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장 바뀌었다고 노조도 바뀔까?
지부장 바뀌었다고 노조도 바뀔까?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1.11.3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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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지부장 모두 새 인물 … 모두가 ‘강성’
실리 추구하는 조합원 경향 바꿀 수 있나?
[분석] 완성차지부 선거 분석

ⓒ 참여와혁신 포토DB
지난달 4일 현대차지부 결선투표를 끝으로 금속노조 완성차지부 선거가 모두 마무리됐다. 그 결과 완성차지부 세 곳 모두에서 지부장들이 바뀌었다. 완성차지부 선거는 종종 금속노조 본조 선거보다 관심을 끌기도 한다. 금속노조 조합원의 60% 이상이 완성차지부들에 소속돼 있는 만큼 영향력도 커, 완성차지부 선거 결과가 금속노조의 향후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올해 치러진 완성차지부 선거는 무엇을 남겼을까?

한국지엠지부, 변화를 선택했다

완성차지부 중 가장 먼저 선거가 마무리된 곳은 한국지엠지부다. 한국지엠지부는 지부규정에 업무 인수인계 기간을 두도록 정하고 있어 다른 완성차지부 선거나 금속노조 선거보다 통상 한 달 정도 먼저 진행된다. 올해도 한국지엠지부에서는 8월 31일 1차 투표, 9월 7일 결선투표가 진행됐다.

완성차지부 3곳의 선거 중 일반적인 예측과는 가장 다른 결과가 나온 곳이 한국지엠지부다. 당초 한국지엠지부 선거에는 모두 5팀의 후보조가 출마했다. 당시 지부장을 포함해 2명의 지부장 출신이 출마했고, 다른 후보들 중 2명도 이전의 선거를 통해 익히 얼굴이 알려진 후보였다. 이번 선거에 새롭게 출마한 후보는 1명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번 선거에 처음 얼굴을 알린 민기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선자가 속한 현장조직은 산별전환 이전에 위원장을 배출했던 적이 있는 조직이기는 하다. 그러나 갈수록 현장조직 간의 차별성이 흐릿해지는 점을 감안할 때 선거에서는 아무래도 인물 중심의 선택이 이뤄진다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이렇게 본다면 출마한 5명의 후보 중 얼굴이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민기 후보가 당선된 것은 조합원들이 변화를 선택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민기 후보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80년대 후반의 주력들이 아직도 노조 상층부에 포진해 있어, 변화의 바람이 컸던 것 같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한국지엠지부에서 조합원들이 변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 관계자는 “비록 이전 지부장이 올해 임금협상을 잘 했다고는 하지만, 동종사들에 비해 임금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조합원들의 불만요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조합원들의 바람이 ‘새’ 인물의 당선을 불러왔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선거에 출마했던 5명의 후보들 중 민기 당선자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은 모두 ‘2000년 대우차사태’를 겪으면서 활동가로 성장한 이들이지만, 민기 당선자는 그 이후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민기 후보의 당선은 한국지엠지부 내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세대교체의 결과가 어떨지는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2000년 대우차사태를 경험했던 세대가 2000년대 첫 10년을 주도했다면,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 세대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이후 세대가 전면에 부상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같은 세대교체가 향후 노사관계에서도 변화를 불러올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인물의 교체에 그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지엠지부 조합원들이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현장조직들도 그간의 활동방식을 변화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지부, 부정투표 어떻게 넘어설까?

