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신경분리, 왜 문제인가
농협 신경분리, 왜 문제인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1.12.1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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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자본금 턱없이 부족…부실개편에 대한 우려 쏟아져
“농민 위한 농협돼야”…당초 개혁 취지 무색
▲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농업협동조합중앙회 구조개편, 왜 문제인가' 공청회에서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 금융노조

내년 3월로 예정된 농협 신‧경 분리가 코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과 함께 금융지주회사 중심의 사업구조개편이 문제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금융노조(위원장 김문호)와 민주당 농림수산식품위 정범구·김효석 의원실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농업협동조합중앙회 구조개편, 왜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공청회를 공동 주최했다.

이날 발제와 토론을 맡은 학계와 노동계, 농민단체 전문가들은 현 농협 체계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부분에는 공감했으나,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급작스런 시행으로 대규모 부실이 우려되며 금융지주회사 중심이 아닌 협동조합 본래의 취지를 살리는 쪽으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조 빚잔치”로 출범?

농협의 신용부문과 경제부문 사업분리를 골자로 한 사업구조개편에 노동계와 농민단체, 학계, 일부 정치권에서 크게 반발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턱없이 부족한 자본금 때문이다.

예정대로 내년 농협이 사업구조개편을 하려면 총 27조 원이 넘는 자본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농협이 보유한 자본금은 15조 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난 9월 21일 농림수산식품부는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쳐 당초 농협이 주장한 필요 자본금 27조 원에서 2조 원을 삭감해 국회에 보고했다. 그리고 부족 자본금 10조 원 중 4조 원은 정부에서 지원키로 밝혔다.

정부 지원 4조 원 중 3조 원은 농협이 농업금융채권 발행 등으로 마련하게 하고 이자 차액 부분 1,500억 원만 매년 정부에서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나머지 1조 원 역시 한국정책금융공사의 유가증권 현물출자 방식으로 지원된다. 국제회계기준에 따르면 현물출자는 자기자본이 아니라 차입금으로 간주돼 농협중앙회의 재무 건전성 지표는 낮아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주식의 소유권이나 처분권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 노동계에서 “빚잔치로 출범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의 재정 지원이 미흡하자 민주당 최인기 의원 등은 농협중앙회 사업구조개편 시기를 당초 계획대로 2017년으로 연기하자고 주장하며, 농협법 재개정안을 제출한 상태이다.

농민 위한 농협 개혁 돼야

이날 발제를 맡은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주회사 방식의 신경분리는 농민을 위한 농협 개혁이 아니라 신용사업을 구하기 위한 개혁”이라며 “협동조합체제의 근본 취지를 되살려 농산물을 제대로 팔아주는 경제사업 중심으로 개편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농협법을 다시 개정하는 과정은 불가피하며, 충분한 정부 지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구조개편을 연기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 역시 공청회 모두 발언에서 “지주회사는 영리만을 추구하는 조직인데 농민의 자주적 결사체를 수익추구 조직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며 “지주회사 체제로 가면 상층부에만 자리가 늘어 농민들은 죽어나가도 그들만 떵떵거리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농협중앙회가 지난 달 29일 정기이사회에서 의결한 ‘사업구조개편에 따른 2012년도 조직개편 및 정원조정안’을 보면 농협중앙회 직원은 현행 1만9천여 명에서 4,500여 명이 줄고, 임원 수는 현행 35명에서 비상임이사를 포함해 72명으로 증가한다. 조직 상부만 더욱 비대해지는 구조이다.

농협이 벌이는 사업의 구체적 실상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허권 농협중앙회지부 위원장은 “인천지역 하나로클럽의 경우 매년 백억 원씩 적자를 보고 있는데, 수익 추구 위주의 논리로 소비자와 농민들에게 피해가 안 가게 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제부문 사업 활성화를 위해 3.5조 원이 배분됐다고 하는데, 실상은 부동산 등의 고정자산의 명의만 옮겨가는 것일 뿐 현재와 달라지는 점은 없다”고도 덧붙였다.

민경신 전국농협노조 위원장 역시 “협동조합은 공통의 경제·사회·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조직”이라며 “금융부문 사업만 보고 대형투자은행을 만드는 등 경쟁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