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120일, 재경택시에 무슨 일이?
파업 120일, 재경택시에 무슨 일이?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2.01.0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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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파업에 회사 직장폐쇄 맞불 … 의견대립 평행선
노사, 주머니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져 … 합의점 찾나?
[현장 2] 재경택시 노사 갈등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주식회사 재경택시, 택시 105대와 200여 명의 기사가 근무하던 일터다. 하지만 늦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 23일부터 택시들은 운행을 멈췄다. 노동조합의 파업에 회사는 9월 14일 직장폐쇄로 맞섰고, 넉 달 가까이 노사의 의견대립은 평행선을 달려왔다.

ⓒ 재경택시분회
파업 기간 대체근로 금지 일부 승소

재경택시분회는 8월 20일 임시 조합원총회에서 쟁의행위를 결의한 후 23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택시는 멈추지 않았다. 회사는 노조의 파업돌입 이후 신규 고용한 40여 명의 직원과 비조합원 11명, 그리고 7월 1일 복수노조 시행 이후 설립된 새 노조(재경택시 노동조합, 이하 2노조) 조합원들로 40여 대의 차량을 운행하고 있다.

이에 재경택시분회가 제소한 대체근로 금지 가처분 신청 소송에서 수원지방법원은 지난 11월 21일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신규채용자 중 26명의 택시운행 행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금지한 대체근로라는 판결이다. 수원지방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파업 참가자의 퇴직 이후에 이루어진 신규채용 및 대체근로행위는 결국 쟁의행위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므로 법에서 정한 금지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회사는 ▲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부적법하고 ▲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며 ▲ 단체교섭 진행 없이 이루어진 쟁의행위라며 재경택시분회의 파업의 적법성 여부를 지적했다. 하지만 법원은 사측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증빙 자료가 부족하며, 오히려 사측이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쟁의행위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게 입증된다”고 판결했다.

또한 “신규 인력의 채용은 자연감소로 인한 부득이한 인원 충원이었다”며 “쟁의행위와 신규채용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회사의 주장에 대해, 법원은 “인력충원의 과정과 절차, 시기, 결원 발생 이후 조치 내용, 쟁의행위 기간 중 채용의 필요성 여부, 신규채용 인력의 투입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고용 시기가 쟁의행위일로부터 1개월이 지난 시점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점, 7월 20일 2교대 근무에서 1인 1차제(전일 근무)로 변경을 공고하는 등 필요 인력이 줄어들 것을 감안하고 있었으므로 자연감소에 따른 인원 충원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재경택시 노사가 제출한 파업 이후 기간 동안 입·퇴사자 현황 자료를 보면 더욱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파업이 시작된 8월 23일 당시에는 재경택시분회(1노조)의 조합원 수는 166명이고 2노조 조합원은 7명, 노조 가입을 안 한 직원은 11명이다. 그러나 신규인력이 채용되기 시작하는 9월 15일부터는 새로 입사한 직원들은 전원 2노조에 가입하고 있다. 대거 신규인력이 들어오는 9월 말과 10월 초에는 하루에도 예닐곱 명씩 2노조 조합원이 늘고 있으며 1노조 조합원과 비노조원이 2노조로 옮겨 가는 모습도 종종 발견된다. 11월 9일 현재, 1노조는 총 133명, 2노조는 51명, 비노조원은 한 명도 남지 않았다.

재경택시분회 장기선 위원장은 “2노조가 사용자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심증은 충분하지만 구체적으로 이 문제에 대응할 계획은 없다”며 “재경택시 파업의 본질은 어느 노조가 어용인지 따지는 부분에 있다기보다는, 택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과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사측의 태도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분회 차원의 공식 입장에 반해 현장의 조합원들은 “다분히 의심스럽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조합원은 “함께 일하는 동료 중 2노조 사람이 있는데, 내 이름의 가입원서를 임의로 넣어서 곤혹스런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며 “모르긴 해도 이와 같은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 재경택시분회
“잠정합의·중재안, 이행을 안 한다”

겉으로 드러난 파업의 원인은 올해 임·단협 협상 결렬 때문이다. (주)재경택시(대표이사 김의엽)와 한국노총 전국택시산업노조 재경택시분회(위원장 장기선)는 이미 지난 3월 말 올해 협상을 끝내고 구두로 잠정합의가 된 상태였다. 그러나 회사는 약 20일이 지나고 합의서 체결을 거부하며 월 만근일수 26일(현 25일), 퇴직금 중간정산 기산일 조정 등의 20여 개 항목의 새로운 요구안을 제시했다.

