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꿈 다시 찾아 드려요
잃어버린 꿈 다시 찾아 드려요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2.04.0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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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센터 전성시대, 강사들의 애환
“좋아하는 일 보람되지만, 생활은 녹록치 않아”
[삶의 현장] 문화센터 강사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어머니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지역 문화센터에 개설된 미술교실에 나가시더니 한 점 두 점, 집 안에 작품이 쌓여 간다. 처음엔 보잘 것 없는 솜씨에 식구들이 ‘위로’를 건네기도 했지만, 이제는 각자 탐을 낼만큼 그럴 듯하다. 아버지는 조촐한 전시회를 열려면 비용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보시는 눈치다.

중년 가정주부들뿐만 아니라, 직장인들도 문화센터를 찾는다. 취미를 즐기거나 자기계발을 위해서 시간을 쪼갠다. 학원을 다니는 것과는 또 다르게 비용도 저렴한 편이다. 문화센터들도 직장인 강좌를 잇달아 열고 있는데, 보통 저녁시간이나 주말에 집중돼 있다.

이용자가 크게 늘어난 만큼 문화센터 강사들도 많아졌다. 학원 강사와는 또 다른 종류의 직업군이 생겼다. 마포아트센터에서 문화·공예 강사로 활동하는 류영선 씨와 윤지윤 씨를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마침 봄 개강한 지 얼마 안 되는 시기였다.

엄마에게 새 취미가 생겼어요?

마포아트센터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30여 개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강좌가 3개월 정도의 수강기간이며, 계절마다 개강한다. 마포구청의 출연기관인 마포문화재단에서 센터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수강료가 저렴하다. 각 강좌마다 6만 원에서 7만5천 원 선이며, 한 달에 2만 원이 조금 넘는 셈이다.

류영선 씨가 맡고 있는 수채화 데생반은 마포아트센터의 장수 직장인 강좌다. 벌써 8년째다. 수강생들 중에는 3, 4년씩 거듭 신청하는 사람들도 많고, 난생 처음 수채화 그리기에 도전해 정식 작가로 데뷔한 이도 있다. 그에 반해 윤지윤 씨가 담당하는 발도르프 인형 만들기반은 올해 개강했다. 발도르프 인형 자체가 아직까지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진 않다.

보통 문화센터 강사들은 알음알음 소개를 통해 강의 자리를 구한다. 서류를 제출하고 간단한 면접 과정을 통해 뽑히게 되며, 계약은 1년 단위로 갱신된다. 마포아트센터의 경우 수강생이 들지 않아 강좌가 폐지되지 않는 이상, 그리고 특별한 시빗거리가 생기지 않는 이상 계약은 의례 연장된다고 한다.

문화센터 강좌에서 딱히 무슨 시빗거리가 생길까 궁금했는데, 의외로 수강생들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류 씨는 “간혹 수강생들 중에 자신에게 신경을 덜 써준다고 느끼며 시샘하는 경우가 있다”며 “아이들을 상대로 한 강좌보다 의외로 어른들을 가르치는 게 어려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불만을 가진 수강생들이 웹사이트 게시판에 항의글을 남기는 경우도 왕왕 있단다.

아무리 인기가 좋은 강사라고 해도 보통 일주일에 1, 2회 정도의 수업을 진행한다. 강의에 대한 보수는 클래스마다 걷힌 수강료를 일정 지분으로 센터 측과 나누는 방식이다. 마포아트센터의 강사들은 센터와 50:50으로 수강료를 나눠 갖는다. 아무리 수강생이 몰려들어도 한 강좌마다 20명 내외로 정해진 인원이 있기 때문에 벌이는 크게 신통치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문화센터 강사들은 주중에 시간을 나눠 여러 곳에서 수업을 한다. 마치 대학 강사들이 이곳저곳 불러주는 학교에서 강의하는 것과 다름없다. 또 많은 강사들이 다른 종류의 일과 가르치는 일을 병행한다. 순수하게 문화센터 강사 일로 버는 돈으론 생활이 어렵기 때문이다.

