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 처음으로 훈장 받다
건설노동자, 처음으로 훈장 받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2.01.03 13:58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건설노동자 공로 처음 인정
열악한 처우 개선 계기 돼야
[현장 3] 건설기능인의 날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지만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직업이 한둘이 아니지만, 건설노동자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직업도 흔치 않다.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직업이 ‘노가다’라는 말도 있거니와, 건설노동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냉랭하기만 하다.

지난 12월 6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는 이런 건설노동자를 위로하는 행사가 열렸다. 올해로 두 번째 맞이하는 건설기능인의 날 기념식이 그것. 이 자리에 모인 건설산업 노사정 관계자들은 이날만큼은 “건설노동자들이 노력한 만큼 정당하게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자”고 입을 모았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밀린 임금 요구하려면 목숨 걸어야

지난해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넘어선 무역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무역규모만 놓고 보면 세계 9위에 해당하는 실적이다. 물론 무역규모로만 그 나라의 경제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같은 경제발전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자동차며 반도체 같은 수출산업은 이야기되지만, 건설산업이 이야기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나라 전체 경제규모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산업이지만, 건설산업은 ‘삽질’이라는 말에서 표현되듯 비하되기 일쑤다.

산업에 대한 평가가 이렇다 보니 건설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역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강팔문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은 “낮은 임금과 고용불안으로 건설기능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간의 건설경기 침체와 고령화로 인해 이미 건설인력 수급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라고 현재를 표현했다.

일용직이 많은 건설산업의 특성상 건설노동자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가 힘들다. 일자리가 안정되지 않다 보니 수입도 일정치 않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지속되고 있는 건설경기 침체로 일자리 자체가 많지 않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건설현장에 만연한 체불임금과 산재다. 백석근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은 “건설현장에서는 연간 600명이 사망하고 2만여 명이 다치며, 1,600억 원에 달하는 임금체불이 발생한다”고 이야기한다.

산재와 관련한 통계를 보면 건설업은 항상 재해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부문이다. 하지만 산재에 대한 대비는 건설노동자 개인의 주의를 촉구하는 데 그치기 일쑤다.

또 ‘쓰메끼리’라 불리는 유보임금도 심각하다. 건설노동자를 잡아두기 위한 수단으로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2달 넘게 임금을 지연해서 지급하는 것이다. 임금이 지연되는 것 자체로도 문제지만, 임금을 떼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건설산업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대표적인 문제다. 심지어 몇 년 전에는 밀린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던 건설노동자가 하도급업자인 현장소장에게 맞아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건설현장에서의 건설노동자에 대한 대우뿐만 아니라 건설노동자를 위한 복지제도 역시 미흡한 상태다. 대표적으로 일용직이 많은 고용 형태상 건설노동자는 다른 산업부문의 노동자들에게 보장된 퇴직금도 받을 수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건설근로자퇴직공제제도가 시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그 혜택이 크지 않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건설현장도 바뀔 수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조금이나마 건설노동자에 대한 대우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일이 있었다. 건설기능인의 날 기념행사에서 “건설노동자가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고 건설산업 노사정 대표자들이 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만큼 건설산업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는 점은 그런 희망의 첫걸음이다.

그와 더불어 지난해 진행된 건설기능인의 날 행사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건설노동자가 훈장을 받았다. 건설노동자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처음으로 인정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평생 미장기능인으로 일해 온 윤이중(60) 씨가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윤 씨는 습식공사 마감관리원으로 41년 넘게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건축일반시공기능장 자격증을 비롯한 7종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뿐만 아니라 독학으로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는 등 모범적인 활동을 인정받았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기능마스터 직책을 맡고 있는 강철희(58) 씨도 30년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건설현장을 누비며 건식 방수턱 시공법과 욕실 방수층 선시공법 등 혁신적 공법과 자재를 개발하는 등 시공품질 향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이 밖에 현장안전과 기술력 향상, 전문기능인 양성 등에 기여한 건설노동자들에게 표창이 주어졌다. 이날 행사에서는 대통령표창 3명과 국무총리표창 3명, 국토해양부장관표창 15명, 고용노동부장관표창 9명 등 30명의 건설노동자들이 표창을 받았다. 또 건설노동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한 단체 2곳이 국토해양부장관표창을 받았다.

이 같은 훈·포장과 표창은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해 왔던 건설노동자의 공로를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런 인정을 바탕으로 그동안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던 건설노동자들이 비록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이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건설노동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개선, 복지 증진을 위해 건설산업 관련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평생을 건설노동자로 살아온 윤이중 씨는 건설노동자 최초로 훈장을 받는 주인공이 됐다. 지난 40여 년 동안 윤 씨가 해왔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본 것이다.

윤 씨는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채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건설현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게 18살 때의 일이었다.

