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고’ 위탁택배 노동자들의 파업 아닌 파업
‘특고’ 위탁택배 노동자들의 파업 아닌 파업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1.11.3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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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월급으로 되돌아가자? …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름
“정규직 채용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현장 3] 위탁택배 운송거부

우체국에는 집배원만 있는 게 아니다. 요사이에는 우체국 택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공무원 신분인 정규직 집배원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편지와 소포를 배달한다. 집배원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모습이다. 거기에 반해 우체국 택배 노동자들은 우체국 직원이 아니다. 이들은 위탁업체 직원이다. 우체국 위탁택배 노동자들은 11월 1일부터 열흘 간 운송거부에 들어갔다. 일종의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특수고용직의 자발적 운송거부

운송거부에 들어간 위탁택배 노동자들은 서울 양천, 여의도, 관악 우체국에 소속된 80여 명이었다. 금천 우체국과 경인지역, 서울 강남지역인 서초 우체국에서도 산발적으로 집단행동이 확산되는 듯 보였으나 다소 개선된 조건에 합의한 뒤 복귀했다. 이들은 중간 위탁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하지만 본인 소유 차량이나 지입차(운수회사 명의로 등록된 개인 소유 차량)를 소유한 특수고용직으로 분리되면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위탁수수료를 올려달라는 것이다. 이들 위탁택배 노동자들은 운송물 한 건당 수수료를 받아 수입을 얻는다. 운송단가를 높이는 것이 실질적으로 이들에겐 임금인상이나 다름없다. 요구 액수는 운송물 한 건당 1,000원의 단가. 지난 2003년 우체국 위탁택배의 운송단가이다.

대개의 경우 매년 물가가 오르는 것처럼 노동자들의 임금도 편차는 있겠지만 인상돼 왔다. 하지만 위탁택배 운송단가는 오히려 매년 떨어졌다. 이들의 임금인상 요구는 사실상 9년 전 수준의 임금으로 되돌아가자는 절규다. 9년 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한다면 턱 없이 낮은 금액이다. 각 업체마다 단가 계약체결 내용의 차이가 있지만, 건당 930원까지 단가가 떨어진 경우도 있다.

위탁택배 노동자들이 하루에 취급하는 운송물은 약 120건 정도이다. 개인 할당량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일정 한도 이상을 넘길 수 없다. 사실 밤늦게까지 꼬박 일에만 몰두한다고 해도 한 사람의 기사가 배달할 수 있는 물량은 한정돼 있기 마련이다. 보통 택배 노동자들은 아침 6시까지 우편집중국에 모이기 위해 새벽 5시면 출근길에 나선다.

하루 일과가 끝나는 시각은 대중없다. 배달을 끝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차에 가득 실은 물건들이 텅 비었다고 해서 일이 끝난 건 아니다. 다시 집중국으로 돌아가 하루 업무의 결과를 정리해야 한다. 그나마 요즘은 바코드 시스템과 PDA 등의 장비가 갖춰져서 일이 수월해진 편이다.

이렇게 일해서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150만 원이 채 안 되기도 한다. 차량 할부금이 남아 있으면 떼어야 하고, 자고 일어나면 올라 있는 기름 값은 그야말로 살 떨릴 지경이다. 자동차 수리와 정비 등 이런저런 유지비도 많이 들어간다. 이 비용도 고스란히 택배 노동자의 호주머니에서 나간다. 그러면 도대체 뭘 아껴야 돈이 모이는 걸까? 취재 중에 만난 한 위탁택배 노동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점심, 저녁 식대 아끼려고 김밥 한 줄 들고 다니며 먹는 기사들도 있어요. 물론 배달 시간에 쫓겨 그러는 것도 있지만, 매달 고정적으로 빠져 나가는 돈은 줄일 수가 없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처럼 큰소리 쳐가며 한 턱 쓰고 싶다가도 퍼뜩 생각나면 움츠러들지요. 개당 몇 십 원 단가 올리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밖에서 보면 우스울지 모르지만, 저희에겐 정말 일당이고 월급인 거고 그렇거든요.”

