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시대에도 침대는 과학
석기시대에도 침대는 과학
  • 참여와혁신
  • 승인 2012.01.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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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가 편안해야 만사형통…기억력·건강·정서적 안정에 영향
수면시간 짧은 현대인…잠자리는 휴식·재충전 공간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을 보면 밤에도 불빛이 밝게 빛나는 도시를 볼 수 있다. 밤에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늦게 자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성인이 자정을 넘겨 잠자리에 들고, OECD 국가 중에서도 수면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가 한국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꽤 바람직하지 못하다. 잠은 과학적으로 여러 중요한 기능을 가지기 때문이다.

제대로 자는 사람이 드물다?

우리는 하루 중 3분의 1을 자는 데 보낸다. 하지만 이 시간들은 결코 허투루 사용되는 게 아니다. 자는 동안 낮에 쌓였던 피로도 풀고 정서적으로 안정도 되찾기 때문이다. 또 낮에 배운 내용이나 중요한 일들을 기억하는 데도 잠이 꼭 필요하다.

사람과 동물이 잠을 자는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가설이 있다. 우선 수면이 활동 시간과 시기를 조절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자는 동안에는 공격당할 염려가 큰데도 모든 동물이 잠을 잔다는 건, 자는 동안 생명유지에 필요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모든 동물이 자고 있을 때 사용하는 에너지가 깨어있을 때보다 적다. 항상 깨어 있으면 활동하는 데 훨씬 많은 에너지가 들게 되므로 먹이를 구하는 등 살아가는 데 더 많은 활동이 필요하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사람들은 근골격계 질환, 심장-폐질환, 위장관 질환이 생길 수 있고 어린이의 경우는 성장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또 잠자는 동안 우리 몸의 상처가 치료되거나 면역력이 향상되기도 한다. 실제로 수면이 부족한 쥐에게 생긴 상처는 쉽게 치료되지 않았고, 백혈구 수치도 정상보다 20% 낮다고 한다.

▲ 시부두에서 발견된 식물의 화석. 석기시대 인들이 식물 잎이나 풀을 모아 잠자리를 만들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그림 B는 사진 A의 온전한 모습을 스케치한 그림이다. 굵은 엽맥의 일부가 화석 상태로 남아 있다.
수면은 기억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낮에 배운 기술이나 능력도 적절하게 잠을 자면 사나흘에 걸쳐 계속 향상된다. 하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자게 하면 배운 능력이 전혀 향상되지 않는다. 자는 동안 낮에 배운 것이 더 숙련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잠이 부족하면 우울증 같은 기분장애가 생길 확률도 높고, 짜증을 잘 내는 등 정서적으로도 문제가 생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젊은 성인의 적정 수면시간은 하루 7시간 30분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적정 수면시간이 길어져 청소년은 8~9시간, 초등학생은 9~10시간, 신생아는 15~16시간 정도 자야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면시간이 성인은 약 6시간 15분, 고3 학생은 5~6시간 정도다. 평균 기준에 한참 미달인 것이다. 최근에는 불면증 같은 수면장애도 늘고 있어 충분히, 제대로 자는 사람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

▲ 마찬가지로 시부두에서 발견된 화석 조각. 외떡잎 식물의 잎사귀가 진흙에 눌린 자국이 굳어져 화석으로 남았다.
침대 관리에 까다롭던 초기 인류

최근 고고학자들은 초기 인류가 침대에서 잠을 잤던 흔적을 발견해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인류는 깊고 편안한 잠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위치한 위터와터즈랜드대 연구팀은 석기시대 인류가 살았던 동굴에서 침대 흔적을 발견했다. 연구를 주도한 린 와드레이 박사팀은 이 침대가 약 5만 년에서 7만7,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와드레이 박사팀은 남아프리카 통가티 강가 근처에 있는 석기시대 주거지 ‘시부두(Sibudu)’에서 침대를 찾았다. 이들은 동굴 속 계단 모양에 있는 식물 물질의 층을 침대로 추정했는데, 이것의 넓이는 3㎡ 정도, 두께는 1㎝였다. 이 층에서 발견된 식물의 화석을 분석한 결과 주로 잔디와 등심초 등의 풀이었다. 이중에는 케이프 로렐 잎도 있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은 강가에서 풀을 모으고, 근처에서 자라는 식물 잎을 골라 침대를 만들었다. 특히 케이프 로렐 잎은 살충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잎이 있으면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 등 해충이 덜 나타난다. 찌르레기도 자신의 둥지에 케이프 로렐 잎을 둬 흡혈 곤충이 침입하는 걸 막는다. 침팬지도 자신들의 서식지에 케이프 로렐 잎을 가져다두는 습성이 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연구팀 중 한 명은 침팬지의 서식지에서 실제로 잠을 자봤다. 그러자 다른 곳에서 잘 때보다 모기 등 해충이 덜 나타나 훨씬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식물 침대는 해충 쫓는 효과를 가졌던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식물 층에서 보이는 불탄 흔적이다. 와드레이 박사팀에 따르면 다른 동물들도 자신들만의 침대를 만든다.

하지만 풀을 태워가며 관리하는 건 초기 인류만의 특징이다. 이들은 식물을 불태워 해충이나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막으려 한 것이다.

발굴 현장에는 석기는 물론 접착제와 간단한 장식품도 나왔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당시 인류는 꽤 복잡한 사회를 이루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침대 근처에는 동물의 뼈와 장식품이 함께 묻혀 있었다. 연구팀은 이런 흔적들이 석기시대 사람들이 침대에서 잠만 자는 게 아니라 먹고 쉬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침대가 깨끗하게 관리됐기 때문에 앉아서 일하고 먹는 등의 활동도 이뤄졌다. 그러면서 인류는 침대에 더 많이 머물렀고, 더 잘 관리하게 됐을 것이다. 사냥과 채집으로 고단해진 몸을 깨끗하게 관리되고 해충도 달려들지 않는 침대에 뉘였을 초기 인류. 어쩌면 그들이 편안하고 충분한 잠을 잘 수 있었던 게 오늘날까지 진화하는 데 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도 ‘침대는 과학’이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