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유니온의 '레알청춘' 마침내 출간
청년유니온의 '레알청춘' 마침내 출간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1.06.1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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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묻고 청년이 답한 이 시대 청년 자화상

얼마 전부터 ‘청춘’에 관한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또는 ‘할 수 있어!’라며 청년들을 응원한다. 누군가는 이미 사회에서 성공한 ‘특별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결국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본 청년은 위로와 동정의 대상이다. 그러나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하는 청년들에게 그런 말들은 잠깐의 도피처밖에 될 수 없다. 『레알 청춘』은 위로와 동정 대신 다른 것을 요청한다. 있는 그대로 청년들의 삶을 바라볼 것, 그 속에서 무수한 불평등과 제도를 함께 바꾸어갈 길을 찾는 것이다.

청년, 위로와 동정의 대상 아니다

▲ 청년유니온 조합원이 쓴 '레알청춘(삶이보이는창)'

최근 대학생들이 다시 촛불을 들었다. 정부의 공약이었던 ‘반값 등록금’ 요구한다. 한해에 1000만 원이 넘는 살인적인 등록금에 부모만이 아니라 청년들의 허리도 휘고 있다. 또한 배달 일을 하던 청년들의 죽음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다. 월세를 내기 위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졸업해도 기다리는 것은 저임금의 비정규직 일자리이다. ‘88만원 세대’로 통칭되는 20, 30대 청년들의 삶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2010년 3월, 국내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 출범했다. ‘88만원 세대’의 삶은 청년유니온 조합원들도 똑같이 겪는 일이었다. 청년유니온은 그들의 이야기를 날것으로 전하기 위해 2010년 5월, 책 발간 팀을 꾸렸다. 저자들은 ‘진짜’(레알) 청년들을 만나 인터뷰했고 마침내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레알 청춘』을 펴내게 되었다. 유명한 교수나 직업 저술가가 아닌 같은 처지에 있는 청년이 청년을 직접 만난 후 쓴 책이 탄생한 것이다.

“실상 동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이 아니면 청년들에게 집중되는 사회의 모순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책의 주인공도 청년이라야 했고 그들을 인터뷰하고 글을 쓰는 사람도 청년이라야 했다” - ‘책을 내며’ 중에서

이 책을 통해 들려주고 싶은 것은 단순히 젊은 날의 고생담이 아니다.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부르짖는 정부는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일한 방안은 청년 인턴제의 재도입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작 청년 인턴제의 수많은 부작용에는 관심이 없다. 등록금 문제 해결을 말하지만 대학생들이 연 1000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고리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어떤 삶을 사는지는 모른다.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는 지금 청년들의 삶을 바로 아는 것. 진짜 청춘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에서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이 나올 수 있다.『레알 청춘』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잘 지내나요, 청춘

남대문시장 도매점 배달원, 비정규직 연구원, 공기업 계약직, 방송작가, 학원강사, 만화작가, 종합격투기 선수, 연극배우 지망생, 지방대 취업 준비생, 방송국 시설 관리 파견 비정규직, 임용고시 준비생. 『레알 청춘』에서 본인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준 11명의 청년들이다. 이들에게 연봉 3000~4000만 원과 주5일 근무는 그림의 떡이다. 계약직, 파견 비정규직 같은 불안정 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책은 편의점에서, 시장에서, 방송국과 학원에서 끊임없이 노동하고 실직하고 다시 노동하는 ‘청년 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인터뷰를 위해 청년과 청년이 만나는 순간들은 깊은 공감대를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또한 청년이 청년에게 잘 지내는지 묻는 안부와도 같은 이야기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청년유니온 저자들은 르포 작가와 함께 몇 개월간의 세미나를 진행하며 인터뷰와 글 쓰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녹음기와 수첩, 카메라를 들고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다녔다. 2명은 자신의 재능을 살려 그림을 그려 넣었다.『레알 청춘』은 그렇게 탄생한 지난 1년간의 소중한 결과물이다.

나는 청년 노동자다!

주인공들은 모두 일하는 노동자이다. 이들은 매우 불리한 고용 관계에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자존감을 지키려 하고 노동자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하지 않으면서 청년들을 부려먹는 구조라면 과연 일하고 싶을까?

보습 학원의 강사였던 유혜원 씨는 원장이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했다. 게다가 “네가 잘 모르나 본데…….”라며 자신을 무시하곤 했다. 그러나 혜원 씨는 끈질긴 투쟁을 통해 밀린 월급을 받아내고야 만다.

방송작가 장인영 씨(가명)는 소위 ‘막내작가’로 일할 때 한 달에 80만 원을 받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뛰어다니며 일한 대가였다. 젊은 날의 체험,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착취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회사 입장에서는 ‘너는 막내작가인데 어디서 이런 걸 배우겠니?’ 하면서 부리는 거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후 임시직을 전전하던 박민재 씨(가명)는 서울시 공공 근로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근로계약서에 비가 일정 정도 오면 출근하지 말라는 조항이 있었다. 한 번이라도 일을 못 하게 되면 월차 수당 같은 각종 수당이 줄어 한 달에 15만 이상을 덜 받게 된다. 당장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그는 불합리한 줄 알면서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국내 최고의 명문대라는 카이스트 대학원을 졸업한 고학력자도 예외는 없다. 장주영 씨가 비정규직 연구원 일을 하며 받은 월급은 겨우 최저임금에 맞춘 89만 원이었다. 인센티브가 있었지만 정규직에만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그녀 역시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며 월세 내기에 급급한 생활을 했다.

공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한지혜 씨의 사례는 등록금 문제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녀는 대학에 다니는 동안 총 2800만 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지금 그녀의 20대는 온전히 빚을 갚는 데 바쳐지고 있다.

다음 세대의 희망을 위해

이렇게 늘상 불안에 노출된 삶속에서도 주인공들은 쉽게 자신을 비하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서영상 씨는 지방대 출신의 취업 준비생이다. 아나운서가 꿈인 그는 전주에서 서울까지 무려 왕복 6시간을 쏟아가며 방송 아카데미에 다녔다. 그는 지방대라는 핸디캡이 오히려 자신의 성실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다른 사람에 비해 핸디캡이 있지만 성실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뭔가 하고 있구나, 살아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자신의 간절한 꿈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주인공들 역시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생계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투잡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연봉 100만 원조차 받기 힘들지만 차근차근 연극배우의 길을 가고 있는 박다정 씨, 입시 만화 학원에서 강사를 하며 틈틈이 만화를 그리고 있는 박해성 씨, 링에 오를 때마다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링에 올라가면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는 종합격투기 선수 차준호 씨(가명)가 이들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주인공들은 다음 세대를 위한 희망을 만들고 싶어 한다. 자신의 경험과 깊은 고민 속에서 다듬어진 저마다의 꿈을 품고 있다. 임용고시 준비생인 성다움 씨는 청소년들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소망을 교사라는 직업을 통해 실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방송국에서 시설 관리를 맡고 있는 민철식 씨는 파견 비정규직이다. 청소년 시절에는 소위 ‘왕따’를 당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빚 때문에 사채 추심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은 그가 품은 꿈의 원천이 되었다.

“지역아동센터를 해보는 거예요. 아이들이 무섭기도 한데 아이들과 아옹다옹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와 같이 문제가 있었던 청년들을 보듬어줄 수 있는 20대를 위한 자활 센터 같은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책을 덮는 순간 이 시대 청년의 눈물과 함께 희망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