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장기투쟁, 끝은 어디?
사람 잡는 장기투쟁, 끝은 어디?
  • 김주도 기자
  • 승인 2012.01.0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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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마음의 상처·망각 … 하지만 투쟁 끝낼 수 없다
외투기업, 고용 창출하라 했더니 정리해고 남발
[현장 1] 금속노조 경기지부 산하 투쟁사업장

▲ 포레시아, 3M, 한일파카유압 공동 출근 투쟁에서 시민이 유인물을 받아 읽고있다. ⓒ 오도엽 기자 dyoh@laborplus.co.kr

인구 1,200만이 넘는 경기도, 그만큼 많은 기업들이 존재하고, 투쟁사업도 많다. <참여와혁신>은 경기도 남부에 위치한 수원, 화성, 안양 일대의 금속노조 산하 투쟁 사업장을 취재했다. 저마다 사연이 다른 장기투쟁사업장의 현재 상황과 고민들을 들어볼 수 있었다.

▲ 송기웅 금속노조 포레시아지회장. ⓒ 오도엽 기자 dyoh@laborplus.co.kr

투쟁 부르는 외국인 투자 촉진 정책

12월 7일 아침 7시경, 수원역 인근 경기도청 오거리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피켓, 현수막, 유인물 등을 들고 자리 잡은 그들은 포레시아배기컨트롤시스템코리아(주)(이하 포레시아)에서 해고된 조합원들이다.

포레시아는 경기도 화성시 장안공단 내에 위치한 외국계 기업으로, 과거 시화공단에서 자동차 머플러를 생산하던 창흥정밀을 프랑스의 자동차 부품 기업 포레시아가 인수·합병해 설립했다. 포레시아는 전 세계 33개국에 238개의 공장, 38개의 연구소와 75,0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업체로 세계 6위 규모다. 지난 2003년, 창흥정밀의 자동차 배기계 사업을 인수한 이후 경기도와 체결한 외국인 투자협정에 따라 화성시 내에 위치한 외국인 투자기업 전용 공단인 장안공단으로 이전했다.

지난 2009년, 포레시아는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매출 감소를 이유로 희망퇴직을 공고했다. 그해 4~7월 사이에 조합원 34명이 퇴사했으며, 5월26일에는 조합원 21명에 대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같은 해 12월 31일에는 단협 해지를 사측에서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등 노사 관계는 점차 대립 양상으로 흘러갔다.

송기웅 금속노조 포레시아지회장은 “지금도 공장 안에 일이 넘쳐나고 정리해고 이후 현재까지도 불철주야 잔업 없는 날이 없다”고 말했다. 한 조합원은 “전에는 인원이 부족하면 퇴직자의 복직을 허용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그때그때 용역에 요청한다”며 정규직을 해고한 자리가 일용직과 계약직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김성학 노동안전보건부장은 “과거 공장 이전 당시,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하는 거 아니냐’며 불안해 하니 고용안정협약서를 채택했다. 장안으로 이사할 때 ‘몇 만 평으로 확장하니 당연히 설비도 늘리고 인원도 보충될 것’이라고 (사측은) 주장했다. 그런데 정리해고를 하더라”며 비판했다.

출근 투쟁이 끝나고 아침 식사를 하던 중 포레시아지회의 한 조합원이 답답하다는 듯 열변을 토했다.

“외투자본이 들어와서 고용하겠다고 해서 혜택을 보는데, 그 돈이 어디로 가고 그런 걸 다뤄야지. 그런 걸 이슈화하고 실어줘야지. 혜택은 외국 놈들이 보고 이익은 외국 놈들 주머니에 들어가는데 반대로 노동자만 자르는 거 아녀. 만날 노조 싸우는 것만 다루고 똑같은 소리만 하면 뭐해. 투쟁하는 거 (다뤄봐야) 소용없어.”

▲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포레시아 공장 뒤에 위치한 금속노조 포레시아지회 농성장. 농성 중에는 보통 우측의 비닐하우스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 오도엽 기자 dyoh@laborplus.co.kr

특혜 난무하는 정책 … 책임은?

경기도는 과거 손학규 전 지사 시절 외국인 투자촉진을 위해 관련 특혜들을 포함한 조례를 만들었고, 이후 김문수 지사가 적극적으로 해당 정책을 추진해 왔다. 김문수 지사는 각 기업들과의 MOU(투자협약) 체결, 공장 준공식 등에 직접 참석하고 미국 미네소타에 위치한 3M의 본사에도 다녀오는 등 사업에 열성을 보여 왔다.

