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ㆍ언어장애인에게 차별받은 여자
청각ㆍ언어장애인에게 차별받은 여자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1.05.2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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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통역사 눈에 비친 대한민국 장애인복지

소리가 사라진 이들과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수화통역사 윤남 씨. 사내 ‘남’, 외자 이름을 지닌 윤남 씨는 이름 때문에 성공한 집안이라며 웃는다. 위로 언니가 넷, 자신의 이름 덕에 동생은 사내란다.

수화는 언어다. 우리말을 익히듯, 영어를 배우듯, 수화도 ‘소통’을 위해 배우고 익혀야 할 언어다. 각 나라의 말이 있듯, 수화는 청각이나 언어장애인의 말이다. 한 나라의 말을 제대로 익히려면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수화를 익히려면 청각장애인들의 문화와 삶속에 들어가야 가능하다. 수화는 단순히 손으로 나타내는 기호나 상징이 아니다. 손으로 소리를 전해야 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

“청각장애인들을 위해서 아파봐야 돼요. 아픈 게 불쌍하게 여겨서 아픈 게 아니라, 청각장애인들에게 한번 당해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으시라. 이분들이 얼마나 우리랑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지 그걸 한번 확인하시라고.”

윤남 씨가 수화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에게 권하는 말이다.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2008년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장애인 가운데 49.6%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이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10.2%다.

장애를 지닌 이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회는 두려움이다. 전쟁터의 지뢰밭을 지나듯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숱한 장애물이 이들의 이동을 가로막고, 최소한의 기본권마저 포기하게 한다. 윤남 씨는 장애인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차별받는 것에 대해서 모른다. 어떤 게 차별인지도 모른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4조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에 대하여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를 차별행위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정당한 편의’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한 편의시설․설비․도구․서비스 등 인적․물적 제반 수단과 조치를 말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8조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등에게 정당한 편의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필요한 기술적․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의무로 규정한다.

하지만 법은 장애인에게 멀다. 차별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차별이 차별인지조차 모른 체 살아간다.

“장애인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워해요. 들리지 않는 이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워하겠어요. 배우지 못해 모르기 때문에 의존적이며 때론 공격적인 성격도 나타내고, 굉장히 고집이 강할 수도 있고. 그러면 사람들이 그래요. ‘아, 이게 농아인들의 특성이다!’ 이게 특성일까요? 특성이 아니라 인재에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게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후천적인 장애가 아닐까요. 멀쩡한 뇌를 지닌 장애인을 정신지체로 바꿔주는. … 자신들이 차별을 받는지 몰라요. 얘기해줘도 제대로 된 이해가 어려워요.”

차별이 차별인지 모른 채 산다

청각장애인을 둔 가정에 가족들이 수화를 배우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수화가 아닌 ‘홈 싸인’으로 소통을 한다. 청각장애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힘들다.

“엄마 눈빛만 봐도 아는 거죠. 이 사람들은 그렇게 눈칫밥 먹고 삽니다. 어머니는 (자식의 맘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대다수가 제대로 알지 못하죠. 저희가 하는 통역 가운데 가정통역이 있어요. ‘어머니 나 결혼할 건데요.’ 그런 얘기도 한단 말이에요.”

가정에서조차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고, “한평생 눈칫밥만 먹고” 살아간다. 부모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수화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말을 하게 ‘강제’한다. 장애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이 이들에게 모국어와 같은 수화를 배척하게 한다.

“어머니들이 수화를 배우셔야 되는데 이 아이들에게 말하게끔 하려고만 노력하죠. 머리 찢어서 인공 와와 시술시키고. 하지만 말은 하지만 이해가 떨어지고 완벽하게 말을 구사할 수가 없죠. 가능성 있는 사람에게는 수술을 해도 괜찮아요. 단 이들에게 수화도 가르쳐줘서 기회를 좀 더 챙겨주자는 말이에요. … 농아학교에서 언어치료만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말했죠. 너는 앵무새가 아닌데 말이야. 그렇다고 네가 말을 정확히 잘하고 있느냐, 너는 앵무새일 뿐이었어. 그럼 나는 너에게 뭘 요구하느냐. 넌 수화도 잘해야 하고 한국어도 잘해야 돼. 물론 발음이 좋고 그러면 그것도 계발시키면 좋은 거고. 하지만 안 되는 거 억지로 할 필요 없는 거고. 너는 살아있는 앵무새가 아니야, 라고 이야기했죠.”

너는 앵무새가 아냐

윤남 씨는 십여 년 전 우연히 도봉산역에서 한 청각장애인이 건넨 ‘7시에 만나요’라는 글과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받는다. 그때 처음으로 세상에 청각장애인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전화를 해줬더니 “기분 좋아하시며 고맙다”고 표현하더란다.

“그때 이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수화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윤남 씨는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수화를 익히고는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예 수화통역 봉사자로 활동한다. 그게 1998년이었다.

“청각장애인들에게 상당히 차별을 받았어요. (차별이요?) 수화 못하는 사람, 낙인이 찍혀. (웃음) 나랑 상대도 안 해주셨고요. 저 사람들은 왜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왜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왜 저렇게 밖에 못하지. 왜들 그러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정말 저 사람들이 궁금해요. 그 호기심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온 거 같아요. 다른 건 없어요. 정말 그래서 여기서(수화통역센터) 봉사하게 됐고.”

