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 꼼지락, 예쁜 건 다 만들어요
꼼지락 꼼지락, 예쁜 건 다 만들어요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2.04.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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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 여직원들의 손과 입이 바쁜 이유는?
쳇바퀴 직장생활의 소소한 재미 찾기
[지금 만나러 갑니다] 능률교육 ‘꼼수’

어느 화창한 4월의 목요일, 능률교육 사내 동호회 꼼수 모임을 살짝 엿봤다. 이 달의 테마는 양말 인형 만들기. 원어민 교사로 일하고 있는 줄리 씨의 아이디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만드는 방법을 매뉴얼처럼 프린트해서 회원들에게 돌리고, 손수 이태원의 보세 시장을 돌면서 알록달록한 예쁜 양말들을 사 왔다고 한다.

기본적인 형태는 긴 꼬리와 긴 팔다리의 원숭이 인형이다. 양말 안에 솜을 채워 넣은 봉제 인형인데, 스모크 봉제 식으로 굵은 윤곽선을 넣어 눈 모양을 만든다든지, 귀나 입 모양을 만들어 붙인다든지, 까다로운 부분이 없잖다. 이미 한 개씩 양말 인형을 완성하고 두 번째 만들기에 들어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도가 많이 뒤처진 사람도 있다. 이건 꼬리가 너무 길고, 저건 다리가 너무 짧다며 서로 품평도 이어진다. 환한 봄 햇살처럼 꼼수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방안 가득 부서진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꼼수는 우리가 원조!

최근 이래저래 유행어가 돼 버렸지만, ‘꼼지락 꼼지락 손으로(手) 만드는 건 다 한다’는 의미로 동호회 이름을 꼼수라고 지었다. 2008년 10월에 생겼으니, 34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주)능률교육의 20여 개 동호회와 클럽 모임 중 최장수 모임에 낀다. 회원 수는 모두 10여 명. 가입이나 탈퇴와 같은 까다로운 절차가 자유로운 동호회이기 때문에 각자의 기호나 흥미에 따라 참여 인원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야말로 이름처럼 손으로 만드는 것은 뭐든 만드는 동호회가 바로 꼼수다. 보통 매달 한 가지 테마를 정해서 작품을 끝낸다.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천을 끊어다가 스카프를 만들고, 여성들이 좋아하는 테디베어 인형도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건담이나 케로로 캐릭터인형 같은 프라모델 조립을 했던 적도 있고, 귀걸이나 브로치 같은 액세서리 DIY, 페이퍼 토이, 퀼트, 뜨개질, 수제 다이어리, 목공예품 등도 만들었다.

굳이 꼼수에서 쏟아낸 작품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예쁘고 아기자기한 소품’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매주 한 차례 점심시간에만 활동을 하기 때문에 한 달 만에 끝낼 수 있는 작은 아이템을 찾는다. 또 회원이 모두 여성들이기에 ‘예쁜’ 것에 관심이 많다.

정해진 날짜에 반드시 ‘마감’해야 한다는 부담도 적다. 동호회가 처음 생겼을 때에는 회원들끼리 서로 모임 참여도 독촉하고, 시일 내 작품을 못 끝내면 벌칙도 줬지만, 즐겁게 시간을 보내려고 만든 동호회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아 모든 규칙을 아예 없앴다. 그렇다고 해서 동호회 활동이 방만해지진 않았다. 옆 사람의 진도가 빠르면 은근히 경쟁심이 발동한다. 밤이 늦더라도 눈을 비벼가며 완성해 내야지 속이 시원하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규칙 없어도 ‘꼼수’는 굴러간다

서로 엇비슷한 연배에 비슷한 고민거리를 갖고 있고, 상대하기 편한 동성들끼리의 모임이어서 그런지 목요일 점심시간의 꼼수 모임 역시 화기애애하고 편안한 분위기다. 서로 팀이나 부서가 다른 직원들끼리는 업무 상 관계가 아니라면 얼굴을 접하기도 쉽지 않은데, 동호회 활동으로 교류의 폭이 늘어나서 좋은 것 같다고 회원들은 입을 모았다.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매일 반복되는 업무에 지치고 힘들 때가 있는데, 동호회 활동을 통해 소소한 재미를 느끼거나 동료애를 쌓아 가며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된다.

