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양조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1.09.3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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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술’ 막걸리 영욕의 세월 백년
입맛 따라 인심 따라 변하거나 없어지거나
[삶의 현장] 막걸리 양조장

옛 영화를 그리는 곳이 비단 막걸리 양조장뿐일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인심이 바뀌는 대로 추억 속에 잊힌 직업이 허다한가 하면, 간판을 새로 내걸고 변화된 모습으로 명맥을 이어 나가는 업종도 있다. 막걸리 양조장은 추억 속에 잊히고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을까.

2007년 기준으로 국내에는 모두 778개의 막걸리 양조장이 있다. 막걸리 양조장은 전국적으로 가장 고르게, 많이 분포된 식품회사이자 ‘근대식 공장’이다. 대도시 인근에서 안정적인 유통망을 확보해 현대적 시설로 변신에 성공한 몇몇 양조장을 제외하고 몇몇 남아 있는 중소도시나 농촌지역에 자리 잡은 양조장은 낡고 허름한 추억의 모습 그대로다. 단정 짓긴 이르지만, 백여 년 남짓 막걸리의 영욕의 세월은 우리 현대사의 모습처럼 급변해 왔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옛날 그 ‘양조장’ 모습 찾을 수 있을까?

경기도 여주군에 위치한 능서 양조장은 막걸리가 겪은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능서 양조장의 정식 명칭은 능서탁주합동제조장. 인근 점동면의 막걸리 양조장과 합쳐졌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도 능서면과 점동면, 여주 읍내 일부 지역에만 유통되고 있다. 그야말로 아는 사람, 동네 사람들이나 술을 받아 마시고 지역의 식당이나 술집에서만 소비되는 구조다.

한창 번성할 때는 20여 명의 직원들로 버글대던 양조장도 이제는 불과 세 명만 남았다. 26년째 능서 양조장을 지키고 있으며 “따지자면 공장장인 셈”이라고 너털웃음을 짓는 안본호 씨(72)처럼 노인들만 남았다. 현재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만드는 일은 안 씨와 중국 교포 출신인 최승철 씨(58)가 도맡고 있으며 사람 손이 많이 가는 막걸리의 병입 공정과 포장, 배달, 양조장 살림 관리 등의 일은 오석근 사무장(69)이 맡고 있다.

막걸리 양조장에서는 매일 같은 하루 일과가 반복된다. 아침 5시부터 술의 주된 원료인 고두밥(술밥)을 쪄서 준비하다보면 오전이 금세 지나간다. 출하할 막걸리를 걸러서 병에 담고 마개를 막아 포장하는 오후 작업은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부지런히 서둘러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술이 익어가는 독을 저어 줘야 하고, 잡균이 번식하지 못하도록 장비나 양조장 내부를 소독하고 청소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원료에서부터 막걸리가 완성돼 출하하기까지는 대략 7~8일가량 소요된다. 일주일쯤 뒤의 판매량을 가늠해서 미리 술을 준비해야 하며, 독마다 그 다음날 거를 술들이 익어가고 있기 때문에 하루도 양조장 일에서 손을 뗄 수 없다.

안본호 씨는 “일이 고되고 교대할 사람이 없으면 양조장을 비울 수 없으니 요새 젊은 사람들은 일을 꺼린다”며 아쉬워했다. 안 씨가 처음 막걸리 양조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이 스무 살 무렵이니 벌써 50년 넘게 이 일을 해오고 있다. 안 씨는 “다른 데 같으면 진즉에 손 놓고 뒷방으로 물러나야겠지만, 오늘내일 하면서도 여태 이러고 있다”며 허허롭게 웃었다. 일흔이 넘었지만 젊은 시절부터 일로 다져진 안 씨의 어깨와 허리는 아직도 꼿꼿하며 쌀 포대를 나르는 팔뚝은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탄탄하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입맛이 달라짐에 따라 능서 양조장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져 왔다. 자동으로 술을 거르는 제선기나 한 번에 6병 씩 막걸리를 용기에 담을 수 있는 병입 시설도 들여 놨다. 하지만 본격적인 자동화 시설을 갖추려면 기계설비 비용이 막대할 뿐만 아니라 천정이 낮은 낡은 건물을 부수고 공장을 신축해야 되기 때문에 지금처럼 ‘반자동’ 시설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다른 양조장에서는 관리가 쉽다는 이유로, 또 무엇보다 더 이상 큰 독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스테인리스 탱크를 이용하고 있지만, 능서 양조장에서는 아직도 수십 년 묵은 옹기 술독에서 막걸리를 숙성시키고 있다. 옹기 독은 잘 알려진 것처럼 표면의 미세한 구멍으로 숨을 쉬기 때문에 효모의 작용을 활성화 시키는 데 좋다. 이른 새벽과 저녁, 하루에 두 번씩 술이 익어가는 항아리마다 정성껏 휘저어 주는 이유도 술독 바닥에 가라앉은 술밥과 효모를 뒤섞어 골고루 발효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안 씨는 “막걸리를 익히는 데 옹기 독만큼 좋은 게 없지만 요즘 사람들이 보기엔 관리하기만 어렵고 구닥다리로 비칠 것”이라며 “점차 큰 술독을 구할 곳도 없어지고 있기 때문에 막걸리 양조장에서 옹기 독을 쓰는 곳은 아마 이제 거의 남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옹기 독 쓰는 곳은 이제 거의 없지”

