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가 아니라고 외쳤는데, 뭔 징계?
올빼미가 아니라고 외쳤는데, 뭔 징계?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1.11.0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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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23명 해고 시작으로 징계 잇달아
노조, 민주노조 무력화 시키려는 의도
[현장 2] 유성기업 ‘주간연속2교대제’의 결말은 해고

2011년 5월 생각치도 않은 지방 소도시의 부품 공장에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자동차 생산 라인 전면 중단이 뉴스에 떴다. 대통령도 가세했다. 연봉 7천만 원 노동자를 들먹이며 울분(?)을 토했다. 공권력을 투입하라는 경영계의 요구가 빗발쳤다. ‘유성기업’은 화려하게 올해의 뉴스메이커로 등장했다. 해괴망측한 일들은 계속 되었다. 공장이 멈춘 기업의 주식이 연일 상한가를 치는 코미디가 연출되었다. 공장 정문에서는 ‘나는 개다!’라는 복창 소리가 울렸다. ‘충성 서약서’라는 반공 드라마에서 봄직한 말이 흘러나왔다.

ⓒ 금속노조
조그마한 지방 중소기업
한국 자동차산업 흔들다


유성기업은 엔진용 피스톤링을 제조하여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완성차 공장에 납품하는 부품회사다. 주야맞교대로 일하던 이 회사는 2009년에 노사가 ‘2011년부터 주간연속2교대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막상 2011년이 되었건만 약속은 오간 데가 없다. 노동조합은 성실하게 합의사항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주간연속2교대제’에 시큰둥했다.

노동조합은 5월 18일 2시간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회사는 곧바로 이날 18시를 기해 직장폐쇄로 맞섰다.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을 하던 노동자들은 갑작스레 닫힌 공장 문을 보며 황당했다. 곧바로 공장에 들어가 직장폐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이렇게 유성공업 노동자들은 ‘점거 농성자’가 되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가혹하리만큼 냉담했던 언론들이 앞장서서 1면 또는 특집 면을 할애해 유성기업 기사를 썼다. ‘유성기업…차 생산라인 전면 중단 위기’라는 타이틀로.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주간연속 2교대제’를 요구한 까닭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의 소망은 자그마합니다. 밤에는 가족과 함께 잠들고 낮에는 일하자는 지극히 평범한 요구였습니다. 야간노동 일주일을 마치고 퇴근버스를 탔던 동료가 차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유성기업에서 십오 년 동안 일한 노동자였습니다. 일어나라고 깨웠는데, 집 앞이니 내려야 한다고 깨웠는데,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말을 잊지 못하고 시간을 거슬러가 굵은 눈물을 흘린다.) 이미 심장이 멎어 있었습니다. 스물여덟 살인 직장 동생도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서 잠자다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심야근무를 없애자, 주간연속2교대제로 바꾸자고 요구했던 겁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고액연봉의 진실
파렴치범이 아니다

‘밤에는 잠 좀 자자!’는 소박한 요구는 한국 자동차산업을 파괴하는 테러범으로 몰렸다.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라는 요구는 고액 연봉자들의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치부되었다.

2010년 8월 기준으로 유성기업 생산직 노동자 평균연봉을 5,419만6,800원으로 대통령의 7천만 원 운운은 사실 왜곡이 있었다. 기본급은 171만9,900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심야수당을 비롯한 초과근로수당 등 제반 수당 및 상여금이다.

유성기업 노동자의 평균 근무시간은 2,400시간이 넘는다. 2007년 한국 자동차산업 연 평균근로시간 2,304시간보다 100시간 이상이 많다. 독일의 1,350시간과는 비교가 되지 않고, 일본의 2,072시간보다도 월등히 높다. 월 평균 70시간이 넘는 유성기업 3교대 근무자의 초과근로시간은 2010년 4분기 300인 이상 제조업체 상용직의 월 평균 초과근로시간 30.6시간의 2배가 넘는다. 유성기업의 근로시간 단축 요구는 노동자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였다.

ⓒ 금속노조
2007년 세계보건기구의 국제 암연구소는 심야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현재 연 평균노동시간이 이천사백 시간을 넘는다. 이천사백에서 육백 시간 정도다. 영동공장 아산공장에서 과로사로 죽은 사람들이 있다. 2009년 이후에만 야간노동으로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심혈관계 질환, 우울증,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 때문이다. 우리 조합원들 중 주·야간 교대근무를 함으로써 수면 장애, 우울증, 뇌신경계 질환, 간장 질환, 신장질환 해서 질환들을 갖고 있는 분들이 한 70% 이상이다.”

직장폐쇄된 공장에 들어가 있던 노동자들은 7일 만에 투입된 공권력에 의해 모두 공장 밖으로 끌려나왔다.

거리로 쫓겨난 노동자 가운데 일부는 농성 대오를 이탈해 공장으로 들어갔다. 복귀자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치욕을 당해야 했다. 공장 정문을 통과하면서 ‘나는 개다’라고 세 번 외치고 들어가야 했다. 사용주에게 ‘충성 서약서’를 쓰기도 했고, 이 서약서에도 ‘나는 개다’라는 노예 선언보다도 지독한 ‘개종’ 선언을 해야 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먼저 공장에 들어가고, 공장 밖에 있는 노동자들은 단식, 집회 등 투쟁을 하며 시간이 흘렀다. 노동조합은 파업 중단을 선언했지만 회사는 직장폐쇄를 풀지 않았다.

