을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CTA와 우리나라의 총연맹은 그 위상과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과 노조 고민하는 브라질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브라질 노동자당(PT)은 룰라 전 대통령의 연임에 이어 지우마 호세프 현 대통령까지 세 번째 대통령을 배출했다. PT가 집권한 이후 PT를 만들었던 노총과는 어떤 관계가 형성되고 있을까? 아무리 노동자당이라고 하더라도 집권정당과 노동조합의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할 수는 없을 텐데,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김 원장은 브라질노총(CUT) 내에서 룰라 정권과 PT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고, 일부는 CUT에서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CUT의 다수는 노동조합의 독자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투쟁하지만, 룰라의 노선과 정책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정책이므로 여기에는 협조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CUT에서 탈퇴한 일부 세력들은 룰라가 너무 자본과 타협하고 있다고 생각해 불만이 많다.

“룰라가 대선에 4번째 출마해서 당선됐어요. 처음 3번 나올 때까지는 사회주의를 얘기했지만 집권을 못했죠. 그래서 룰라는 계속해서 사회주의의 이상을 얘기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집권할 수 없다고 보고,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개혁정책을 들고 나와 4번째 대선에서 당선된 거죠.”

이렇게 당선된 룰라는 양면적인 정책을 폈다. 우선 국내에서는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극심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폈다. 반면 대외적으로는 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정책을 펴, 브라질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애썼다.

그 결과 룰라가 집권한 이후 브라질에서는 공식부문의 노동자들이 늘어났고,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빈곤층에 대한 복지를 강화하면서 양극화가 점차 축소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신흥 경제개발국을 일컫는 BRICs에 포함될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다른 한편 우리나라와 브라질이 비교되는 부분 중 하나는 노총과 진보정당과의 관계다. 민주노총은 지난 2000년 출범한 민주노동당의 창당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후, 민주노동당의 활동에서 민주노총의 영향력은 급격히 축소됐다. 심지어 지난 2008년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이 분열될 때에도 민주노총은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조합원들 사이에선 “쟤네들은 안 보이다가 꼭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서 표 달라 그러더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진보정당과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의 경우엔 노동운동이 작업장 밖으로 나가보지 못했던 측면이 커요. 아르헨티나에서는 CTA의 지역활동이 저변에 널리 퍼져 있어요. 브라질에서도 다수의 지자체에서 집권하고 참여했던 경험들이 토대가 돼 룰라가 집권으로까지 이어진 거죠. 하지만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은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작업장에 묶여 있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이 현장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산별보다 우선하는 총연맹의 규정성

김 원장이 남미를 거쳐 유럽을 방문했을 때, 이탈리아에서는 마침 이탈리아 노동총동맹(CGIL) 산하의 금속노조(FIOM)가 토리노 지역에서 지역총파업을 하고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피아트(Fiat) 자동차의 구조조정과 단협 후퇴. 피아트에는 FIOM 외에도 다른 총연맹 산하의 두 개의 금속노조와 기업별노조까지 모두 5~6개의 노조가 조직돼 있다.

올해 초 피아트가 기존에 맺고 있는 산별협약보다 후퇴한 수준의 단협 안을 내밀었고, 단협안을 받지 않으면 공장을 폐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FIOM을 제외한 나머지 노조들은 이를 받아들였고, 종업원 찬반투표 결과 53%의 찬성으로 통과됐다.하지만 FIOM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파업을 조직한 것이다.

우리의 상식과는 조금 다른데, 기업 내에 복수노조가 있다 하더라도 협약이 체결되면 파업은 불법이 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경우, 파업은 노동조합의 권리가 아니고 개별 노동자의 권리이다. 따라서 노동자 개인은 언제든 자신의 임금만 포기하면 파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FIOM이 총파업을 선언하자 토리노 지역의 금속노동자들 중 80%가 이 총파업에 참가했다.

“우리는 산별노조라고 하지만 여전히 기업별 틀에 갇혀 있잖아요. 하지만 이탈리아는 그게 아니더라고요. 피아트 사측을 상대로 하는 총파업인데, 피아트 노동자들이 아닌 지역의 노동자들이 더 많이 참가한 거죠.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산별의 원칙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새롭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탈리아는 총연맹의 위상도 상당히 다르다. 이탈리아에는 CGIL을 포함해 3개의 총연맹이 있는데, 이들은 서로 이념과 노선의 차이에 따라 나뉘어져 있다. 같은 유럽 지역이지만 독일은 산별노조가 중심인 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총연맹의 규정력이 강하다.김 원장은 FIOM을 방문했을 때 사무실 입구에 FIOM의 명패가 붙어있는 게 아니라 CGIL의 명패만 크게 붙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것만 봐도 총연맹이 산별노조를 강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잘 되는 식당 메뉴는 한 가지

이주호 단장은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 동안 미국에 다녀왔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시행하고 있는 Ratio 법안(병원인력법안)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이 단장은 지난 4월 7일 보건의 날을 맞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캘리포니아 주의 Ratio 법안을 소개했다.

캘리포니아 주의 Ratio 법안은 간호사 1명이 많게는 50~60명의 환자를 돌봐야 하는 한국의 현실에 비춰보면 가히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에는 각 부서별로 간호사 1명이 봐야 하는 환자의 수가 규정돼 있다. 예컨대 수술실의 경우 간호사 : 환자의 비율을 1 : 1로 유지해야 한다. 간호사 1명이 가장 많은 환자를 보는 분만 후 산모 병실의 경우에도 1 : 6으로 규정돼 있다.이 단장은 Ratio 법안 외에도 미국에서 시행하려는 Single Payer 제도, 즉 전 국민 단일건강보험제도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돌아왔다.