막걸리는 쌀이나 밀, 보리 등을 발효시킨 곡주이다. 주된 원료인 곡식으로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 술맛에 차이가 난다. 능서 양조장에서는 밀가루와 멥쌀을 7:3 정도 비율로 섞어 술밥을 쪄 낸다. 과거에는 밀가루만 가지고 술밥을 준비했지만 최근에는 정부에서 쌀 소비를 권하고 있기 때문에 쌀도 섞는다. 안본호 씨는 “밀 막걸리는 텁텁하지만 특유의 톡 쏘는 맛이 있고, 쌀 막걸리는 맑은 느낌이지만 좀 밍밍한 편”이라며 “사정에 따라 원료 배합이 달라지면 술맛이 달라졌다며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린다”고 말했다.

곡식이 술이 되는 원리는 크게 두 가지 단계로 볼 수 있다. 우선 특정 곰팡이가 곡식의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고 효모는 다시 이 당을 알코올로 발효시킨다. 밀가루와 쌀이 한 번에 100말씩 들어가는 큰 솥에서 술밥을 쪄 내고 적당히 뜸이 들면 밀가루와 쌀이 곱게 섞이도록 체에 내려서 식힌다. 술밥은 입국용과 덧밥용으로 나눠서 준비하는데 입국으로 쓸 술밥을 좀 더 고운 체에 내린다.

입국이란 특정 종류의 곰팡이(종국)를 인위로 번식시켜 놓은 것을 말한다. 곱게 체에 내린 술밥에 분말 형태인 종국을 섞어 48시간 정도 숙성시키면 입국이 만들어진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를 유지시키는 것인데, 사람의 체온보다 높은 40도 전후를 유지시키는 것이 좋다고 안 씨는 덧붙였다. 입국에 효모와 물을 부은 것이 밑술(주모)이며, 바로 이 밑술이 한 독의 쪄낸 곡식을 술로 발효시키는 씨앗이 된다. 막걸리와 마찬가지로 발효 식품인 간장을 담글 때 씨장을 한 술 넣거나 요구르트를 만들 때 우유나 양젖에 이미 만들어진 요구르트를 한 술 넣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보면 된다.

술독에 밑술을 조금 붓고 효모와 누룩을 첨가한 다음 상대적으로 성기게 내린 술밥을 채우고 물을 부어 막걸리를 담근다. 보통 막걸리를 담글 때는 밑술의 담금 과정까지 포함해 두 번의 담금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곳에서 25~26도로 발효시킨다. 입국을 담그거나 본격적으로 막걸리를 담글 때 잡균이 번식하면 발효가 아닌 부패 과정을 밟게 돼 낭패를 본다. 따라서 종국 배양실이나 술 발효실은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한편 살균 소독도 주기적으로 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막걸리를 담글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라고 안 씨는 강조했다. 온도 조절이 잘못 돼 술이 쉬거나 덜 숙성되면 한 독 모두 버려야 한다. 50여 년 넘게 술을 담갔지만 여전히 안 씨에게도 온도 조절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평생 동안 막걸리를 담갔지만 안 씨도 매년 한두 독씩 잘못 빚어진 술을 버린다. 제대로 익어 가고 있는 술독을 들여다보면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탄산가스가 보글보글 올라오면서 사이다를 잔에 따랐을 때처럼 쏴아~하는 청량한 소리가 들린다.

특히 날이 무덥고 습도가 높은 여름철은 제대로 막걸리를 담그기 어려운 계절이다. 그래서 날이 선선해지고 햇곡식이 나오는 가을철은 양조장들마다 가장 바쁜 때이다. 뿐만 아니라 막걸리의 수요가 크게 느는 것도 농사일이 바쁜 가을철이다. 막걸리는 농주(農酒)라는 별명처럼 가을걷이로 고된 농부들의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 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기술이 발달해 막걸리를 담글 때 변수를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종국을 배양할 때 따뜻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자동으로 온도 조절이 가능한 전열기구를 이용하기도 하고, 갓 쪄낸 술밥을 널어놓고 식힐 때도 송풍 시설을 이용해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완성된 술을 거르는 것도 최근에는 제선기와 같은 기계 장비를 이용한다. 공정이 완전 자동화된 큰 공장들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만 해도 일손을 크게 던 셈이다.

