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안맞는 경제단체 생산현장은 좌충우돌
손발 안맞는 경제단체 생산현장은 좌충우돌
  • 승인 2006.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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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 정책 기능 부실 · 경제단체 파열음

사용자 단체 조직·기능 정비 요구 높아

 

올해의 노사관계가 2007년 복수노조 허용 등을 앞두고 큰 혼란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측은 분분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노사의 준비는 첫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앙조직 - 산업 및 지역 조직 - 개별사업장의 의사전달 및 결정 체제를 갖춘 노동계에 비해 사용자단체들은 대표성과 체계적 조직 구조 등을 확립하지 못한 상태.


현재 중앙 수준의 경제단체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한국무역협회(무역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중기협), 대한상공회의소(상공회의소) 등 이른바 ‘경제5단체’다.


이 중 사용자단체로서의 성격을 갖는 경제단체는 경총 하나고, 나머지는 사업자단체의 성격이 강하다. 전경련과 상공회의소의 경우 상설위원회와 노동복지팀(전경련), 산업환경팀(상공회의소)이 노사관계를 다루고 있고 중기협은 별도로 노사관계를 다루는 위원회나 팀을 두고 있지 않다. 여기에 업종·지역·중소기업 차원에서는 아예 노사관계와 인적자원개발 기능 등을 전담하는 조직이 없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일선 노사관계 현장에서는 경제단체의 사용자단체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확립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 높다. 월간 <참여와혁신>이 주요기업의 인사노무 담당 실무자 및 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의 80% 이상이 ‘경제단체들이 사용자단체로서의 역할과 노사관계 정책 및 조정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경제단체 간의 노사관계 창구 단일화 및 대표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관련기사 21쪽> 노사관계의 한 축인 한국 사용자단체의 현재 위치는 어디쯤일까.

 

경제단체 간 영역 혼선 “이렇게 손발 안 맞아서야”
경제5단체 중 대표적으로 노사관계 관련 창구역할을 하는 단체는 단연 경총. 경총은 국내에서 노사문제가 본격화하던 1970년 창립한 이후로 국내 유일의 사용자단체 역할을 도맡아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노사관계의 중요성이 커지고 전국 단위의 노사관계 관련 이슈가 부각되면서 전경련과 상공회의소 등도 자체적으로 노사관계 기능 강화에 대한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 단체 간의 미묘한 입장 차이가 경영계의 통일된 의견 형성 실패로 드러나기도 했다. 노사관계와 관련된 입장 표명 등을 경총으로 단일화해오던 관행이 처음으로 깨진 것은 지난 2002년 주 5일제 시행에 관한 각 단체의 입장 조율이 진통을 겪으면서다. 2002년 4월 열린 경제5단체장 및 부회장단 회의에서 전경련과 중기협은 노사정위가 제시한 조정안에 대해 수용불가 입장을 밝힌 반면, 경총, 상공회의소, 무역협회 등은 추가 협의를 통해 수용여부를 결정하자는 입장을 보였다.


이어 9월에 경총이 “30대 기업 인사·노무담당 임원회의에서 정부의 주5일 입법안에 무조건 반대하지 말고 불합리한 조항이 보완·수정될 경우 수용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고 밝히자, 전경련은 “경총의 인사 담당자 회의 결과는 재계 전체 의사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중기협 또한 “주5일제 입법안이 중소기업의 형편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계속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경총이 수렴한 주요 기업 노무담당자들의 의견을 믿을 수 없다며 다른 단체들이 관계자들을 다시 불러 의견을 청취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9월 중으로 마련되기로 되어 있던 경제계의 통일된 입장은 10월 말이 되어서야 발표될 수 있었다.


2003년 말 노사정위원회의 손배·가압류 제도 개선 합의를 놓고 갈등은 더 첨예하게 드러났다. 전경련은 합의 직후 성명을 통해 합의 자체는 물론 사측 대표로 참석한 경총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불만을 제기했다. 당시 전경련 관계자는 “경총이 재계의 간사 자격으로 참석하고 있으나 상의, 중기협, 전경련 등 재계의 사전 협의가 전제돼야 한다”며 “이번의 경우에는 사전 협의가 빠졌으므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경제단체들의 입장 차이는 이내 봉합이 되기는 했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사용자들 간에도 손발이 맞지 않으니 통일된 노사관계 전략을 내기가 더 어렵다’는 고충을 털어 놓기도 했다.


