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지쳤다면, 노동자 ‘품’으로 오라
몸과 마음이 지쳤다면, 노동자 ‘품’으로 오라
  • 김정경 기자
  • 승인 2012.01.1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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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정서교육 프로그램 ‘품’ 2기 참관기
자아성찰 넘어 정서와 인간관계를 풍성하게

▲ 지난 해 진행된 ‘품’ 1기 당시 교육 모습 ⓒ 영등포산업선교회

지친 당신을 안아줄 넉넉한 ‘품’

오후 2시가 가까워오자 당산동에 위치한 영등포산업선교회 큰사랑방으로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모인 10여 명. 이들은 직업도, 나이도, 소속도 제 각각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지녔다.

일하면서 한번쯤 ‘아픔’을 경험해 본 적이 있으며, 무엇보다 그 ‘아픔’을 스스로의 힘으로 치유하고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아끼겠다는 의지를 품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영등포산업선교회 부설 비정규직노동선교센터는 이런 노동자들을 위해 ‘품'이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품’이라는 이름에는 ‘나를 풀어내다. 따뜻하게 서로를 품다. 품을 넓게 한다’ 등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피곤한 노동자들의 정서와 인간관계를 풍성하게 채워줄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번 ‘품’ 2기의 대표 강사이기도 한 한국파트너십연구소 권오광 강사는 “과거 노동현장에는 노동자들을 위한 의식교육만 가득했고, 정서교육 프로그램은 부재했었다”며 노동자들의 마음과 정서를 다독여주는 ‘품’과 같은 프로그램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날은 ‘품’ 2기의 첫 수업이 열리는 날이었다. 지난해 진행된 ‘품’ 1기가 기륭전자라는 한 사업장 소속의 노동자들로만 꾸려졌었다면, 이번 2기는 다양한 사업장 소속 노동자들과 청년유니온, 활동가들이 참여해 구성원이 한층 다양해졌다. 이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해고자,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다.

영등포산업선교회 홍윤경 사무국장은 “장기투쟁노동자들부터 먼저 시작을 하게 됐다”며 “제가 장기투쟁을 해봐서(홍 사무국장은 이랜드 투쟁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런지 말 그대로 심신이 지쳐있을 때 뭔가,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바로 옆에 있는 동지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품’이 출발하게 된 계기를 말한다.

홍 사무국장은 “지금은 비정규직노동자들과 소외된 노동자들에게 우선적으로 프로그램을 제공하려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이니 만큼 정규직노동자 등 외연을 넓혀 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나와 우리, 마음을 열다

지금까지 다른 삶을 살아왔고, 서로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내보이기는 힘들다. 그래서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스킨십을 통해 참가자들이 가까워 질 수 있는 ‘희망열차’로 교육의 문을 열었다.

참가자 10명은 모두 색색깔의 풍선과 색종이를 하나씩 나눠가졌다. 색종이에는 앞으로 교육이 진행될 9주 동안 자신을 대신할 별칭을 한가지씩 정해서 썼다. 그렇게 참가자들은 이름대신 새싹·고래·오미자·사막모래·초록·들꽃 등으로 지칭됐다. 별칭 아래에는 2012년의 계획을 적었다. 완성된 색종이를 가늘게 접어 풍선 안으로 집어넣고 풍선을 분다.

이후 두 팀으로 나눠 한 줄로 나란히 섰다. 서로의 몸을 밀착시켜 풍선을 지탱하고 손을 쓰지 않고, 한 바퀴를 돌아 누가 먼저 제 자리에 도착하느냐로 승부를 가리는 게임이었다. 중간에 풍선이 떨어지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아직 통성명도 나누지 않은 사람들과 처음부터 협동심을 요하는 게임을 하기란 상당히 힘이들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빠른 시간 내에 가까워 질 수 있는 게임이기도 했다. 이후 두 명씩 짝을 지어 풍선을 터트렸고, 풍선에서 나온 색종이에 쓰여진 소망을 읽고, 역으로 누구의 소망인지를 맞추는 시간도 가졌다.

▲ ‘품’ 2기 참가자들이 그린 ‘마음을 여는 4가지 창’ ⓒ 김정경 기자 jkkim@laborplus.co.kr

이후 자연스럽게 자신을 소개하고, 친밀감을 형성시킬 수 있는 사전 프로그램을 두어 개 진행하고 나서야 오늘의 메인 프로그램인 ‘마음을 여는 4가지 창’을 진행할 수 있었다.

권 강사의 지시에 따라 참가자들은 4절 색지를 받아 들었다. 색지를 접어 네 개의 공간을 만든 후, 눈을 감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과 슬펐던 순간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색지의 좌측상단에는 가장 기뻤던 순간을, 우측상단에는 가장 슬펐던 순간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 아래는 현재 나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과 이번 과정을 통해 내가 얻어가고 싶은 점들을 글로 썼다.

완성된 그림은 벽에 나란히 붙였다. 참가자들은 모두 그림이 붙어있는 벽 앞에 둘러앉았다. 한 사람씩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한다. 가장 슬펐던 순간을 이야기할 때 참가자들은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10개의 각기 다른 순간들이었지만, 사연을 소개할 때마다 참가자들은 자기가 겪은 일인 양 고개를 끄덕이며 진중한 태도로 공감해줬다.

세 시간 가량 진행된 첫 수업은 그렇게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뒀던 이야기들을 꾸밈없이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교육에 참가한 한 수강생은 이번 교육을 통해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고, 행복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수강생은 “오랜 시간 투쟁 하면서 우울증도 생기고, 감정을 다스리는 게 힘들어졌었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사람들도 많이 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9일 첫 수업을 시작한 ‘품’ 2기는 매주 1회씩 총 9차례에 걸쳐 진행 될 예정이다. 프로그램이 종료되면 수료식을 하고 1박 2일로 '평가수련회'도 다녀올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