ⓒ 참여와혁신 포토DB
차 할부금 내고 기름 값 내고, 남는 게 없다

우체국 위탁택배 노동자들의 고충은 단지 ‘돈 문제’만이 아니다. 노동시간 역시 대단히 길다. 일을 한 만큼 수수료를 받는 것이니 늦게까지 일하는 건 택배 노동자들의 의지 아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각 우체국마다 소화해야 할 택배 물량이 있고, 인원수는 한정돼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하지 못하는 인원이 생기기도 하고, 추석·설 등의 명절이면 당연히 배송 물량은 급증한다.

간단한 산수를 해 보자. 택배 노동자가 우편집중국에서 배송물을 분류하고 차에 싣는 작업이 끝나면 본격적인 배송 일은 통상 오전 10시부터 시작된다. 하루 배송 물량을 120건으로 잡았을 때, 밥도 안 먹고 휴식 시간도 없이 오후 6시까지 꼬박 8시간을 배송만 한다고 쳐도 택배 한 건을 배달하는 데 평균 4분 내에 해치워야 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8시간 안에 이를 끝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보통 12시간에서 많게는 15시간까지 일한다고 한다.

위탁택배 노동자들은 보통 한 달에 25일 정도 일한다. 일주일에 단 하루 정도를 쉴 수 있다. 한 주 내내 일에 시달렸으니 모처럼의 휴일에 취미나 여가를 즐긴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평일에는 새벽에 나갔다가 밤이 늦어서야 귀가하고, 휴일에는 쌓인 피로 때문에 주로 잠을 자면서 보낸다.

한창 개구쟁이 또래 아들만 둘이라는 한 택배 노동자는 “가족들에게 제일 미안하다”고 밝혔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사내놈들이라 몸을 부딪치며 놀아주면 그렇게 좋아하는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마음은 굴뚝같은 데, 도저히 몸이 안 움직여지는 거. 일요일이면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일부러 밖으로 나가요. 아빠는 쉬어야 한다고 달래면서요. 일부러 조용하게 피해주는 거지요. 참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래요.”

하루 평균 노동시간 12시간 + α

취재 중에 만난 위탁택배 노동자들은 일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다름 아닌 고객들을 상대하는 일이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다들 하나 정도 사연 없는 사람이 없을 거라면서 본인들이 겪은 황당한(?)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양천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조 모 씨는 올해 우리 나이로 58세다. 자녀들도 장성해서 큰 딸은 시집을 보냈고 작은 아들은 직장인이다. 조 씨는 젊어서부터 여러 가지 일을 했다. 택배 일을 시작한 지는 8년이 됐고, 그 전에는 작은 공장을 경영했으나 사정이 좋지 않아 문을 닫았다. 고된 일이었지만 열심히 벌어서 가족들을 부양했고 자녀들도 잘 키웠다. 다른 직종 같으면 이제 정년이 가까운 나이다.

어느 날인가 조 씨는 택배 배송 전에 수신자에게 전화를 했다. 보통 각 택배 기사마다 구역이 나뉘어 있기 때문에 낯익은 배송지나 고객들이 많다. 이 물건을 받을 고객 역시 조 씨가 몇 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20대 초반의 젊은 아가씨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수신자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몇 차례 더 통화를 시도했다. 그제야 전화를 받은 그 젊은 아가씨는 조 씨가 택배가 왔으니 방문하겠다는 얘기를 꺼내자마자, 소리 소리를 지르며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황당하기도 하고 기가 막혀서 조 씨는 아무 말 못하고 한참 동안 그 욕을 듣다가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보니 울화가 치밀더란다. 딸 뻘밖에 안 되는 아가씨에게 그런 소리를 들은 것도 기가 막혔지만, 사실 누군가에게 그렇게 심한 욕을 들어본 것도 처음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가만있지 말고 한 소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 집을 찾아갔다. 문을 빼꼼 열고 나온 고객에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가능하면 정중하게 항의하느라 조 씨는 얼굴이 벌개졌었다. 젊은 아가씨는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잠을 자는 데 전화가 와서 짜증을 냈다고 한다. 택배를 건네주고 돌아 나오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저녁에 집중국에 돌아가 보니 고객으로부터 ‘불친절함’을 이유로 불만 사례가 접수돼 있더란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라 말씀드린 건데, 좀도둑이나 잡상인 취급당하면서 문전박대는 너무 일상적이어서 일일이 기억도 안 나요. 여름에 물을 한 잔 얻어 마시려다가 눈총을 받은 적도 있고, 그래서 차라리 생수병을 들고 다니고 말지요.”

