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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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경 기자
  • 승인 2012.04.3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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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쟁의행위 가결
단결된 힘으로 민영화 막아낼 것
[현장1]철도노조 KTX 민영화 저지 투쟁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해 12월 국토해양부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독점해오던 철도운영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며, 수서발 KTX(고속철도)의 운영권을 민간사업자에게 부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국철도노조(위원장 이영익, 이하 철도노조)는 “이는 곧 KTX 민영화를 의미하며, 재벌 특혜와 공공성 훼손이 불 보듯 뻔하다”며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토론회를 통해 각자의 주장이 옳다며 몇 차례 공방전이 오갔다.

여기까지는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는 악화된 여론과 총선 국면으로 잠시 주춤했던 KTX 민영화를 다시 밀어붙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철도노조는 쟁의행위를 결의하며 총력투쟁으로 막겠다고 나섰다. 이들의 정면 승부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조합원 86% 찬성, 파업까지 각오

지난 4월 18일, 새누리당은 “KTX 민영화의 일방적인 추진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서신을 국토부에 전달했다. 공론화 과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인 19일 국토부는 새누리당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수서발 KTX 운송사업 제안요청서 정부안‘을 발표했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향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정부안을 보완할 여지를 남기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국토부가 계획한대로 사업자 선정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같은 날 만난 철도노조 이영익 위원장은 “새누리당이 서신을 보냈다지만, 민영화 추진 자체를 원천 무효화하겠다는 것은 아니며, 국토부의 태도 역시 달라진 점이 아무 것도 없다. 철도노조는 계획대로 KTX 민영화 저지 투쟁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철도노조는 지난 4월 18일부터 20일까지 ‘KTX 민영화 저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전체 조합원 21,256명 중 19,750명이 투표(투표율 92.9%)했고, 16,985명이 찬성해 86%의 높은 찬성율로 쟁의행위가 가결됐다.

이영익 위원장은 “압도적 찬성은 KTX 민영화를 저지하겠다는 조합원들의 뜻이 반영된 결과”라며 “정부가 사업자 선정 추진을 강행한다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조합원과 국민의 단결된 힘으로
쟁의행위가 가결되면서, 철도노조의 투쟁준비에도 속도가 붙었다. 철도노조는 지난 4월 21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KTX 민영화 저지를 위한 전국 철도노동자 3차 총력결의대회’를 열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악천 후 속에서도 전국의 철도노조 조합원 및 연대단체 3,000여명이 자리했다. 조합원들은 내리는 비를 우비 하나로 막으며 “재벌특혜 공공성 훼손, KTX 민영화 중단하라!”며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KTX 민영화 저지 투쟁에 대한 현장 조합원들의 마음은 어떨까? 부산지방본부 이 모 조합원은 “4.11 총선 결과 때문에 찜찜한 마음이 없잖아 있지만, KTX 민영화에 내 일터와 우리 조직의 사활이 걸렸고 국민들의 안전과 서민 경제가 좌지우지 되는 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지방본부 박 모 조합원은 “중앙 간부들과 지부장들이 해고를 각오했다고 들었다. 우리더러 감봉을 각오해 달라는데 어쩌겠나. 따라야지”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박 조합원은 “토요일, 그것도 이렇게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인 많은 동지들을 보니까 힘이 난다”고 말을 이었다.

정부와 국토부에 대한 규탄도 쏟아졌다. 서울지방본부 이 모 조합원은 “정부랑 국토부의 짜고 치는 말 바꾸기와 노동자 서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책 추진에 치가 떨린다”며 “얼마 전 민자 지하철 9호선 요금인상이 대표적인 예다. 말 바꾸기에 더 이상 놀아날 바보가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16일 KTX 민영화 추진을 총괄하고 있는 국토부 김한영 정책실장은 “민간이 운영하는 지하철 9호선처럼 KTX 역시 운임은 내려가고 서비스는 더 새로워질 것”이라고 언급 하였다. 그러나 최근 서울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 문제가 불거지자 국토부는 “순수 운영사업인 KTX 경쟁도입과 서울시 9호선 민자사업과는 사업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9호선 요금 문제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발표했다.

한편,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철도노조 이영익 위원장을 비롯한 박태만 수석부위원장, 박종원 사무처장의 삭발식이 진행됐다. 박종원 사무처장은 “삭발이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보여주고자 한 건 짧게 민 머리가 아니라 KTX 민영화를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지도부의 결의”라고 밝혔다.

이영익 위원장은 “정부와 국토부가 추진하려는 계획을 이렇게 균열 시킬 수 있었던 것은 2만 5천 철도 노동자들이 똘똘 뭉쳐서 국민과 함께 힘차게 투쟁했기 때문”이라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KTX 민영화 박살내고 철도 공공성 강화시키는 투쟁 힘차게 벌여나가자“고 말하며 조합원들에게 KTX 민영화 저지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줄 것을 호소했다.

철도노조, 투쟁명령 발령
국토부, 명백한 불법파업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철도노조 백성곤 홍보팀장은 “파업결의는 이미 된 상태지만, 향후 구체적인 일정과 계획은 4월 25일 확대쟁의대책위원회 1차 회의에서 논의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백 팀장은 “이번 투쟁에서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를 얻기 위해 100만인 서명운동, 대국민 선전전을 함께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토부는 4월 23일 “정부정책을 이유로 파업을 하는 것은 쟁의요건도 갖추지 않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시 강력 대응에 나서겠다는 뜻을 전했다. 국토부 철도산업팀 정현석 사무관은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비해 ‘비상수송대책’을 마련하고 국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파업으로 징계와 해고를 비롯해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감수했던 철도노조. 이번 총파업 선언은 벼랑 끝에 몰린 철도노동자의 운명처럼 모진 비바람 속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