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지갑 속을 훔쳐 보다
당신의 지갑 속을 훔쳐 보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1.08.3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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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명예냐, 아니면 삶의 질과 여유냐
솟구치는 물가…장바구니는 속수무책
[분석] 2011, 연봉과 물가 진단

ⓒ 참여와혁신 포토DB
자신의 연봉보다는 남에 비해 내 연봉이 어떤가를 비교할 때, 삶은 팍팍하다 못해 짜증난다. 2011년 당신의 지갑은 어떤신지?

월간 <참여와혁신>은 2011년 직장인의 연봉을 점검한다. 장바구니의 무게도 살펴보고, 당신의 가계부도 살짝 훔쳐본다. 그곳에서 직장인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슬쩍 물음을 던지며 글을 마친다. 마음속에 감춰진 꿈을 잠시 간질이며.

내 배우자의 호주머니를 기대한다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사랑만으로 결혼하지는 못하는 시대다. 맞벌이는 혼수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럼 직장만 다니면 될까? 아니다. 배우자의 호주머니도 은근슬쩍 기대한다. 내 남편이나 아내가 될 사람의 연봉이 얼마나 되었으면 하는가?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미혼 직장인 545명에게 물었다. 남성 직장인이 바라는 배우자의 최소연봉은 평균 3천276만 원, 여성 직장인이 바라는 남성의 연봉은 4천45만 원이다. 헉! 연애할 시간도 없는데, 월급봉투를 생각하니 결혼은 사막의 신기루 같다.

2010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6.1%다. OECD 국가 가운데 터키 다음으로 높다. 한국은 높은 성장률로 2008년 금융위기를 가뿐히 넘어섰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은 약 136조 원. 순이익은 11조 원에 달한다. 세계 최대의 전자업체로 등극했다. 현대·기아차의 성장도 눈부시다. 매출은 60조 원, 순이익은 7조5천억 원이다. 지난 5월에는 미국 자동차시장의 10.1%를 장악했다. 외국회사로는 도요타에 이어 2위다.

이 놀라운 성장의 혜택을 입은 나라에 사는 당신의 호주머니는 안녕한가?

‘잡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절반이 넘는 57.4%는 자신의 연봉을 높여서 말한다. 실제 받는 연봉보다 500만 원 가까이 ‘업’ 시킨다.

왜 그럴까? 66.1%는 ‘자신의 능력도 동반상승하기 때문’에 그런단다. 또한 무시당하기 싫어, 남들에게 부러움을 받고 싶어서다.

직장을 옮기는 이유도 연봉 때문이다. 취업포털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열 명 가운데 네 명은 연봉 때문에 직장을 옮긴다고 답했다. 이직할 회사를 선택할 때 기준도 당연히 연봉(30.7%)이다. 야근과 같은 근무환경(8.1%)이나 복리후생(5.9%)은 ‘돈’을 쫓아오지 못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돈 대신 삶의 질과 여유를 꼽는다

그럼 직장인이 꿈꾸는 일과 삶은 무엇일까? 당연히 돈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돈과 명예’보다 ‘삶의 질과 여유’를 꼽는다. ‘사람인’에 따르면 직장인 열 가운데 일곱이 삶의 질과 여유를 바란다.

배부른 소리일까? 아니다. 연봉 5천만 원 이상(83.8%)을 받는 사람보다는 덜하지만 연봉 2천만 원대 직장인의 70.2%도 삶의 질과 여유를 선택했다. 그럼 삶의 질이든 돈과 명예든, 자신이 꿈꾼대로 살아가는 직장인은 얼마나 될까? 비참하게도 열 명 가운데 세 명에 불과하다. 삶의 만족도는 평균 51.4점. F학점이다.

만족하지 못한 현실이 있기에 꿈이 있다. 꿈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늘 출근길이 지옥 길이리.

대기업에 이력서를 쓰는 박희망 씨(가명). 그의 꿈은 대기업 최고경영자다. 억대 연봉의 꿈을 위해 오늘도 도서관에서 책을 파고, 이력서에 미래를 담는다.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의 2010년 임원 평균 연봉은 8억7천만 원이다. 평직원 평균 임금 6천280만 원의 무려 13.85배이다. 국내 대표기업답게 삼성전자 사내 임원은 평균 59억9천만 원을 받는다. SK이노베이션이 39억8천만 원으로 뒤를 이었다. 30억 원대 임원은 32억6천만 원의 삼성물산, 30억3천만 원의 삼성SDI, 30억 원의 CJ제일제당이 있다.

임원의 연봉은 까마득하게 먼 달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재벌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못한 숱한 구직자는 우선 일자리를 차지하는 게 급선무다. 그들이 이력서에 쓰는 연봉은 30억 원대 임원의 하루 수입에 불과하다.

