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의 바람이 분다
이제, 우리의 바람이 분다
  • 김정경 기자
  • 승인 2012.04.3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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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겨냥한 지역본부별 릴레이 농성
설립신고·해고자 원직복직 쟁취 할 것
[현장2]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농성장

4월 6일 오후, 공무원노조 농성장이 있는 광화문 정부중앙청사를 찾았다. 후문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매서운 황소바람이 불어온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봄 햇살이 무색할 만큼 얄미운 바람이 몰아쳤던 그날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김중남)이 ‘설립신고와 해직자 원직복직 쟁취’라는 목표를 내걸고 거리 농성을 시작한지 정확히 12일 차를 맞던 날이었다. 이들은 도로와 바로 맞닿아 있어 시끄러운 인도 한 켠에서 변변한 장치하나 없는 농성장을 맨 몸으로 지키고 있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계절의 응원도 없이...
우리는 ‘노숙페이스’
공무원 노조의 이번 투쟁 컨셉은 지역 본부별로 돌아가며 릴레이 농성을 하고 중앙본부 간부들이 결합하는 방식이다. 오늘은 가장 멀리 떨어진 제주도와 부산, 두 지역 본부 간부들이 농성장을 지킨다. 앉아 있어야 하다 보니 불어오는 바람은 고스란히 얼굴을 때린다. 책을 읽고 있던 임경진 부산본부장에게 농성에 임하는 소감을 물었다.

“부산에서는 두 사람 왔습니다. 이번에 설립신고, 해고자 원직복직 위해서 농성 중입니다. 소감은... 이제 1시간 좀 넘은 거 같은데(웃음) 바람이 너무 많이 부네요.”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는 제주지역 전익현 본부장과 박춘호, 강문상 지부장은 현격한 기온 차 때문인지 유독 더 추워 보인다. 

“바람의 고장 제주보다 바람이 심하네! 제주도는 벌써 꽃이 폈습니다. 오늘부터 벚꽃축제에 들어가요. 바람이 너무 부니까 피켓을 들 수도 없어.”
“잘 사시는 분들은 노스페이스 입고 봄날 놀러 다니고, 못사는 사람이랑 우리 노동자는 ‘노숙페이스’라고.(웃음)”
“오늘은 그래도 나아. 전 주 목요일에는 비 왔다니까. 농성 첫 날은 진짜 추웠고.”

오늘로 농성장에 세 번째 출석도장을 찍었다는 양윤호 부위원장은 자신이 오는 날은 그래도 운이 좋아 날씨가 좀 양호한 것 같다고 말한다.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사유로 천막은 아예 못 치게 했어요. 전기도 못 쓰게 해. 그냥 비 오는 날이랑 밤에만 비닐 내리고 있는 거죠. 비닐만 내려놔도 바람부는 거 훨씬 견디기 낫더라고요.”

 ⓒ 참여와혁신 포토DB

신고인데, 진작 됐어야...
우리도 정치기본권 찾고 싶다
지역은 다르지만 고민은 같았다.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해직자, 공무원들의 정치기본권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3월 26일 날 설립신고서 냈습니다. 현재 보완요구 내려와 있는 상태고 그래서 이렇게 릴레이 농성하고 있는 겁니다.”
“설립신고는 참 부당한 거 아닙니까! 자꾸 반려시키고.”
“사실 설립신고는 신고하면 설립증 나오는 건 당연한 건데 이걸 잡고 참 이러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인 거죠.”

이어 해고자 문제에 대한 생각들도 쏟아 낸다.

“지금 총 143명이 해직된 상태예요. 감봉이나 강등만 받더라도 밥줄을 끊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근데 143명 모두 가장들인데 해고를 해 버리니…. 해고는 말 그대로 살인입니다. 이것을 저희가 원 위치로 복귀시켜 드려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노조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원죄 갚으러 왔습니다. 제주도는 총 다섯 분 해고됐습니다. 이유는 모두 노조활동 때문이죠.”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는 소위 ‘정치의 해’이니 만큼 공무원노조의 정치기본권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영혼 없는 공무원을 너무 원하는 거 아니냐. 정부나 집권자들이 그렇게 원하는 것도 있고 국민이 그렇게 원한다는 것 같이 호도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공무원이 아예 선거권이 없다면 모르겠다. 근데 어차피 비밀투표라서 내가 가서 찍고 투표하는 거나 돈 만원 내는 거나 사실 똑같은 행위라고 봐요.”

공무원 노조 김중남 위원장은 총선이 끝나는 6월부터 국회 입법 투쟁을 준비하고, 10월 전 조합원의 총회투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해직자 원직복직과 공무원들의 정치표현의 자유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계획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농성도 하고 연대도 하고
화장실, 식사문제 어려워
농성장에서 그간 있었던 활동들에 대해 물었더니, 옆에 있던 ‘농성일지’를 찬찬히 살피기 시작한다. “어머, 이런 것도 있네요?”라는 물음에 촌철살인의 한 마디가 돌아온다. “아, 공무원이잖아요.(웃음)” 

농성일지에는 그날 있었던 활동내용, 방문자, 기타 특이사항 등이 시간대 별로 촘촘히 기록돼 있다. “정부청사 공무원이 베지밀 사주고 갔네.” 지역본부별로 돌아가는 릴레이 투쟁이다 보니, ‘농성일지’는 정보를 공유하는 수단이며, 지난 농성과정을 돌아보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 하지만 농성일지에서 무엇보다 눈에 들어왔던 활동은 타 투쟁에 대한 연대활동이었다. 12일 농성을 하는 동안 참 많은 곳을 방문해 응원을 보내고 후원금을 전달했다.

“첫날은 쌍차 방문했고, 둘째 날은 전북버스 지지방문…, 오늘은 방금 한일병원 다녀왔어요. 투쟁기금도 조금 전달하고.”

거리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야 하니 식사와 화장실 이용이 제일 문제였다. 용변은 건너편 건물의 화장실을 이용하고, 식사 역시 근처 식당 하나를 정해놓고 먹고 있다. 이들은 식당의 메뉴가 콩나물 국밥, 비빔밥, 주꾸미 비빔밥 딱 세 가지뿐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 집에서 여섯 끼를 먹었나? 아까 와서 점심 먹으라기에, 아…, 난 딴 데 가서 먹어야겠다. (웃음) 어차피 저녁 때 또 먹어야 되는데….”
“오늘은 우리 여기 정부청사 식당 밥 좀 먹어보죠?”
“공무원증 있으면 들어갈 수 있어요.”
“아, 두고 왔네. 공무원증 가져올 걸”
“이쪽으로(정부청사 출입문) 우리 가면 바로 막을걸요.(웃음)”

 ⓒ 참여와혁신 포토DB

이들은 노동조합의 조합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공무원이고, 또 한 가정의 가장이다. 이 날처럼 노조활동을 위해서는 연가를 사용해야 했고, ‘아빠, 거긴 안 추워?’ 라고 묻는 아이들이 혹시 걱정이라도 할까봐 숙직한다고 둘러대고 집을 나온다.

이들은 왜 길바닥에 이렇게 앉아 봄을 맞아야 하는 걸까? 이제, 매서운 ‘바람’ 대신, 공무원노조가 꿈꾸는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지길. 따뜻하고 희망찬 새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총선 전날인 지난 4월 10일에 노숙 농성을 마감하고 현장 투쟁으로 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