윤 씨가 살아온 삶은 ‘주경야독’으로 요약해도 될 만하다. 그의 평생을 이끌어온 것은 ‘배움에 대한 열망’이었다. “대학교에 다니는 동생을 볼 때마다 못 배운 것이 서러워 저녁마다 책을 보기 시작했다”는 윤 씨는 독학만으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이것으로도 윤 씨의 배움에 대한 목마름은 채워지지 않아, 낮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밤이면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했다. 그런 ‘주경야독’의 세월이 30여 년 동안 이어졌다.

처음 건설현장 잡부로 건설 일을 시작했던 윤 씨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미장과 조적을 배웠다. 그렇게 배운 미장기술로 그는 인천항만, 서울강남터미널, 과천종합청사 등 굵직한 건설공사에 참여했다.

1997년에 닥친 경제위기는 그에게도 위기였다. 당시 참여했던 건설공사에서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빚 독촉에 시달리던 윤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을 시작한 그는 건설현장에서 인정받는 것뿐만 아니라, 체계적으로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젊어서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공부를 했지만 이제는 먹고 살기 위해 공부를 해야 했다”는 윤 씨는 “늦게까지 책과 씨름하고 새벽에 현장을 나가는 일이 보통일은 아니었지만 ‘다시 무너지면 죽는다’는 일념으로 공부했다”고 비법을 소개한다.

그렇게 미장기능사, 미장기능장 시험에 합격하고, 건축산업기사, 조적산업기사 등 자격증을 연달아 취득했다. “건축 공부를 하면서 알지 못했던 것을 깨우칠 때마다 무척 즐거웠고 이론을 현장에 적용시키니 작업 능률도 오르는 것 같아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들곤 했다”는 윤 씨는 그렇게 7종의 자격증을 취득했고, 주성대에서 건축공학사 학위도 받았다. 지난해에는 “건축에도 경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경영대학원에 입학해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지금이 있기까지의 어려움을 어떻게 말로 모두 표현하겠습니까? 어떠한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인간에게 다 있다고 봅니다. 실패와 좌절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통해 ‘할 수 있다’와 ‘하면 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윤 씨는 앞으로 기술전문학교를 설립해 건설기능인의 발전과 복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강철희 씨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방수기능장으로 일하고 있다. 건설산업 중에서도 방수라는 전문분야는 특히 생소하다. 하지만 강 씨는 이런 방수분야에서 평생 일하면서, 공정을 표준화하고 새로운 공법을 개발하는 등 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강 씨가 처음부터 건설산업에서, 그것도 방수분야에서 일했던 것은 아니다. 운영하던 가게가 어려워지면서, 돈을 벌기 위해 ‘노가다’에 뛰어들었고, 그가 처음 취직한 곳이 방수전문업체였다. 그것이 평생 방수 일을 하게 된 인연이었다.

강 씨는 ‘노가다’ 경험이 전혀 없던 터라 “삽질이나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것이 무척 힘들고 견디기 어려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방수공사는 인력 위주의 공정으로 다른 공정에 비해 작업환경도 열악하고 대우도 낮았다.

“힘들게 일하던 날들이었지만 힘들인 만큼 대가를 얻고, 그 속에서 남모르게 보람도 느꼈다”는 강 씨는 열악한 여건임에도 방수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게 됐다.

방수 일을 천직으로 받아들이니 방수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들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 연구를 거듭해 그는 방수공정에 처음으로 기계화시공을 접목하기도 하는 등 방수분야를 발전시켰다. 나아가 “방수는 조그만 틈만 생겨도 다시 시공을 해야 하고, 보수를 위한 비용이 발생한다”면서 “처음부터 사명감을 가지고 방수시공을 한다면 비용을 절감하고 건축물의 수명도 연장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사명감 때문이었을까, 강 씨는 방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책임자가 됐다. 초창기에는 주로 토목분야에서 방수시공을 했고, 최근에는 주로 신축아파트 방수시공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방수공사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곳이 많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당장 소홀히 해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가절감만을 우선시해 싼 자재를 쓰거나 방수시공을 소홀히 하게 되면 나중에는 하자보수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게 강 씨의 생각이다. 또 신축아파트에서는 동일한 방수시공이 반복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품질보다는 공기에 초점을 두고, 원칙을 지키는 책임자보다 공기를 앞당긴 책임자를 더 능력 있는 책임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강 씨는 “그러다 보니 방수분야가 발전하지 못하고, 방수전문업체도 사정이 열악해 젊은 인력이 수혈되지 않는다”면서 “하자보수 비용을 들이기 전에 처음부터 철저하게 시공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강 씨는 그동안 원칙을 지키며 방수분야에서 일해 온 노력을 인정받아, 기능마스터 제도를 도입한 삼성물산 건설사업부에서 지난 2007년부터 방수기능마스터로 일하게 됐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해서는 일인자의 위치에 오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면 조금만 노력해도 그 분야에서 일인자가 될 수 있지요. 지금 건설기능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는 도전정신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