류영선 씨의 경우엔 작업실에서 개인교습을 원하는 사람을 받아 가르치기도 한다. 그녀는 마포아트센터 말고도 상계동과 상암동 주민센터에서 주관하는 수채화교실에 출강하기도 한다. 윤지윤 씨는 최근 지인의 협조를 구해 본인이 만든 발도르프 인형을 디스플레이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자아내 발도르프 인형에 대한 인지도도 높일 수 있고, 관심을 보이는 인근 주민들에게 쏠쏠히 판매도 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문화센터 강사, 대부분 멀티잡(multi-job)

마포아트센터의 수채화 데생반과 발도르프 인형 만들기반은 매주 수요일, 같은 날 수업이 있다. 오전부터 시작된 수채화 데생반 수업 풍경을 들여다보았다. 10여 명의 수강생들이 이젤 앞에 앉아 그림에 몰두해 있다. 초급반 격인 데생 수강생들은 구나 원기둥 등 기하도형을 스케치하며 사물의 명암 표현 등을 연습하고 있었다. 류영선 씨가 수강생들 사이를 누비며 밝고 어둡기를 조절하는 방법이며 선긋기의 요령을 짚어 준다.

수채화반 수강생들은 각자 이젤 앞에 멋진 풍경 사진을 놓아두고 채색에 몰두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풍경화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실제로 보고 그린다면 더욱 좋겠지만, 시간과 여유가 늘 허락하는 게 아니니 사진을 앞에 두고 연습한다. 때때로 수강생들과 함께 야외로 사생을 나가거나,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 사진을 찍고 오늘처럼 실내에서 풍경화를 연습하는 데 자료로 활용하기도 한단다.

류영선 강사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류 씨는 “수채화는 비교적 필요한 화구가 간편한 편이고 작품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짧은 편이기 때문에 야외 사생도 간편하다”며 “최근 4, 5년 동안 유행이 바뀌어 수채화 붐이라고 할 만큼 인기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50대 가정주부인 김수남 수강생 역시 배우기 쉽고 비용도 저렴한 수채화 그리기에 푹 빠져 있다. 벌써 4년째 수채화반 수업에 참가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대여섯 시간씩 ‘작품활동’에 몰두한다. 그림그리기에 전혀 문외한이었던 김 씨는 그동안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류 씨는 “수십 년 전 학창시절 이후론 그림과 담을 쌓고 지냈던 중년의 수강생들이 우연히 문화센터 강좌를 통해 수채화를 접하게 되고 흥미를 갖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물론 가끔 류 씨도 본인의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정말 순수하게 미술작품을 팔아 삶을 영위하는 전업작가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어찌됐든 호구지책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술강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류 씨는 그것을 그리 옹색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루 종일 회사에 매어 있다가 퇴근 후에야 본인의 취미, 혹은 자기계발을 위해 문화센터를 찾는 수많은 직장인들에 비하면 그래도 내 시간이 여유로운 편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또 강사생활을 하며 부대끼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본인의 작품활동의 소재나 영감을 찾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윤지윤 강사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수강생과 소통에서 영감 찾기도”

발도르프 인형을 알리기 위해 열정적인 윤지윤 씨 역시 마포아트센터뿐만 아니라 강남구의 풀잎아트센터에서도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윤 씨의 전직은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퇴사 후에는 학원가에서 영어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역시 갈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윤 씨는 훌쩍 유학길을 떠났고, 독일의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접하게 됐다.

본래 유아교육을 전공했던 윤 씨에게 일종의 대안교육인 발도르프 교육은 매우 흥미로웠다. 191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발도르프 아스토리아 담배공장에서 공장 노동자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가 설립됐는데, 그것이 바로 발도르프 학교였다. 당시 공장 사장인 에밀 몰트는 인지학자인 슈타이너의 교육이론에 심취해 있었는데, 그의 이념에 따라 학교는 운영됐다.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발도르프 교육이다. 아이들에게 단순히 지식습득만을 강요할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성장시키고 자연친화적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 발도르프 교육이념에 걸맞게, 친환경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게 만든 장난감이 바로 발도르프 인형이다. ‘친환경적 소재’라는 부분은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인데, 일단 3년 이상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토양에서 재배한 목화로 만든 원단만이 발도르프 인형의 재료로 합격점을 받는다.

