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아진 개구리의 교훈’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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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와혁신
  • 승인 2006.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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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AT&T, 소니 2005년 ‘휘청~’한 기업의 공통점



● 현재의 성공에 안주한다

● 부서 간에 높은 장벽이 있다

● 실속 없는 혁신이

■ 한상엽 (LG경제연구원 인사조직그룹 선임연구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다. 기업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초우량 기업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여타 기업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던 기업들도 흔들리다가 사라지곤 한다.


2005년 기업계에는 많은 뉴스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끌었던 것은 바로 초우량 기업들의 몰락이었을 것이다. 70여 년 동안 세계 부동의 1위였던 GM이 위기설에 휩쓸렸는가 하면, 미국 통신 산업의 대표 주자인 AT&T도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일본의 대표 기업이라 할 수 있는 소니 역시 외국인 CEO를 영입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정도로 경영 위기를 겪었다.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기업들이 흔들리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초우량 기업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던 기업들이 일순간에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 버리는 것을 과거에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업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쇠락의 전조 징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성공하는 기업들의 성공 비결을 학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쇠퇴하는 기업이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 역시 중요할 것이다.

 

현재의 성공에 안주한다
기업이 쇠퇴하는 징조 중 가장 흔한 것은 현재에 안주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Emory 대학의 잭디시 세스 교수는 우량 기업이 실패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최고 경영자가 자만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경영 환경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한 채, 과거의 성공 방식이 현재와 미래에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한 때의 성공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순간, 바로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ABB의 전 CEO였던 퍼시 바네빅은 기업 간의 경쟁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다. “경쟁은 마치 아래 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쪽 방향으로 걷는 것과 같다.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면 금방 뒤로 쳐지게 된다.”


미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GM사의 부진이 이와 비슷하다. S&P는 GM이 SUV(Sports Utility Vehicle)를 통해 경영정상화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미 이 시장은 정체 상태에 들어섰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GM의 경영진들이 시장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편의적으로 해석했다는 비판이다. 또한 관련 전문가들 역시 시장의 품질과 디자인 등에서 소비자들의 변화된 요구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져서 한국의 현대자동차나 일본의 도요타, 혼다, 닛산 등에 밀리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반면, GE는 1970년대 당시 우수한 수익을 내고 있던 텔레비전·에어컨 등의 시장보다는 새로운 시장을 찾기로 결심했다. 만약 이때 당시의 안정적 수익에만 안주하고 있었다면 오늘날의 GE는 없었을 것이고, 잭 웰치 역시 그저 그런 CEO에 불과했을 것이다.

 

부서 간에 높은 장벽이 있다
회사가 흔들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또 다른 징조는 내부 조직 간에 높은 장벽이 생기는 것이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가 바로 각 부서나 부문별로 자신들의 이해를 우선시하게 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 이외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고 다른 부서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으려는 등 부서 간의 협조가 어려워지는 파편화 현상이다.


조직 간의 높은 장벽은 복잡한 사업 포트폴리오나 조직 구조로 인해 더욱 심화되기도 한다. 소니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월가의 애널리스트 사이에서는 소니의 몰락은 최고경영진의 전략적 의사 결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소니 내부의 시각은 이와는 좀 다르다. 스트링거 신임 회장과 함꼐 소니의 부활이라는 미션을 맡게 된 료지 추바치 신임 사장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기술, 생산, 디자인, 마케팅 등이 문제가 아니다. 소니의 복잡한 사업 구조와 조직 구조가 원활한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저해하고 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 부서간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외부인들이 지적하는 전략의 실패라는 것은 내부에서 바라보기에는 사실상 실행상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거대한 회사를 지나치게 분권화해서 운영하다 보니 각 부문별로 자신들의 사업 성과에만 신경을 쓸 뿐 전사 차원의 커뮤니케이션과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 이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소니는 유사한 제품을 여러 부서에서 동시에 출시하면서 제품 개발을 위한 자원 낭비는 물론 시장에서 ‘제살 깎아먹기’식의 경쟁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라, 미국 시장 광고를 위해 TV 드라마 소품으로 자사의 PC를 협찬하려고 하였으나, PC 사업부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실패하기도 했다. 추바치 신임 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서 간 협력체제 강화를 통한 수익성 개선, 전자 사업 부문의 명령 체계 축소, 복잡한 사업 구조를 위한 일부 사업 부문 분사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실속 없는 혁신이 이루어진다
기업 위기를 부르는 또 다른 전조는 실제로는 별다른 효용이 없는 혁신 활동이 많아지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각종 시스템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혁신 기법이나 시스템이 등장하면, 그 필요성이나 자사와의 적합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따라가는 Fashion & Fads에 빠지게 될 때, 기업에는 위기가 다가온다.


