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몸’ 실업자들의 뭉클한 메시지 - 풀몬티
‘맨몸’ 실업자들의 뭉클한 메시지 - 풀몬티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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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립 속에 희망이 있는 영화

 

 

여자 연예인들의 연이은 누드영상으로 인해 이제 옷을 벗는다는 것도 하나의 상업적인 문화산업이 되었습니다.

큰 반향을 일으킨 초기와 달리 이제는 누가 누드집을 내든 많은 사람들이 시큰둥해 하고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질적 수준을 평가하는 나름대로의 혜안을 가진 꽤 깐깐한 대중도 많이 생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서 누드는 어디까지나 몸매 좋고(?) 자신감 넘치는 일부 연예인들의 소유물일 뿐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낯섭니다.


누드를 찍는다는, 혹은 찍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문득 생각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비록 생계를 위해 스트립쇼를 하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찾는, 그리고 희망을 전염시키는 영화, 바로 <풀몬티>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닥쳐온 실직
영국어로 ‘옷을 몽땅 벗는다’는 뜻의 풀몬티는 1998년 아카데미 4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음악상을 수상한 영화로, 실직한 철강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여성 관객을 위한 스트립쇼를 벌이기까지의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풀몬티>는 단순히 남자들이 옷을 벗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옷을 벗어야만 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공감하게 합니다.
하루하루 성실히 일하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것이라 믿는 평범한 소시민에게 ‘실업’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될 수도, 절망이 될 수도, 그리고 삶의 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은 또 어떻습니까. 버거운 마음의 짐,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간의 불화까지 남의 일일 것이라고 위안하면서 살던 것들이 하나 둘 현실 앞에 펼쳐지는 순간에 느끼는 막막함은 얼마나 클까요?
이처럼 ‘실업’은 우리 삶에서 결코 유머러스해질 수 없는 큰 아픔임에 틀림없습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1990년대 초 대처정부 시절 여러 탄광과 제철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많은 실업자들이 양산되었고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어 일자리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후반 불어 닥친 IMF 관리체제를 시작으로 그동안 생소하기만 하였던 정리해고, 명예퇴직, 노숙자 같은 단어들에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고 더욱이 대학까지 마친 열혈 젊은이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해 방황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직업 잃은 가장들의 절박한 선택
하지만 실업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노동자와 사용자가 존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속되어온 것이며 앞으로도 누군가는 직장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할 의사가 충분히 있는데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실업자로 지내야 하는 사람들, 특히 일시적인 실업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만성적인 실업상태가 지속되는 사람들에게는 가족의 시선, 세상의 시선이 무척 부담스럽게 다가옵니다.


<풀몬티>의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6개월째 실직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지 못하고 회사에 출근하는 척하며 하루 종일 거리를 배회하는 제럴드, 실직한 상태에서 전 부인에게 아이들의 양육비 지급 문제로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는 가즈, 그리고 삶의 의욕과 자신감을 잃어버린 데이브까지.


그러던 어느 날 취업알선센터에서 만난 옛 동료가 여성들을 위한 스트립 쇼 제안을 합니다. 물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리허설 도중 풍기문란죄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하고 온 동네에 소문이 퍼져 도저히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게 됩니다.하지만 이미 많은 여성관객들이 호기심으로 공연티켓을 구입하는 바람에 공연을 취소할 수도 없게 되자 이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트립쇼를 열기로 하지요. 물론 공연은 관객들의 환호 속에 대성공을 거둡니다.


생계를 위해 옷을 벗는 절박한 상황, 그리고 직업을 잃은 가장들의 어설픈 춤동작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용기 잃지 말라는 따뜻한 당부
하지만 <풀몬티>는 ‘맨몸’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남자들의 의기투합만이 돋보이는 영화는 아닙니다. 혹여나 우리 주변에 일자리를 잃거나,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마른 어깨를 두드리며 용기를 잃지 말 것을 당부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건넵니다.


영화에서처럼 현실의 우리들이 실업이라는 심각한 ‘사건’을 서로 격려하며 웃어넘기지 못하는 것은 일을 한다는 것, 직업을 가진다는 것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큰 탓일 것입니다. 하지만 보다 더 높이 날기 위한 날갯짓, 그리고 밝은 내일을 위한 희망의 전주곡쯤으로 실업을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쉽진 않겠지만요.

 

 최영순_중앙고용정보원 선임연구원 withys@work.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