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말하는 복수노조
현장에서 말하는 복수노조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6.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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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자동차·중공업 “나를 따르라”

창원·포항 공단 밀집지역 ‘리모델링’ 준비


1월 18일 오후 울산시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에는 내로라하는 노동계 인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날 현대자동차노동조합 위원장 이취임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이 노동운동에서 갖는 상징성 때문에 지역은 물론이고 전국적인 ‘축하 사절’로 북적인 것이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민주노총 임원 선거 후보 등록 마감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탓에 복수노조 문제는 큰 화젯거리가 아닌 듯 보였다. 하지만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한 구체적인 안이 거론되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 복수노조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이 시작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하는 울산 지역은 어찌 보면 전국상황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복수노조 문제에 대한 고민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사용자는 현대중공업, 노동계는 현대자동차가 롤 모델
울산은 자동차, 중공업, 석유화학의 대형 사업장들을 중심으로 대형사업장들이 밀집해 있고, 경주에 이르기까지 자동차와 관련한 부품산업 벨트가 형성된 곳이다. 또한 최근에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의 묘한 대비를 통해 노사관계 흐름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이 몇 해 전부터 ‘복지 노조’를 내세우면서 협력적 노사관계의 흐름을 형성했고, 이는 많은 기업들이 ‘선망하는’ 롤 모델로 자리 잡았다. 반면 내부의 다양한 계파 간 경쟁 양상이 존재하면서도 여전히 노동운동의 선명성을 추구하는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은 노동계로부터는 환영받지만 기업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결국 복수노조 문제에 있어서도 기업은 현대중공업 모델을, 노동계는 현대자동차 모델을 각각 만들어 내거나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모두 복수노조 문제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로서는 난립하고 있는 계파와 각 공장별 경쟁 체제 등이 복수노조 시대를 맞는 어두운 그림자이다.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는 대체로 복수노조가 사용자 유리, 노조 불리라는 시각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회사 관계자는 “복수노조가 만들어지면 사용자 측에 가까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을 거 아니냐는 생각들을 하는데 한편으로는 자생적으로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간 노동조합의 ‘힘’에 눌려왔던 것을 생각하면 어느 노동조합이든 회사에 유리한 노동조합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조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노조 관계자는 “일부에서 복수노조 형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는 있는데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기는 하지만 기존의 조직에서 복수노조를 선택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쉽게 선택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울산지역 한국노총 일각에서는 기존의 현대자동차 내부 조직 성향 등을 볼 때 “1만명 규모 정도의 상급단체 이동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 섞인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지목되는 조직의 관계자는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복수노조의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지만 그것이 상급단체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대중공업은 반대로 사용자 불리, 노동계 유리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복수노조 체제가 기존의 협력적 노사관계 틀을 흔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노사 모두가 일정한 우려를 지니고 있었다.
노동조합 관계자는 “기존 노동조합을 흔들려는 시도가 있을 것으로 보이고, 이미 상당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며 경계했다.

 

창원은 내부 경쟁 심화가 초점
울산과 함께 지역 노동운동의 또다른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창원 지역도 복수노조 문제가 조용한 가운데 서서히 관심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창원은 두산중공업, GM대우차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규모 공장보다는 중견 규모의 사업장들이 공단을 중심으로 밀집해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한 곳의 복수노조 파장이 다른 사업장으로 옮겨가기 쉬운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몇몇 노동조합 대표자들의 개인적 우려 수준에 그칠 뿐 구체적인 움직임이 드러나지는 않고 있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관계자는 “기존의 판도에서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지는 않다”면서 “상급단체 이동보다는 내부 경쟁에 의한 갈등, 이로 인한 상급단체 내부의 복수노조 문제에 대한 우려는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노총 소속의 노동조합 위원장도 “이 지역은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상급단체를 둘러싼 정리는 거의 끝난 편이기 때문에 복수노조 문제보다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한 우려가 높고, 또 이에 대한 논의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서산·포항 등 공장 밀집지역도 관심
정작 지역 차원에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곳은 충남 서산과 경북 포항이다.
서산은 최근 들어 현대자동차그룹을 중심으로 한 부품벨트 형성이 한창이다. 국토의 중심지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에 자동차강판을 생산하게 될 INI스틸 당진공장(옛 한보철강), 쏘나타와 그랜저 등 이른바 고부가가치 차량을 주로 생산하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등의 인근 분포 등으로 인해 부품벨트 형성에 유리한 지역이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축으로 등장한 것이 현대파워텍이다. 현대파워텍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중 드물게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이다. 따라서 지역 차원의 집중적인 공략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현대파워텍의 노동조합을 대체하는 노사협의회의 임기가 내년에 끝나기 때문에 내년을 기점으로 해서 상당한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 회사 관계자도 “지역 노동계를 비롯해 계열사 노조, 상급단체 등의 관심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어 우리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포항도 술렁이고 있다. 포항 전체를 좌우할만한 대형 사업장인 포스코의 존재 때문이다. 포스코는 노동조합이 있기는 하지만 20여 명으로 구성되어 영향력이  미미한 실정이다.
이미 포스코 외부에는 노조정상화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지역 노동계와의 연대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낙 덩치가 큰 사업장이다 보니 내부의 행보는 물론 외부의 다양한 ‘작업’이 진행되리라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