희망연봉과 현실연봉 사이를 살핀다

신입구직자의 희망연봉은 2천138만 원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2010년 신입구직자 이력서 1만7천 건을 분석한 결과 남성은 2천240만 원, 여성은 1천995만 원을 희망했다. 대기업 지원자는 2천673만 원, 중소기업은 2천52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 희망연봉은 일단 취업을 하자는 바람을 이력서에 소박하게 기록한 것으로 여겨진다.

올해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은 3천300만 원이다. 2010년 3천138만원보다 5.2% 올랐다. 조선·중공업 대졸 초임이 4천333만 원으로 가장 높았고, 금융업(3천618만 원), 기계·철강업(3천416만 원), 석유·화학업(3천383만 원)이 뒤따랐다.

주요 공기업의 대졸 초임 평균연봉은 2천597만 원이고, 외국계 기업은 2천917만 원이다. 중소기업 대졸 초임은 대기업에 비해 무려 1천125만 원이 낮은 2천175만 원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해(2천93만 원)보다 2.2%가 인상된 액수다. 대기업 초임 인상률 5.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출발선부터 양극화는 시작된다.

이 격차는 시간이 흐르면 줄어들까?

고용노동부 임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5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의 평균 임금은 2천673만 원이고, 300인 이상 사업장은 3천969만 원이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1.5배의 차이가 난다.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의 임원을 제외한 평직원의 평균임금은 6천280만 원이다. 100인 미만 사업장 직원은 100대 기업 직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2.5%를 받는다.

직장인에게 정해진 월급 이상의 관심사는 연말 성과급이다. 급여인상보다 연말에 받을 보너스가 더 간절히 기대된다. 하지만 정규사원이 아닌 비정규노동자에게 특별급여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고용노동부의 2009년 연간특별급여의 고용형태별 통계를 보자. 정규노동자는 488만4천 원이다. 반면 비정규노동자는 1/10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35만8천 원에 불과하다.<그림1 참조>

▲ 고용형태별 연간특별급여
사업장 규모에 따라서도 하늘과 땅 차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연간특별급여는 1천76만7천 원인 반면 5인 미만 사업장은 73만2천 원으로 14.7배의 격차가 있다.<그림2 참조>

▲ 사업장 규모별 연간특별급여
2011년 직장인의 급여는 얼마나 올랐을까?

지난해 6%가 넘는 경제성장을 보여 올해는 급여인상에 대해 여느 해보다 직장인의 기대감이 높았다. 2008년 금융위기로 은행권 신입사원은 20% 초임삭감을 감수하지 않았는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1년 7월 현재 1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임금협상이 완료된 사업장은 3,636(전체 8,458)곳으로 평균 임금인상률은 5.2%다. 지난해는 4.6%였다.<표1 참조>

5,000인 이상 사업장은 5.7%인 반면 300인 미만 사업장은 평균인상률보다 낮은 4.9%에 머물렀다. 지난해 5% 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2010년 0.6% 인상에 머문 공공부문은 4.1% 인상되었다.<표2 참조>

▲ 사업장 교모별 및 부문별 임금인상률
아래 표는 인천에 사는 김한영 씨(가명)의 가계부다.<표3 참조> 남편은 46세로 대학교수이고 김 씨는 42세로 시간강사로 일한다. 김 씨는 2011년에 시간강사 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올해는 남편의 수입만으로 살아가야 한다. 남편의 연봉이 인상되었지만 가계소득은 20만 원이나 줄었다.

소득은 줄었으나 지출액은 지난해보다 10% 가까이 늘어났다. 소득이 준만큼 아껴야 한다고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치솟는 물가는 김 씨의 노력을 마이너스로 만들었다. 가족의 식탁을 차리는 데 16% 가량 지출을 더했지만 밥상은 작년에 비해 못하다. 실제 김 씨가 느끼는 소비자 물가는 정부의 물가 상승률(4%대)의 두 배를 넘어선다.

▲ 인천 김한영 씨 가계부
장바구니는  비어간다

대기업에 다니는 최민주 씨(가명)의 집은 경기도 안양시 평촌이다. 광화문으로 승용차로 출퇴근하던 최 씨. 올해 들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 타며 출퇴근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치솟는 유류비를 감당할 수가 없다. 대중교통을 타니 운전을 하지 않아 편하다고 위안하지만 오르기만 하는 주유소의 숫자 앞에 주눅이 든다.