모두 4명의 지부장 후보가 출마한 기아차지부 선거에서는 몇 가지 특징적인 점들이 나타났다. 우선 범 국민파로 분류할 수 있는 현장조직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아차지부 내의 현장조직들 중 ‘기아자동차 민주노동자회(기노회)’와 ‘자주 민주 통일과 노동해방의 길로 전진하는 노동자회(전노회)’라는 두 조직이 범 국민파로 분류된다. 기노회와 전노회는 이전에 이미 각각 지부장을 배출한 적이 있을 정도로, 따로 떨어져 있어도 큰 영향력을 가진 조직들이다. 이 두 조직이 통합한 결과 기아차지부 내에서 영향력을 극대화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서로 다른 두 조직으로 존재하기는 했으나 같은 뿌리에서 분화된 조직이었고, 두 조직의 성향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들 두 조직은 처음 분화될 당시의 차별성이 거의 사라지고, 이념과 노선의 차이가 아닌 조직원들 간의 친밀도에 따라 서로 다른 조직으로 존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노조는 집행부 중심으로 활동이 이뤄지고, 집행부를 배출하지 못한 현장조직은 그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집행부에서 떨어져 있던 지난 2년 동안 이들 두 조직은 조합원들의 관심으로부터도 멀어져 있었고 영향력도 제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집행부를 배출했던 ‘금속의 힘’은 물론, 끊임없이 이슈를 제기함으로써 조합원들의 관심 영역 안에 있던 ‘전 조합원과 함께 고용복지 희망을 여는 민주노동자 투쟁위원회(전민투)’의 영향력을 감안했을 때,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두 조직이 통합하기로 결정한 것은 일종의 위기감의 발로였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지난 2009년의 지부장 선거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비슷한 실리경향을 보인 후보가 둘로 나뉘어 출마했다. 물론 금속노조 탈퇴를 전면에 내건 후보와 그렇지 않은 후보라는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두 후보의 성향에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리경향의 둘로 나뉜 점은 득표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부정투표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어났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0월 12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는 범 국민파 출신의 배재정 후보가 비교적 큰 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문제는 2위와 3위 후보 간의 표 차이인데, 그 차이가 54표에 불과했다. 단 0.2%의 표 차이지만, 결선 진출 여부가 갈리기 때문에 차이가 크다.

그런데, 3위로 결선 진출에 실패한 후보 측에서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했다. 임·단협 찬반투표 당시의 명부와 이번 임원선거 명부를 비교한 결과 판매지회에서 동일인이지만 서명이 다른 경우가 발견됐고, 이는 결국 대리투표의 증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기아차지부 선관위는 명부 대조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80여 표의 부정 서명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처음에는 1차 투표 결과를 무효로 하고 재선거를 실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는 듯했다. 그런데 선관위는 10월 28일 “대리투표 의혹과 관련한 대리서명 여부를 정확하게 판별하기 어렵다”며 “1차 투표 결과를 수용해 결선 투표를 치른다”고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결국 지난달 2일 결선 투표가 치러졌고,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던 배재정 후보가 당선자로 결정됐다. 결선 투표 과정에서 의혹의 제기했던 후보 측은 선관위 사무실 출입문을 봉쇄하거나 투표용지를 빼앗는 등 선거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투표용지를 긴급히 다시 제작하고 임시투표소에서 볼펜뚜껑을 기표용구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투표를 강행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당선자가 결정되기는 했지만, 처음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했던 후보 측은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법원에서의 판결 여부와 무관하게 이번 선거에서의 부정투표 의혹은 의혹이 제기됐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민주노조운동의 도덕성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지부 소속의 한 활동가는 “판매지회 조합원들은 시간을 내 투표소까지 가서 투표를 하는 것이 어려워, 그동안 판매지회에서는 관행적으로 대리투표가 있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며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개탄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핵심 간부에 의한 성폭력이나 조합비 횡령, 뇌물수수 등이 끊이지 않아 민주노조운동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이번 부정투표 의혹은 비록 한 지부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이 공론화되지 않고 묻힌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문제가 있었음에도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은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부정투표 의혹이 어떻게 해결될지가 관심을 끄는 이유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복지공약 앞세운 현대차지부 선거

현대차지부 선거에서도 현장조직 간의 연합이 있었다. 비록 기아차지부처럼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한 게 아니라 선거연합이었다 하더라도, 이 연합은 당선자 배출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초 현대차지부 선거에서는 이경훈 지부장의 연임 여부가 큰 관심거리였다. 7전8기 끝에 지부장에 당선된 이후, 이경훈 지부장은 항상 이슈의 중심에 서 있었다. 현대차지부가 단위사업장 노조로는 가장 큰 규모라는 점도 있지만, 이경훈 지부장은 이른바 ‘실리노선’을 추구하는 것으로 인식돼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대차지부와 노동계에서는 물론 언론에서도 ‘실리노선 대 강성노조’라는 이분법을 앞세워 이번 선거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4명의 지부장 후보가 출마한 1차 투표에서는 이경훈 후보가 1위, 민주현장-금속연대 연합의 문용문 후보가 2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두 후보의 표 차이는 2천 표 가량(득표율 5% 차이)이었다. 3위 후보와 4위 후보는 두 후보에 비해 비교적 큰 득표력 차이를 보였다.

