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사장이랍니다?!
내가 진짜 사장이랍니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1.11.0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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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내는 사장님은 개인사업자?
봉건시대를 거슬러 노예제 사회로 가는 걸까
[현장 1]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 참관기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갈수록 고달프다. 여야를 떠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안정시키겠다고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개선은커녕 추락을 거듭한다.

지난 10월 17일 한국노동연구원은 ‘비정규직 노동통계’를 발표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정규직을 100으로 했을 때, 2002년 67.1이었던 비정규직의 임금은 2010년 54.8로 떨어졌다. 또한 6개월 이하로 근무하는 비정규직의 비율은 50.6%에 달해 근속기간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0년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33.4%로 임금노동자 3명 가운데 1명이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다. 비정규직의 특성 상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수치를 감안하면 그 비율은 더욱 높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비정규직,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적 문제임이 분명하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비정규직들만의 잔치!?
전국노동자대회 맞고요?

지난 10월 22일 늦은 3시 서울시청 광장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 ‘비정규직 없는 세상 가능하다’를 외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대리운전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간병인, 하청 노동자, 간병인, 퀵 기사, 건설 노동자…, 일상에서 늘 마주치지만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다.

전국비정규노동조합연대회의, 전국지역·업종일반노동조합협의회, 금속노조 비정규투쟁본부 등이 주최한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는 2003년 10월 26일 처음 개최된 이래 올해로 8년째를 맞이했다.

이번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는 그야말로 ‘비정규직들만의 잔치’였다. 언제부턴가 노동자 집회 및 투쟁에 부지런히 얼굴을 내밀던 국회의원들을 이 자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늘 무대 중앙 맨 앞줄을 차지하고 앉아 있던 연맹이나 산별 대표자들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임원들도 집회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킨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연히 정규직 노동자를 만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절대 다수가 정규직이고, 대기업 노동자로 꾸려진 민주노총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조직 노동운동의 소수가 분명하다. 사회에서 그들의 목소리와 권리가 소외당하듯 민주노조운동에서도 천덕꾸러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날 집회에서 울린 목소리는 그 어느 집회보다 절절했고, 진솔했다. ‘비정규직들만의 잔치’라서 서글펐고, ‘비정규직들만의 잔치’라서 감동이 더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보험설계사
해고당하는 사장님들

무대에 보험설계사 노동자가 올라왔다. 보험설계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왜 개인사업자이고 사장님인지를. 한국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노동자는 40만 명에 이른다. 개인사업자로 자신들이 ‘존재’하지만 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한다.

보험설계사가 사장이라면 자신이 보험 상품을 만들고 자신이 팔고 싶은 보험 상품만을 팔아야 하건만 자신들은 상품을 마음대로 만들지도 못하고, 자신이 팔고 싶은 상품을 팔지도 못한다. 회사가 시키는 보험 상품만 판매하고 있다. 회사에서 정한 출퇴근 시간을 지키고, 회사의 교육을 받는 자신들이 왜 사장인가 묻는다. 몸이 아파도 출근해야 하고, 출근을 하지 않으면 ‘잘리는’ 자신들은 노동자라고 주장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간병인
에이즈 바늘 찔려도 치료 안 돼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이 말한다. 나는 진짜 노동자라고. 간병인은 직업인이라고. 스물네 시간 환자들에 약을 챙겨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고, 걷기 운동을 도와주고, 환자의 손과 발이 되어 일하는 노동자라고 절규한다. 하지만 간병인들은 노동자로, 직업인으로 인정받지 못해 알선소에 수수료를 내며 임금을 착취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환자를 돌보다 다치면 본인 돈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신세라고 한다. 병원에서 에이즈 주사 바늘에 찔렸는데, 응급조치는커녕 치료를 거부당하는 기막힌 일도 겪어야 했다. 간병인은 노동자가 아니고 병원의 직원도 아니었기 때문이란다. 간병인을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는 이곳이 병원이 맞느냐고 눈에 물결이 일렁거리며 떨린 분노를 뿜어낸다. 간병인은 주장한다. 자신들을 병원의 필수 인력으로 인정해달라고. 병원이 운영되려면 꼭 필요한 일들을 하는 간병인은 당연히 병원이 직접 고용해야 할 노동자라고.

퀵 기사
목숨 걸고 달리는 사장님

ⓒ 참여와혁신 포토DB
11년째 퀵 기사로 일하고 있다는 이의 목소리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들이 자영업자 사장이면 일을 하지 않을 권리도 있는 것 아니냐고. 비 오는 날에 왜 자신이 벌금을 내는지 모른다. 출근을 하지 않으면 왜 벌금을 내야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단다. 결근한 날에 비가 오면 ‘따블’로 벌금을 내는 요지경 세상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단다. 자신이 일한 대가로 받은 돈의 33%를 뜯겨 가면서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단다.