“회사는 노동조합한테 진실성이라는 단어를 계속적으로 사용했다. 그 진실성을 어떻게 보여줘야 되느냐고 물었을 때, 농성을 풀고 집에 들어가 있으면 사측에서 전화로 오라는 날짜에 개별면담을 통해서 복귀를 판단하겠다. 이게 노동조합에서 (회사에) 보여줄 수 있는 진실성이다. 뭐 이런 맥락이었다.”

노동자들의 ‘진실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회사가 ‘진실성’을 파악한 노동자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봄날은 가고 여름이 왔다. 94일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 금속노조

법 무시된 해고
노조 무력화 시도


‘유성기업 직장폐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8월 21일부터 31일까지 순차적으로 노동자들은 복귀한다. 차수별 복귀자 선별권과 복귀자 명단 작성 권한은 회사가 갖는다.’ 일괄복귀를 요구하던 노동조합은 뜻을 굽히고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유성기업 사태는 이렇게 정리되었다, 라고 끝을 맺어야 하지만 아직도 진행 중이다. 갈등의 골은 더 깊어만 가고, 노동자들의 상처는 더 곪아만 간다.

지난 10월 18일 회사는 유성기업 노동자 106명에게 징계 결정을 내린다. 해고자만 23명이다. 징계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회사는 11월 중순까지 5차례의 징계위원회를 열어 농성에 참여했던 300명가량의 노동자 전원에게 징계를 내릴 예정이다.

하지만 징계절차에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유성기업의 단체협약에는 ‘징계의 경우 노사 동수의 징계위원회에서 의결할 수 있고, 찬반 동수 일 때는 의장이 결정권한을 갖는다. 의장은 대표이사다. 단, 해고의 경우 노사 동수가 참여한 징계위원에서 2/3 찬성으로 의결’하기로 되어 있다.

징계위원회에서 해고의 찬반은 5:5 동수였다. 단체협약에 따르면 2/3를 넘지 못했으니 부결이다. 하지만 해고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부당해고다.

회사는 이게 부당해고인 것을 몰랐을까? 노동조합 관계자는 “이 기회에 민주노조를 완벽히 무력화 시키겠다는 의도”라고 파악했다.

18일 해고를 강행한 회사는 즉각 용역경비를 공장에 배치하고, 징계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출입을 막았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 관계자는 “일단 노조 핵심 간부들을 해고와 출근 정지로 격리시키려는 의도다. 용역경비를 동원해 현장에 위압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손해배상으로 조합원을 협박해 어용노조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도 같다”고 주장한다. (이날 오후부터 4명씩 돌아가면서 노동조합 사무실 출입은 허용했다.)

회사는 유성기업 노동자 89명에게 노조활동을 이유로 17억5천5백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지난 7월 복수노조 허용에 맞춰 “유성기업에 기업별 노동조합이 세워지자 금속노조를 탈퇴해 새 노조에 가입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고 노동조합 관계자는 말한다. 금속노조에서 탈퇴하면 징계를 받지 않게 해주겠다고 회사가 회유했다는 조합원의 진술도 있었다. 새 노조로 옮겨간 조합원은 200명을 넘어섰다.


ⓒ 금속노조
끝나지 않은 갈등
노동시간 단축 실종

5월 18일 표면화 된 유성기업 노사의 갈등은 3개월 만에 직장폐쇄가 중단되어 해결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나도 여전히 노사는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겉으로는 노사 모두가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상식과 법, 약속이 무시되는 일이 무수히 벌어지기도 한다.

노사가 파업과 직장폐쇄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첫 발단이었던 ‘주간연속2교대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세간의 관심도 심야노동과 장시간노동보다는 부품회사 하나가 한국 자동차산업을 송두리째 멈춰 세웠다는 점에 쏠렸다.

ⓒ 금속노조
심야노동과 장시간노동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은 유성기업에서뿐만이 아니다. 유성기업사태가 일어나기 전 주간연속2교대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던 사업장을 제외하면, 주간연속2교대제를 검토 중이던 다른 회사에서도 슬며시 의제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유성기업사태가 가져다 준 부정적인 학습효과 덕분이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가운데 최장 노동시간 기록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간연속2교대제 등 교대제 변경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문제는 노동자의 행복권과 건강권, 나아가 회사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노사가 함께 지혜를 모아 풀어 나가야 할 사안이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유성기업사태로 인해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지금 당장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고 있지만 장시간노동을 하고 있다는 현실은 변함이 없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 문제는 조만간 다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지난해 노사정위원회는 2020년까지 노동시간을 1,800시간으로 단축하자는 합의를 내놓은 바 있고, 정부 역시 내년까지 1,950시간으로 단축하자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시간을 단축하자는 게 더 이상 노동계만의 주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간연속2교대제를 처음 제기했던 완성차업체에서도 더디기는 하지만 실시방안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노동시간 단축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던 유성기업에서는 여전히 노사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잠시 동안 유성기업사태가 해결된 것이라 오해되기도 했지만, 지난 10월 18일의 대량징계는 사태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상기시켰다. 그 갈등이 언제까지 지속되고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