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로레알코리아노동조합
<97> 로레알코리아노동조합
  • 김주도 기자
  • 승인 2012.03.0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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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 스트레스와의 전쟁!
서비스업은 서비스 노동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노조 힘만이 아닌 더 큰 차원의 해결 필요해

저명한 다국적 화장품 기업 로레알의 지사로 지난 1993년에 설립된 로레알코리아. 로레알 그룹 전체의 매출액은 2011년 기준 32조4,520억 원을 기록했고, 130개 국에 진출해 66,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지난 2010년에는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기업으로 인증 받기도 했다. 그만큼 복지 부분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인상을 받기 쉽다.

▲ 2011년 12월 14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유통산업노동자 보호법 발의 통과처리 촉구'를 위한 플래시 몹 행사를 마친 조합원들. ⓒ로레알코리아노동조합

가족친화기업 로레알코리아? “열 받았어요”

하인주 로레알코리아노동조합 사무국장은 가족친화기업이라는 외부의 평가에 “열 받았다”는 말을 먼저 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다른 기업보다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 할 수 있는 현재의 환경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임금과 업무의 스트레스 등에 있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2005년에 노동조합을 결성한 후 바로 단체협약을 통해 얻어냈다. 이전에는 임산부라도 예외 없이 연장 근로를 했다고 한다. 단협체결 후에도 지속적인 홍보와 사용유도로 자연스럽게 육아휴직과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내는 데 힘을 기울였다.

하 사무국장은 임금보다도 노동강도 자체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겉으로는 굉장히 ‘럭셔리한’ 직업으로 비춰지나 실제는 ‘노가다’에 가깝다는 것이다. 고객은 물론 회사와 백화점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해소할 길이 없기에 더욱 큰 문제다. 까다로운 고객을 대하거나, 항의가 들어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난 이후에도 손님은 계속 몰려온다. 근무인원 문제 등 현장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잠깐 바람이라도 쐬면 가라앉을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못한 채 쌓여 마음을 병들게 만든다.

수시로 이루어지는 CS평가, 언제 왔다 갈지 모를 미스터리 쇼퍼, 백화점과 회사의 상이한 고객 매뉴얼로 인한 난처한 상황 등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이은희 로레알코리아 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러다 ‘어떻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 2011년 11월 10일, ‘2012년 임단협 상견례’ 중인 노조와 사측 대표단. ⓒ로레알코리아노동조합

회사에 대한 무한 신뢰, ‘뒤통수’로 돌아와

로레알코리아노동조합의 설립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된 이슈는 주 5일제 시행에 따른 상여금과 휴일 수당 지급 등에 관한 임금체계 변경이었다. 이 위원장은 “종전에는 600%의 상여금을 매달 50% 씩 나누어 받았는데, 매달 30만 원씩 받은 것을 기준으로 치면 20만 원씩이 기본급으로 들어가게 되고 나머지 10만 원은 없어진 셈이다”고 했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당시 회사 측에서는 “주 5일제를 시행하면 그만큼 휴일이 많이 발생하나, 업계 특성상 휴일을 모두 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휴일 수당이 발생한다. 휴일 수당은 기본급이 높을수록 금액이 더 커지기 때문에 직원에게 훨씬 더 이로울 것”이라 했다. 당시에는 노동조합이 없었고 “회사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수락했으나, 이후 실제 임금을 받아보니 기존보다 오히려 총액이 줄어든 상태였다.

이 외에도 업계 특성상 연장근로가 빈번함에도 사측이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고, 샘플과 쇼핑백 등 무상판촉물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자비로 해결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계기로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당시 사측은 단체협약 요구를 들어주려면 수십억 원이 소요된다는 등의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로레알코리아노조는 현재 올해 단협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기존에 있던 감정수당과 감정해소 프로그램 외에 ‘감정휴무’를 쟁취하는데 역점을 기울이고 있다. 이 위원장은 “감정수당을 인상해도 스트레스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는 않는다. 감정노동 스트레스 해소 프로그램도 있으나, 시간적·공간적 제약 때문에 조합원들이 참여하기 힘들다”며 “하루라도 쉰다면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1년에 6일의 감정휴무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 2012년 2월 7일, ‘로레알코리아노동조합 2012년 전체조합원 수련회’를 마친 후. ⓒ로레알코리아노동조합

‘고객 졸도’ 서비스, 노동자 먼저 졸도할 판 …
노조 힘만으로는 부족, 사회적 변화 필요해

노조의 고민은 감정노동 스트레스를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키고 해결할 방안을 찾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승식 로레알코리아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감정노동이 생활화 되면 마음에 병이 들어 잠재된 스트레스를 다른 곳에서 풀게 된다. 감정노동 스트레스는 이렇게 순환, 확산되기 때문에 무섭다. ‘고객감동’을 넘어서 고객이 졸도할 정도로 감동을 주라고 교육하는데, 이런 인위적인 배려만 있고 사람 사이의 진정한 배려는 없는 증오의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이어 감정수당, 스트레스 해소 프로그램, 감정휴무를 넘어선 더 큰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의 매뉴얼에는 고객을 상담할 때 상황에 따라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는데, 백화점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무조건 다 해주라’고 한다. 그래서 해주면 회사는 ‘왜 해줬느냐’고 하니 이중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백화점도 인정하고 회사도 인정하는 합의된 고객 매뉴얼이 필요하다”며 “백화점 내의 화장품 회사가 힘을 합쳐 백화점과 직접 근무환경에 대해 교섭하는 것이 가장 큰 꿈”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임금문제와 함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현재 서비스연맹에서 추진 중인 ‘유통산업근로자 보호와 대규모점포 등의 주변생활환경 보호 등에 관한 특별법’을 관철시키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