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학교 세워 방글라데시의 꿈 키운다
희망학교 세워 방글라데시의 꿈 키운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1.09.3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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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추방 당한 이주노동자 끌어안다
노동자 국제연대·교류 앞장서는 이주노동희망센터
[현장 ②] 방글라데시에 짓는 희망

배우고 싶지만 가난할 뿐만 아니라 학교마저 없다면? 그래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3명중 2명은 문맹이라면?

인도반도 북부에 위치한 방글라데시의 이야기다. 한국의 노동계가 이 마을에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학교를 세우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 안에도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 이때, 뜬금없이 먼 방글라데시까지 가서 학교를 세운다고?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 착공식 현장에 나붙은 현수막 ⓒ 이주노동희망센터
이루지 못한 코리안드림을 보듬다

지난 9월 21일 저녁, 민주노총 교육원에서는 ‘방글라데시 어린이를 위한 보리샬(Barisal) 희망학교’ 설립 추진 설명회가 진행됐다. 사단법인 이주노동희망센터(대표 정의헌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이하 이주노동희망센터)가 주최한 이 설명회에 참석한 이들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 열의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뜨거웠다.

도대체 이주노동희망센터는 왜 한국도 아닌 낯선 방글라데시에 학교를 세우려는 걸까? 이주노동희망센터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석권호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국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2007년 12월에 이주노동자노조 사무국장이던 방글라데시 출신의 모니루짜만 마숨 씨가 강제로 추방당했습니다. 당시 강제 추방된 17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연대회의’를 결성했지요. 한국에서 강제로 추방된 이주노동자들과 지속적인 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민주노총 활동가들이 이주노동자연대회의와 손을 잡게 된 것이 출발점이었습니다.”

▲ 착공식을 마치고 주민, 어린이들과 음식 나눔 ⓒ 이주노동희망센터
민주노총 활동가들은 이주노동자연대회의를 통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갖게 됐다. 방글라데시의 열악한 교육환경과 높은 문맹률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과 교류를 쌓아가던 민주노총 활동가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은 비록 불법체류이긴 하지만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서 온갖 궂은일을 마다않고 비지땀을 흘렸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강제추방뿐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추방을 당할 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던 민주노총 활동가들은 그들과 교류하면서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단속이 단 하루도 멈추지 않습니다. 노조에 가입해 간부라도 될라치면 곧바로 표적이 돼 1년 안에 강제추방을 당합니다. 그 과정에서 ‘귀한’ 사람들이 지쳐서 떨어져 나가게 되죠. 비록 한국에서 추방됐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이루지 못한 뜻을 펼칠 작은 출발점이나마 만들어 보려고 시작한 게 ‘이주노동장학회’입니다.”

역시 이주노동희망센터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장주 금속노조 문화국장의 설명이다. 2009년 8~9월에 학교 설립을 위해 방글라데시 현지조사를 했던 민주노총 활동가들은 같은 해 12월 이주노동장학회를 결성했다. 2010년 1~7월에 방글라데시 학생에게 월 30만 원씩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던 이주노동장학회는 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해 9월 학교를 세울 부지를 답사한 이주노동장학회는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 약 240㎞ 떨어진 보리샬 꼴르노커띠(Karnokati)에 ‘희망학교’를 세우기로 했다. 학교설립부지로 830평 정도의 땅도 기증받았다.

이주노동장학회가 학교를 세울 보리샬 지역의 경우 5천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 아동 수는 1,500여 명이다. 그중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750여 명에 불과해 취학률은 50% 수준이다. 나아가 주민 전체의 문맹률은 65~7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희망학교가 세워진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청장년에 대한 교육도 바라고 있다”고 석권호 국장은 설명한다.

이처럼 문맹률이 높은 것은 교육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농사를 도와야 해 교육기회 자체를 가지지 못한 때문이었다. 학교설립부지로 결정된 꼴르노커띠의 경우 아예 학교가 없었다. 주민 중 80% 정도가 농업에 종사하는데 대부분이 가난한 소작농일 정도로 빈곤하다는 점도 교육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었다.

▲ 모래 채취 현장 ⓒ 이주노동희망센터
월 5천 원이면 학비가 된다

앞서 설명했듯이 보리샬 희망학교는 한국에서 강제로 추방당한 이주노동자들과 배움을 갈망하는 현지 아이들, 한국의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함께 꿈꾸고 만드는 국제연대와 교류의 결과물이다. 희망학교를 통해 배움의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한편, 한국의 교사와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연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올해 들어서면서 희망학교 설립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교사들로 구성된 여행모임인 ‘베캄원정대’(대표 김영국)가 희망학교 건립기금으로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2천5백만 원을 선뜻 내놓았다. 또 방글라데시에 진출한 한국기업 (주)DK건설은 학교설립 견적을 내고 설계도면 검토를 마쳤다.