대전에 사는 맏며느리 현주옥 씨(가명). 8월에는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 제사가 보름 간격으로 있다. 제사상 준비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 인천에 사는 시누이와 서울에 사는 동생네가 와서 소매를 걷고 일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 보는 일은 두렵다 못해 살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다. 배 5개를 사니 1만9,800원이다. 꼭 배를 제사상에 올려야 하나 마음이 흔들렸지만 살 수밖에 없다. 평소 딸처럼 아껴주시던 시아버지의 자상한 인상이 그리워 지갑을 열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영환 씨(가명). 며칠 전 초등학교 4학년 딸에게 과자를 사먹으라고 천 원짜리를 주었다가 무안만 당했다. 요즘 천 원짜리 들고는 살 과자가 없단다. 작년에 천오백 원 하던 아이스크림이 올해는 천팔백 원이라고 따진다. 불똥은 용돈 인상으로 튀었다. 한 달에 오천 원 가지고는 일주일에 과자 하나 사먹기 힘들다고 용돈 100% 인상안을 내놓는다. 오랜만에 아빠 노릇한다고 천 원짜리 선심을 썼다가 된통 당하기만 했다.

올해 물가 인상이 예사롭지 않다. 국제유가는 떨어졌다고 하는데 주유소 기름 값은 멈추지 않고 고공행진이다. 7개월 연속 4% 이상의 상승률을 보인 물가는 8월 들어 떨어지기는커녕 5%대로 진입할 거라는 불길한 소문이 밀려온다. OECD 3월 소비자 물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3월과 비교해 4.7%로 상승해 5.2%의 에스토니아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7월 102종의 생필품 가운데 62.7%인 64종의 가격이 뛰었다. 배추는 66.5%, 무는 21.4%, 양파는 11.6%가 올라 채소류의 상승폭이 컸다. 추석을 앞둔 제수 과일 값의 경우 배는 61.9%, 사과는 27.4%가 올랐다. 올해 추석 차례 상을 차리려면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어난 23만8천 원이 들 거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은 생산자물가 상승 폭보다 크다. 지난 18일 윤종원 기획재정부 정책국장은 식량안보 세미나에서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의 괴리가 우리나라 물가구조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 국장은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에서 생산자물가 상승률을 뺀 수치가 우리는 0.9% 포인트였다”고 밝혔다. 미국은 -0.1% 포인트, 일본은 -0.4% 포인트, 영국은 0% 포인트다. OECD 주요 국가들은 생산자물가가 소비자물가와 같거나 낮은 것에 비해 한국은 유독 소비자물가 상승이 더 높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워크아웃 당하는 사람들

2010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800조 원을 넘어섰다. 가구당 4천611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3년 동안 770만 원의 빚이 더 불었다. 최근 3년 6개월 동안 다달이 1조9천억 원씩 늘어나던 가계 부채가 지난 5월에는 2조2천억 원이 늘었다.

부채의 증가속도는 국내총생산 증가보다 빠르다. GDP는 10년간 6.8%씩 올라간 반면 가계부채는 1999년 214조 원에서 해마다 13% 가까이 늘어났다. 8월 초 은행에서는 가계 대출을 중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민들에게 꼭 필요한 자금은 대출하겠다고 하지만 서민들에게 대출 문턱은 높은 지경을 넘어 커다란 성벽이 되었다.

가계부채의 성격을 살펴보면 더욱 위태롭다. 과거 내 집 마련 대출과 달리 생활비 명목의 대출이 늘어가고 있다.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금융채무불이행자도 급격히 늘어났다. 워크아웃 신청자는 2006년 63만 명이었는데, 2009년에는 87만 명, 2010년에는 96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 6.1% 경제성장률을 보여 OECD 국가 가운데 2위를 차지했던 한국은 덩달아 가계부채도 뛰었다. 반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OECD 주요 국가들의 가계부채는 감소 추세다.

연봉이 올라도 가계부는 여전히 불안하다. 임금인상에 목을 매어도 삶은 갈수록 가난해진다. 행복은 지갑의 두께에 있지 않을 수 있다.

연봉을 잊어야 행복해질까

2008년 기준 연간 2,256시간을 일하는 한국의 직장인들. 여전히 OECD(평균 1,687시간) 최장시간 챔피언 자리를 놓지 않고 있다. 임금이 곧 나와 가족의 생명줄인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연봉은 최대의 관심사이자 꿈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연봉이 직장인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유일한 탈출구일까?

갈수록 살림이 팍팍하다고 여겨지는 2011년. 한여름 후텁지근한 열기가 어느덧 사라진 듯하다. 여름 내 걷히지 않던 우중충한 구름 사이로 파란 가을하늘이 얼굴을 내민다. 웅크려졌던 가슴 활짝 펴고 가을바람을 맞이 하자. 당신의 곁에서 노래하는 풀벌레 지저귐에 귀 기울이는 여유를 누리자. 가끔 자신의 연봉을 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