최초의 대형 할인점이었던 K-Mart가 갖추고 있던 인공위성과 연계된 POS(Point On Sales) 시스템이 그 대표적인 예다. 최첨단 IT를 기반으로 철저한 저가 전략으로 시장을 빼앗아간 월마트를 모방해서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여 시스템을 갖추긴 했지만, 재고 및 유통관리는 여전히 엉망이었고, 결국 K-Mart는 파산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내실이 없는 계획이나 시스템은 오히려 업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조직을 위기에 둔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보신주의가 팽배한다
기업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리는 또 다른 징조는 ‘남들 하는 만큼만 하자… 괜히 튀어서 찍히지 말자’라는 식의 적당주의나 보신주의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제가 발생해도 이를 나서서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오히려 문제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려는 핑퐁 게임이 발생하거나, 문제를 적당히 묻어두려는 양상이 나타난다.


분식 회계로 주주와 시장을 속여 오다가 결국 일순간에 파산하고 만 엔론의 경우를 보자. 엔론의 내부 비리는 쉐론 와킨슨이라는 내부 고발자(Whistle Blower)에 의하여 알려졌다. 그런데 와킨슨 이전에는 문제를 눈치 챘던 사람이 없었을까? 회계 처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매출액과 비용 등을 제공했던 사업 담당자, 그리고 실제로 회계 장부를 작성했던 회계 담당자와 이를 감독했을 CFO 등 수많은 사람들이 분식 회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알았거나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와킨슨을 제외하곤 아무도 이를 제지하려 하지 않았다.


엔론과 같은 극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굳이 새로운 시도를 해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사고와 행동 역시 보신주의이고 적당주의다. 예를 들어, 기존의 업무 수행 방식이 문제가 있더라도 이를 개선하려고 하기보다는 관례대로만 처리하려고 하거나,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아랫사람에게 괜히 일만 만든다며 핀잔을 주는 등의 행동이다.

 

인재들이 회사를 떠난다
회사가 망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가장 먼저 우수한 인재들이 빠져 나가기 시작한다. 우수한 인재들은 지금 다니는 회사가 아니어도 불러주는 회사가 많다. 굳이 망할 것 같은 회사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그 다음에는 망해가는 회사를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노력을 했지만, 그 노력을 인정받기는커녕 괜히 튀지 말라는 식의 핀잔만 받았던 사람들이 회사에 실망을 느끼고 떠나간다.


변화 관리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는 하버드대학의 모스 캔터 교수는 몇 년 전 국내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잘 나가는 기업과 망하는 기업의 가장 큰 차이는 이직률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무조건 이직률이 낮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는가 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엔론의 경우 미국에 벤처 붐이 일어나면서 이직률이 급속하게 올라갔던 1999년에 3%에 불과한 이직률을 보였고, 2000년에는 GE, 사우스웨스트 항공, SAS 등과 더불어 ‘포춘’지로부터 인재 관리에 뛰어난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진실한 정보가 위로 전달되지 않는다
기업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상황에 다다르기 전까지 아무런 위기 신호가 없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의외로 경영진들은 이런 위기를 너무 늦게 발견하곤 한다. 하버드대의 마이클 로베르토 교수는 최고경영진에게 아래로부터 솔직한 의견 제시가 되지 않는 것이 심각한 문제인데, 이는 잘 나가는 일류 기업에서 더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다. 기업의 덩치가 클수록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별 것 아닌 사소한 문제로 여겨지거나, 쉽게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정크 본드급 판정을 받은 GM의 쇠퇴는 80년대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온 것들이다. 반복되는 잦은 제품 리콜과 노사 분규, 높은 의료·복지비용 등 수많은 위기 신호가 나타나고 있었지만, 경영진들은 이런 신호를 있는 그대로 받지 못했던 것이다.


기업이 잘 나가고 있을 때에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바로 주변의 부정적인 피드백이다. 이런 부정적인 피드백이야말로 개선과 변화의 단초를 제시해주는 소중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보는 흔히 사기가 나빠질 우려가 있다거나 기업의 이미지가 나빠질 우려가 있다는 논리에 밀려 회사 내에 공유되지 못하곤 한다. 그리고 경영진들에게는 자신의 체면이 깎일 것을 두려워하거나, 문책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현장의 생생한 정보 대신 가공되어 왜곡된 정보만이 전달되기도 한다.

 

사소한 증상들이 쌓이면 결국…
기업을 커다란 배에 비유한다면 기업의 쇠퇴를 알리는 조짐들은 배의 밑바닥에 난 조그만 구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멍이 작고 많지 않을 때에는 사람의 손이나 펌프 등으로 그때 그때 물을 퍼내기만 하면 배는 가라앉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펌프 하나가 고장이 나면서 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혹은 배가 항로를 잘못 잡아서 자그마한 암초에라도 걸리는 순간 문제는 심각해지기 시작한다.


쓰러지는 기업들은 어찌 보면 일순간에 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런 사소해 보이는 증상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쌓였을 때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증상들은 어느 회사에나 조금씩은 있기 마련이고, 그 신호가 미약하기 때문에 쉽게 감지가 안 되거나, 적당히 무시하거나 뭉개고 지나가기 십상이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아무런 느낌도 없이 있다가 죽게 되는 삶아진 개구리(Boiled Frog)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