모임 시간이면 업무 고민에서부터 연애 상담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화제로 손과 입이 동시에 바쁘다. 날씨가 따뜻한 봄날이면 동호회 식구들끼리 소풍을 가기도 한다. 기획홍보팀의 강주현 과장은 “직원들끼리의 교류를 통해 다른 부서의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도 동호회 활동이 일조를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이를 적극 권유하고 지원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매달 회사에서는 소정의 금액을 동호회 활동비로 지원하고 있는데 꼼수의 경우 대부분 재료를 구입하는 데 사용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꼼수의 동호회 운영을 총괄하는 회장의 임기는 불과 한 달이라는 것이다. 매달 초 회원들 중에서 돌아가며 회장을 정하면, 아이템을 정하거나 재료를 구하고, 비용을 정산하는 등의 총무 역할까지 1인 다역을 맡는다. “누군가 책임지는 자리를 맡아야 한다는 건 또 다른 부담거리를 만드는 셈이잖아요”라고 한 회원이 거든다. 자연스럽게 순번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관심 있는 아이템이 생길 때는 자발적으로 모임을 누군가가 주도한다.

이렇듯 공식적으로는 ‘무규칙’을 표방하는 꼼수지만 나름의 룰과 관성으로 데굴데굴 잘 운영되는 동호회다. 회원들은 “나름 사내에서 가장 활동이 왕성한 동호회 중 하나”라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특히나 완성작을 동료 직원들에게 선 보였을 때 꼼수로 온 회사의 관심이 집중된다. 아기자기한 장식품이나 귀여운 인형을 탐내는 사람들도 많다. 보통 완성한 작품들은 누군가에게 소중한 선물로 쓰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대부분 회원들이 자기가 만든 것을 곱게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을 쪼개서 만드느라고 낑낑댔는데, 도저히 아까워서 못 주겠더라고요.”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어린이단체 기부부터 출산 직원 깜짝 선물까지

그렇다고 꼼수의 활동이 항상 야박한(?) 것만은 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회원들이 털실 뜨개질로 신생아 모자를 만들어서 아동구호 단체인 ‘세이브 더 칠드런’에 기부하기도 했다.

회원들의 후일담에 따르면 기존의 활동에 비해 기부용 모자 뜨기 활동은 경쟁이 더욱 치열했다. 빈곤국 아기들을 돕는 의미 있는 기부 활동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욱 의욕 백배했음은 분명한 일이겠고, 각자의 뜨개질 실력은 편차가 있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악착같이’ 모자를 떴다. 한 회원은 한 달 동안 20여 개의 모자를 뜨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꼼수의 창립 멤버기도 한 중고등사업팀의 한영심 과장에게는 개인적으로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도 있다. 2년 전 예쁜 딸을 출산했을 때 꼼수의 회원들이 모여서 밤을 새가며 배냇저고리며 손 싸개, 모자, 양말들을 만들어 선물했다. 사전에 한 마디 언질도 없이 산후조리 중인 한 과장에게 깜짝 선물을 보내 왔는데, 그때 선물을 끌러보며 느꼈던 벅찬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거란다.

꼼지락 꼼지락, 그 동안 꼼수에서 만들어낸 작품들을 한 회원이 취재를 위해 조심스레 가져 왔다. 한 데 모아 놓고 보니 그야말로 다양각색이다. 꼼수 회원들이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회사 차원에서라도 작은 공간을 얻어서 그동안 만든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매달 동호회 활동보고 겸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에 작품 사진을 꼬박꼬박 올리기도 하지만, 그동안 한 땀 한 땀 정성껏 만든 작품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