외국인 투자기업은 외국인 투자촉진 법률에 의거해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외국인 투자기업에는 토지 염가 임대, 지방세와 법인세 감면, 고용 보조금 등의 특혜가 제공된다. 이들로 하여금 투자를 통해 고용창출과 첨단기술이전에 힘써달라는 유인책이다.

그러나 그 실효성에 대해 김성학 부장은 “신기술 들어온 것도 없고, 확인된 게 없다. 연구동 지었다 하는데 연구 인력은 예전에도 있었다. (건물만) 별도로 지은 것뿐이지 새로운 기술이 얼마나 들어가고 얼마나 효과 있는지 확인이 안 된다”며 의문을 표했다.

이에 대해 한 조합원도 기술이전으로 인해 현장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느냐는 질문에 “현장에서 일하며 그런 것은 전혀 느낀 적 없다”고 술회했다.

김성학 부장은 “도의회에 외투(외국인 투자기업) 관련 조례가 있지만 ‘규제를 할 수 있다’는 형식적인 수준일 뿐 구체적 규정이 없다”며 관련 정책을 비판했다. 현재 규정으로는 외국인 투자기업이 국내에서 받은 혜택에 비해 고용부문이나 기술 이전 등에서 성과가 없더라도 그것에 대해 불이익을 주거나 강제할 수단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정리해고와 노사갈등으로 인한 투쟁은 자연히 외국인 투자기업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무게추가 옮겨가고 있다. 

“억울해서라도 못 나간다”

포스트 잇, 스카치테이프 등으로 친숙한 3M은 한국에도 전남 나주와 경기도 화성시 장안공단에 공장을 두고 있다. 이 중 장안공단은 LCD필름과 마스크 등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2009년 5월, 한국쓰리엠지회가 나주와 화성에 설립된 이후 노조 탈퇴 종용을 비롯한 압박이 거셌다. 지속적인 노조 탄압으로 조합원은 설립 초기 600여 명에서 20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나주에는 110여 명, 화성에는 95명가량의 조합원이 남아있다. 노조는 사측이 조합원에 대해 진급에 있어서의 차별, 부당전보, 강등, 징계 등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 설립이후부터 단체교섭은 제대로 진행된 적 없이 대부분 결렬됐고, 집중 교섭기간임에도 지회장을 해고하고 노조 간부 56명을 추가로 징계하기도 하는 등 3M의 갈등 상황은 심각했다. 이러저러한 사유로 중징계 당한 조합원이 250여 명으로 전체 사원 800명의 30%를 넘는다.

근무평가와 임금인상에 있어 조합원들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해 “입사 5년차인 비조합원이 입사 10년차인 조합원과 임금 차이가 거의 없는 경우도 발생했다”고 한다. 부당전보도 잦아 “조합원들만 한 부서로 몰아놓고는 그 부서를 휴업”시키는 경우도 있고 “다른 파트로 전출 보내더니 예초기를 돌리라거나, 페인트칠, 빗자루질만 시킨다”는 사례도 있다는 증언이다.

부당전보 당사자인 손해식 조합원은 “노조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바깥에 나와 화장실 변기 닦고, 풀 베고, 눈 쓸고, 페인트칠 하고. 가을에는 낙엽 쓸고 이런 걸 1년 했다. ‘현장 언제 돌려 보내줄 거냐’ 물으면 장난 식으로 ‘지금 일하는 데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 보이면 언제든 복귀시킨다’고만 한다. 탈퇴하라는 소리 아니겠는가”라며 자신의 처지를 토로했다.

노조는 사측이 교섭에 성실히 임하고 전임자와 금속노조를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측이 “금속노조 아니다. 그냥 한국쓰리엠지회로 해라, 한국3M 자체로 단협하라”고 압박하니, 노조를 인정하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쓰리엠지회 백승철 조사통계부장은 “트위터 등을 통해 투쟁을 외부에 많이 알리고, 현장 조합원과 많은 얘기를 나누겠다”며 향후 계획을 밝혔다.

▲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한국 3M공장 정문. ⓒ 오도엽 기자 dyoh@laborplus.co.kr

장기화된 투쟁, 조합원은 상처투성이

물리적 폭력과 제도적인 탄압은 한국쓰리엠지회뿐만 아니라 주연테크지회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조합원이 109명에 달했던 주연테크지회는 장기화된 투쟁으로 인한 피로로 많은 조합원이 떨어져 나간 상태다. 현재는 지회장, 부지회장을 포함 13명이 남아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그중 10명은 여성 조합원이다.

