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미터 상공에서 희망을 부르짖다
35미터 상공에서 희망을 부르짖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1.05.3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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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로 얼룩진 한진중공업의 부산 영도조선소를 가다
산 자와 죽은 자·총 맞은 자와 총알 피한 자들의 슬픈 이야기
[현장 1] 대한민국 조선 1번지의 오늘

ⓒ 오도엽 객원기자 dyoh@laborplus.co.kr
“기각판정이 났다니까 억수로 황당한 기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앞에서 만난 늙은 노동자의 말이다.

지난 5월 6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이하 부산지노위)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가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사측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근로자를 정리해고한 데 대해 신청자들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나 사측이 희망퇴직을 받는 등 해고 회피를 위해 노력한 점 등이 인정되고, 해고절차 등에 하자가 없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이유를 밝혔다.

기각결정 닷새 뒤인 5월 11일, 영도조선소 17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이하 지회) 채길용 지회장은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87일 만에 땅을 밟았다. (채 지회장은 회사 측의 정리해고자 통보를 하루 앞둔 2월 14일에 문철상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장과 함께 50미터 상공의 크레인에 올랐다. 11일 문 지부장도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정리해고 정당하다?

회사가 정리해고 입장을 밝힌 지 반년하고 하루가 지난 5월 16일 한진중공업을 찾았다. 부산대교를 지나 영도에 들어서자 따사롭던 봄 햇살이 하얗게 색이 바랜다. 조선소 담장을 따라 낡은 천막들이 을씨년스럽게 줄지어 있다. 본관 앞에는 누런 소형 버스가 가로막고 있다. 그 뒤로 전투복을 입은 경찰이 현관문을 지키고 있다. 마치 계엄령이 내려진 듯.

본관을 지나쳐 정문으로 갔다. 바다물빛을 품은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지 않고 경비실 앞을 지나건만 불러 세우지를 않는다. 자재와 대형 블록들이 가득 들어차 있던 조선소 풍경은 사라졌다. 크레인이 움직이며 울리던 요란한 사이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망치소리도, 웅웅 울던 용접기소리도, 불꽃을 튀기며 쇠를 갈아대던 그라인더소리도, 이젠 찾을 수 없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정리해고 중단을 요구하며 달아둔 펼침막 샛길을 따라 85호 크레인 앞으로 갔다. 이윤엽 화가의 판화와 함께 새겨진 ‘해고는 살인이다’는 글자가 눈앞에 들어온다. 판화 위로 ‘농성 131일’을 알리는 표지가 크레인에 붙어 있다. 크레인 기둥에 달린 계단을 오른다. 하지만 철문에 가로막힌다. 더는 오를 수가 없다. 저 철문 너머에 사람이 살고 있는데 말이다.

“잠깐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크레인 조정실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온다. 두 팔을 번쩍 들어 좌우로 흔든다. 뭔가 물어봐야 하는데…, 입이 열리지 않는다.

“건강합니다. 걱정 마세요.”
위로의 목소리가 조선소를 울린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1월 6일 절단기로 자물쇠를 끊고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여기 또 한 마리의 파리목숨이 불나방처럼 크레인 위로 기어오릅니다”라는 편지를 남긴 채.

1월 3일 아침, 침낭도 아니고 이불을 들고 출근하시는 아저씨를 봤습니다.
새해 첫 출근날 노숙농성을 해야 하는 아저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 겨울 시청광장 찬바닥에서 밤을 지새운다는 가장에게 이불보따리를 싸줬던 마누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살고 싶은 겁니다. 다들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남고 싶은 겁니다.
지난해 1월 26일. 구조조정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이후 한진에선 3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짤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고, 다대포도 곧 그럴 것이고,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강제휴직 당했습니다.
명퇴압박에 시달리던 박범수, 손규열 두 분이 같은 사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400명을 또 짜르겠답니다. 하청까지 천명이 넘게 짤리겠지요.
흑자기업 한진중공업에서 채 1년도 안된 시간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그 파리목숨들을 안주삼아 회장님과 아드님은 배당금 176억으로 질펀한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정리해고 발표 다음 날, 2003년에도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가운데 줄임)
전 한진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우리 조합원들을 지킬 겁니다.
쌍용차는 옥쇄파업 때문에 분열된 게 아니라 명단이 발표되고 난 이후 산자 죽은 자로 갈라져 투쟁이 힘들어진 겁니다.
지난 일요일.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보일러를 켰습니다.
양말을 신고도 발이 시려웠는데 바닥이 참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방바닥을 두고 나서는 일도 이리 막막하고 아까운데 주익씨는… 재규형은 얼마나 밟히는 것도 많고 아까운 것도 많았을까요.
목이 메이게 부르고 또 불러보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

