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실태를 ‘커밍아웃’하다
노동실태를 ‘커밍아웃’하다
  • 김정경 기자
  • 승인 2012.04.3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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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차별로…드러내지 못하고 혼자 끙끙
성소수자 당당한 노동자로 인정받는 환경 마련돼야
[2012 마이너리티리포트] 성소수자의 노동

아직도 성소수자는 TV 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으며, 때론 내 일터 어딘가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일지도 모른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게이 파트너십 인정되지 않아

#1   파견노동자인 레즈비언 승아(가명) 씨는 직장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이 알려질까 봐 늘 조마조마하다. 동료들이 그저 인사로 건네는 말일 수도 있는 “남자친구 있느냐?”, “괜찮은 사람 있는데 소개팅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말도 승아 씨에겐 부담스럽기만 하다. 때문에 처음에는 대화가 길어질 것을 염려해 일부러 사람들을 피했고, 나중에는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만들어 계속 둘러 대야만 했다.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동료들과의 관계는 멀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터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이 밝혀지면 해고대상이 되거나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을 일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2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게이 인호(가명) 씨가 느끼는 차별은 보다 현실적이다. 이성애 가족 중심으로 구성된 사내 복지제도에서 인호 씨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아무 것도 없다. 항공사다 보니 결혼을 하면 배우자와 배우자의 부모까지 저렴하게 항공권을 이용할 수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게이 파트너십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인호 씨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배우자가 다쳤어도 휴가를 쓸 수 없고, 가족수당이나 경조사비 역시 받을 수 없다. 누군가는 그저 미혼이라 자격이 안 될 뿐이라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인호 씨에겐 조금 다르다. 상대적인 박탈감을 넘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3   트랜스젠더 지원(가명) 씨는 주민등록상 성별과 외모가 일치하지 않아 아예 원하는 직업조차 가질 수 없는 경우다. 그의 직업 선택 폭은 한정돼 있다. 주민등록관련 서류를 요구하지 않는 곳. 그러다 보니 그를 받아주는 곳은 일용·임시직이거나 사회보장이 전혀 되지 않는 위험 직군이나 유흥업소뿐이다. 지원 씨는 단 한 번도 이처럼 언제 그만둬야할지도 모르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일자리를 원했던 적이 없다. 하지만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선 감수하고 일 할 수밖에  없다.


차별을 차별이라 인정받지 못하고

▲ ⓒ 동성애자 인권연대
대한민국에서는 성소수자들의 노동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의미한 통계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관련 연구조차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때문에 ‘대한민국에 성소수자는 있어도, 성소수자 노동자는 없다’는 말은 일견 타당하다. 아직도 성소수자의 ‘차이’를 포용할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굳이 일터에서 자신의 성적지향을 밝혀 차별을 떠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노동자 스스로가 사회적 분위기나 주변 여건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심각한 심리적, 경제적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 노동권팀 활동가 이경 씨는 성소수자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차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경 씨는 “동성애자가 직장에서 같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차별이며, 거기서부터 모든 차별은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성소수자들이 일터에서 느끼는 차별이 이성애자들에게는 “이런 것도 차별이냐?”로 여겨지기 일쑤다.

일례로 외모나 사회적 성향에서 남성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한 레즈비언에게 면접관이 여성스럽지 못한 외모나 행동을 지적한다거나, 보통의 남성들 보다 예민한 감성을 지닌 영업팀에서 일하는 한 게이 노동자에게 ‘남자답게, 공격적으로 영업하라’며 남성적 조직 문화를 강요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성애자들은 이런 경우를 단지 여성에 대한 외모차별로 바라본다거나, 당사자의 예민한 성격 탓으로 돌려버린다. 그러나 성소수자들에게는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사회가 요구하는 성역할이 자신이 추구하려는 성역할과 충돌하는데서 오는 명백한 차별인 것이다.

또한 노동권팀 오리 씨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회사 내 가족적인 분위기 역시 성소수자들에게는 곤욕이라고 말한다. 오리 씨는 “회사에 오래 있으면 결혼은 언제 하냐? 왜 애인은 소개 시키지 않느냐? 부터 심지어 소개팅 상대를 줄줄이 데려다 놓고 나갔다오라고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여자 친구있다, 독신으로 살 거다 등 거짓말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사실 엄청난 불평등인데 차별인지 알지를 못한다”고 말한다.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관계 맺기에 소극적이다 보니 바로 승진을 비롯한 인사 상 불이익으로 돌아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의 동성애자 노동자들은 보통의 구직자가 염두에 두는 임금이나 복지조건보다도 ‘과연 자신이 잘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의 조직인가?’를 직장 선택의 중요한 조건으로 고려한다. 자연스럽게 직장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편 경제적으로 나타나는 분배의 불평등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앞선 사례에서처럼 사내 복지는 ‘가족’을 중심으로 제공되고, 이때 가족이라고 함은 이성애자 부부 만을 포함하는 좁은 의미다. 때문에 동성애자 커플의 경우는 가족수당, 건강보험, 유족연금은 물론이고, 전세자금 대출 같은 여타의 복지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이를 정년까지 돈으로 환산해 보면 손실액은 어마어마하다.