주연테크지회 곽은주 전 지회장은 “2006년 노조 결성 이후 날마다 투쟁의 연속이었다”며 대표적인 사례들을 들려줬다.

▲ 출근투쟁을 진행 중인 김영신 금속노조 주연테크지회장 ⓒ 오도엽 기자 dyoh@laborplus.co.kr
“노조 현판을 떼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조합원총회를 소집했는데 잔업 잡고, 탈퇴하는 조합원에게 승진 발령을 내거나 좋은 자리에 배치해주는 등 일일이 셀 수도 없어요. 현장에서 직원끼리 가벼운 마찰이 있으면 조합원만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도 했죠.”

임·단협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7년 임·단협 기간 중 남성 조합원이 부분파업을 해 여성만 공장에 있는 상태에서 사측은 남성 관리자 70명을 현장에 밀어 넣었단다. “대체근무 하지 말라고 항의했더니 여성 조합원들을 말 그대로 밟고 지나가더라. 나도 입원했고 다수의 여성 조합원이 통원치료 받았다”고 곽 전 지회장은 설명했다. 당시 원치 않았지만 사측을 고소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유 때문인지 결국 11월에는 타결을 봤다고 한다.

그러나 장기화 된 투쟁은 조합원들에게 상처가 되었다. 곽 지회장은 “노조만 있으면 교섭을 통해 임금인상도 되고 근로조건도 개선될 거라 믿던 조합원들에게 투쟁과정이 엄청난 상처가 되었던 것 같다”며 안쓰러워했다. “조합원으로 있으면 너무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란다.

현재 김영신 지회장과 곽은주 전 지회장은 해고된 상태다. 2008년에 구조조정 중단, 공장이전 중단을 내걸고 본사를 점거했다가 고소됐고, 2010년에 확정 판결이 나오자마자 징계해고를 당했다. 사측은 당시 본사 점거와 직원 감금 및 폭행을 이유로 전 조합원을 고소했다.

노조는 징계해고와 관련해 부당해고 소송을 제기해 행정법원과 고법에서 승소했으며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곽 전 지회장은 “이길 거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법원에서 이긴다고 해서 회사에 복직을 이행할 의무가 주어지지 않았다”며 “아주 약한 이행 강제금 이외에는 강제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해고 이후 지금까지 생계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곽 전 지회장은 그래도 “조합원들을 위해 투쟁을 끝낼 수 없다”며 말을 잇는다.

“우리가 이렇게 버티는 것이 조합원을 지키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투쟁이 길어지니 지쳐갑니다. 우리도 현장 조합원도 지쳐가고, 어떻게든 빨리 이겨 현장으로 돌아가는 게 모두 웃을 수 있는 길이다 싶어요. 투쟁 끝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여기서 포기한다면 조합원들에게 어떻게 할지 뻔히 보입니다. 세 번째 계절은 맞이하지 않았으면….”

장기화된 투쟁으로 인한 피로와 마음의 상처, 생활고는 장기투쟁사업장들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거리에 나선다. 누군가는 “억울해서” 누군가는 “현장으로 돌아가는 게 모두 웃을 수 있는 길”이라며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다같이 10년 넘게 싸우던 사람들이라 나만 혼자 빠져나오기 쉬운 게 아니더라. 배신하는 거 아닌가”라던 시그네틱스분회 조합원의 이야기는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장기투쟁사업장은 긴 시간에 걸친 투쟁으로 점차 이슈에서 밀려나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였다. 포레시아 지회의 경우도 지역언론에서 꾸준히 이슈화되다가 최근에는 점차 묻히고 있는 것이 고민이다.

한국쓰리엠지회는 “과거 본사 점거 때, 회사가 청와대까지 압박했더라. 경찰 본청까지 얘기가 들어갔었는데도 뉴스가 안 나왔다”며 “파업, 점거농성 등 다 해봤는데 끄떡없다”는 말로 상황을 밝히기도 했다.

금속노조가 지난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광주전남지부의 장기투쟁사업장 조합원 215명 중 115명이 우울증,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겪고 있다. 2011년 5월을 기준으로 민주노총에 속한 장기투쟁사업장은 113곳에 달한다.

▲ 경기도 안양 주연테크 공장. 추운 날씨에도 출근 투쟁은 계속된다. ⓒ 오도엽 기자 dyoh@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