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간 M&A, 돈만 오가는 게 아니다
기업 간 M&A, 돈만 오가는 게 아니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1.09.3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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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자원관리 외면하면 실패 확률 커
조직문화 장단점, 이해하고 수용해야
[현장 ①] 무림P&P 사례를 통해 본 M&A 후 노사관계

무림P&P 노사관계에 다시금 한랭전선이 드리워지고 있다. 지난 2007년, 무림페이퍼와의 인수합병 이전 동해펄프였을 당시 100일이 넘게 장기 투쟁을 벌였던 사업장이다. 인수합병 이후 노사는 위기극복을 위해 서로 한 발짝씩 양보하며 노사관계 안정화는 물론, 기업경영의 안정화도 성취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르고 상처가 아물었다고 생각될 즈음, 해묵은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노사의 노력으로 비교적 성공적인 인수합병 사례로 평가 받았던 무림P&P였다. 무림P&P를 젖혀 두고라도 많은 기업들이 인수합병 이후 노사관계에 있어서 진통을 겪고 있다.

ⓒ 무림P&P노조
위기 극복하고 안정 찾나 싶었는데…

무림P&P의 전신은 1974년 국영기업으로 설립된 대한화학펄프이다. 이후 대한화학펄프는 1977년 사명을 동해펄프로 바꾼다. 국내 유일의 화학표백 펄프를 생산하던 동해펄프는 70년대 중반부터 4조3교대 방식의 근무가 도입되는 등 비슷한 규모의 다른 중소기업에 비해 파격적인 근로조건을 자랑했다. 그러나 1987년 주 수요처였던 17개 제지사가 동해펄프를 공동인수하면서 민영화되고 IMF 외환위기를 맞아 결국 1999년 회사정리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위기극복을 위해 직원들은 발 벗고 나섰다. 공장이 멈추게 되자 노조는 조합원들의 동의하에 회사에서 가입해 준 종합 퇴직보험을 단체로 해약해 공장 가동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마침 다행히도 국제 펄프가격이 급등해 회사 매출이 흑자로 돌아서고 한 고비를 넘기게 됐다.

하지만 2005년 채무변제기간이 돌아오자 법정관리인측은 인원 구조조정을 강행해 100여 명의 직원들이 정리해고를 당하고 임금 및 상여금 삭감, 후생복지 축소 등의 조치도 함께 따랐다.

한바탕 삭풍이 몰아치고 매출이 다시 흑자로 돌아선 2006년, 노조는 노동자처우의 원상회복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이에 불응했고, 동해펄프의 노사관계는 104일 간 장기투쟁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이후 무림페이퍼가 회사를 인수하면서 노조가 바라는 대로 경영진이 교체되고, 후생복지와 임금 등이 원상회복됐다. 또한 노사의 숙원이었던 펄프-제지공정 일관화(원목에서 원료인 펄프를 뽑아내는 공정과 펄프를 가공해 종이를 제조하는 공정이 한 번에 진행되는 것)가 시작되면서 무림P&P는 다시 안정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난 9월 20일 한국노총 화학노련 무림P&P노동조합(위원장 권대환)은 부산지노위에 조정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무림P&P 노사는 2011년 임·단협 교섭을 6월 말부터 11차에 걸쳐 가졌으나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각 계열사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일원화하는 부분에 대해 노사는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인수합병 이후 펄프-제지공정 일관화 등을 거치며 업무구조가 변화했으며, 무림페이퍼의 인력이 대거 무림P&P로 편입되는 등의 과정을 염두에 둘 때 사측은 임금체계와 근로조건 등에 대한 일원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임금 부분에 있어서 기본급을 제외한 근속수당, 가족수당, 생산장려수당 등의 항목이 각 회사마다 차이를 보이는데 이 부분을 일원화시키기 위해서 임금인상률을 조정하겠다는 취지이다.

반면 무림P&P노조는 지난해 무림페이퍼의 경우 적자 매출을 면치 못했는데 흑자 매출을 기록한 무림P&P의 임금인상률 등을 끌어내려 맞추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9월 27일 현재 조정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 무림P&P노조
‘사람’을 대하는 게 인수합병의 성패?


미국 인사관리협회(Society for Human Resource Management Foundation, SHRM)와 인사관리 전문컨설팅 기관인 타워스 페린(Towers Perrin)이 세계 주요 기업의 인사담당자 4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기업 인수합병의 주된 실패요인으로 문화적 불일치, 핵심인력의 유출, 경영시스템의 충돌 등이 꼽히고 있다. 또한 미국 내에서 인수합병 후 성과가 저조한 10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두 기업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 즉 인적자원관리 방식과 조직문화의 차이가 실패의 원인인 경우가 85개 기업에 달했다.

마찬가지로 독일과 프랑스의 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인수합병 후 갈등이 생기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두 기업 간의 권한체계, 관리감독 스타일, 팀워크 등의 차이에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기업의 경쟁력을 창출하기 위한 인수합병은 이제 낯선 모습이 아니지만 노사관계 등을 포함한 인적자원관리가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고려되는 경우는 드물다. 우선 재무적 요소나 생산관리의 측면을 중심으로 인수합병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기업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고용안정과 기타 근로조건의 변화와 관련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 당사자 간의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수합병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고 통합 초기부터 갈등의 씨앗이 될 것이다.