공적건강보험제도가 없는 미국에서 4,600만 명의 국민이 무보험자라며, MT 갔다가 술 마시고 쓰러져 3, 4일 병원 응급실에 갔다 왔더니 진료비가 8천만 원에 이르더라는 어느 대학생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거긴 해고가 두려운 게 아니라 해고된 다음에 건강보험이 걱정인 나라에요. 민간보험이 있어도 연간 보험료가 17,000 달러에 이르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가입을 못하는 거죠. 회사에 다닐 때는 회사가 그 비용을 부담하지만 해고되면 유지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식코’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거죠.”

그런 미국에서 Ratio 법안이 제정된 데에는 캘리포니아 간호사협회(CNA, 이름은 협회지만 노조조직이며, 미국노총(AFL-CIO)의 가맹조직)의 힘이 컸다. 비록 파업을 한 것은 아니지만 주지사를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등 오랜 노력 끝에 이 법안을 채택하게 한 것이다.

이 단장은 CNA가 법안 시행 이후 오직 Ratio 법안 하나만 가지고 조직사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법안 하나만으로 지난 10년 동안 26개 주에서 간호사들을 조직했고, 그 결과 만들어진 게 전미간호사연대(NNU)다. NNU에는 현재 16만여 명의 간호사가 소속돼 있다.

“우리가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잘 되는 식당치고 메뉴 많은 곳 없다고. 그것처럼 CNA는 Ratio 법안 하나로 넓은 미국 땅을 개척하고 있는 거죠. 그렇게 NNU가 만들어졌어요. CNA가 조직사업 하는 걸 보면 Ratio 법안 하나만 들고 가는 겁니다. 캘리포니아는 Ratio 법안 때문에 간호사들이 일 할만 하다, 제대로 환자들을 간호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거예요.”

이 단장이 미국에 있을 때인 1월 말, 민주노총은 한미FTA 비준 반대투쟁을 위해서 미국에 대표단을 파견한 적이 있었다. 이 단장은 이들하고 함께 움직이면서 미국노총을 만나 한미FTA 비준 반대투쟁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한국의 노조조직은 이념적으로 한미FTA가 어떻고, 국익의 관점에서는 어떻고 하면서 FTA에 반대하는 이유를 나열하는 데 반해 미국노총은 아주 단순하더라고 전했다. 노동기본권과 고용보장이 없기 때문에 FTA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포인트를 그렇게 맞춰 미국 정부하고 협상하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엔 조금 의아해 했어요. FTA가 국익의 관점에서 부딪히면 미국노총도 찬성할 줄 알았어요. 한국에 불리하면 미국엔 유리할 테니까. 그런데 미국노총이 FTA에 있어서는 국익보다 노동자계급의 관점이 명확하더라고요. 그때 UAW 있잖아요, 전미자동차노조. UAW가 한미FTA에 찬성한다고 했어요. 그 바람에 UAW가 소수화 됐어요. 기본적으로 노동자계급은 노동기본권은 보장하지 않으면서 기업의 이윤창출에만 유리한 FTA에 찬성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는 외부에서 비판을 많이 받지만 미국노총은 노동자계급의 관점이 철저한 겁니다.”

의제 집중은 해야 하지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이런 외국의 노동운동 경험을 볼 때, 우리나라 노총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지금 민주노총은 상설연대체도 만들고 국민임투도 해야 하고 비정규직 투쟁도 하고 많이 합니다. 그런데 2% 부족한 게 의제를 설정할 때 잘 되는 거 딱 한두 개만 가지고 가야 하는데, 민주노총은 산별단위가 해야 할 것까지 총연맹에서 다하는 거예요. 산별단위의 의제를 모아서 어필할 수 있는 아젠다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젠다 집중이 안 돼요. 그리고 현장 조합원 만나는 게 총연맹 위원장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총연맹은 대규모적인 공중전을 해줘야 하는 거죠.”

이주호 단장은 이처럼 의제의 집중을 강조한다. 민주노총만 해도 몇 천 개의 사업장에 수십만 명의 조합원이 있는데, 이들을 일일이 만나는 것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의제를 한두 가지로 집중하고, 모아진 의제를 가지고 현장이나 산별단위에서 할 수 없는 공중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태현 원장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다양한 의제를 집중해서 돌파하는 건 필요합니다. 다만 그런 것들을 하기 위해선 산별과 기업 내에서 좀 더 심도 있고 깊은 토론이 먼저 되는 게 필요하죠. 제가 정책실장을 오래 했습니다만, 총연맹에서 의제를 잡으면 산별연맹들은 ‘왜 우리 건 빠졌느냐’고 항의합니다. 그런 항의를 받아주다 보면 10대 과제, 20대 과제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제 생각엔 산별단위에서, 기업단위에서 우리가 진짜 집중해야 될 부분이 어떤 것인지 좀 더 심도 깊은 토론을 하고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고 봅니다. 산별연맹들이 제기하는 의제 중에는 산별단위에서 해결하고 총연맹은 지원만 하면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정말 총연맹이 달라붙어서 조직해야 할 의제도 있거든요. 그런 의제들에 대해서 토론과 역할분담이 우선인 것 같아요.”

김태현 원장은 의제의 집중성도 필요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쌍용자동차 투쟁처럼 한 사업장의 일이 해당 사업장에만 그치지 않고 전국적인 이슈가 돼버리는 점도 의제를 설정할 때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래 몇 년 동안 이런 일이 반복돼 왔다는 것이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외국의 노조활동을 보고 온 두 활동가의 고민은 지금 민주노총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로 모아지고 있다. 처음 민주노총이 만들어지던 1995년과는 시대도 조합원도 달라졌고, 해야 할 일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해관계도 천차만별이고 주장도 천차만별인 수십만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과연 어디로 갈 것이며,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든 걸 꺼내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