지난달 4일 치러진 결선 투표에서는 2위로 결선에 진출했던 문용문 후보가 이경훈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1차 투표에서 3위와 4위로 낙선한 두 후보가 얻었던 11,500여 표가 어느 후보에게 몰리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에, 결선 투표를 앞두고 3, 4위 후보를 지지했던 조합원들의 성향이 어떤지에 대한 분석이 난무했다. 결국 결선 투표에서는 1,400여 표 차이로 문용문 후보가 역전에 성공했다. 득표율로는 3.5% 차이였다.

문용문 후보가 당선되자, 각 언론은 “3년 연속 무분규 타결을 이끌어냈던 이경훈 후보 대신 2년 만에 강성노조가 당선돼 현대차 노사관계가 불안하게 흘러갈 것”이라는 전망을 앞 다퉈 내놨다. 실제로 문용문 후보는 당선 직후 “조합원들은 노조가 더는 회사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만큼 조합원 편에 서고, 조합원 목소리를 대변하는 집행부가 되겠다”면서, 타임오프 원상회복, 현대·기아차 공동 임·단협 투쟁, 상여금 800% 지급 명문화, 퇴직금 누진제 실시 등 공약사항을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7일에는 “현대차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해 달라”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 밤샘 없는 주간연속2교대제 실시, 공장 내 발암물질 근절 등 3가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최고경영자와 대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특징적인 점은 네 후보 모두 복지공약을 앞세웠다는 점이다. 정년 60세 연장, 상여금 800%, 무상주 지급, 퇴직금 누진제 시행, 건강검진 전액 지원 등은 네 후보 모두에 해당되는 공약이다. 문용문 후보는 이 외에도 암 진단 시 전액 회사지원, 퇴직 후 3년 내 암 발생 시 최고 1억 원 지원 등을 더했다. 강성으로 분류된 금속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민투위) 후보도 마트형 냉·난방 시스템 개선을 제시했다. 실리노선을 추구하는 것으로 분류되는 이경훈 후보와 현장연대 후보는 주식 1,200만 주 지급을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실현 가능성 여부와는 별개로 모든 후보들이 복지를 앞세운다는 것은, 조합원들의 관심이 그만큼 개인의 이익에 쏠려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를 아무리 비판하더라도, 선거 때 조합원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그 이기주의에 영합하는 공약이라도 내놔야 한다는 뜻일 수 있다.

이와 관련 현대차지부 한 활동가는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투쟁보다는 더 많은 복지 등 실리를 챙기는 데 관심을 둔다”며 “조합원들은 지난 3년간 무분규 타결로 인해 지급받은 자사주의 단맛을 이미 알고 있는데, 어떤 집행부도 그 단맛을 깨뜨리고 파업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파업을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겠으나, 문용문 후보가 강성 집행부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투쟁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지난 정갑득 위원장 시절 한미FTA 반대 파업이 마지막이었을 정도로, 그동안 금속노조의 투쟁에 완성차지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비록 상대적으로 ‘강성’인 문용문 후보가 당선됐지만 현대차지부가 금속노조의 투쟁에 참여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완성차지부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모두 지부장을 바꿨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이번에 당선된 완성차지부장들이 모두 친밀하게 활동했던 이들”이라며 “7기 금속노조의 사업을 풀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속 조합원들의 이해를 우선적으로 살펴야 하는 지부장들이기에, 7기 금속노조에서도 완성차지부들이 참여하는 투쟁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현대차지부 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들이 복지공약을 앞세웠던 것처럼,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라고 비판받던 경향이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이번에 당선된 완성차지부장들의 행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