금융권에서 진행된 인수합병 과정에서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합병된 우리은행(한일·상업), 국민은행(국민·주택), 신한금융지주(신한·조흥)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대부분 자본의 규모, 경영적인 측면만을 중시해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특히 인수합병 과정에서 대규모 지점 축소와 인원 감축은 노조의 큰 반발을 불러왔으며, 자기 조직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경우 통합 이후 직원들 간의 배타성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우리금융지주의 매각과 관련해서도 노조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 무림P&P노조
기업문화 통합 위한 교육 마련해야


이처럼 본인의 고용, 근로조건 등 큰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기업의 인수합병에 대해 개별 노동자들은 심리적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나 흡수되는 기업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그 불안감은 훨씬 크다. 개별 노동자가 느끼는 이러한 심리적 불안은 결국 조직 전체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인수합병과 관련된 이야기가 돌게 되는 경우, 조직구성원들 간의 의사소통 기회가 감소되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생산성의 후퇴로 이어진다. 또 공동체 의식이 상실되고 조직 몰입도가 저하되면서 유능한 직원들의 조직 이탈이 가속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업 내, 특히 상하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기업문화의 통합을 위한 특별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요구되기도 한다. 지난 1999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와 엘지반도체의 인수합병 과정을 보면 이 부분을 중요시하고 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현대전자는 엘지반도체와의 통합 직후부터 최고경영자가 양사 직원과 가족들에게 특별 서한을 발송하고 사내 소식지를 통해 각종 기획기사를 내보냈으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최고경영자의 특별기고, 임직원 대상 인터뷰 등에 주력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물들을 각종 경영회의를 통해 널리 홍보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기업문화의 원활한 통합을 위한 노력은 홍보 활동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1999년 9월부터 12월까지 3달 간 임직원 7,000명을 대상으로 ‘New-Born’이라는 이름의 2박3일간 합숙 교육을 총 45차에 걸쳐 시행했다.

인수합병의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의 경우도 유사한 통합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기아자동차 인수 직후 현대차그룹은 그룹 인재개발원에서 1999년 1월부터 3달 간 약 7,500여 명의 기아자동차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과장·부장 이상은 2박3일, 대리·영업직 과장 및 현장관리자(직장, 조장)는 1박2일에 걸쳐 기업문화와 비전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두 기업문화 간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고 자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에 노사 갈등을 빚고 있는 무림P&P에서도 이와 같은 프로그램이 진행된 바 있다. 작년의 경우 분기마다 2시간씩의 교육을 통해, 연관성은 있지만 서로 상이한 업무에 대해 직원들끼리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으며, 노사가 공동으로 주관한 전 직원 체육대회와 단합대회 행사 등을 통해 친근함을 쌓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인수합병 시 근로관계는 원칙적으로 승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수합병과 관련해 개별 노동자들이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고용이나 임금 등 근로조건의 변화, 다시 말해 근로관계에 변동이 있을 것이냐는 점이다.

동화노무법인 배인연 대표노무사는 “현행법상 인수합병(Mergers & Acquisitions, M&A)이 별도의 법률개념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며 “실제 진행되는 구체적인 모습에 따라 회사의 합병, 사업양도 등의 양태로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3자가 어떤 기업을 일방적으로 인수하는 경우, 해당 기업에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와는 근로관계 당사자의 변경이라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이 경우 판례에서는 반대의 특약이 없는 한 양도인과 근로자간의 근로관계도 원칙적으로 양수인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된다고 본다. 이는 ‘일정한 영업 목적에 의해 조직화된 업체 즉, 인적·물적 조직을 그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일체로서 이전’하는 영업양도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기존에 체결된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역시 자동 승계된다. 취업규칙의 경우 하나의 사업장에 내용을 달리하는 취업규칙이 병존하게 되므로 균등대우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사용자의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정당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 다만 병존 기간이 장기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통합을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영업양도 자체가 취업규칙을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 요건은 안 되므로 근로기준법 제94조에 따라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의 김형동 변호사는 “사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노동조합이 근로조건 변경에 합의하지 않는 이상 원칙적으로 근로조건을 노동자들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무림P&P의 경우 지난해 임·단협에서 노조가 사측의 입장을 받아들여 무림페이퍼, 무림SP 등 타 계열사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인상(2.2% 인상)에 합의해 준 바 있다.

무림P&P노조 이채규 사무국장은 “사측은 일관화 공장 신설 등으로 비용지출이 크니 이미 임금교섭이 끝난 타 계열사의 수준과 맞춰 달라고 양해를 구해 왔고, 노조 역시 회사와 공생발전하자는 취지에서 조합원들을 설득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 구성원으로서 일시적으로 양보했던 부분을 항구적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국제적인 경쟁 속에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내부의 사업구조 조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기업 간의 인수합병을 통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애쓰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모습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본래 목적과는 달리, 노사관계를 비롯한 인적자원관리를 등한시 한 채 인수합병을 강행하는 경우 오히려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무림P&P 노사가 현재 부딪치고 있는 모습만 가지고는 과연 인수합병의 과정이 성공이냐 실패냐 가늠하기는 아직 이르다. 앞서 살펴본 지점들을 감안해 노사가 다시금 더 큰 목표를 향해 발전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