김진숙 올림


소리가 끊긴 대한민국 조선 1번지

한진중공업 사측은 이번 정리해고에 대해 “2년째 선박 수주를 못하고 있는 데다 2011년 상반기에는 물량마저 다 떨어져 회사를 위해서는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한진중공업지회 최우영 사무장은 “회사가 수주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거”라고 주장한다. “회사가 의도적으로 물량을 수빅으로 몰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2006년부터 16억 달러를 들여 필리핀에 수빅조선소를 세웠다. 영도조선소의 열배가 넘는 100만평 규모다. 2009년부터 가동에 들어간 수빅조선소는 2010년에만 선박 23척을 수주해 3년 치 물량을 확보했다.

지회는 “수빅조선소 건설에 2조원이 넘는 차입금이 들어갔고, 이자비용만 1,700억 원에 이른다”며, “현 위기는 경영진의 책임이지 노동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회사가 “의도적으로 주문물량을 수빅으로 몰아주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수빅 물량을 가져와 (영도조선소에서) 가동을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회사는 이에 대해 “영도조선소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 때문에 수주 경쟁력이 낮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2007년 3월 ‘해외공장 관련 특별단체교섭 합의서’를 채택했다. 이 합의서에는 해외공장이 유지되는 한 국내공장에 대한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2011년 이 합의서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 오도엽 객원기자 dyoh@laborplus.co.kr
수주 못한 건가? 안한 건가?

한진중공업이 ‘적자인가, 흑자인가’와 ‘경영위기가 맞는지’가 이번 부산지노위 ‘부당해고 구제신청’의 중심 논쟁거리였다.

한진중공업은 2010년도에 517억 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 기록대로라면 적자가 맞고, 경영위기다. 그러나 2010년 3분기까지 한진중공업의 영업이익은 521억 원이었고, 이익잉여금은 1천억 원이 넘었다. 한순간 순이익이 순손실로 바뀐 까닭은 무엇일까?

한진중공업은 서울시 신문로 베르시움 주상복합아파트 사업을 하면서 삼성생명과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벌였다. 2011년 1월 이 소송에서 한진중공업은 패소하며 700억 원에 가까운 배상금을 삼성생명에 배상해야 했다. 회사는 이 배상금 가운데 560억 원을 2010년 대손상각비로 지급했다.

이에 대해 지회는 “정리해고 수순을 밟기 위해 2010년 예산으로 손해배상금 560억 원을 서둘러 집행했다. 건설 부문의 손실을 조선부문으로 메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최우영 사무장은 “2010년에 400명을 짜르는(해고하는) 경영위기가 왔는데, 연말에 174억이나 주식배당을 하는 게 맞냐?”고 적자 논쟁과 경영위기에 의문을 던진다.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 부산지노위는 사용자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반발해 5월 13일, 민주노총 소속 부산지방노동위원 23명은 전원 철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8일에는 배석도 부산지방노동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부산지노위 앞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는 기각결정에 대해 “진실에 눈감은 지노위의 이번 결정을 결코 인정할 수 없고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말 경영위기인가?

“지노위 그냥 놔두면 안 됩니다. 지노위가 노동자를 대변해야지, 사측 대변기구입니까?”
정문 앞에서 만난 정리해고자의 말이다. 자신을 ‘총 맞은 사람(해고자)’이라고 한다.

2008년만 해도 영도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4,500명에 이르렀다. 그해 한진중공업은 “사상 최대 흑자”를 냈다. 정규직, 비정규직, 사내 협력업체 직원들의 발걸음과 기계소리로 조선소는 우렁차게 돌아갔다.

우연의 일치일까? 필리핀 수빅조선소 가동과 함께 영도조선소의 수주량은 뚝 끊겼다. 사내 협력업체 직원들부터 소리 소문 없이 조선소에서 사라졌다. 2009년 12월 회사는 임직원 750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맞서 김진숙 지도위원은 2010년 1월, 27일간의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한진중공업지회는 2월 25일 조합원 총파업에 들어갔다. 다음날 노사가 만나 ‘구조조정 중단 합의서’를 작성했다. 정리해고는 중단됐고, 파업은 끝났다. 사태가 마무리된 듯했다.