특히 이들 단체 간의 노사관계 관련 정책 조정 채널이 부회장단 회의 외에는 존재하지 않아 일상적인 협의는 더 어려운 상태. 전경련과 경총 모두의 회원사로 가입되어 있는 모 자동차업체의 한 노무담당 부장은 “양 조직이 노사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업무 영역에서도 중복이 많다”며 “특히 통일된 목소리가 중요한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업무 중복을 해소하고 창구를 단일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편 노사관계 현안의 경우 기업 규모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있는 소지가 많기 때문에 단일화보다는 경제단체 간의 조율과 협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선박부품업체 D사의 총무팀 관계자는 “주 5일제와 같이 대기업, 중소기업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서는 경총에만 의지할 수는 없는 게 사실”이라며 “중기협 등의 중소기업 단체가 노사관계 기능을 강화하거나 경총이 중소기업 문제를 따로 지원하는 등의 별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별기업-경제단체 간 시각 차, 노사 ‘대리전’ 심화
경제단체 간의 미묘한 이해관계 차이가 노사관계와 관련한 경영계의 통일된 목소리와 전략 수립 등을 저해한다면, 개별 기업과 경제단체 간의 시각 차이는 개별 사업장 노사 갈등을 전국 차원의 노사 ‘대리전’ 양상으로 확대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 2003년 현대자동차 노사가 주5일 근무제와 노조의 경영참여를 일부 수용한 데 대해 전경련은 공식 성명을 통해 “노조의 경영참여는 외국인 투자유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어려운 경제상황과 맞물려 총체적 경제위기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며 “주5일제와 관련해서도 확산방지를 위해 공동대응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전경련의 성명서가 나가자 “대표적 강성 노조 사업장에서 노사관계를 잘 풀어내기 위해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었고 최선의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었다”며 전경련 측에 섭섭함을 표현했다.


이에 따라 전경련은 뒤늦게 “현대차가 노조의 실력행사에 벼랑 끝에 몰렸다”는 내용을 포함시킨 성명서 수정본을 재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차 쪽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당시 협상을 주도했던 한 임원은 “안 그래도 현대차의 노사관계가 전국단위 노사의 대리전 양상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마당에 개별 기업의 노사합의 사항을 놓고 경제계 대표단체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사업장 현실을 무시한 처사일뿐더러 괜히 노동계를 자극하는 꼴이 됐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경총도 2003년 금속노조 산별 중앙교섭을 놓고 금속노조 사업장인 (주)만도와 갈등을 겪었다. 금속노조 사업장 중 유일한 기업지부인 만도지부와 회사 측이 중앙교섭을 합의한 가운데 경총이 만도 회사 측에 공문을 보내 유감을 표명했고 만도 역시 지난한 ‘산고’ 끝에 나온 개별기업 노사의 합의를 부정하는 투의 태도에 불만을 드러내며 한동안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회사 노경협력팀 관계자는 “지금은 당시의 앙금은 남아 있지 않다”면서도 “당시에는 팀 내에서 개별 기업에 대한 지원서비스 없이 사업장 노사의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든다면 경총에서 탈퇴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감정이 격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총 노사대책팀 관계자는 “경총의 경우 개별 기업의 노사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자제하고 있지만 사안에 따라 전체 경영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개별 기업의 사정만을 고려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업종협회 “사업자단체지, 사용자단체 아니다”
경제의 글로벌화와 사양산업의 구조조정,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상시 구조조정 체제의 정착 등으로 산업차원의 노사관계 의제가 급부상하고 있지만 업종 단위의 노사관계 협의 테이블은 전혀 운영되고 있지 않는 것도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80여 개의 업종협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이들 중 노사관계 기능을 가지고 있는 업종협회는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한국철강협회 기획팀 이동복 팀장은 “업종협회의 경우 태생 자체가 회원사들의 민원창구 역할과 대정부 산업 요구 등 지원기능에 국한되어 왔고 노사관계는 개별 기업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인식이 강해 협회 내에서 노사관계를 따로 다루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별기업 노사의 경우 업종협회의 노사관계 기능 강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지난 2004년 7월 <참여와혁신>이 주요기업의 노사관계담당 임원과 노조간부 각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업종별 노사협의제 활성화에 관한 설문에서 노조간부의 67%, 노사관계 담당 임원의 60%가 ‘대기업 중심의 대립적 노사관계 해소 및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업종별 노사협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또 업종협회의 노사관계 기능 제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에 관해서는 ‘지역 업종차원의 노사갈등 해결 능력 제고’가 52% (노 18%, 사 34%)와 ‘지역 업종별 특수성의 정책 반영’이 50%(노 22%, 사 28%)로 나타났다.


그러나 같은 시기 업종협회 22곳을 상대로 실시된 설문에서 응답 협회들은 ‘업종협회의 노사관계 기능 강화 걸림돌’로 ‘개별기업의 영향력이 커서 협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적다’(54.5%)는 점을 가장 많이 지적했고 전경련, 경총과의 역할 중복이 발생한다는 우려도 있었다.


현재 업종협회 간의 노사관계 관련 협의 채널은 경제5단체와 80여개 업종협회로 구성된 ‘경제단체협의회’(경단협)가 있다. 현재는 경총이 경단협의 사무국을 대행하고 있는데, 경단협 운영위원회가 1년에 세 차례밖에 열리지 않는 데다 운영위원회에서 노사관계 관련 업무만을 특화해 논의하고 있지는 않은 상태다.