장애인이 수화통역사를 찾을 때는 힘들고 곤란한 경우에 처했을 때가 많다. 경찰서, 교도소, 병원을 비롯해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때론 조직폭력배와 마주한 적도 있다. “겁 없이 달려”간 이유는 자신을 찾은 이는 “얼마나 두렵고 다급할까”라는 마음 때문이다. 윤남 씨를 찾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한밤중에 교통사고가 나는 경우에는 택시를 타고 사고 현장이나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요즘은 남성들로 구성된 야간수화통역사가 세분이 있어 밤에 나서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새벽 한시에 두시에 교통사고가 나면 전화 옵니다. 택시타고 가죠. 통역하고 새벽 서너 시에 집에 들어와서 다시 (아침에) 정상출근 하죠. 그 아무도 (이렇게 일하는 걸) 인정을 안 해줘요. 오히려 경찰서에서는 ‘너희가 봉사자 아니냐!’ 당연하다는 듯 말하죠.”

수화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다

아직 미혼인 윤남 씨는 화려한 빛깔의 원피스를 입고 싶다. 하지만 바람일 뿐. 윤남 씨의 옷은 늘 검다. 자신이 통역할 때 이를 바라보는 장애인에게 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구두의 굽도 점점 낮아진다.

“수화통역이 노동이냐? 노동입니다. 힘들죠. 오늘도 통역하다 왔는데 허리가 아픕니다. 오랜 시간 서 있어야 되니까. 그래서 점차적으로 굽이 낮아지죠. 또 머리도 써야 되잖아요. 집중적으로 듣고 옮기는 작업을 하는 거잖아요. 일단은 머릿속으로 입력하고, 머리에서 재정립하며 변환시키면서 손으로는 출력하는 게 수화잖아요. 그게 동시적으로 변환하는데, 돌림노래 아시죠? 이미 머리에서는 한 템포 빨리 들어가는데 손은 한 템포 느리게 나가죠. 그거를 통역하는 내내 하게 되면 머리로 신경 쓰고, 어깨나 이런 쪽으로 힘들고….”

정신과 육체, 그리고 감정까지 담아내는 종합노동이 수화통역이다. 행사장에서 통역하는 경우 30분 이상을 지속하지 않고 교대로 한다. 사람이 20분 이상 집중하는 것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전국의 청각이나 언어 장애를 지닌 사람은 35만 명으로 추산된다.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은 천명도 되지 않는다.

윤남 씨는 서울시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동대문구 수화통역센터에서 일한다. 전국 161개소, 서울에는 25개 구 가운데 23개 구에 센터가 만들어졌다. 강동구와 광진구에는 내년에 센터가 세워질 예정이다. 지역과 실정을 떠나 전국 모든 센터마다 3명의 통역사가 일한다. 69명의 수화통역사가 서울시 전역을 담당해야 하니, 한 사람의 통역사가 수백 명의 입과 귀 노릇을 해야 한다.

수화통역도 노동이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시와 군에는 지역별로 최소 1개소 이상의 공공보건의료기관에 수화통역사를 배치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수화통역사가 있는 공공보건의료기관은 대한민국에서 한 곳도 찾을 수가 없다. 민간의료기관인 부산성모병원만이 유일하게 수화통역사를 채용하여 운영하고 있다.

“부산성모병원에 수화통역사 세 명이 간호사처럼 24시간 일한단 말이에요. 서울에 있는 청각장애인들도 너무 좋아해요. 편해하고, 행복하죠. 큰 병원들은 당연히 수화통역사를 직원으로 채용해야 해요.”

청각이나 언어장애인들은 몸이 아파도 의사소통이 힘들어 병원에 찾아가는 것을 주저한다고 한다.

“저희와 연락은 쉽게 되죠. 하지만 인원이 적다보니 다 쫓아갈 수가 없어 너무나 힘들어요. 수화통역사를 양성만 할 게 아니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해요. 봉사자로만 여기면 안 되죠. 생활보장이 좀 되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수화통역센터를) 위탁으로 할 게 아니라 나라에서 직접 관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어려움을 알고 인원도 늘려주고…”

청각․언어장애인들은 수화통역센터를 통한 서비스보다 개인 봉사자를 통해 수화통역 서비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윤남 씨가 아는 한 자원봉사 수화통역사는 청각장애인이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함께 수영장 회원권을 자비를 들어 샀다. 물론 자신은 수영을 배우는 대신 열심히 수화통역만 할뿐이다. 국가가 나서서 책임져야 할 장애인 복지는 그저 종이 위 활자로만 존재하는 셈이다.

장애인복지, 국가가 책임져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요. 순수하고요. 내 앞에서 얘기할 때 눈빛은 정직해요. 손은 거짓말로 나갈 때가 있지만. 눈빛이 선량하니 거짓말하는 것도 다 보여요. 10년이 지났건만 이 사람들이 질리지를 않아요. 다른데서 힘들고 괴롭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매일 만날 수 있으니까 힘들어도 참게 돼요. 아무튼 나는 이 사람들이 대개 편하고 좋아요.”

서른일곱 윤남 씨의 절절한 프러포즈다.

인터뷰를 한 날은 윤남 씨가 오후 5시까지 통역을 하기로 날이다. 하지만 행사가 예정보다 두 시간이 길어졌다. 물론 인터뷰 약속시간도 자연히 늦춰졌다. 약속시간이 지나서야 연락이 왔다. 행사가 길어져 늦겠다고. 통역 중에는 전화기를 쓸 수가 없어 연락을 못 드렸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되레 미안해져 어둠이 질 때까지 죄인의 마음으로 오갈 데 없는 용두동 거리를 거닐었다.

마침내 윤남 씨를 만난 순간, 쌍꺼풀이 없는 눈과 그 눈빛이 참 선량하고 순수해보였다. 윤남 씨 눈빛은 ‘소리 없는 천사’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