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한 노동현실이 주름살 더한다
빈곤한 노동현실이 주름살 더한다
  • 김정경 기자
  • 승인 2012.02.0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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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욕구 높지만 일자리 부족 … 근로조건 하락 감수해야
대부분 생계형이지만 저임금에 생활비도 빠듯
[2012 마이너리티 리포트]고령자 노동

Minority  Report  02
고령자 노동에 관한 보고서

■ 연령 : 60세 이상
■ 규모 : 60세 이상 노인 중 34.5%
■ 하는 일 : 경비, 청소, 시설관리 등 단순노무
■ 근로유형 : 비정규 임금근로자(일용직·임시직)
■ 급여 : 69.7만원 (남성 : 101.5만원 / 여성 : 30.8만원)
    (급여 부분은 2008년도에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전국노인실태조사>에서 나타난 통계로 현재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
■ 노동시간 : 월 205.8 시간
■ 일하는 이유 : 생계비 마련(89.8%)
■ 그만두는 사유 : 건강상의 문제(48.4%) 

[미취업자 관련 통계]

■ 향후 일할 의지가 있는 노인 : 32.2%
■ 취업하고 싶은 이유 : 생계비 마련(47.9%), 용돈이 필요해서(21.5%)
■ 미취업사유 : 건강상의 문제(45.6%), 연령차별로 인해 주어지는 일자리가 없어서(23.5%)

※ 출처 : 통계청 <고령자 통계> 2011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2010
                보건복지부 <전국노인실태조사> 2008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근근이 하루를 먹고사는 ‘늙은 하루살이들’

# 01 66세 김 모 씨는 서울 대방동의 한 아파트에서 4년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김 씨는 4년제 대학을 나와 은행원으로 일하다 49세에 퇴직했다. 당시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는 많은 나이였지만, 김 씨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생각하면 너무 이른 나이에 찾아온 퇴직이었다. 그는 임금이 조금 적더라도 경험을 살릴 일자리를 구해보려 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자 구인정보 사이트를 통해 경비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24시간 맞교대로 한 달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쉰다. 말이 경비원이지 사실상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일은 모두 김 씨의 몫이다. 외부차량 및 외부인 통제, 주차관리, 단지 내 CCTV 감시, 쓰레기 분리수거, 수도검침은 물론 주민의 민원까지 일일이 응대해야 한다. 관리, 감시가 주된 업무이다 보니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거나 시선을 떼지 못해 늘 긴장의 연속이다.

식사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공식적인 야간 휴게시간은 있지만 어차피 근로시간에는 산정되지 않는다. 휴게시간에 잠시 눈을 붙이긴 하지만, 자리가 불편하고 가끔씩 취객을 챙기다 보면 깊은 잠에 들 수가 없다. 그렇게 꼬박 한 달을 일해 124만 원을 받는다.

# 02 지하철 영등포구청역에서 만난 박 모 할머니는 폐품을 주워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영등포시장 근처가 집이라는 할머니는 새벽에는 큰 배낭을 메고 지하철 객차를 돌며 무가지 신문을 모으고, 오후에는 손수레를 끌고 시장과 골목을 돌며 파지며 재활용품 등을 모은다.

지하철 한 량을 돌면 가방 하나는 거뜬히 채운다. 하지만 선반이 너무 높고 신문이 쌓이다 보면 부피가 커져 모으는 데도 한계가 있다. 나이가 들어 관절염을 앓고 있다는 그녀는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 틈을 비껴가며 움직이는 차량을 돌아다니는 일이 힘에 부친다. 파스라도 하나 사 붙이고 싶지만, 파스 값이 온 종일 뼈 빠지게 돌아다녀 모은 파지 한 수레와 같다고 생각하면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게다가 요즘은 폐품 수집에 뛰어든 노인들이 급증해 더 일찍, 더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 요즘은 박스나 파지가 많이 나오는 슈퍼마켓이나 학원과 안면이라도 트게 되면, 고마움에 비타민음료 한 박스를 사준다고 했다. 그렇게 추운 겨울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정해진 시간도 없이 한 달을 꼬박 일하면 할머니의 손에 많게는 32만 원, 적게는 14만 원 정도가 들어온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재취업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고용을 말할 때 고령자라 함은 ‘55세 이상인 자’를 가리킨다. 많은 이들이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을 맞거나 은퇴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퇴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이들에게 또 다른 일자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고령 노동자 89.8%가 생계비 마련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문제는 퇴직 후 재취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고령의 노동자를 필요로 하거나, 받아주는 회사나 일자리가 많지 않다. 다양한 일자리가 제공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생애 주된 직업을 통해 본인이 습득했던 기능과 지식을 활용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령자들이 재취업한 분야를 살펴보면 청소나 경비와 같은 단순노무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재취업에 성공하더라도 대부분이 ‘근로조건 하락’을 감수해야 한다. 고령 취업자 중 임금근로자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상용직보다는 일용직이나 임시직 같은 비정규직의 증가율이 도드라진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이문범 노무사는 “새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여 고용자체가 불안정해지고, 근로시간은 길지만 임금수준은 낮아져 생활자체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2010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60세 이상의 월 평균 근로시간은 205.8시간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청년층보다 월 16.5시간이나 많은 수치다. 하지만 장시간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40대 후반을 정점으로 급격하게 하향곡선을 그렸다.