‘니들은 사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단 하루도 자신의 뜻대로 쉬지 못하는 처지가 어찌 사장인가, 어찌 노동자인가 묻는다. 거리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퀵 기사야 말로 사장이 아니라 진짜 노동자라고 말한다. 자신들을 지켜 줄 법이 없는 이 나라가 진정 자신의 대한민국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대리운전 기사
권리 빼앗기고도 숨는 인생

대리운전 기사도 올라왔다. 전국에 자신처럼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 17만 명에 달한다. 자신의 노동을, 자신의 생명을 법에서 보호해주지 않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대리운전 기사를 보호해 줄 법이 없기에 기사들이 뭉쳤다. 하지만 노동조합 설립의 대가는 집단 부당해고였다. 어쩔 수 없이 파업을 했다. 하지만 파업 집회에 참석하면 ‘콜’을 한 달 동안 주지 않겠다는 사업주의 협박에 정당한 권리 지키기마저 하기가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 집회장에 함께 서고 싶지만 멀리 숨어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수많은 대리운전 기사들의 눈물을 아느냐고 외친다. ‘콜’을 받지 못하면 굶어야 하는 인생, 그래서 단결하는 일도, 싸우는 일도 힘겹다.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는 것을 알면서도 숨어야 하는 자신들의 인생이 비참하다고 호소한다. 지금 대전의 대리운전 기사들은 투쟁 중이다.

건설노동자
강도짓을 하란 말인가

‘노가다’라고 천대받는 건설 노동자가 나섰다. 자신은 특수고용 노동자란다. 덤프, 굴삭기 등을 움직이는 건설기계 노동자란다. 얼마 전 이들이 모여서 비참하다 못해 참혹한 이야기를 했단다. 이제 일도 없고, 아무리 외쳐도 얻을 게 없다고. 이제 투쟁도 하지 말자고. 아무런 미래가 없다고. 손에 칼이라도 들고 강도짓이라도 나서자고 한탄을 했다. 절박하다 못해 비참하고 끔찍한 지경에 이른 건설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고 말한다.

일을 해도 유보 임금이니 해서 제 때 돈을 받지 못하고, ‘오야지’가 자신들의 임금을 갖고 ‘튀면’ 쪽박을 찰 수밖에 없는 건설현장의 고질병을 누구도 나서서 해결해주지 않는 오늘의 현실에 건설노동자의 허리는 우두둑 꺾이고 말았다. 구릿빛 건설노동자의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학습지 교사
근로소득세 내고 싶다고요

1,402일 째 농성을 하는 학습지 교사가 나왔다. 이 드넓은 땅에, 우뚝 솟은 빌딩 숲속에, 자신들의 바람막이가 되어 줄 작은 천막 하나를 치지 못하고 찬바람을 온 몸으로 견디고 있는 재능교육 학습지 선생이 나왔다. 매일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조회하고, 교육 받고, 상담하고, 후원관리·영업·상담현황을 회사에 보고를 하는 자신들이 어찌 노동자가 아니란 말인가, 주장한다. 회사에서 정해 준 교재를 가지고 회사에서 정한 학습법으로 학생들을 만나는 자신들은 왜 노동자가 아닌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한다.

임신을 해도 수업을 인수인계 할 사람이 없으면 만삭의 몸으로 일해야 하는 자신들은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라고 말한다. 4대 보험도 들지 않고, 근로소득세도 내지 않으니 당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학습지 선생님은 근로소득세도 내고 싶고, 4대 보험도 가입하고 싶다고 호소한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는 1,500일이 되기 전 이 싸움을 끝내겠다고 10월 21일 ‘재능 승리 백일 집중 투쟁’을 선언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이주노동자
일 말고 노예 하러 간다

이주노동자 미셸이 나왔다. 한국 정부는 그를 추방하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아직 그는 한국에 있다. 얼마 전 경기도 성남의 노동부를 찾아갔는데 기막힌 이야기를 들었단다. 회사에서 학대당한 이주노동자의 처지를 호소하니 담당 직원이 자신들을 조롱하며 그 정도 일은 한국 노동자들도 얼마든지 당하는 일이고, 자신들은 도울 방법이 없다고 하더란다. 한마디로 입 닥치고 학대당하라는 말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일하러 간다고 하지 않고 노예 하러 간다고 말한단다. 21세기 노예 이주노동자, 그들의 삶 그 자체가 비정규직이다. 일을 해도 불안하고, 일을 하지 않아도 불안한 삶을 하루하루 꾸역꾸역 버티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삶과 목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

단상에 올라온 이들의 이야기는 짧았지만 심장을 오래도록 쿡쿡 찔렀다. 지금 이곳이 2011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인지가 의심스러웠다. 1970년대 개발독재 시절과 헷갈렸고, 때론 봉건사회를 거슬러 노예제 사회로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온 느낌이었다. 가을햇살은 뉘엿뉘엿 기우는데 그들의 눈은 설악산 단풍처럼 타올랐다. 고샅길 담장 너머 익어가는 감처럼 빨갛게 익어갔다.

불안전한 삶을 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는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 서로에게 힘을 안겨주었다. 홀로가 아니기에 외롭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삶이 홀로가 아니고, 열도 백도 천도 만도 아니란 사실이 서글프다. 500만 명이 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고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의 목소리를 텔레비전에서 듣는 일은 가뭄에 콩 나듯하고, 신문에서 찾는 일조차 눈을 부릅뜨고 뒤져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들의 삶과 목소리는 비정규직들의 것이지만 이들의 삶과 목소리는 정규직이 들어야 하고, 정치인들이 받아 안아야 하고, 시민사회 단체들이 어우러져 싸워야 할 목소리다.

감동과 설움이 큰 파도처럼 요동쳤던 2011년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가 내년에는 비정규직들만의 잔치가 아닌 ‘전국노동자들의 잔치’ 아니 ‘범시민의 잔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