이런 점에서 동성애자는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비혼자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복지와 인사 등에서 배제되고, 단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완벽한 성인 또는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점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동성애자의 경우는 아예 결혼이란 사회적 제도자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부터 배제돼 있다.
 

Minority   Report  05
관련 용어정리

-커밍아웃(coming-out)
‘come out of closet’ 에서 유래한 것으로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적지향을 숨기고 살다가 자신의 성향을 긍정하고,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주위나 사회에 밝히는 것을 말한다.

-레즈비언(Lesbian)
여성동성애자

-게이(Gay)
 '호모‘라고 불리기를 거부하는 동성애자들이 어두운 이미지를 대체하는 밝은 이미지의 ’기쁨‘이라는 의미. 남녀 모두를 지칭하는 용어이나 현재는 주로 남성 동성애자를 가리킴.

-바이섹슈얼(Bisexual)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성적지향을 지난 양성애자

-트랜스젠더(Trans-gender)
자신의 생물학적 성과 다른 성을 지닌 이들을 모두 말함. 성전환(확정) 수술의 여부와 관계없이 다른 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지칭함으로 외모나 복장으로 구분할 수 없음.


※  이들의 영문 앞 글자를 딴 LGBT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통칭하는 용어

- 자료제공: 동성애자 인권연대 노동권팀

ⓒ 동성애자 인권연대

차별금지법 제정, 인식교육 넓혀야

그렇다면 성소수자들도 불편부당하게 노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먼저 이성애 가족 중심적으로 만들어진 고용관련 법안들에 대한 재설계와 함께 성소수자들까지 포함할 수 있는 대안적 가족개념의 도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큰 틀을 바꾸기에 앞서 지난 2007년 발의됐다 지금까지 좌초된 채 있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이끌어 내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대표적으로 성적지향을 비롯한 인종, 가족형태 등 여타의 차이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인 개념의 법안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소속 단체로 있는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훈창 씨는 “차별금지법이 그 동안 2번씩이나 보류 됐는데 아무래도 고용문제가 걸린 노동부를 비롯한 정부부처와 경총이 부담스러워 한 부분도 있고, 성소수자 문제의 경우 우익종교단체 등 보수 세력의 반대가 컸다”고 전했다.

이어 훈창씨는 “법안이 통과되면 실제 일어나고 있는 차별을 구제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19대 국회에서도 지속적으로 법안이 제정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또한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그동안 성소수자의 노동차별 문제는 당사자만의 문제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별해소를 위해서는 성소수자도 노동자라는 인식과 함께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한 사람의 동료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직장 내 반차별 교육, 인권교육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경 씨는 “그 동안 성소수자 운동과 노동운동이 만나본 적이 없어서 성소수자의 문제는 인권·사회단체의 몫이었다”며 “노동자 계급 안에서도 여전히 이성애, 남성,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사고가 남아있어 힘을 못 받고 있는 것 같은데, 민주노총이 차별금지법을 자신의 과제로 받아 안고 싸워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했다.

성소수자의 노동권은 유별나거나 특수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성적지향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노동할 권리이며, 노동의 대가 또한 차별 없이 인정받을 권리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추구하려는 노동권이기도 하다. 
 

[메이저리티에 고함]


“그냥 지금 당장은 좀 혐오만 안 했으면 좋겠다. 사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그 정도만 해도…, 그냥 그 정도를 바라는 것 같아요. 특히 남성들 같은 경우는 (동성애 그러면) 토가 나온다거나 욕부터 나온다거나 감정적으로 거부반응이 있고, 농담처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하는데, 최소한 같이 일하는 동료나 사람으로만 봐줘도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국가차원의 정책이 마련돼 있지 않더라도 먼저 회사차원에서라도 적극적으로 가족수당 같은 거 보장 해 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실제로 외국에서 많이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고요.”


“기본적으로 완전히 이성애 중심, 가족 중심적으로 돼 있는 고용관련법, 양성 평등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는 여성 평등을 규율하는 법, 민법상의 가족개념 등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동성애자들이 끼어들어갈 여지가 없어요.”


“커밍아웃을 하고 당당히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 돼야죠. 그런 과정에서 어떤 걸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차별인거니까요.”
 

“사실 트랜스젠더들 같은 경우는 주민등록상과 스스로 생각하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직장을 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요. 그나마 외모가 출중한 사람들은 유흥업소로 가지만 그것이 트랜스젠더에게 권할만한 직업은 아니잖아요. 그런 전후 사정도 모르고 편견을 가지거나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소수자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주변 동료들의 인정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직장에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단 한명의 동료만 있어도 큰 힘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