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수사관’별명 얻은 대열보일러노조 박태순 위원장
'산재 수사관’별명 얻은 대열보일러노조 박태순 위원장
  • 승인 2006.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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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반월공단 노동자들의 마지막 희망

“건강 잃고 행복할 순 없죠”

 

겨울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일기예보 때문일까. 시화·반월공단의 하늘이 뿌옇다. ‘안개’ 속에 들리는 기계소리, 망치소리는 사람도 많고, 사연도 많은 공단의 풍경을 담고 있다. 많이 알지 못해서, 가진 것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속에 작업복을 입은 박태순(48) 대열보일러노동조합 위원장이 있다. 얼마 전 박 위원장이 의장으로 있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안산지역협의회는 제13회 안전경영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15년 동안의 그의 노력을 세상이 알아주기 시작한 것이다.

 

임금투쟁보다 중요한 문제, 안전
박 위원장이 산업재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0년 겨울이다. 함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고민을 나누던 부위원장이 산업재해로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동료의 죽음 앞에서 그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산업재해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태일 열사가 ‘나도 대학 다니는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을 그때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제가 정말 그랬으니까요.”


그때는 산업안전에 대한 법이 있어도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박 위원장이 산업재해 문제를 이야기하면,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노동악법이 철폐되면 산업재해를 비롯한 노동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라고 박 위원장에게 말하곤 했다. “임금투쟁보다 더 중요한 게 산업재해 문제에요. 임금 올려놓아도 다치거나 죽으면 다 소용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박 위원장은 노동조합 교육 때 일부러 교육시간을 쪼개어 다른 노동조합 위원장들을 대상으로 산업재해 교육을 하기도 했다.

 

편견은 버리고, 끈질김과 치밀함으로
박 위원장이 15년 이상 산업재해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현장에서 접한 사례들을 이야기하자면 두툼한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다. 건강검진에서 정상판정을 받은 2달 뒤 폐암으로 사망한 사건의 경우, 박 위원장은 수많은 병원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엑스레이 필름을 재판독했다. 그 과정에서 오판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를 두려워한 병원측이 일부러 8만명 노동자의 엑스레이 필름을 ‘분실’해 버리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노동자들의 건강검진이 얼마나 허술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됐고, 의학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박 위원장은 2000년 5월에 있었던 티켓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에겐 그저 불미스런 살인사건에 불과했지만, 박 위원장에겐 분명한 ‘업무상 재해’였다. 억울한 살인사건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다. 다방은 사회적으로 허용된 공간이기에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은 특수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일 뿐이라는 것이 박 위원장 생각이다. 당시의 법으론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기 위해선 5인 이상 사업장임을 증명해야 했는데, 박 위원장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려는 종업원들을 설득해 결국 ‘업무상 재해’ 판정을 받아냈다.


2002년 중국인 노동자의 노말헥산 사건 때는 노조위원장이 아니라 ‘수사관’이란 말까지 들었다. 온갖 협박과 증거인멸 속에서도 5개월 간 끈질기게 추적하고, 치밀하게 조사한 끝에 결국 산재승인을 받아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병의 원인도 모른 채 하반신이 마비되어 중국으로 돌아갔던 여성노동자를 중국까지 직접 찾아가 데리고 와 치료를 시키기도 했다.


박 위원장 덕분에 산재승인을 받게 되었다며, 꼭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던 노동자는 결국 영안실로 그를 ‘초대’해 마음을 아프게도 했다. 15년 동안 수많은 산재 노동자들을 만나다보니, 이젠 응급실과 영안실이 있는 병원이 박 위원장에겐 익숙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작업복 ‘단벌’ 위원장 노조위원장이 자랑스런 세상 꿈꾸다
박 위원장은 항상 소속사업장인 ‘대열보일러’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다닌다. 대외적인 행사에 참석할 때도, 중국에 노말헥산중독 노동자를 데리러 갈 때도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이젠 안산지역에선 ‘작업복 입고 다니는 노조위원장’이라고 하면 박 위원장이라는 것을 알 정도다.


“내가 지금 이런 활동들을 할 수 있는 것은 이 옷을 입게 해 준 조합원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지금 이 시간에도 조합원들은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제가 비양심적으로 활동하면 안 되잖아요. 작업복은 나를 무장시키고, 내게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에요.”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조합원들의 바람이 담긴 ‘작업복’을 입은 노조전임자로서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박 위원장은 말한다.
장모가 ‘박서방은 왜 맨날 그 옷만 입고 다니냐’고 할 정도지만, 박 위원장은 노조위원장이기에 작업복을 입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검사나 의사가 옆집에 이사 오면 좋아하면서 자랑해요. 그런데 노조위원장이 옆집에 오면 그렇지를 않아요. 뭐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라고 반문하는 박 위원장은 노조위원장이 자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더 많이 공부해서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알면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이 가능한데, 모르니까 인식을 못해 “문제라고 말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는 것.

 

노동자는 상품가치 높이고 사업주는 사원복지 마인드 키워야
박 위원장은 행복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고, 직무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들을 계속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떻게 하면 가장 안전하게, 가장 편하게 일할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하고, 방법들을 개발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올 것이고, 설사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회사에서 붙잡을 것이기 때문에 고용불안은 사라지지 않겠냐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사업주는 안전경영을 하고, 사원복지에 대한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업장들을 돌아다녀 보면, 식당과 세면장을 깨끗하게 하는 등 사원복지에 신경을 쓰는 사업장일수록 고용과 임금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더라는 것이다.


“건강을 잃고 행복할 순 없다”는 박 위원장의 단호한 말투 속에서, 모든 노동자들의 얼굴 가득 퍼진 행복한 미소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