이주노동장학회는 올해 6월에 단체의 공정성과 지속성을 위해 사단법인으로 전환해 이주노동희망센터 발기인 총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어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학교건립부지에 대한 답사도 진행했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 전·현직 위원장들은 희망학교 설립 추진 제안자로 뜻을 보태기도 했다.

학교설립을 위한 움직임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보리샬 현지에서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12명이 참여한 보리샬 꼴르노커띠 학교설립위원회가 구성돼 현지에서의 진행을 맡고 있다. 지난 9월 1일에는 현지에서 희망학교 기공식이 진행됐다. 이에 맞춰 지난 9월 7일 열릴 예정이던 희망학교 설립 추진 설명회는 이소선 어머니의 장례 일정으로 인해 2주 연기돼 21일에 열렸다.

석권호 국장이 설명한 바에 따르면 2층 규모의 희망학교를 설립하는 데에는 한화로 1억 원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중 현재 모금된 금액은 3천여만 원으로, 올해 안에 모든 공사를 마치려면 12월까지 7천만 원가량을 더 모아야 한다. 이 금액은 오로지 학교 건물을 세우는 데에 들어가는 돈이며, 학교를 운영하는 데에는 더 많은 금액이 필요하다.

▲ 학교설립 추진위원들 ⓒ 이주노동희망센터
“방글라데시에서는 학교를 신축한 후에 3~5년 동안 지속적인 운영을 해야 비로소 정규학교로 인정돼 국고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립하려면 그 기간에 지속적으로 운영비를 지원해야 합니다. 매달 교장 1명과 교사 5명, 직원 2명의 인건비와 운영비로 대략 820달러, 한화로 1백만 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연간 1만 달러 정도 되는 금액이고, 여기에 초기에 들어갈 책상이나 의자 등 비품까지 준비하려면 내년에는 2만 달러 정도가 필요합니다.”

이주노동희망센터는 이렇게 학교신축공사와 비품 마련,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추가로 모금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이주노동희망센터는 “우리의 한 끼면 한 달 학비가 됩니다. 우리의 두 끼면 무상급식이 가능해집니다”를 슬로건으로 희망학교 설립에 뜻을 함께하는 후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월 5천 원이면 방글라데시 학생의 한 달 학비가 되고, 월 1만 원이면 학교에서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전국공무원노조, 보건의료노조 등은 내부회의를 거쳐 사회연대기금을 희망학교 건립기금으로 내놓기로 결정했다. 이에 힘을 얻은 이주노동희망센터는 각 노조와 개인들의 참여를 최대한 설득한다는 계획이다.

“이주노동희망센터의 활동이 방글라데시에 희망학교를 짓는 데에서 끝나는 건 아닙니다. 차츰 활동영역을 넓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상담과 교육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의 자립을 위해 현지 기술학교를 지원하고, 빈곤아동들을 지원하는 활동도 계속 진행할 겁니다. 방글라데시 희망학교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입니다.”

이장주 국장은 이주노동희망센터가 앞으로 더욱 활동영역을 넓혀 말 그대로 이주노동자에게 희망을 주는 단체가 될 것임을 자신했다. 그와 함께 국내 노동자들과의 활발한 교류활동 역시 이주노동희망센터의 몫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방글라데시 희망학교만 해도 국내 노동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영역은 많습니다. 예컨대 전교조는 방학 때 연수프로그램으로 방글라데시 현지 학생을 직접 지도할 수도 있고, 희망학교 교사를 초청하거나 직접 방문해 교사연수를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 현지의 낙후된 의료환경을 고려하면 보건의료노조도 의료봉사활동 같은 일을 진행할 수 있겠죠. 금속노조에서는 숙련된 기술을 현지 노동자에게 전수하는 산업기술 전수를 고민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문예활동가라면 방과 후 문화학교에 참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재능을 나눌 수 있습니다. 현지에서 자원봉사를 할 자원봉사자도 필요하고요. 물론 약간의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노동자들이 이처럼 국제연대와 교류에 나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봅니다.”

석권호 국장은 이주노동희망센터의 활동영역을 넓히는 것과 함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방글라데시 희망학교 사업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주노동희망센터가 설립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보리샬 희망학교는 그동안 자기 사업장의 현안에만 관심을 집중해 ‘그들만의 리그’ ‘노조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온 우리나라 노조운동이 국제연대에 나선 많지 않은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 같은 활동을 더욱 확장한다면 노조운동에 덧씌워진 오명을 벗겨내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