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닥이 아저씨와 얼치기 조수
뚜닥이 아저씨와 얼치기 조수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2.04.3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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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하나 안 박아보고 찾아간 목공방 체험기
‘기본’ 안 지키고 덤비면 몸도 마음도 고생이더라
[삶의 현장] 목공방 뚜닥뚜닥

“아니 십 분이면 끝낼 걸 한 시간 반씩이나 붙잡고 있으면 어떡해요.”

길이를 계산해 나사못이 물고 들어갈 곳을 연필로 표시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낑낑대던 기자에게 핀잔이 돌아온다. 맞춤하게 원목을 잘라 미리 재단까지 끝내 놓은 상태였다. 식은땀만 그저 삐질 거린다.

못 하나 제대로 박아본 적 없으면서도 염치불구하고 덜컥 목공 체험을 하고 싶다며 찾아간 경기도 안산의 뚜닥뚜닥 목공방에서 휴일 하루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고스란히 보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우리 동네 만능 해결사

아침 일찍부터 기다리던 공방 주인장인 오경호 씨가 반갑게 맞았다. 대뜸 “뭐라고 불러드릴까요”라고 질문했더니, ‘뚜닥이 아저씨’라는 호칭이 자기는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한다. 뚜닥이 아저씨는 동네의 만능 해결사다.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지나는 길에 공방 문을 배꼼 열고 뚜닥이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린 아이들이 방문을 걷어차 경첩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하나요?”
“전자레인지 받침목으로 쓰게 나무토막 좀 다듬어 주세요.”

손 볼 물건을 가져온 사람들은 즉석에서 슥슥 고쳐주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겐 직접 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준다. “사례비는 안 받냐”고 물었더니 “크게 손이 가거나 재료가 많이 든 것이 아니면 어떻게 돈을 받냐”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뚜닥뚜닥 공방 문을 열면 한 쪽 구석에 함석판을 덧댄 개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무려 40년 된 물건이란다. 미닫이 문이며 함석을 덧댄 마감까지 이만저만 신경 쓴 물건이 아니다. 뚜닥이 아저씨는 그 오래된 개집을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한다. 유난히 손재주가 좋았던 아버지, 변변한 공구도 없고, 고급 재료도 아닌 굴러다니는 나무토막을 가지고도 아버지는 뚜닥뚜닥 온갖 것을 만들어냈다. 어엿한 공방을 갖고 있는 지금의 뚜닥이 아저씨가 무색할 정도로.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뚜닥이 아저씨가 소나무를 고집하는 이유는?

‘뻬빠(사포)’질 한 번 제대로 해 보지도 않고 얼렁뚱땅 뚜닥이 아저씨의 조수 역할을 하기로 했다. 오늘 만들어야 하는 물건은 높이 1미터 70센티 정도의 장식장이다. 안쪽에 선반을 걸어서 단을 나눌 수 있으며, 그물 장식의 여닫이문을 달게 된다. 체험 취재를 위해 만들어 보는 샘플 작이 아니라 얼마 전 뚜닥이 아저씨에게 주문이 들어온 진짜 ‘상품’이다. 큰일 났다!

재료로 쓸 원목은 핀란드산 소나무다. 소나무는 뚜닥이 아저씨가 가장 좋아하는 재료다. 작업을 하다보면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소나무 향도 좋고, 경도나 밀도와 같은 나무의 성질도 좋다. 또 상대적으로 오크나 ‘히노끼’라고 불리는 편백나무, 물푸레나무 등의 고급 원목에 비해 가격도 싸다.

아무래도 공방의 원목 가구는 대량 생산되는 가구에 비해 가격이 비싸기 마련이다. 보통 재료 원가의 3.5배 정도를 공임으로 쳐서 견적을 뽑는다. 원목 값을 모르니 잘 감이 안 오는데, 흔히 보는 평범한 나무 의자를 생각하면 보통 14~15만 원 정도 가격대다. 어떻게 하면 가격대를 낮추고 많은 사람들이 원목 가구를 쓸 수 있을지 뚜닥이 아저씨는 고민한다. “주거 환경이 열악한 곳일수록 원목 가구가 더 필요해요”라고 뚜닥이 아저씨는 말한다.