결국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안에 노사가 5월 16일 합의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회사는 경영상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합의 이행을 거부했고, 경기지노위는 중재 끝에 8월 19일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렇지만 장기선 위원장은 “그동안 열악한 임금과 근로조건 때문에 쌓이고 쌓였던 조합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조합원들은 “합의 이행을 하지 않고 말을 바꾼다든지, 외부 노무 전문가의 도움으로 갈등을 격화시킨다든지 하는 부분에 있어서 사측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취재 도중 만난 파업 참가 조합원들 대부분이 “돈 문제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합의 사항이 자꾸 번복되고 그 이유에 대해서 납득할만한 해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노사 관계에 있어서 기본적인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많은 조합원들이 안타까워하는 한편, 분개하기도 했다.

분회의 한 조합원은 “십오 년이 넘게 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예전에 노사가 사이가 좋던 시절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즐거운 일이 많았다”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다. 또한 파업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회사가 입을 경제적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오래 일한 곳인데 어려워지는 걸 바라고 싶겠냐”며 말끝을 흐렸다.

재경택시분회 이영택 부위원장은 “택시기사들의 형편을 뻔히 아는 회사에선 파업이 길어야 며칠이나 가겠냐는 생각이었을 테지만 120일을 이어가고 있는 동력에 깜짝 놀랐을 것”이라며 “그만큼 조합원들이 쌓아둔 울분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장기선 위원장 역시 “출구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텐데 조합원들의 의지가 워낙 강고해 오히려 집행부가 걱정스런 상황”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 재경택시분회
택시 노동자들의 빠듯한 주머니

노조는 이번 임·단협 협상에서 “정말 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입장이다. 특히 임금협상 부분에서 더욱 그렇다. 재경택시는 김의엽 대표이사가 지난 2010년 11월에 창신상운택시주식회사로부터 차량과 사업권을 인수해 설립한 회사다. 그런데 무리한 조건으로 회사를 인수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시가보다 웃돈을 주고 차량 등을 인수했다는 것이다.

회사를 인수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경영이 안정화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노조에서도 고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월 고정임금을 90만 원에서 61만 원으로 줄이고 대신 운송수입금(사납금) 납입을 하루 9만 원에서 8만 원으로 조정하는 안을 제시했다. 고정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제안인 것이다. 조합원의 입장에선 고정적인 수입이 더 많이 보장되는 게 이익이다. 재경택시분회 집행부는 “총회를 통해 현재 회사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면서 상생하자고 조합원들을 설득하느라 어려움이 컸다”고 밝혔다.

경기 침체로 택시 이용객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고, 그동안 무섭게 오른 물가 등을 고려하면 택시 기사들의 한 달 삶은 빠듯하다. 재경택시분회의 한 조합원은 “사납금으로 한 달에 200만 원을 내고 나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15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40~50대 중년 기사들이 그 돈으로 네 식구를 어떻게 먹여 살리겠냐”고 하소연했다.

기사 한 사람이 택시를 운행해 한 달에 300만 원을 번다고 가정하면, 그 중 운송수입금으로 200만 원을 회사에 납부해야 하고, 남은 100만 원에 임금으로 보전해 주는 60만 원을 더하면 총수입은 160만 원이 되는 구조이다. 한국노총이 발표한 2011년 표준생계비에 따르면 초등학생 자녀 두 명을 포함한 4인 가족의 월 표준생계비는 492만 원이다. 단신가구인 경우에도 월 178만 원 가량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실은 이론생계비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파업이 진행된 넉 달 동안 조합원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생계를 위해서 단순일용직이나 대리운전 등의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으며, 투쟁본부인 노조 사무실에는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나오고 있다. 노조에서는 투쟁기금 마련을 위해 9월부터 시내 모처에 작은 식당을 개업해 운영하고 있다.

ⓒ 재경택시분회
상황전환 계기 마련할 수 있을까?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교섭 과정의 내용을 봐도 분명 재경택시분회가 유달리 ‘강성’인 노조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조합원들의 회한에 귀를 기울여 봐도 이들이 투쟁이라면 이골이 난 싸움꾼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120일이 넘게 파업이 지속되고 있다.

재경택시분회의 파업 과정에서 직접적인 지원을 담당해 왔던 것은 전국택시산업노조 경기지역본부(본부장 김연풍)였다. 본부에서는 홍보나 시민선전, 집회 등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경기고용노동청이나 경기지방노동위원회 등을 방문해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해 왔다. 본부의 상급단체인 전국택시산업노조연맹(위원장 문진국) 역시 분회나 본부의 요청 시 법률 자문 및 담당 간부 파견 등을 통해 뒷받침해 왔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점은 분회의 집행부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꾸준히 자료를 정리하고 대응 논리를 만들어 왔다는 점이다. 불가피하게 파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당장 조합원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음에도, 대오가 흩어지지 않고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집행부의 지속적인 노력을 조합원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 12월 14일, 재경택시 노사는 향후 성실히 교섭에 임하며 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한다는 내용의 잠정합의안을 이끌어냈지만, 여전히 조합원들에게는 배차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