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매장에서 죽은 아이를 배에 품고 일했어요"
"럭셔리 매장에서 죽은 아이를 배에 품고 일했어요"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1.05.3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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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왕국 '디오르' 매니저, 전하영을 만나다
울고 싶을 정도로 고단한 노동에 노동조합으로 맞서다

"무식하게 일할 수밖에 없었어요. (2002년) 임신을 했는데 입덧이 너무 심하고 힘들어서 병원을 날마다 가야할 처진데도 직원이 부족하니까 쉴 수가 없었어요. 위험한 줄 알고도 근무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5개월째 애를 사산을 했어요. 죽은 지 2주가 넘어 배 안에서 썩어서 곪아버린 거예요. 그래서 대수술을 했어요. 한두 달은 입원해야 되는데, 인원이 부족하니 삼일 만에 출근을 한 거예요. 그 부작용으로 지금도 배가 많이 아픈데…."

백화점에서 명품 화장품 디오르(Dior)를 판매하는 전하영 씨. 그의 삶은 결코 럭셔리하지 않다. 전하영 씨에게 디오르는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겼다. 어느 명품 보석보다 맑은 전하영 씨의 눈이 촉촉하게 젖는다. 벌써 십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건만 되뇌기가 쉽지 않다. 럭셔리에 감춰진 아픔은 오늘도 계속되기에….

▲ 명품 화장품 '디오르' 매니저 전하영 씨.
ⓒ 오도엽 객원기자
"저희 디올에 유산율이 굉장히 높아요. 유산도 많고 아프고 힘들다고 얘기를 해도 어떠한 (회사는) 대응책이 없어요. '어떡하겠니, 인원이 없는데.' 맨날 인원이 없는데…. 참 챙피한 이야긴데, '유산하면 일주일 유급휴가 주십시오' (회사에) 요구했어요. 그래서 그거(유산휴가)를 억지로 만들어 냈어요."

유산하면 일주일 휴가 드립니다?

럭셔리의 대명사, 엘브이엠에이치(LVMH,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는 세계 유명 명품 브랜드의 왕국이다. 루이뷔통, 마크 제이콥스, 로에베, 크리스찬 디오르, 지방시, 겐조와 같은 패션 브랜드에서 샤토 디켐, 헤네시, 돔 페리뇽과 같은 주류와 메이크업포에버, 겔랑과 같은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60여개의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2011년 1분기 매출만 74억6천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하여 17%가 증가했다. 순이익도 300억 원 이상으로 명품업체 2위인 리치몬드의 3배, 3위 업체인 구찌의 6배를 넘어서는 걸로 알려져 있다.

전하영 씨의 회사는 '엘브이엠에이치코스메틱스'다. 한국에서는 디오르, 겔랑, 메이크업포에버와 같은 화장품 브랜드로 백화점에서 만날 수 있다.

세계적 명품 왕국에 소속된 디오르 매장에서는 고객에게 서비스로 제공하는 샘플은 물론 종이봉투조차 얻기가 힘들다고 한다.

"해라, 무조건 (목표 달성) 해라! 이젠 우리도 한계점에 온 거예요. 매장 직원도 부족하고. 샘플 하나 제대로 제공하지도 않고. 몸으로 가서 싸우라(판매)는 거예요. 고객들은 샘플도 제대로 없다고 종이 찢어서 얼굴에다 던지고 가버리고."

몸으로 판매하라

백화점에 함께 입점한 다른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샘플을 고객에게 안기며 판매를 하는데, 디오르는 '본사의 정책'이라는 말로 매장판매사원이 '몸'으로 '맞설' 것을 주문한다.

일이 고되면 그에 대한 충분한 대가라도 주어져야 하건만 엘브이엠에이치코스메틱스의 반응은 신통치가 않다. 때에 따라서는 정당한 대가마저도 지급하지 않는다.

"메이크업포에버에서 일하는 직원은 더 황당한 일도 당해요. 금토일에는 백화점에서 삼십 분간 (다른 날에 비해) 더 연장근무를 하거든요. 그 연장근무 수당을 올리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또 시차(늘 연장근무를 하는 판매사원들은 근무자들끼리 돌아가면서 퇴근시간을 조절한다)를 세 번을 쓰면 휴무 하나를 사용할 걸로 해서 없애는 거예요. 시차랑 휴무랑은 엄연히 다른 거잖아요."

전하영 씨는 서울의 한 백화점 디오르 매장의 매니저(대리)다. 열아홉 살에 국내 화장품 회사에 입사했던 전하영 씨는 1995년 디오르로 스카우트 되었다. 서른일곱이 된 지금까지 15년 넘게 디오르에서 일하고 있다.

▲ "(노동조합) 제대로 해서 좋은 회사가 된다라면, 그것도 인생에 있어서 보람이 아니겠냐"
ⓒ 오도엽 객원기자
"나름은 정말 인정받고 (회사에) 다녔어요. 몇 년째 계속 우수사원 되었고, 베스트 매니저도 되었고, 항상 (회사에서 수여하는) 상을 놓치지 않았어요. 저는 욕심도 많아요. 회사에서 제가 오를 수 있는 곳까지 승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굉장히 망설였는데…."

전하영 씨는 망설였다.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남들보다 높은 자리로 승진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하영 씨는 이 꿈을 버리고 새로운 선택을 했다. 바로 노동조합이다.

꿈을 포기하고 선택한 노동조합

엘브이엠에이치코스메틱스는 지난 3월 31일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전하영 씨는 위원장으로 뽑혔다. 당선되고 이틀 동안 칩거하며 고민했다.

