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에 멱살 잡힌 ‘진실’
‘국익’에 멱살 잡힌 ‘진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6.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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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희망 사라져도 한국의 희망 사라지지 않는다

 

205년 말, 한국사회는 거대한 아노미에 빠져들었다. 2005년 5월 세계적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논문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논란은 초기에 난자 채취 과정을 둘러싼 윤리 문제에서 출발해, 2005년 논문의 진위 여부까지 발전했고, 이제는 2004년 논문과 복제개 스너피, 복제소 영롱이에 이르기까지 황 교수 연구 전반에 대한 의혹으로 번졌다.


논란이 계속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완전한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 논란의 과정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은 ‘과학적’ 논란이 ‘사회적’ 논란, 혹은 ‘정치적’ 논란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전 국민을 혼란 속에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 대립의 상처
지금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극명한 대립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사태의 초기 MBC <PD수첩> 보도가 나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전체 국민의 90% 이상이 황 교수를 지지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타났다.


11월 22일 1차보도 후 MBC와 <PD수첩>은 엄청난 후폭풍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경영진 퇴진 요구, 시청거부 운동, 프로그램 폐지 운동, 광고 반대 운동까지 이어지면서 결국 <PD수첩>은 방송 사상 초유의 무광고 방송을 하게 됐고, 12월 4일 YTN의 취재윤리 위반 보도 이후 MBC의 사과와 프로그램의 잠정 중단 결정이 내려진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보인 반응은 거의 ‘광기’에 가까웠다. 담당 PD를 비롯해서 황 교수의 연구 결과나 난자 채취 과정에 대해 의혹이나 문제를 제기하면 ‘매국노’로 몰렸다. 심지어 담당 PD는 본인은 물론 가족의 신상까지 인터넷상에 공개되고 살해위협을 받는 지경이 되었다.


우리 사회의 논리는 ‘국익을 해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황 교수의 연구는 곧 국익이고, 그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가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비판도 용납되지 않았다.

 

‘애국주의’의 철옹성
이처럼 ‘애국’과 ‘국익’으로 무장한 단단한 철옹성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젊은 과학도들의 ‘과학적’ 시각과 문제제기였다.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 사진이 조작됐다는 점이 드러났고, 일치해서는 안 되는 DNA지문검사 결과 그래프가 거의 일치한다는 의혹도 추가되었다.


그들의 표현대로 ‘상식의 저항’을 느낀 사람들이 문제제기에 나선 것이다. 결국 이들의 문제제기는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일반적이라면 여기서 모든 논란이 마무리되어야 하겠지만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미즈메디 병원 노성일 이사장이 ‘줄기세포는 없다’는 폭탄 발언을 한 이후 황 교수는 기자회견을 갖고 논문에 ‘인위적 실수’가 있었기 때문에 논문은 철회하지만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줄기세포 배양과정에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바꿔치기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논문이 조작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지점까지다. 이후 실험 과정에서의 바꿔치기 논란은 황 교수측 주장대로 검찰 수사를 통해 밝히면 될 일이다. 문제는 논문이 조작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황 교수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12월말 한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80%에 달하는 국민들이 ‘원천기술이 있다면 황 교수에게 다시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 조작 정도는 별 일 아니다?
“무한경쟁시대에 순진한 소장학자들은 진실한 학문적 성과만을 주장하는데 순진한 건지 무식한 건지… 황 교수의 언론과의 친화력,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 이 모두가 세계를 선도하기 위한 필수 능력입니다.”


“황 박사님은 분명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을 너무나 급하게 쓰다 보니 좀 인위적 조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원천 기술이 거기에 묻혀서는 안 됩니다.”


“잘 나서 잘 났다 그러는데 왜 그것을 못 보아줄까.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보아주고 자신이 못났으면 열심히 해서 잘나면 될 것 아닌가. 황우석 박사가 얼마나 잘났는가. 학문적, 외모적, 이미지적, 부가가치적…”


비교적 ‘순화된’ 표현을 사용한 의견들만 모아도 이와 같다. 즉 ‘인위적 실수’이건 ‘조작’이건 간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줄기세포를 만들 기술이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인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직성과 정확성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과학자가 ‘논문을 조작했다’는 명백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덮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결국 ‘애국주의’가 ‘진실’을 덮은 셈이다. 이런 반응은 비단 일반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는 “국익이 진실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했고, KBS의 과학전문기자는 “논문 조작은 학계의 관행”이라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거대한 애국주의 물결은 ‘음모론’으로까지 비화됐다. 누군가 황 교수를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음모론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런 애국주의 대열에 동참한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알 수 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는 한국의 앞서 가는 줄기세포 기술을 저지하려는 미국이 개입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또 보수층에서는 ‘전통적인’ 주장인 빨갱이 배후론을 내세운다. 줄기세포 연구 자체에 비판적인 종교계를 지목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과학계에 거대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유태인들까지 등장한다.


