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영수증서 환경호르몬이 나온다고?!
뭐? 영수증서 환경호르몬이 나온다고?!
  • 참여와혁신
  • 승인 2011.08.30 18:25
  • 수정 2019.04.11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활 곳곳에 숨은 독소, ‘비스페놀A’ 주의보‘환상의 신소재’가 알고 보니 발암물질

 

▲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영수증 드릴까요?”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계산하고 나면 으레 영수증을 챙겨준다. 덕분에 지갑 속에는 항상 영수증이 빼곡히 들어있다. 그런데 얼마 전 놀라운 소식이 보도됐다. 영수증이나 대기표 등의 종이를 통해 환경호르몬 ‘비스페놀A(bisphenol A, 이하 BPA)’가 몸에 흡수될 수 있다는 것.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6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BPA는 대략 영수증 무게의 1~2% 정도라고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영수증이 환경호르몬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니! 대체 BPA의 정체는 무엇일까?

 

경이로운 플라스틱의 재료, 비스페놀A

BPA는 쉽게 말해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물질이다. 1891년 러시아 화학자 디아닌(A. P. Dianin)이 처음 합성했고, ‘폴리카보네이트’와 ‘에폭시 수지’를 만드는 데 이용된다. 둘 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폴리카보네이트는 주로 투명하고 딱딱한 플라스틱을 떠올리면 된다. 물병이나 생수통, 젖병, 식기, 컵, CD, 신호등, 방음벽, 온실, 유리대용시설 등에 모두 폴리카보네이트가 이용됐다. 이 플라스틱은 굉장히 안정적이라서 시간이 흘러도 잘 변하지 않는다. 또 열에 강하고 잘 부서지지 않아서 환상의 신소재로 각광받았다.

에폭시 수지는 건축이나 토목 분야에서 접착제로 많이 이용된다. 나무나 금속, 시멘트, 플라스틱 등 거의 모든 것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공공장소의 바닥이 약간 푹신하게 칠해졌다면 에폭시 수지가 사용된 것이다. 팬시점에서 볼 수 있는 푹신한 스티커, 핸드폰 액세서리 등도 에폭시 수지로 만들었다. 또 캔 음료의 이음새를 코팅하거나 병뚜껑 안쪽을 코팅하는 데도 에폭시 수지가 쓰인다. 그래서 BPA의 위험성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꽤 유용한 물질이었다.

하지만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유방암 세포를 실험하던 중 BPA가 환경호르몬이라는 게 알려졌다. 실험 도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이 난포호르몬처럼 작용했고, 유방암 세포를 증식시켰던 것이다. 이 물질을 조사해 보니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시험관에서 녹아나온 BPA였다. BPA는 2~5ppb로 유방암 세포를 키웠던 것이다. 참고로 ppb(part per billion)는 농도의 단위로 1ppb는 1톤에 1mg 함유된 정도를 나타낸다.

생식기 및 뇌기능에 장애 일으킬 수 있는 환경호르몬

그렇다면 BPA는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줄까? 미국 국립독극물연구소(NTP)는 2009년 동물실험을 통해 BPA가 유방암, 전립선암, 성조숙증, 행동장애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예일대에서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해 미량의 BPA에 노출되더라도 뇌기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매일 기준치보다 적은 BPA에 노출된 원숭이는 기억과 학습, 기분에 영향을 주는 뇌세포가 손상됐던 것이다.

2008년 계명찬 한양대 교수 등도 BPA가 동물의 성조숙증을 유도하고 각종 성호르몬 분비에 변화를 일으킨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 아기 생쥐를 BPA에 노출한 결과 암수 모두 생식기가 빨리 발달했고, 성장호르몬도 정상과 다르게 나타났다. 유아기에 BPA에 노출되면 빨리 사춘기가 오거나 생식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BPA에 노출된 어른 생쥐의 정소와 난소에서도 호르몬을 형성하는 유전자 발현에 변화가 나타났다. 이는 인간의 생식기에도 문제를 불러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다시 말해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젖병에서 BPA가 나온다면 성장이나 생식계통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캔 음료나 통조림 뚜껑 등에서 BPA를 접한다면 여성의 유방암이나 남성의 불임 등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자라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후손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환경호르몬의 가장 무서운 모습이다.

이처럼 BPA에 대한 위험성이 하나둘씩 드러나자 캐나다는 2010년부터 BPA를 유해물질로 지정하고 금지시켰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도 BPA 사용을 금지했다. 우리나라도 2008년 12월 식약청에서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에서 BPA 용출기준을 기존에 2.5ppm에서 0.6ppm으로 강화했다. 하지만 아직 BPA 사용이 금지된 것은 아니다.

BPA, 감열지로 만든 영수증의 ‘현색제’로 쓰여

그런데 영수증에선 왜 BPA가 나올까? 편의점이나 카페, 백화점 등에서 쓰이는 영수증은 거의 ‘감열지’를 이용한다. 감열지는 열을 받으면 색이 드러나게 약품으로 처리한 종이를 말한다. 약품에는 ‘염료’와 색을 잘 보이게 하는 ‘증감제’, 색을 드러내게 하는 ‘현색제’가 들어있다. 이중 현색제에 BPA가 들어간다.

놀라운 점은 영수증 1장에 들어 있는 BPA의 양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미국 환경연구단체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가 2010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영수증 1장에 있는 BPA 양은 아기 젖병이나 캔 음료에 들어 있는 것보다 250~1,000배가량 더 많았다. 특히 BPA는 입뿐 아니라 손을 통해서도 몸속에 들어갈 수 있다. 스위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는 감열지를 5초만 잡고 있어도 피부를 통해 약 0.2~0.6 마이크로그램(μg)의 BPA가 몸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어느 정도 논란은 있다. 미량의 BPA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주장도 있고, 일상생활에서 소량을 접해도 건강이 나빠지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와 후손들의 건강에 관한 일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마음으로 미리 조심하는 게 좋겠다.

 

 


|환경호르몬| 사람이나 동물의 몸 안으로 들어가서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혼란시키는 등 내분비계를 교란시키는 물질을 말한다. 대부분이 화학물질이며 학술용어로는 ‘내분비계 교란물질(endocrine disrupter)’이라고 한다. 이들은 쉽게 분해되지 않아 물이나 토양 속에 수년 동안 남아있고, 생물체에서는 지방조직에 쌓인다. 현재 세계자연기금(WWF) 목록에서는 DDT 등 농약 41종과 비스페놀A, 쓰레기 등을 태울 때 나오는 ‘다이옥신’ 등 67종을 환경호르몬으로 규정하고 있다.

|환경호르몬 주의요령| 포장용 랩을 구입할 때는 재질을 꼭 확인하고 폴리에틸렌(PE) 제품을 구입하는 게 좋다. 염화비닐(PVC) 랩은 뜨거운 국물과 닿으면 환경호르몬을 배출할 수 있다. 폴리카보네이트 재질로 만든 젖병은 오래 끓이지 않도록 한다. 열에 의해 BPA가 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