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최대 피해자는 발전노조?
복수노조 최대 피해자는 발전노조?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1.11.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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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5개사 기업별노조 생겨 … 소수노조 전락한 발전노조
정권교체 목 매기 전 내부부터 추슬러야
[현장 2] 발전노조에선 무슨 일이?

ⓒ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지난 2002년 2월, 국가기간산업인 철도와 가스, 발전이 동시에 멈춰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해당 노동자들이 민영화와 해외매각에 반대하며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당시 발전파업의 중심에 섰던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발전노조)은 38일간의 파업 끝에 348명의 해고자를 냈지만, 발전산업을 민영화하고자 했던 당시 정부의 정책을 중단시켰다.

이런 전통을 가지고 있는 발전노조가 술렁이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삐걱대던 노사관계는 올해 들어 걷잡을 수 없는 갈등으로 치달았고, 여기에 복수노조 설립을 둘러싼 갈등까지 더해져 발전노조는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발전노조 이종훈 정책기획실장으로부터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조합원 70%가 기업별노조로 넘어갔다

“발전회사 사장이라는 사람들이 원활한 전력공급엔 관심도 없고 오로지 노조만 때려잡으려 하는 것 아니냐?”

지난 9월 16일 열린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긴급회의에서 민주당 노영민 의원의 거침없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날 지경위 긴급회의는 하루 전인 15일에 발생한 대규모 정전사태를 규명하기 위한 회의였다. 이날 회의에 출석한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장관은 의원들의 질타에 연신 고개를 숙였다.

노영민 의원은 이날 사고 당일인 9월 15일에 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 발전회사 사장이 모여 회의를 열었지만, 전력수급에 대한 논의 없이 오로지 ‘발전노조 대응책’만을 논의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었다. 물론 당일 6개 발전회사 사장들의 회의는 오전이었고 대규모 정전사태는 오후였다는 시간차는 있지만, 당시 전력수급 상태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는 점이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다.

실제로 긴급회의에서 민주당 조경태 의원은 “발전노조가 4번에 걸쳐 전력대란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지경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요청했지만, 지경부는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고 비판한 것처럼, 발전노조는 전력수급관리의 문제점을 이전에도 계속 지적한 바 있다.

노영민 의원의 지적처럼 지난해 이후 발전노조는 현재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부터 이미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 등으로 정상적인 노조활동조차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한데다가, 올해 들어서는 각 발전회사들에 기업별노조가 새로 생기면서 조합원들이 대거 이탈한 상태다. 발전노조 이종훈 정책기획실장에 따르면 “대략 70% 정도가 기업별노조로 이동한 상태”다.

“현재 5개 회사에 각기 기업별노조가 설립돼 있습니다. 각 기업 단위에서는 기업별노조가 다수노조인 거지요. 더 심각한 문제는 2013년이면 교섭권을 갖지 못하게 될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겁니다. 올해 복수노조가 시행되던 시점에 임금교섭 중이었기 때문에 올해까지는 교섭권을 가지고 있지만,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절차가 진행되면 아예 교섭권에 접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지요.”

현재 발전노조는 1노5사 체제의 소산별노조이다. 회사는 5개지만 노조는 하나이며, 각 발전회사별로 본부가 구성돼 있는 형태다. 지금까지 발전회사들과 발전노조와의 교섭은 산별교섭으로 진행됐다. 5개 발전회사들은 업무협력본부를 통해 발전노조와의 교섭에 응해왔다. 업무협력본부는 5개 발전회사들에서 파견된 인력으로 구성된 협의체로서 5개 발전회사를 대표해 노사관계 업무를 담당해왔다.

▲ 동서발전 사측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발전노조 탈퇴 투표결과에 대한 원인과 대책’ 문건. 투표과정에 사측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있다. ⓒ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는 소송으로 돌파한다?

이종훈 실장은 “발전노조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측의 민주노총 탈퇴 공작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각각의 발전회사 노무담당자들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들에는 회사의 노조활동에 대한 불법적인 개입의 흔적이 다수 발견된다. 발전노조는 이 자료를 모아 지난 10월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자료로 제출하기도 했다.