그러나 1년을 넘기지 못했다. 회사는 400명을 추가로 정리해고 하겠다는 입장을 지난해 12월 15일 발표하였다. 850명 조합원 가운데 절반 가까운 인원을 정리하겠다는 말이다. 지회는 12월 20일 총파업으로 맞섰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 농성에 돌입한 이유는 쌍용자동차의 전철을 밟지 말자는 것이었다. 산 자와 죽은 자, 총 맞은 자와 총알 피한 자가 나눠지기 전, 정리해고를 막아야 한다는 호소였다. 하지만 그사이 조합원 228명은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그리고 172명은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회사는 정리해고 목표인원 400명을 정확하게 맞췄다.

회사의 정리해고 통보는 조합원의 분열을 가져왔다. 현재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조합원은 정리해고자를 포함해 250명가량이다.

3월 말과 4월 초에 많은 조합원이 파업 대열에서 이탈했다. ‘산 자’가 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이 아니다. 3개월이 넘게 한 푼의 급여도 받지 못한 경제적 사정이 컸다. 파업에서 이탈한 조합원들은 회사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받고 있다. 교육을 받다가도, “이게 아니다” 싶어 다시 파업 농성장을 찾기도 한다. 40명 남짓은 이도저도 싫다며 집에서 칩거를 한다. 4월 중순을 넘어서자 파업인원은 늘지도 줄지도 않고 있다.

▲ 85호 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오도엽 객원기자 dyoh@laborplus.co.kr
지방노동위원회는 사용자 대변기구?

부산은 술렁거린다. 영도조선소는 70년 넘게 부산을 지켜온 향토기업이자 부산경제를 이끌어온 선두마차였다.

“직원들을 짜를 생각 보다는 우짜든 빨리 일거리를 가져와 공장을 돌려야 할꺼 아입니꺼. 필리핀에서 배를 만든다꼬 영도조선소를 포기해서야 되겠습니꺼. 영도조선소는 (대한)조선공사(한진중공업 전신) 때부터 부산의 자랑 아입니꺼.”

부산역에서 만난 40대 보험설계사의 말이다. 부산의 여론은 대부분 영도조선소를 축소하거나 없애려는 한진중공업의 정책에 대해 부정적이다.

부산 영도구가 지역구인 김형오 국회의원은 지난 3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저는 친기업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밝힌 김 의원은 “사측이 구조조정의 이유로 내세우는 물량 미확보, 영도조선소의 시설 경쟁력 저하의 주된 원인은 경영부실이고, 그 책임은 경영진에 있다”며 “그런데도 사주와 경영진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근로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해서야 되겠느냐”고 경영진을 꾸짖었다. 또한 “한진중공업이라는 한 기업 때문에 우리나라 대기업 전체의 도덕성마저 심각하게 매도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번 지노위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기각 결정으로 한진중공업 사태는 해결보다 장기화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졌다.

지회는 “지노위 판결문이 나오는 대로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할 예정이다. 또한 “더 이상 빠져 나갈 조합원도 없고, 흔들릴 조합원도 없다”며 “정리해고가 철회 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회사의 입장도 강고하다. 지난 5월 9일 한진중공업 사측은 조합원과 정리해고자들을 상대로 ‘퇴거 및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부산지법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가처분 신청 대상은 파업을 벌이고 있는 조합원과 정리해고자 등 290명과 전국금속노조다.

ⓒ 오도엽 객원기자 dyoh@laborplus.co.kr
파국과 희망 사이

법원은 한진중공업이 김진숙 지도위원을 상대로 낸 ‘퇴거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않을 경우 하루 1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5월 16일 현재, 김진숙 지도위원의 숙박료(?)가 1억3천만 원이 넘어섰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호텔 스위트룸보다 비싼 값이다. 김 지도위원이 토막잠을 자는 85호 크레인 조정실은 가로 1m30cm, 세로 1m50cm다. 한 평은커녕 반 평도 안 된다. 실제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은 이보다 더 작다. 130일이 넘도록 다리를 펴고 잠든 적이 없다.

김 위원은 35미터 상공에서 희망을 가꾸고 있다. 크레인 농성 백 일째 되던 날 ‘침실 앞마당(?)’에 화단을 꾸몄다. 상추, 치커리, 딸기,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얼마 전에는 치커리를 크레인 아래로 내려 보냈다. 입맛이 없을 때 이 채소로 만든 샐러드가 크레인 위로 올라와 한끼 식사를 해결한다.

요즘 김진숙 지도위원의 식단은 낮에는 고구마 2알과 두유, 저녁에는 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