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 25년, 날치기다! 아니, 잘되고 있는데 뭐?
파행 25년, 날치기다! 아니, 잘되고 있는데 뭐?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1.07.2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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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임위, “파행 아니다” … 교섭 참가자 정치전략 활용 때문에
경영계, “정부나 국회가 나서야” … 위원회 방식 별로 없다
노동계, “독립된 운영체제 ”… 가이드라인 정해 정부가 결정

1988년 최저임금위원회가 출범했다. 이후 25년간 노사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은 4번뿐이다. 해마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최저임금 결정 시한까지 힘겨루기를 했다. 공익위원이 중재안을 내면 노동계나 재계 가운데 한쪽이 동조를 한다. 물론 다른 쪽은 퇴장하여 표결에 참석하지 않는다. 이 파행을 스무 해 넘게 반복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노동자도 사용자도 불만 가득

최악의 파행은 막았다.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의 사퇴까지 갔던 최저임금위원회는 어렵사리 2012년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올해보다 6%(260원) 오른 4,580원.

그 자리에 노동자위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를 요구했던 노동자위원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최저임금이 결정되었다. 민주노총은 “사퇴했던 사용자측 위원은 국민을 기만하고 어제 개최된 제13차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 은근슬쩍 참가하여 오늘(7월 13일) 새벽 공익위원과 단 둘이서 2012년 적용 최저임금액을 날치기 처리했다”고 주장한다.

사용자 위원으로 참여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최악의 파국을 막기 위한 ‘차악’의 선택이지 결과에 만족하지는 않는다.

최저임금은 노동자·사용자·공익위원이 각 9명씩 27명이 참여하여 결정한다. 지금과 같은 최저임금 결정 방식이라면 앞으로도 비슷한 양상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노사 양측 모두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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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위원 역할에는 문제없나

설인숙 한국노총 부위원장은 현재 고용노동부에 속해 있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노동자의 생활보장을 위한 ‘독립된 운영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재웅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현재처럼 노사가 서로의 주장을 앞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임금의 50%로 가이드라인을 세워 정부가 결정하고,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 산정에 필요한 지표나 사례를 조사·연구하는 역할과 최저임금이 사업장에서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계 쪽의 가장 큰 문제제기는 공익위원의 역할이다. 양대 노총과 시민사회단체로 꾸려진 최저임금연대는 “공익위원들의 기계적 중재에 의해 결정”되는 방식의 탈피를 요구한다. 또한 “대통령과 고용노동부장관의 허수아비 (공익)위원 선출이 아니라 전문성을 기본으로 공정하고 중립적이며 독립적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공익위원 선출 제도 개선을 주장한다.

김동욱 경총 경제조사본부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같은 위원회 구조의 최저임금 결정방식은 일본을 비롯한 몇 개국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한다. 김 본부장은 “최저임금 대상 근로자가 200만이 넘는 중요한 사항”인데 “노사가 자기 입장을 내세우게 하는 현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한다. “프랑스나 스페인과 같은 유럽은 국가에서, 미국은 의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유럽에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장관들이 위원을 맡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국가도 있다”며, “위원회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국가나 의회가 나서기”를 촉구한다.

영국은 저임금위원회를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에 따르면 “공익위원들은 사업장을 수시로 방문해 노·사와 번갈아 가며 30차례 이상 면담을 가지고 자료를 정리한다. 또한 매년 각 대학에 최저임금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수십여 개 의뢰하며 공익위원들이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들은 공익위원 안을 만들어 노·사를 설득하고 조율한 뒤 공식적인 최저임금을 발표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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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노동계와 재계의 법과 제도 개선의 요구와 문제제기에 대해 박준성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동의하지 않는다.

박준성 위원장은 ‘파행’과 ‘갈등’은 바깥에 비춰지는 시선이라고 한다. 현재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법에 따라” 운영되고, 노사가 “거의 합의 직전까지 갖는데”, 다만 “교섭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정치전략’ 차원에서 활용”을 한 것 때문에 “파행이나 갈등처럼 여겨진다”며 ‘날치기’ 주장을 반박한다.

현재의 결정구조나 방식을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박준성 위원장은 “정부나 국회가 나서서 결정을 한다면 지금보다 더 큰 사회적 혼란이 있지 않겠느냐”고 우려를 나타낸다. 현재 공익위원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노사가 치열하게 논의해서 입장차를 줄이면 노사가 수긍할 수 있는 중재안을 제출한다”며,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결론적으로 “20년 동안 노사가 교섭을 하고 공익위원이 조정을 하여 (최저임금제에 대한) 어떤 당위성도 훼손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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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으로 살아남기

최저임금의 결정이 ‘파행’이냐 아니면 ‘합리적’이냐를 논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최저임금법 1장 1조에 나온 “이 법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있느냐다.

아르바이트 포털업체 알바몬은 평균 4,915원의 시급을 받는 커피숍 ‘알바’가 4년제 사립대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려면 총 1,579시간을 일해야 한다고 밝혔다. 매일 12시간씩 4개월 이상 일해야 하는 금액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서울에서 소형 아파트(18평) 전세를 얻으려면 꼬박 12년 7개월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2012년 최저임금 4,580원. 최저임금으로 생활하는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과정과 그 결정 액에 대해 박수를 보낼까, 손가락질을 할까?

사반세기를 거친 최저임금법과 위원회 방식에 대해 진지한 성찰과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