한편, 산별교섭과는 다른 형태로 업종별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특정 업종의 노조와 업종협회가 협의 틀을 만드는 시도도 조금씩 싹트고 있다. 지난 2004년 한국자동차공업협회와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이 ‘자동차업종노사협의체’를 출범시켰고, 올해는 금속연맹 조선분과가 선박산업의 인력수급 정책 및 경쟁력 강화 방안 등을 놓고 조선공업협회에 대화를 요청해 놓고 있다. 조선공업협회 경영지원팀 관계자는 “아직 섣부른 답변을 할 단계는 아니지만 교섭의 형태가 아닌 업종 현안에 대한 협의 형태라면 진지하게 검토해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변변한 사용자단체 없는 지방·중소기업
지역 단위의 사용자단체는 더욱 취약하다. 지역단위에서 사용자단체 성격을 띠고 있는 조직은 13개 지방경총과 71개 지방상공회의소다.


그러나 지방상공회의소의 경우 고용·산재보험 업무에 관한 상담이나 지원 업무와 구인구직 관련 업무 외에는 노사관계 및 인적자원 개발 관련 기능은 거의 없는 상태다. 인천상공회의소 기업지원팀 관계자는 “대부분의 회원사들이 중소기업이어서 노사관계 관련 현안이 적고, 노무업무 등에 대한 지원요청에 대해서는 자문위원을 선정해 상담을 해주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지방 경총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 현재 경총의 경우 약 4천여 개의 가맹 사업장을 지닌 13개의 지역 경총이 있지만 경총과 지방경총과의 관계가 조직구조상의 지부 조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방경총들은 모두 별개의 독립 법인들이고 회계도 경총과는 별개로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또, 지방경총의 주요 회원사는 지역의 중소기업이고 경총에 직접 가입하는 기업체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등으로 구분되고 있다.


회원사들이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보니 지방 경총의 예산 및 인력 구조 또한 취약하다. 대개 지방 경총은 회장과 상임부회장, 사무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무국의 경우 지역별 편차는 있지만 작은 지역의 경우 사무국장 외의 실무진이 2~3명을 넘지 않는 경우가 보통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례적인 지역업체 간담회와 각종 민원 처리 외의 노사관계 정책 기능은 거의 갖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중소기업 분야도 사용자단체의 기능이 전무하다. 현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경제5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중기협 내에는 노사관계 담당 부서나 상설위원회가 없다. 중기협 기획팀에서 노사관계 담당업무를 맡고 있는 박미화 과장은 “중기협의 경우 개별 기업보다는 800개 조합을 주요 회원사로 하고, 개별 기업은 각 조합에 가입하는 형식이어서 노사관계 기능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과장은 “지난 2003년 주5일제 협상 등에서 중소기업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으면서 중앙회 내에서도 노사관계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내 수그러들었다”고 아쉬워했다.


현재 제조업 분야에서 문제제기가 활발한 원하청 불공정 거래 등 산업 이슈와 향후 노사관계의 이슈로 등장할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의 문제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노사에게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중소기업의 대표적 사용자단체가 없는 상황에서는 논의의 당사자가 왜곡될 가능성마저 안고 있다.

 

사용자단체 조직·기능 정비 필요성 높아
오랜 기업별 노사관계 체제 속에서 노사관계가 개별기업에 맡겨져 오기는 했지만 최근 들어 노동시장 양극화와 산업 구조조정 상시화 등 개별기업 노사가 해결하기 어려운 의제들이 부상함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노사간 논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용자단체의 대표성 부족 및 조직구조의 취약성은 노동계의 리더십 위기와 맞물려 노사관계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오랫동안 경제단체에 몸담아 왔던 한 관계자는 “파트너의 수준이 협상 당사자의 수준을 결정하는데 지금은 노사 모두가 고만고만한 수준”이라고 비판하고 “카운터 파트너가 있는 노사관계의 특성상 한쪽이 정책능력과 전문성을 강화하면 다른 쪽도 자연히 그 수준을 따라오게 돼 결국 전체 노사관계의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개별기업들의 경우 경제단체가 개별기업의 노사 현안보다는 전국 단위의 이슈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고 대정부 정책 제안 등을 활성화해 주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한 조선업체 경영지원팀 이사는 “개별기업 현안의 경우 실무자 단위의 모임을 활성화해 정보공유와 조율을 할 수 있도록 중앙 경제단체가 네트워크 역할을 하고, 일반 업무는 노사관계 관련 정책 개발과 대정부 건의 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필요할 경우 회비를 인상해서라도 정책기능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노사관계 발전의 한 축으로서의 사용자단체가 정책 전문성과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최영기 원장은 “경제단체가 노사관계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축으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해 온 것이 사실”이라면서 “특히 노사관계의 환경 변화를 앞두고 분규 시 성명 발표 등의 소극적 대응에서 벗어나 분규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노조 상급단체 및 산업·업종·지역별로 대화와 협력을 추구할 수 있도록 사용자단체의 역할과 기능을 정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