그래서 황 교수 옹호론자들은 ‘(황 교수 비판론자들이) 가톨릭 교리 수호를 위한 비밀조직인 프리메이슨의 사주를 받은 유태인들이 CIA를 움직여 국내의 좌파 세력들을 선동해 황 교수를 죽이려 든다’는 웃지 못할 조합을 만들어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 사회 현실의 종합 전시장
사실 이번 논란은 21세기 초입에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총체적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희망에 대한 기대 혹은 환상
사람들이 황우석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은 황 교수로부터 희망을 찾고 싶어 한다. 사회 양극화가 지속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희망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런데 세계 최초로, 최고의 성과를 거두는 과학자, 그리고 그 성과가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것이라는 ‘절대 가치’이자 ‘희망’으로 자리잡으면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인터넷문화의 어두운 그림자
아울러 네티즌들의 사이버테러에 가까운 행동들은 우리 사회의 인터넷 문화가 아직까지 성숙기에 접어들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익명성에 기댄 폭력은 건강한 토론문화를 질식하게 만들고 있다.

 

▶편가르기, 그리고 패거리주의

편 가르기와 패거리 문화도 그대로 드러났다. 집단을 형성하고 그 집단과 다른 가치나 주장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다는 집단주의 성향은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존재해 왔다. 때로는 지역으로 나뉘고, 또 때로는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오직 우리’라는 단단한 벽을 쌓았다.

 

▶결과에 묻혀버린 '과정'
좋다면 과정의 문제점은 무시해도 좋다는 경향도 드러났다. 황 교수의 2005년 논문의 핵심은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어 냈으며, 그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11개의 줄기세포가 아니라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라는, 그리고 논문 조작이 있었더라도 상관없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진 것이다.

 

▶분위기에 휩쓸려가는 언론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도 있는 그대로 나타났다. 가장 크게 부각된 것은 취재과정에서의 잘못된 관행이었지만 다른 언론들도 심층적인 분석보다는 중계방송식 보도, 의도적 상대편 때리기, 분위기에 휩쓸려가기와 같은 문제들은 언론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반증한다.

황 교수 파문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를 지지했던 쪽이건 비판했던 쪽이건 모두에게 고통일 수밖에 없다. 성과 지상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가 결합한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오늘을 여실히 보여주는 거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냥 덮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이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는 희망은 잘못된 것을 스스로 바로잡아 나가는 사회의 자정능력과, 있는 그대로 드러난 우리 사회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수반될 때 살아날 수 있다.
2005년 말, 2006년 초를 안타깝고 씁쓸하게 만든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느냐는 21세기 한국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를 가늠할 방향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진실의 숨구멍 역할한 ‘브릭’과 ‘디시 과갤’
과학적 원칙 갖고 찌질대기


황우석 파문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한편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 와중에 가장 크게 부각된 두 곳은 브릭(http://bric.postech.ac.kr)과 디시인사이드 과학갤러리(http://www.dcinside.com)였다. 거대언론조차 나가떨어지는 판에 끝까지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이들이다. 브릭에는 YTN의 <PD수첩>팀 ‘취재 윤리’ 문제가 불거진 다음날인 12월 5일 ‘쇼는 계속돼야 한다’는 글이 올라와 줄기세포 사진 중복 의혹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또 6일에는 ‘DNA지문 데이터 살펴보기’라는 글이 올라와 일치해서는 안 되는 DNA지문의 중복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브릭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로 생명과학도들이 각종 정보를 교류하는 사이트였다. 이번 사태의 한가운데서도 브릭이 문제제기자이자 과학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해당 분야의 전공자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과학적 근거’만을 가지고 토론에 임했다. 운영진에서도 어떤 의견이건 간에 사실이 아닌 추측이 포함되거나 정치적 해석 등을 담고 있는 글이라면 가차 없이 삭제하고, 과학적 토론만 하도록 주문했다. 그 내용이 어떤 입장에 서 있던 간에 과학적 근거를 가진 제언이라면 공론화의 과정을 통해 걸러내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는 철저히 차단한 것이다.


만약 이 원칙이 무너졌더라면 이들의 진정성마저 의심받았을 것이다. 황 교수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이들에 대해 ‘영웅의 성공을 질시하는 소장과학자들’이라는 비난을 퍼부었지만 그나마 ‘과학’이라는 원칙을 깨트리지 않은 이들로 인해 진실에 좀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디시인사이드는 디지털카메라 전문 사이트로 출발했다. 하지만 이 공간이 무한정 열린 자유공간으로 인식되면서 당초의 디지털카메라 동호인들은 물론이고, 연예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서부터 역사, 종교, 과학, 음악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각각의 갤러리를 만들어 참여하고 있다.


이 공간의 기본적인 특징은 자유로움과 ‘비틀기’에 있다. ‘디시폐인’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떤 의견이든 거르지 않고 소통시켰고, 이 과정에서 풍자를 담아냈다. 이들은 스스로 하는 행동을 ‘찌질댄다’고 표현할 정도로 상대는 물론이고 자신들마저 비틀어서 바라본다.


디시인사이드 과학갤러리는 브릭에서 제기된 과학적 의혹을 대중적으로 토론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결국 철저한 원칙에 입각한 과학적 관점과, 열린 공간 내에서의 신랄한 풍자를 동반한 토론이 자칫 거대한 전체주의로 뒤덮일 뻔한 우리 사회의 숨구멍이 되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