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민은 집으로, 노동자는 공장으로
철거민은 집으로, 노동자는 공장으로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2.05.22 16:5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 석가탄신일 앞두고 밥줄을 사면해야

2009년은 잔인하였다.

설을 코앞에 둔 날, 서울 한복판인 용산 남일당에서는 철거민이 불꽃 속에 사라졌다. 철거민의 요구는 밥줄이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며 공권력의 강제진압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공권력은 밥줄이 걸린 목소리를 도심 테러리스트로 취급했다.

그해 5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터인 평택공장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파업을 벌였다. 77일 동안. 이들의 요구도 밥줄이었다. “함께 살자”며 공권력의 진압작전을 그만두라고 요구했다. 역시 공권력은 밥줄이 걸린 목소리를 무시했다. 헬기까지 동원하여 일터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그 공포는 노동자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22명이 숨졌다.

▲ 5월 22일 오전,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쌍용차 한상균 전 지부장과 용산참사 구속 철거민, 부처님 오신 날 사면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국무총리실에 사면 촉구 시민 서명 용지를 전달하러 민원실로 향했다. ⓒ 오도엽 객원기자 dyoh@laborplus.co.kr

생존권은 법 위에 존재한다

공권력은 지켜져야 한다. 억울한 이를 위해, 약한 이를 위해, 차별받는 이를 위해 시민들이 앞장서서 공권력의 권위를 살리고 그 힘을 존중하며 지켜야 한다. 공권력이 무너지는 순간, 사회 혼란이 일어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고 서러운 이들이 감수한다. 바로 시민의 밥줄, 생명을 지키는 게 공권력의 역할이다.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법 위에 존재할 것은 생명 밖에 없다. 생명은 어떤 체제, 권력보다 앞서 존중받아야 한다. 생명을 무시한 법은 어겨서라도 깨뜨려야 맞다. 그게 민주주의의 역사다.

생명의 권리란 바로 생존권이다. 생존권은 법보다 우선한 권리이다. 법 아래에서야 힘을 쓸 수 있는 공권력이 함부로 짓밟아서는 안 된다. 밥줄을 건드는 법과 공권력은 그 자체가 불법이다.

2009년 용산의 철거민과 평택의 노동자는 더 많은 밥줄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나마’ 밥줄을 지키려는 생존 본능이었다. 철거민과 노동자는 건물과 공장을 점거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건물과 공장에 갇힌 것이다. 밥줄과 몸은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다. 이를 분리하려는 힘에 떠밀려 사회의 구석으로 내몰렸고, 끔찍한 죽음의 공포에 아직도 떨고 있다. 

밥줄에 가혹한 법과 공권력
 
용산과 쌍용자동차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상처와 아픔, 그리고 저항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사합의서에 서명을 한 한상균 노조 지부장은 지금 감옥에 있다. 평택공장에서 자동차가 생산되고 있는 지금에도.

용산도 마찬가지다. 남일당은 말끔히 사라지고 새 건물이 치솟지만 철거민은 아직도 감옥에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로 밥줄을 지키려고 저항했던 이들은 한 번도 사면을 받은 적이 없다. 넘치는 밥그릇을 더 채우려고 불법 상속에 탈세를 한 기업인들은 ‘유례없는’ 사면복권이 이루어졌는데도 말이다.

밥줄을 지키려고 만든 법과 공권력이 밥줄을 끊어버리고 있는 셈이다. 밥그릇이 넘치는 이들에게 법은 관대함을 넘어 특혜를 베풀면서 말이다. 법을 법답게 여길 수 없고, 공권력을 재벌의 용역경비로 취급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시민이 나서서 지켜야 할 법과 공권력이 과연 존재하는지 물음을 던진다.

이명박 정부는 법대로를 외쳤다. 공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밥줄을 지키려고 법과 공권력에 맞선 철거민과 노동자들을 아직도 감옥에 가두어 두고 있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법과 공권력의 수호천사가 되려면 법과 공권력이 존중받아야 하는 까닭을 시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뒤늦게라도 시민의 밥줄을 지키는데 법과 공권력이 앞장서야 한다. 그 시작은 용산 철거민과 쌍용자동차 구속자를 석방하는 일일 것이다.

법과 공권력을 바로 세우는 길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지난 5월 1일 조계종 총무원에서는 용산과 쌍용차 구속자들의 사면을 정부에 공식 청원하였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분향소가 있는 대한문 앞에서는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과 용산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와 함께 ‘우선적으로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인 구속철거민과 노동자들의 사면을 촉구’하는 시민 서명을 받았다. 그 수가 5천 명이 넘었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정권 초기에 무리한 법집행과 공권력의 남용으로 역사에 쓰디쓴 상처와 아픔, 그리고 죽음을 남긴 용산과 쌍용자동차 문제는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 출발점은 구속자에 대한 사면이다. 그게 이 땅의 법과 공권력을 바로 세우는 길이다.

이미 이들이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햇수로 세 해를 넘지 않았는가. 철거민은 집으로, 노동자는 공장으로,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밥줄을 사면을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