공방의 원목 가구가 갖는 특징이자 장점은 친환경이다. 그렇다고 공방 가구가 무슨 치유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가구 하나 바꾼다고 해서 갑자기 아이들의 아토피가 치료되고 그런 건 아녜요. 물론 조금 나은 점은 있지요. 나무 자체도 그렇지만 겉에 칠을 어떤 것으로 하느냐도 중요하거든요. 공방 가구는 기본적으로 천연 재료 칠을 많이 하니까, 화학물질도 덜 배출하고 양산 가구의 우레탄 도장 같은 거에 비해 나무가 숨을 쉴 수 있지요.”

열악한 집안 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시키고, 나무가 스스로 숨 쉬는 효과로 인해 내구성도 뛰어나므로 원목 가구를 보급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원목 가구는 비싸다. 그나마 소나무가 재료 중 싼 편이다. 아저씨가 소나무를 고집하는 이유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산수 실력 부족, 탄로 나다!

공방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널찍한 목공 선반 가운데에는 회전 톱날이 윙윙 돌아가고 있다. 원목을 선반에 올리고 치수에 맞게 선반을 움직여 재단해 낸다. 언뜻 보아도 무시무시하다.

목공은 철저히 치수에 의존한다. 부속 하나마다 아주 미세한 오차에 불과하더라도 나중에 전체적인 조립을 하다보면 오차가 누적돼 제품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치수에만 의존하는 것도 안 된다. ‘감’이 중요하다. 감은 경력에 비례한다.

경력에서 우러나온 감이라는 게 대체 뭘까 궁리하고 있는 차에, 긴 부품을 재단하던 뚜닥이 아저씨가 “이건 못 쓰겠는데”라고 중얼거린다. 원목은 기본적인 판재 형태로 가공돼 국내에 들어오는데, 나무 결의 방향을 가늠해 보면 재단했을 때 틀어지거나 휘는 정도를 미리 알 수 있다. 뚜닥이 아저씨의 우려대로 부품을 재단해 보니 가운데가 붕 뜰 정도로 휘었다. 신기한 일이다. 일부러 둥글게 자른 것도 아닌데, 품고 있던 세월이나 풍파의 결 따라 나무는 제 성질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

재단을 마친 부품은 어설픈 일일 조수에게 넘겨진다. 이미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 뚜닥이 아저씨는 전체적으로 상세히 브리핑을 해 줬다. 구석구석 치수와 주의해야 할 점, 예를 들면 나무의 어떤 면을 겉으로 할지에 대한 것들을 말이다. 기자가 해야 할 일은 나사못을 박을 지점을 연필로 표시하는 것이다. ‘뭐 이쯤이야’하는 자신감으로 줄자를 손에 쥔다. 뚜닥이 아저씨는 곁에서 싱긋 웃으며 “얘기했지만 수학 실력이 아니라, 산수 실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좀 쉽게 하는 요령이 있지만 일단 스스로 부딪쳐서 고생해 보세요”라고 말한다. 어쩐지 불길하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감’은 경력에 정비례

자신 있게 연필을 쥐었지만, 계산을 하면 할수록 뭔가 자꾸 꼬이는 것처럼 머릿속이 헷갈렸다. 직전에 표시한 부분이 3센티를 들여서 셈한 건지, 내서 셈했던 건지 아리송하다. 같은 부품을 분명 같은 치수로 표시한 것 같은데, 막상 겹쳐 놓으면 차이가 난다. 얼치기 조수가 사태를 미궁으로 몰아가는 동안 뚜닥이 아저씨는 곁에서 공방 방문 기념이라며 작은 쟁반 두 개를 뚜닥뚜닥 만들었다.