여의도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김 모 씨(49) 역시 고객으로부터 황당한 불만사례를 접수받은 적이 있다. 손바닥에 빨간 고무가 코팅된 목장갑을 끼고 배송 중이었는데 ‘보기 흉하고 비위생적’이라고 신고한 것이다. 결국 우체국 전체 택배 기사들은 회색 장갑을 공동구매했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일하면서 필요한 사소한 비품들, 예를 들어 박스를 붙이는 스카치테이프 같은 것들도 위탁 택배 기사들은 자비를 들여서 사야 돼요. 공무원인 정규직 집배원들은 업무에 필요한 물건은 신청하거나 영수증 처리를 하면 되지요. 쪼잔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참 서럽죠.”

ⓒ 참여와혁신 포토DB
택배 노동자를 대하는 고객들의 천태만상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전국의 우체국 위탁택배 노동자들은 1,835명이다. 아무래도 서울과 경기 지역에 가장 인원이 많으며 646명이 근무 중이다. 우정사업본부는 70여 곳의 택배운송업체와 계약을 맺는다. 이들 운송업체가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들과 다시 계약을 맺는다. 하청에 재하청인 셈이다. 이처럼 계약이 각 지역별·업체별로 맺어지다보니 계약단가가 조금씩 다르다.

입찰은 국가종합전자조달 시스템인 ‘나라장터’에서 공개 경쟁입찰 방식으로 치러진다고 우정사업본부는 밝혔다. 입찰 자체는 공정하게 진행되지만, 나름대로 문제가 있다. 지난 2009년 계약 당시 우정사업본부는 택배물 1개당 1,320원을 표준단가로 제시했다.

하지만 전국의 우체국들과 위탁업체 간 체결된 계약단가의 평균은 표준단가의 84.5% 수준인 1,116원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인상률을 높게 책정해도 경쟁 입찰과정에서 단가가 낮아진 것”이라고 우정사업본부는 해명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책임은 운송 위탁업체들에게 있다는 얘기다. 결국 이렇게 낮아진 계약단가는 택배 노동자들에게 타격으로 돌아간다. 계약단가에서 10%의 세금을 제하고, 업체의 마진을 10% 가량 떼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은 이들 위탁택배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다. 전국체신민주노동자회(우체국 조직 내 구성된 활동가 모임) 관계자 역시 “저임금·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정사업본부가 이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취재 중 만난 위탁택배 노동자들은 “꿈같은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적어도 최소한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우선적인 요구였다. 이들은 “터무니없는 인상폭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9년 전 가격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라며 “이 정도의 요구밖에 하지 못하는 것도 정말 분통 터지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우정사업본부의 관계자 역시 “정규직 정원을 확대하는 것은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작은 정부’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원 확대 요청은 번번이 기각된다는 의미였다.

경쟁입찰로 표준단가 못 미치는 계약가

열흘 동안 파업 아닌 파업을 벌인 위탁택배 노동자들은 11월 11일부로 업무에 복귀했다. 이들은 건당 970원씩의 단가에 합의했다. 함께 운송거부에 들어갔다가 몇몇 지역은 이보다 먼저 계약을 체결하고 복귀하기도 했다. 취재를 위해 양천·여의도 우체국의 위탁택배 노동자들을 만났던 날에도 관악 우체국에서는 970원 계약단가에 합의하고 업무에 복귀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오늘의 경험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열의를 보였다. 정규직들은 노동조합의 그늘 아래 의사를 표출할 창구가 있었지만, 그동안 위탁택배 노동자들은 그럴 기회가 없었다. 타 지역 우체국의 동료들과 연대하려고 해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조금씩 모아서 연락을 취하고 뜻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다.

위탁택배 노동자들은 “앞으로 더욱 네트워크를 넓히고 필요하다면 외부의 도움을 받아서 ‘조직화’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