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함부로 못한다
정리해고 함부로 못한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1.06.0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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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고용안정협약 효력 인정
기업 존폐위기 아니면 정리해고 부당

노사가 서명한 고용안정협약을 위반하고 정리해고를 했다면? 그 정리해고는 무효가 된다. 노조의 주장이 아니라 대법원의 판결이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재판장 이인복 대법관)은 금속노조 진방스틸지회(지회장 이기형) 노동자들이 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중앙노동위원회의 상고를 기각하고 “진방스틸 노동자 16명에 대한 정리해고는 부당하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9일 이 사건의 항소심을 담당한 서울고등법원(재판장 김문석 판사)은 “제1심 판결 중 부당해고 구제 재심신청 사건에 관한 부분을 취소하고, 중앙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신청 사건에 관하여 한 재심판정 중 부당해고 부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 소송의 원고인 진방스틸지회 조합원들은 한국주철관공업이 진방스틸을 인수한 후 ‘특별단체교섭 합의서’를 통해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하자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냈다.

경북지노위는 이 사건에서 ▲ 정리해고를 할 만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되고 ▲ 이른바 단협 상 해고 시 ‘노사합의’ 규정은 노조에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주려는 취지일 뿐이라며 조합원들의 구제신청을 기각해, 회사 쪽의 정리해고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조합원들이 다시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 재심신청을 냈지만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중노위 판정 이후 조합원들이 서울행정법원에 낸 소송에서도 제1심 재판부는 회사 쪽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판결이 바뀌었다. 서울고등법원은 “협약 체결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심각한 재정적 위기에 처해 협약의 효력을 유지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아 부당한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정리해고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회사가 약속한 고용안정협약의 효력을 배제할 수 없는 이상 이를 어기고 정리해고한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이 이 같은 판결을 내린 근거는 ▲ 회사가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정리해고를 했으며 ▲ 경영상 어려움은 있었지만 정리해고 당시 회사의 적자 폭이 대폭 줄고 급격한 매출감소가 일어나고 있다고 볼 자료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에 이 소송의 피고인인 중노위가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기각함으로써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이 최종 판결로 확정된 것이다.

▲ 고용안정협약의 효력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협약은 유효하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금속노조는 “이번 판결로 법원이 정리해고와 관련해 고용안정협약의 효력을 직접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을 들어 정리해고 요건이 강화된 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금속노조는 또 “정리해고 문제를 판단할 때 주로 언급되는 경영상 긴박한 이유에 대한 요건도 대폭 강화시켰다”면서 “이는 ‘도산 우려가 없는 단순 경영합리화 조치를 위한 정리해고도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된다’던 기존 법원의 입장이 대폭 보완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정리해고 요건이 강화됨에 따라 향후 정리해고와 관련한 판결에서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리해고에 앞서 노사가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의 효력이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또 근로기준법 제24조에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정리해고)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대해서도 한층 엄격하게 해석될 것으로 보인다. 즉 이번에 대법원에서 확정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문처럼 “기업 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할 심각한 재정적 위기가 도래”한 경우에 한해 정리해고가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