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트악기·콜텍 기타, 언제쯤 다시 울릴 수 있나?
콜트악기·콜텍 기타, 언제쯤 다시 울릴 수 있나?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2.04.0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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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안 같은데 한 쪽은 부당해고 다른 쪽은 정당한 해고
투쟁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현장] 소리 나지 않는 기타

ⓒ 참여와혁신 포토DB
지난 2월 23일, 대법원은 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판결을 내렸다. 악기 제조업체인 콜트악기와 콜텍의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에 대해 한 쪽은 부당하다고 판결했지만, 다른 한 쪽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콜트악기와 콜텍은 회사 이름과 사업장 위치만 다를 뿐, 같은 자본이 경영하는 기업이다.

5년 만의 판결, 그러나

지난 2007년 4월, 콜트악기 경영진은 경영 악화를 이유로 부평에 위치한 콜트악기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160명 중 56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이어 2008년 8월에는 부평공장을 폐쇄했다. 노동자들은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고, 중앙노동위원회는 콜트악기에 대해 해고자 복직과 밀린 임금의 지급을 명령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콜트악기 경영진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은 2008년 “콜트악기는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며 콜트악기 경영진의 손을 들어줬다. 노동자들은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고, 서울고등법원은 “콜트악기의 해고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1심을 뒤집고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콜트악기 경영진은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해고를 해야 할 정도의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콜트악기 경영진의 상고를 기각하고 부당해고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콜트악기와 같은 경영진이 운영하는 콜텍도 2007년 생산량 저하를 이유로 3개월간의 휴업을 거쳐 대전공장을 폐업하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다. 이에 콜텍 노동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요건을 갖추지 못한 해고는 무효”라며 ‘해고 무효 확인 등 청구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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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부지방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회사 전체의 경영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판단해야 하는데, 정리해고 당시 회사 전체의 경영상 큰 어려움은 없었다”며 1심과 달리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콜텍은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 1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콜텍이 공장폐쇄를 결정한 것이 전체 경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인력 감축 조처가 객관적으로 합리성이 있었는지 자세히 심리할 필요가 있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회사 전체적으로는 매년 당기순이익을 냈으나 콜텍은 2004년 이후 매년 상당액의 영업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경영악화 ‘우려’도 해고사유

‘같은 자본’의 정리해고에 맞서 5년을 함께 싸워왔던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이 같은 대법원의 판이한 판결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소송은 서로 달랐지만 사실상 같은 사안에 대한 판결이었고, 서울고등법원에서는 두 사건 모두에 대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없다”며 부당해고로 판결하기도 했다. 두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역시 같은 날 이뤄졌다.

판결의 당사자인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사건이므로 동시에 해결돼야 한다”면서 “콜트·콜텍을 동시에 재가동해 원직복직을 이룸으로써 동시에 해결돼야 한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다.

이번 판결의 더 심각한 점은 정리해고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는 데 있다. 대법원 1부가 판단한 대로라면, 기업 전체적으로는 순이익을 내더라도 일부 사업부문의 경영사정이 나빠져 전체의 경영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면 해당 사업부문을 폐지하고 인력을 감축하는 것도 합리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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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현재의 경영이 정상적이라 하더라도 장래의 위기가 우려된다면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희망의 버스’를 기획했던 송경동 시인은 “지난해 희망버스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가족들의 죽음 등이 계기가 돼 모든 정치권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제도화를 폐지하겠다고 나서는 현실에 찬물을 끼얹는 ‘반사회적 도발’”이라며 “헌법에 보장된 안정되게 근로할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위헌적 판결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한다.

안 해 본 싸움 없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지난 2월 23일의 대법원 판결이 있기까지 5년 가까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사측과의 투쟁을 이어왔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 거점은 부평공장 공터에 마련한 텐트 농성장이다. 이들은 ‘위장폐업과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1,800일 넘게 투쟁을 지속해왔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에 경영진은 폭력과 대화 거부로 답했다. 콜트·콜텍 경영진은 용역직원을 고용해 농성장 텐트를 탈취하는 것은 물론 농성자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거기에 주거침입 등 각종 고소고발이 이어졌다.

하지만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농성은 멈추지 않았다.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 올라 단식과 고공농성을 진행하기도 했고, 그 이전에는 노조 간부가 분신하는 일까지 있었다. 악기를 생산하는 업체인 만큼 악기를 직접 사용하는 예술인들에게도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리며 지지를 호소했다. 지난해 1월에는 세계 3대 악기쇼 중 하나로 꼽히는 NAMM Show에 가서 유명 뮤지션들에게 콜트·콜텍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미국 LA 원정투쟁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런 활동 덕분에 뮤지션들을 포함한 많은 예술인들이

콜트·콜텍 문화연대라는 단체를 구성하고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콜트·콜텍 노동자들 역시 생계곤란에 직면해 있다. 지금까지는 여성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전통 된장 등을 만들어 판매해 투쟁비용에 보태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지난 5년여 동안 전혀 급여를 받지 못해 조합원들의 생활이 극도로 곤란한 실정이다.

그렇지만 방종운 지회장은 “지금까지 잘 참고 견뎌 왔는데,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며 “비록 반쪽 판결이지만 대법원에서도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인정받은 만큼, 더욱 힘차게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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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멈춰버린 콜트·콜텍 기타에서 다시 소리가 나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싸워야 할지 모른다. 콜트악기는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다지만 콜텍은 법원으로부터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긴 법정싸움을 진행해야 한다.

더구나 콜트·콜텍 경영진이 생산시설을 중국 등으로 이전해 생산하고 있어서 정리해고자들의 복직이 이뤄지기까지는 숱한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지난 2월 23일의 대법원 판결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숱한 난관들 중 한 관문을 절반쯤 넘어섰을 뿐이다

콜트악기는 지난 3월 12일 금속노조와 콜트악기지회에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관련 협의 요청’ 공문을 보내왔다. 부평공장 폐쇄에 따른 2008년의 해고는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라고 판결한 2007년의 해고와 별도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의 언제쯤 끝날지 아직 암담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