발도르프 인형의 얼굴은 마치 어린아이가 선과 점으로 눈, 코, 입을 그려 놓은 것처럼 아무 표정이 없고 극단적으로 단순하다. 그런 인형의 얼굴이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더욱 효과적이다. 인형을 갖고 노는 아이들은 스스로 느끼는 기분을 인형의 표정에 고스란히 투영하기 때문이다. 심통 난 상태면 인형의 표정 역시 뾰로통해 있고, 몹시 즐거운 기분이면 인형 역시 활짝 웃고 있다고 아이들은 느낀다.

꾸준히 인형을 만들어 온 윤 씨도 “매일 바라보는 같은 인형이라도 정말 내 기분에 따라 표정이 달라 보인다”며 “스스로의 감정을 비춰보는 거울 같단 느낌이 들어서 더욱 애착이 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발도르프 인형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동시에, 본인 스스로가 못 말리는 매니아라고 한다.

앞서 말했듯 어린아이가 물고 빨아도 무해하도록 엄선된 재료로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발도르프 인형은 흔히 볼 수 있는 조잡한 봉제인형에 비해 상당히 고가에 판매된다. 최근엔 자녀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유층들을 중심으로 발도르프 인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발도르프 인형, 관심 높아져”

함께 이야기를 나눈 류영선 씨와 윤지윤 씨가 갖고 있는 고민은 역시 수입과 관련된 부분이다. 대부분의 문화센터 강사들의 고민도 대동소이하다. 강의료만으로 한 달 생활을 꾸려가기가 빠듯하기 때문이다. 류 씨는 “취미나 부업 정도로 생각한다면 모르겠지만 주 수입으로 삼으려면 꽤 알뜰하게 절약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여 년 이상 활동해 온 중견 화가인 류 씨는 세 번의 개인전을 비롯해 전시회도 많이 열었지만, 작품을 팔아 얻는 수입은 주로 전시비용을 충당하는 데 쓰였다.

윤 씨의 경우도 사정이 호락호락하진 않다. 본격적으로 인형 판매사업에 뛰어든 다른 전문가들이 선주문을 받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인형을 골라서 제작하는 반면, 발도르프 인형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윤 씨는 마치 기성품을 만들 듯 다양한 종류의 인형을 우선 갖춰 전시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인형 제작에 시간과 품이 많이 들고, 재료비가 비싸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

그나마 강사 자리도 전문경력의 길고 짧음과 별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또 아직까지 일정 수준 체계적인 강사 선발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윤 씨의 경우도 본인이 직접 강의 기획과 포트폴리오 자료를 보내 적극적으로 강좌 개설을 요구한 끝에 올해부터 개강된 경우다. 마포아트센터의 경우 인형 만들기 강좌가 그동안 없었다. 하나 위안이라면 각 단위 지자체가 공공서비스의 일환으로, 또 대형 백화점 등지에선 고객서비스로 문화센터를 운영하는 곳이 크게 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현실의 고민거리는 수강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풀어진다. 본인 스스로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고심해 왔던 윤지윤 씨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손바느질에 흥미를 느끼고 자신도 모르던 의외의 소질을 발견해 ‘준 프로’로 활동하는 수강생들을 볼 때마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류영선 씨 역시 마찬가지다. 수강생들을 지도하며 각자가 느끼는 삶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어 즐겁다고 한다. 본인에게는 물론, 수강생 스스로가 무미한 일상에서 그림을 통해 활력과 자극을 찾는 모습을 보면 보람차다고 말한다.

류 씨의 수채화교실을 찾았던 한 수강생은 70대의 나이에 처음 화폭을 마주하고, 지금은 개인전까지 연 어엿한 공식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잊고 지내던 꿈을 사람들에게 찾아주는 일, 문화센터 강사들은 이를 위해 잠시 고민거리를 접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