발전노조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먼저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인 곳은 동서발전이다. 동서발전 사장은 노조활동 지배·개입 등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발전노조로부터 2차례에 걸쳐 고소되기도 했다.

동서발전은 이미 지난 2009년 11월 4일 단체협약 해지통고를 했으며, 6개월이 흐른 뒤 2010년 5월 4일자로 단체협약이 해지됐다.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발전노조 탈퇴 및 기업별노조 설립’ 조합원 총회에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서발전은 각 사업소장 등 관리자들을 동원해 조합원 총회에서 ‘찬성’ 표를 찍도록 조합원들에게 불법적인 압력을 가했다는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특히 일부 발전소에서는 사측 노무담당자가 조합원 총회 투표함을 비밀리에 개봉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올해 초 뒤늦게 공개돼 파장을 일으켰던 ‘배·사과·토마토’ 문건도 이때 작성된 것이다. 관리자들을 동원해 조합원의 성향을 분류하고, 그에 맞춰 조합원들을 회유하기 위해 작성한 문건이 바로 배·사과·토마토 문건이다. 이 문건에서 동서발전은 (발전노조 탈퇴) 찬성이 확실한 조합원, 찬반이 애매한 조합원, 반대가 확실시되는 조합원을 각각 배, 사과, 토마토로 분류했다. 찬성이 확실한 조합원은 휴직자까지 투표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찬반이 애매한 조합원은 회사 간부 2명 이상을 멘토로 붙여 설득하며, 반대가 확실시되는 조합원은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투표불참을 유도한다는 것이 이 문건의 핵심 내용이다.

당시 조합원 총회에서는 안건이 부결되자, 총회를 주도했던 조합원들은 발전노조에서 탈퇴한 뒤 2010년 12월 18일 기업별노조인 한국동서발전노동조합 설립 총회를 개최했다. 여기에 호응해 동서발전은 조합원들에게 개별적으로 발전노조에서 탈퇴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런 압력의 수단으로 인사권이 적극적으로 이용됐다. 드래프트제 및 상시퇴출제도 도입, 교대근무자 80명 감축안 등을 통해 발전노조에서 탈퇴하라는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이 같은 동서발전의 부당노동행위는 올해 1월 언론 보도를 통해 폭로됐다. 발전노조는 즉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한전 본사에서 농성에 돌입했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도 진상조사에 나서는 등 동서발전을 압박했다. 그 결과 올해 2월 7일에는 당시까지 진행됐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노사합의서를 작성했다. 발전노조도 동서발전과 사장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관련 일체의 소를 취하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동서발전의 부당노동행위는 지속됐다는 게 발전노조의 주장이다. 5개 발전회사와 발전노조가 올해 3월 17일 단체협약을 체결했지만, 동서발전은 여전히 기업별노조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회사가 ‘기업별노조추진위’를 만들어 기업별노조 설립을 주도한 것이나, 조합원들에게 발전노조에서 탈퇴해 기업별노조에 가입하라고 압력을 가한 것은 올해 단협 체결 후에도 지속됐습니다. 한편으로는 발전노조와 단협을 체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올해 7월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것을 악용해 기업별노조를 계속 지원했지요.

아직 복수노조 허용 이전인 지난해 말에 기업별노조를 설립해 설립신고를 하고, 노동지청이 설립신고를 반려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설립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을 내 올해 3월에 설립신고 반려처분이 취소됐습니다. 이미 기업별노조 설립 이전에 이런 상황을 예상한 법률검토를 마친 상태였고, 그 이후의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기업별노조는 법원으로부터 그 지위를 인정받은 후, 올해 6월 24일에는 회사와 임·단협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역시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이전의 일이다. 기업별노조와 임·단협을 체결한 동서발전은 발전노조와 체결한 단협을 파기했다.

이종훈 실장은 “노동부와 법원의 판단기준이 달라 발생한 문제”라면서 “노동부는 복수노조 시행 이전에는 형식적 요건을 갖춘 복수노조로 인정하지 않는 반면, 법원은 실질적 구성된 조합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14일에는 동서발전이 지식경제부 공무원들에게 전자액자를 선물로 돌리다가 국무총리실 감찰팀에 적발되는 일이 발생했다. 발전노조에 따르면 “동서발전 사장의 임기만료에 대비해 연임하기 위한 공작” 차원에서 진행된 사건이다.