온도 관리가 막걸리 제조의 핵심

젊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점점 고령의 노인들만 남는 우리네 농촌 마을처럼 능서 양조장에서도 예전처럼 양조장 특유의 떠들썩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찾아보긴 어렵다. 안본호 씨는 “젊은 시절 양조장에서 일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일하면서 술을 실컷 마실 수 있으니 일꾼들 중에 왈짜 같은 놈들도 제법 많아서 양조장 내 서열이나 텃세도 심했다”며 “외지 사람으로 기세에 눌리기 싫어 혈기에 치고받기도 많이 했다”고 껄껄 웃었다.

안 씨는 다른 무엇보다 경험으로 쌓은 막걸리 양조법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잇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다. 시행착오를 통해 단련된 ‘감’을 전수하기 위해선 옆에서 같이 해 보면서 그때그때 얘기해 주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제 길어야 일이 년이지 뭐”라고 쓴 웃음을 지으며 안 씨는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능서 양조장은 읍내 길목 어귀에 추억처럼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막걸리, 영욕의 세월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막걸리(탁주) 생산량의 정점은 1974년 즈음으로 168만 킬로리터에 달한다. 맥주의 생산량은 1/10에도 못 미치는 15만 킬로리터에 불과했다. 30년 후에 이와 같은 수치는 역전된다.

2004년 통계에 의하면 막걸리가 16만, 맥주가 192만 킬로리터 생산됐다. 최근 막걸리 열풍으로 매출이 30% 정도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출고량은 20만 킬로리터를 넘지 못하고 있다.

한때 막걸리가 점유하던 ‘한국인의 술’이란 아성이 무너진 것은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즈음이 분기점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 바람으로 화이트칼라층과 여성 노동자가 급증하면서 막걸리는 맥주에 주도권을 뺏기게 되고 옛 영화를 다시 누리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막걸리의 생산·유통과 관련한 정부의 주류 정책도 효율적인 관리를 중시한 양조장 통폐합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원래 막걸리는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개별 주막에서 자가제조해 잔술로 판매하거나 각 가정에서 담가 마시는 술이었는데, 일제 총독부는 주세령을 개정해 각 양조장의 최저생산량 기준을 높이고 세율을 올리는 식으로 자가제조 면허자의 수를 줄여 나갔다.

해방 이후에도 과세와 세금 징수의 편리성을 우선시한 정책으로 60년대부터 시작해 1977년까지 서울을 비롯해 전국 10개 도시의 양조장을 통폐합 해, 전국적으로 1916년 12만2천 여 개에 달하던 양조장이 1,482개로 급감했다. 그 후 시 단위에는 인구 5만 명당 양조장 1개, 읍 단위에는 3만 명당 1개, 면 단위에는 2만 명당 1개를 두는 식으로 정리됐으며, 1965년부터는 양조장들이 소속된 시, 군에서 막걸리의 독과점 판매를 보장 받았다.

1991년부터는 생산량이 급감하는 막걸리의 보호 차원에서 주세를 10%에서 5%로 낮추고 1995년에는 살균막걸리에 한해 전국 유통을 허용했으며, 2001년부터는 막걸리 판매의 지역 제한을 해제했지만 막걸리 붐을 조성하기엔 역부족이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1. 술밥을 쪄 낸다. 능서 양조장에서는 밀가루와 쌀을 비율을 7:3으로 맞춘다. 익는 데 시간이 더 걸리는 쌀을 솥의 밑에 깔고 밀가루는 그 위에 얹는다.

2. 쪄낸 술밥을 고루 섞어서 널어놓고 식힌다. 송풍시설 덕분에 방금 쪄내 김이 나는 술밥도 10분 정도면 식는다.

3. 입국용으로 쓰기 위해 고운 체로 거른 술밥을 배양실로 옮긴다. 여기에 분말 형태의 종국을 섞고 온도를 40도 안팎으로 48시간 정도 유지시킨다.

4. 입국에 효모를 섞고 물을 부어 밑술을 담근다. 1차 담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5. 술독에 밑술을 넣고 다시 효모와 누룩을 섞은 뒤 술밥과 물로 독을 채운다. 보통 하나의 독에 밀가루 4포대 분량의 술밥이 들어간다.

6. 숙성 중인 술에서는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온다.

7. 아침저녁으로 두 차례 정도 숙성 중인 술을 저어 준다. 술독 아랫부분에 가라앉은 술밥과 효모를 잘 뒤섞어 골고루 발효시키기 위함이다.

8. 완성된 술을 걸러서 병에 담는 과정은 최근 기계의 도입으로 많이 편리해졌다. 다만 마개를 막고 상자에 포장하는 과정은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보통 100말(12병 씩 120박스) 정도 분량씩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