고령자 취업의 또 다른 장애요인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장유유서의 유교문화라고 할 수 있다. ‘노인의 근로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예전보다 완화된 측면을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노인이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편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은 공경의 대상이지 근로의 대상은 아니라는 인식 말이다. 

“나이가 들어서 체력이나 신체조건 같은 건 젊은이들을 따라 갈 수가 없지요. 노인들에게 적합한 일자리가 많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_강순천(74세, 폐품수집)

“일단 나이 들면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에요. 하지만 먹고 살려면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거고, 그러려면 반드시 일은 해야 하지요. 그래서 늘어난 평균수명에 맞춰서 퇴직하는 나이도 더 많이 올려야 해요.”  _이상진(65세, 기계부품 조립)

“근 30여 년을 한 직장에서 일하다 퇴직했습니다. 일생동안 해오던 일이라서 나름대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새로 취업한 곳은 이런 능력이 필요가 없어요. 업무연계가 좀 이뤄지고 그래서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가 생겨야 합니다.”  -강병국(69세, 사무직으로 중소기업에서 근무 후 퇴직, 현재 아파트 경비원)

“나이든 사람이 일한다고 가게 안을 계속 돌아다니니까 나는 괜찮은데 손님들이 오히려 더 불편해 하는 것 같더라고요. 건강하기만 하다면 노인들도 일하고 싶고, 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줬으면 합니다.”  _김술님(68세, 김밥가게 조리 및 서빙)

“노인들이 일자리 정보를 얻을 만한 곳이 없어요. 홈페이지에서 알아보라고 하는데 우리들 중에 컴퓨터 할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눈도 나쁘고 하니까.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사업 같은 게 있는 모양인데 내용이 너무 복잡하니까 엄두를 못내는 거지. 대부분 옆에서 누가 하게 되면 알려줘서 따라하는 경우에요. 이런 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젊은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_조희원(72세, 전직 유치원교사, 현 청소노동자)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법·제도, 만드는 것보다 뿌리내릴 수 있어야

우리나라에는 고령자 고용 촉진을 위한 법과 다양한 제도가 이미 마련돼 있다. 먼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기업에서 채용, 임금, 승진, 해고 등 고용과 관련해 연령을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고령자고용촉진법」은 고령자에게 고용의 기회를 확대하려는 취지에서 제정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상시 300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주에게는 기준고용률 이상으로 고령자를 고용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를 준수한 기업은 세제상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60세 이상 고령 노동자를 일정 기준 이상 고용하면 사업주에게 분기당 일정금액을 지원하는 ‘60세 이상 고령자 고용지원금제도’를 정년이 없는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시행령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게 해서 사업주와 노동자가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존의 정년 및 은퇴연령을 늦추는 작업도 추진돼야 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손유미 연구위원은 “고령화되는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를 고려할 때, 정년을 늦춤으로써 생애 고용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한다. 손 연구위원은 이를 위해서는 “임금피크제를 확산하고 임금체계 개편을 병행하는 등 정년 연장이 가능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퇴직 후 일자리 선택의 폭을 기존의 기능직과 노무직 외에도 관리직군 등으로 넓힐 수 있도록 전문 퇴직자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발굴하고, 고령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직업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맞춤형 프로그램도 개발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퇴직과 동시에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노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보편적인 복지가 강화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 져야 할 것이다.

현재 5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 수는 475만4천 명이며, 이는 10년 전에 비해 40%나 증가한 수치다. 그리고 많은 고령노동자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한다. 고령노동과 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떤지 찬찬히 되짚어봐야 할 때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임금피크제란?

임금피크제는 정년연장 또는 정년 후 재고용하면서, 일정 나이·근속기간을 기준으로 임금을 감액하는 제도다. 노동자는 고용이 연장되고, 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면서 숙련된 노동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임금피크제의 유형]

■ 정년연장형 : 기존의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정년 전부터 임금을 줄이는 방식
■ 재고용형 1 : 정년퇴직 후 재고용을 조건으로 정년 전부터 임금을 줄이는 방식
■ 재고용형 2 : 정년퇴직 후 촉탁직이나 계약직으로 재고용하면서 정년퇴직 후부터 임금을 줄이는 방식
■ 근로시간단축형 : 기존의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은 그대로 두고 정년퇴직자를 재고용하는 조건으로 정년 전 또는 정년퇴직 후부터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방식
■ 정년보장형 :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서 미리 정해진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정년 전부터 임금을 줄이는 방식

한편, 임금피크제 보전수당은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는 회사에서 54세 이상 노동자의 임금이 10% 이상 하락하는 경우, 삭감된 임금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다. 2012년 1월 1일부터 임금피크제 도입을 활성화하기 위해,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되던 지원금 지급기준(임금감액률)이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완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