한 시간 반 동안 낑낑거리고만 있자 뚜닥이 아저씨가 그제야 다가온다. 곁에서 작업 요령을 지켜보니 무엇 때문에 헤매고 있었는지가 분명해졌다. 우선 위아래든, 오른쪽 왼쪽이든 기준점을 확실히 정하고 치수를 잴 것, 그리고 나무에 자를 들이대기 전에 도면에서 잴 치수를 확실히 정리해 놓을 것 등이다. 일은 어떤 것이든 ‘기본’에 가장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의 자신감이 콩알처럼 쪼그라든 미궁을 십 분 만에 정리한 뚜닥이 아저씨가 이번에는 전동 드릴을 손에 쥐어 준다. 아까 표시한 부분에 구멍을 뚫는 일이다. 자투리 나무 조각에 몇 번 연습을 해 보고 자세나 각도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나중에 부품을 조립할 때는 나사못을 사용하기 때문에 드릴로 깊이 구멍을 뚫을 필요는 없다. 반 쯤 길을 잡아 주면 나사가 빙글빙글 자리를 잡고 파고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처음에 비뚤게 길을 잡아 놓으면 나사못 역시 기울어져 박힌다는 것이다. 부품으로 쓰는 판재의 두께는 불과 3센티, 까딱 잘못하면 나사가 밖으로 삐져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드릴을 곧추 세우고 위에서 지그시 내리 누르며 구멍을 뚫는다. 뚜닥이 아저씨는 눈으로 봐서 수직인 상태에서 조금 더 몸 쪽으로 기울이고 뚫으라고 요령을 일러 준다. 눈의 위치 상 보기엔 수직 같지만 조금씩 앞쪽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나사 구멍도 뚫었으면 이제 부품 조립에 들어간다. 보통 공방에서 작업할 때는 조립 전에 각 부품마다 칠 과정을 먼저 거친다고 하는데, 칠을 말리는 시간을 고려해 오늘은 조립부터 할 계획이라고 한다. 공방에서 혼자 일하는 뚜닥이 아저씨는 부피 큰 부품을 조립하기 위해 부품 고정용 받침대를 주섬주섬 꺼낸다.

먼저 조립할 부분에 접착제를 바른다. 그리고 받침대의 위치를 조정해 가며 정확하게 위치를 잡고 전동 타카로 시침핀을 박아 임시로 고정시켜 놓는다. 그리고 아까 뚫어 놓은 구멍에 드라이버로 나사못을 박아 넣는다. 얼추 작업의 흐름을 알게 되니 한 쪽 방향을 붙이는 동안 다른 한 쪽에선 연신 나사를 박는다. 혼자만의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척척 호흡이 들어맞는 것 같고 뚜닥뚜닥 왠지 리듬을 타는 것처럼 흥겹다. 나사를 박아 넣은 자리엔 작은 나무조각으로 목심을 박아 넣고 톱으로 깨끗이 도려내 홈을 메워버린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어쩐지 호흡이 점점 맞는 거 같은데?

얼마 뭘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이 쌩~ 하니 흘러가 버렸다. 뚜닥이 아저씨도 그랬단다. 처음 목공 일을 배우기 위해 공방을 찾았을 때, 하루 종일 했던 일은 사포질이었다고 한다. 언뜻 생각엔 단순하고 지루할 거 같은데,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일이 재미있었다. 동료 직원이 왜 퇴근 안 하냐며 묻더란다.

아직 문짝도 안 달았고, 칠도 하지 않은 미완성 작이지만, 의젓하게 세워진 장식장을 보니 어쩐지 뿌듯했다. 목공방 체험 기사를 마감하고 있는 지금도 머릿속 한 편에선 주말을 이용해 마저 완성하고 싶단 욕심이 솔솔 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