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우리 아이들 뇌 속에서 무슨 일이?
  • 참여와혁신
  • 승인 2012.02.0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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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불안·예민한 정서, 미성숙한 뇌 탓
‘요즘 애들’ 탓할 게 아니라 청소년 뇌 발달 이해해야
동아사이언스 기자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에 대부분의 어른이 공감한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우리 애들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청소년기의 버릇없음(?)’은 비단 오늘날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도 기록돼 있고,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도 걱정했던 부분이다. 1950년대의 ‘이유 없는 반항아’ 제임스 딘의 모습은 오늘날 영화와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들. 그들의 불안정한 모습은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아이들은 왜 충동적인가?

“할리라예~!”를 외치며 노스페이스 점퍼를 걸치고 등장하는 폭주족 소녀, ‘김꽃두레’. 케이블 방송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개그우먼 안영미가 연기하는 이 캐릭터는 이른 바 ‘요즘 대세’다. 의자에 껄렁하게 쭈그리고 앉아 불량기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는 ‘끈끈한 제임스 본드’를 불고, ‘간디 작살’이라며 마하트마 간디의 몸매와 패션을 찬양한다.

독특하고 강렬한 김꽃두레의 모습을 보면 청소년기의 방황이 떠오른다.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며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음악을 듣고 사소한 일에도 낄낄거리는 청소년은 과거에도 지금도 있다.

올해 초 청소년 폭력 사건의 심각성이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왕따’와 ‘학교폭력’ 등 청소년 문제가 사회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이 시기 아이들은 왜 이렇게 충동적이고 불안정한 걸까. 과거에는 청소년기 행동의 원인을 2차 성징에 따른 호르몬 변화나 사회·문화적인 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자기공명영상장치(MRI)로 뇌의 모습을 보고 연구할 수 있게 되면서 청소년기 행동을 뇌의 발달과 연결하는 설명도 나왔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생후 2년간 급격하게 발달하고, 몇 년 동안 유연한 상태를 유지하다가 청소년기에 신경세포를 비롯한 뇌가 제대로 자리 잡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MRI를 활용한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청소년기에 뇌가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실 뇌는 6세에 이미 성인 뇌의 95% 크기가 되고, 12세~14세 정도가 되면 성인의 크기가 된다. 하지만 이 시기가 되면 뇌는 지금까지 잘 돌아가던 뇌 체계에 혼란이 생긴다. 성인의 뇌로 성장하기 위해 ‘리모델링’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HM)는 1991년부터 MRI로 청소년의 뇌를 촬영해 발달 상황을 살피고 있다. 3세부터 25세에 이르는 실험대상자 2,000여 명의 뇌를 2년 마다 촬영해 대뇌 피질의 두께를 측정하는 것이다. 대뇌피질의 두께는 신경세포의 수와 비례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신경망의 발달을 살필 수 있다.

연구결과 청소년기에는 대뇌피질 중 회백질(gray matter)의 두께가 두꺼워졌다가 얇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백질은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부분인데 신경세포끼리의 연결인 시냅스(synapse)가 많으면 두껍다. 반대로 시냅스가 적으면 두께가 얇다. 다시 말해 시냅스가 많아졌다가 줄어드는 청소년기에는 신경망에 변화가 있었다는 걸 뜻한다.

이성적 판단 기능은 가장 늦게 발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신경세포를 가지고 태어난다. 기억과 관련된 신경세포가 약간 늘어나는 걸 빼면 신경세포가 더 늘지는 않는다. 대신 신경세포끼리의 연결인 시냅스가 만들어져 뇌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런데 신경망이 형성되는 최기에는 시냅스가 제멋대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나중에 ‘쓸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해 적당히 정리해줘야 뇌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청소년기 회백질에서는 시냅스가 형성되고 정리되는 과정이 진행된다. 이는 마치 나무의 모양을 만들기 위해 제멋대로 자라난 가지를 치는 과정과 비슷하기 때문에 시냅스 가지치기(synaptic pruning)라고 부른다. 청소년기에는 이런 대대적인 신경망 공사 작업을 거치면서 뇌가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된다.

중요한 점은 이런 시냅스 가지치기가 일어나는 속도가 뇌 부분별로 다르다는 점이다. 시각, 청각, 후각 등 감각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은 10세 전후부터 회백질이 얇아지지만 의사결정 같은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부분은 10대 후반에 가서야 회백질이 얇아졌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감각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은 성인과 비슷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떨어진다.

신경세포 사이 연결망이 미엘린(myelin)이라는 지방성 피막으로 둘러싸이는 수초화(myelination)도 청소년기에 일어난다. 뇌에는 회백질 외에 백질(white matter)도 있는데, 여기에는 기다란 신경섬유인 축삭(axon)이 있다. 축삭이 미엘린으로 둘러싸이면 신호 전달이 훨씬 빨라진다.

UCLA 연구팀이 12~16세 남자 아이들과 23~30세 청년의 뇌를 MRI로 촬영해 비교해 본 결과 전두엽의 백질에서 가장 차이가 심했다. 이에 비해 운동명령을 내리는 두정엽은 청소년도 성숙한 상태였다. 우리 뇌는 가장 기초적인 기능과 관련된 영역부터 차례대로 발달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운동과 감각에 관한 구역이 발달하고, 다음으로 공간 감각, 언어 능력, 집중력과 관련된 측두엽 등이 성숙해진다. 예측과 협력, 공감, 통제, 평가, 계획에 관한 기능을 하는 전두엽은 가장 늦게 발달한다.

이처럼 청소년기 뇌는 성인의 뇌가 되기 위해 여러 가지 작업을 거친다. 뇌의 부피 성장은 일찌감치 끝났지만 감정과 충동을 제어하는 영역이 매끄럽게 발달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청소년은 민감하고 외부 환경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몸만 성인처럼 훌쩍 자란 청소년의 뇌는 아직 덜 성숙한 상태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현실은 지식을 주입하는 데 맞춰져 있다. 청소년의 뇌 발달을 이해하지 못한 교육시스템이 학교폭력 등의 청소년 문제를 악화시켰을지 모른다. 감성을 기르고 충동을 조절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다가가는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