발전노조는 부당노동행위와 뇌물청탁을 이유로 동서발전 사장의 해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농성도 진행했다. 이에 대해 동서발전은 표적감사와 징계로 응답했다. 동서발전은 발전노조 동서본부장과 동해지부장을 회사내부 비리사실 유포자로 지목하고, 특별인사위원회를 개최해 이들에게 각각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게 없다

시기가 다르고 구체적인 진행 경과가 다르기는 하지만, 나머지 4개 발전회사들도 동서발전의 사례를 모방했다. 5개 발전회사 모두에 기업별노조가 설립됐고, 다수의 조합원들이 기업별노조로 이동했다.

상황은 이렇게 진행됐지만, 단지 회사의 압력만으로 다수의 조합원들이 발전노조를 탈퇴해 기업별노조에 가입한 것일까? 동서발전에서 지난해 11월에 ‘발전노조 탈퇴 및 기업별노조 설립’ 조합원 총회가 진행됐던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이 총회에서 비록 부결은 됐지만, 40%가 넘는 조합원이 발전노조 탈퇴에 찬성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찬성표를 던진 모든 조합원은 아닐지라도 발전노조에 대한 불만을 가진 조합원들이 상당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 수치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종훈 실장은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발전노조 내부에서 조합원들의 불만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라며 “주로 해고자 문제와 정파 간 갈등에 따른 내부의 불협화음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 중 해고자는 발전노조 전체를 통틀어 6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6천 명이 넘는 조합원(기업별노조 설립 이전 기준)을 지닌 발전노조가 해고자들의 생계를 지원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사안은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정파 간의 갈등이 극심해 조합원들이 발전노조에 등을 돌린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조합원들의 입장에서는 발전노조를 “내가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내 조직”으로 판단할 메리트가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발전노조 내부적으로도 이런 문제를 안고 있었기에 회사의 ‘공작’이 조합원들에게 쉽사리 먹혀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발전노조와 5개 발전회사 간의 갈등에 기업별노조 설립 이후 발전노조와 각 기업별노조 간의 갈등이 더해져 갈등이 증폭됐다는 점이다. 이종훈 실장은 “기업별노조 설립 과정에서 갖가지 상황이 벌어졌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기업별노조와는 거의 척을 진 상태”라면서 “지금은 기업별노조와는 거의 대화조차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향후 각 발전회사들 안에서 발전노조 소속 조합원들과 기업별노조 소속 조합원들 사이에 갈등양상이 빚어질 수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미FTA가 국회에서 조만간 통과될 텐데, 그러면 민영화 압박이 거세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민영화된다면 거기에 구조조정도 뒤따를 겁니다. 5개 발전회사 노동자들이 하나의 노조로 뭉쳐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압박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인데, 지금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무기력하게 당하기 십상이겠지요.”

상황은 이렇지만,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발전노조 역시 “현 정권 아래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민영화와 구조조정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발전산업이 통합돼야 한다는 입장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를 현실화시킬 수단을 가지고 있지는 못할 뿐만 아니라 노조마저 분할돼 있어 의견을 모아내기도 쉽지 않다.

결국 내년에 있을 총선·대선에서 정권이 바뀌는 것이 발전노조가 기댈 수 있는 최대치이기도 하다. “현재로서는 발전노조만큼 정치상황의 변화를 절실하게 원하는 곳도 없을 것”이라는 이종훈 실장의 이야기는 그만큼 발전노조가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다는 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 말은 역으로 정치상황의 변화에 모든 기대를 걸어야 할 만큼, 현재의 발전노조가 힘을 잃어버렸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종훈 실장을 인터뷰한 뒤, 결국 국회에서는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발전노조의 우려대로 발전산업에 대한 민영화 압박이 거세지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정권의 교체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복수노조 허용의 최대 피해자는 발전노조”라고 한탄하기보다 발전노조가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를 성찰하고, 조합원들의 신뢰를 다시 쌓아나가는 노력이 더욱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