"위원장을 받고(뽑히고)나서 너무 우울증에 빠지는 거예요. 내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이냐, 난 디올에서 오르고 싶은 곳이 많았는데, 위원장 하다가 깰까닥 하면 끝나는 거 아니냐. … 제대로 해서 좋은 회사가 된다라면, 그것도 인생에 있어서 보람이 아니겠냐,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이틀 만에 딱 자리를 잡고 왔어요. 해보자, 하는 데까지 해보자!"

노동조합 위원장을 한다는 말에 남편은 "굉장히 반대"했다. 20일 가까이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지냈다. "겨우 겨우 가족여행"을 떠났고, 여행 기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눠 지금은 "조금 (갈등이) 풀렸"다.

전하영 씨가 노동조합을, 그리고 위원장을 결심한 이유는 "챙피하지 말고, 내가 그만 두더라도 후배들에게 '쪽' 팔리지" 않는 좋은 일터를 물려주고 싶어서다.

전하영 씨가 노동조합에서 하고 싶은 일은 자신의 몸에 푸른 멍으로 물들어 있다.

좋은 일터를 물려주고 싶다

"옛날에는 막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근무하더라도 그 다음날 000(피로회복제) 하나 딱 먹으면 출근하고 이랬거든요. 지금은 관절이 안 좋아지는 느낌을 몸으로 받아요. 우리 직원 가운데 생리불순과 같은 자궁과 관련된 병이 굉장히 많아요. 자궁 쪽에 수술한 사람도 많고. 우리 매장에 20대의 젊은 친구도 많은데 걔네들도 서 있다가 그냥 하혈하고 그래요. 하루 종일 서있으니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고. 저는 허리도 안 좋고 목도 안 좋아요. 지금도 허리가 아파요."

물론 매장에는 상담 테이블이 있다. 앉아서 고객을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11명이 일하는 매장에 테이블은 3개. 나머지 여덟 사람은 서 있어야 한다. 기초화장품은 테이블에서 상담할 수 있으나 색조 화장품은 다양한 제품을 펼쳐놓고 고객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앉아서는 고객을 맞이할 수 없다.

"운이 없는 날은 하루 종일 색조만 파는 거예요. 그런 날은 다섯 시부터 다리가 붓기 시작해요. 체중이 실리니까 막 부어요. 빨갛게. 그러니까 막내(신입사원)들이 못 견디는 거예요. 다리가 아프니까 울어버려요. 울며 힘들다며 못 다니겠다고…."

근무 시작은 오전 9시 30분이지만 대부분 8시 30분이면 출근한다. 늦어도 9시 이전에 매장을 도착한다. 제 시간에 출근해서는 고객을 맞을 수 없다. 진열장 열쇠를 여는 시간만도 상당하다. 바닥을 닦고, 본사에서 요구하는 이런저런 서류를 정리하다보면 훌쩍 개장시간이 된다.

다리가 아프니까 울어버려요

"고객이 오히려 식사시간에 몰려요. 아예 (밥 먹으러) 못 갈 때도 있어요. 밥만 먹고 양치질하고, 자판기 커피 홀딱 마시고 들어오면 40분 정도 걸려요. 서너 시께 고객이 없으면 브레이크 타임(간식시간)을 한 삼십 분 정도 가질 수 있어요. 보통 8시 30분까지 근무하니까 하루 12시간이죠. 한두 시간 빼고는 10시간 이상을 꼬박 서 있는 거예요."

"출산휴가요? 쉬고 있으면 전화가 와요. 인원이 없으니 출근하면 안 되겠냐고. 매장 사정이 어떠네, (당신의) 자리가 불안하네,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니까 나오는(출근하는) 거예요. 뉴스 보니까 출산휴가 늘어난다 하는데, 그건 뉴스일 뿐이에요. 현실적으로 우리는 못해요."

명품을 파는 노동자의 다리는 붓고, 허리는 망가지고, 자궁은 허약해진다. 임신을 해도 마음대로 쉴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지만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잠시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여기에 돌아오는 대가는 보잘 것 없다. 이 노동에 대해 회사는 "노 머니(No money)"만을 외친다.

디오르와 겔랑의 판매직 사원 97% 가량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지난 5월 11일 노사 간의 첫 상견례가 있은 뒤 메이크업포에버 판매사원들도 대거 노동조합 문을 두들겼다. 엘브이엠에이치코스메틱스보다 먼저 노조가 만들어진 랑콤의 로레알이나 에스티로데의 엘카가 판매사원만으로 조합원이 꾸려졌다. 하지만 엘브이엠에이치코스메틱스는 슈퍼바이저나 마케팅 쪽 본사의 사무직원도 가세했다.

노 머니(No money)에 맞서다

다른 명품 화장품 업체보다 노동조합이 늦게 만들어진 까닭이 있다. 직원들이 몇 번 "울컥 울컥"해서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지만 회사가 그때마다 쥐어 준 "사탕"에 '울컥'한 마음을 가슴으로 삼켰다. 하지만 그때 쥐어 준 사탕은 사탕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었다.

"(2009년 로레알 노조가 만들어 진 뒤) 기본급을 오려주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우린 횡재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최저임금이 안 된 사람이 있더라고요. 근데 우리는 감동을 받았죠."

직원들이 '울컥'할 때 던져준 사탕이 '사탕발림'이었다는 걸 깨달은 전하영 위원장은 짧은 브레이크 타임에 가진 인터뷰를 마치고 매장으로 서둘러 빨려 들어간다. 전하영 위원장의 4센티 굽이 울리는 또각또각 소리, 참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