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대표자, 직권조인 못하게 되나?
노조 대표자, 직권조인 못하게 되나?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1.06.0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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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조합원 총회 통한 단협 체결 규약 적법 판결
“단협 체결에 조합원 총의 반영해 조합민주주의 실현 필요”

노조 위원장이 조합원들의 뜻에 반해 단협을 체결하는 직권조인을 할 수 없도록 한 노조 규약이 노조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판결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은 제29조 제1항에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그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을 위하여 사용자나 사용자단체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합원들이 원치 않는 단협이라 하더라도 노조 위원장이 서명하면 ‘합법적’으로 단협이 체결된 것으로 본다. 이른바 직권조인이라 하더라도 합법적인 단협으로 인정된다. 조합원들은 그런 단협을 시정할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 때문에 많은 노조들은 이 같은 직권조인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협약 체결 시 반드시 조합원 총회를 거치도록 규약에 명시하고 있다.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위원장 박종옥, 이하 발전노조)도 규약 제68조 제1항에 “조합이 협약을 체결하고자 할 때에는 총회를 거쳐 위원장이 체결하고 교섭위원들이 연명으로 서명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약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노조법에 규정된 노조 대표자의 단협 체결권을 본질적으로 제한한다는 이유를 들어 ‘규약시정명령’을 내려왔다.

발전노조 역시 지난해 1월 26일 서울지방노동청 서울강남지청장(지청장 조성준, 서울지방노동청 서울강남지청은 현재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으로 명칭 변경, 이하 강남지청)으로부터 규약시정명령을 받았다. 노조활동 관련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한 규약 제7조 제3호, 제9조 제1호 단서와 조합원 총회를 거쳐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한 발전노조 규약 제24조 제1항 제2호, 제68조 제1항이 노조법에 위반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발전노조는 지난해 2월 22일 서울행정법원에 규약시정명령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9월 8일 판결에서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에 대해서는 “발전노조는 초기업별 노조로서 해고자도 조합원 자격을 가질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조합원 총회를 거쳐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한 발전노조 규약은 노동조합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을 침해하여 위법하므로 시정명령의 대상이 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 발전노조와 강남지청이 서로 항소해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개시돼 지난 1일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고등법원은 항소심 판결에서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에 대해서는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해 초기업별 노조의 경우 해고자도 조합원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이어 단협 체결 시 조합원 총회를 거치도록 한 발전노조의 규약에 대해 ▲ 노조법 제16조 제1항 제3호에서 단체협약에 관한 사항을 총회 의결사항으로 정하고 있는 점 ▲ 노동조합에 관한 중요문제인 단체협약 체결에 조합원 총의를 반영하여 조합민주주의를 실현할 필요가 있는 점을 들어, 이 규약이 적법하다고 보아 제1심 판결을 취소했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민주노총 법률원 신인수 변호사는 “지금도 일부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노조에는 대표자의 권한을 남용한 직권조인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 “이번 판결은 당연한 것을 재확인한 것으로서, 향후 복수노조가 허용됐을 경우나 일부 열악한 노조에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직권조인을 못 하도록 하는 판례로 작용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신인수 변호사는 또 “조합원들이 단체협약 체결에 전혀 관여할 수 없고 사후통보만 받도록 하는 것은 조합민주주의 실현에 정면으로 반하고, 대표자의 권한 남용과 직권조인의 폐해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노동청의 시정명령 남발은 비난을 면키 어려웠다”면서 “조합원 총회를 거쳐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한 노동조합 규약이 적법하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노동청의 잘못된 관행에 쐐기를 박는 한편, 노조법을 원래 입법취지인 조합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로 직권조인을 방지하기 위해 노조가 단협 체결 시 조합원 총회를 거치도록 규약에 명시했을 때 노동청이 규약시정명령을 내리던 관행에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판결은 노조가 이 같은 내용을 규약에 명시했을 때에 한정된 것으로, 규약에 이 같은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노조에까지 이 판결이 적용되려면 노조법 자체를 개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번 판결은 제2심 판결이어서 강남지청이 상고할 경우, 대법원에서 판결이 다시 번복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