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은 우리 아닌 노동환경
‘불법’은 우리 아닌 노동환경
  • 김정경 기자
  • 승인 2012.05.3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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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 체불, 폭행…사업장 변경은 불허
고용허가제라는 허울 좋은 족쇄
[2012 마이너리티리포트] 이주노동자의 노동

피부색, 언어, 문화는 달라도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한국경제의 구석진 부분에서 땀 흘리고 있는 숨은 주역들이 있다. 이제 ‘이주’가 아닌 ‘노동자’에 방점을 두고 그들을 바라볼 때가 아닐까?

ⓒ 봉재석 기자jsbong@laborplus.co.kr

노동자요? 인간으로 보긴 하나요?

#1 인도네시아 출신의 임진 씨(가명)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4년 전 처음 한국에 발을 들였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한국어라고는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오기 전 2개월 간 배운 게 다였다.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문제였다. 선장을 비롯한 동료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짧게 섞어 쓰면서 지시를 내렸다. 일을 하는 데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지만 단지 답답하다는 이유로,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너희 나라 말로 혼자 지껄이고 있었다는 이유로 동료들은 임진 씨를 상습적으로 때렸다.

일의 특성상 장시간 바다에 고립된 상황이라 임진 씨가 느꼈던 공포는 더 컸다. 하루는 감기 기운에 열이 펄펄 끌었지만, 동료들은 배려해 주지 않았다. 사정을 이야기 할 엄두도 못 내고 여느 때처럼 일해야 했다.

배 안에서는 위계질서가 엄격했다. 선장은 왕이고, 한국인 선원은 그 다음, 임진 씨를 비롯한 이주노동자는 그야말로 노예였다. 하루 3~4시간만 자고 일했지만, 급여는 늘 최저임금. 이마저도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불규칙적으로 지급받았다.

#2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베트남 건설노동자 180명은 인천신항 컨테이너 하부 축조물 공사에 투입됐다. 최저임금의 시급제 계약, 평균 12시간의 장시간 노동이었지만 묵묵히 일했다. 시공사는 처음에는 이들에게 하루 세끼 식사를 무료로 제공했다. 그러다 갑자기 점심 한 끼만을 무료로 지급하고 나머지 아침, 저녁식사는 급여에서 제하기로 결정했다.

부당함을 느낀 노동자들은 파업에 들어갔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던 것도,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파업에 임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예전처럼 ‘밥을 조금 더 달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불법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은 10여 명의 노동자를 ‘파업주동자’로 몰아 폭력 및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시켰고 검찰은 이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검찰의 무분별한 기소로 노동자들은 ‘범죄자’로 낙인 찍혔다. 인천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이들을 위험인물로 보고 강제퇴거대상에 포함시켰다.

고용허가제, 노동권 보호한다더니

ⓒ 김정경 기자 jkkim@laborplus.co.kr
(사)이주민과함께가 보고한 ‘2011년 상담통계로 본 이주노동자 인권실태’에 따르면 임금문제를 비롯해 산재, 폭행, 체류 등 노동자로서의 기본적 노동권이 여전히 침해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금, 퇴직금, 각종 수당 등에 대한 체불과 사업장 내에서 이뤄지는 폭행은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대표적인 노동권 침해 사례다. (사)이주민과함께의 김그루 실장은 “폭행사건의 경우는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상습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이주노동자들의 개별적인 노동권 침해 사례 뒤에는 항상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이 따라붙는다.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사업장 내에서 인권침해나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결국 참고 일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계약기간이 만료돼 고용을 연장할 때도 사업주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다보니 눈치를 보며 사업주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김기돈 사무국장은 “임금체불, 폭행 문제가 고용허가제와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며 “고용허가제는 2004년 도입당시의 입법취지와는 달리 강제노동을 강요하고, 사업주의 권한을 공고히 하는 구조로 바뀌어 운영돼 왔다”고 말한다.

산업연수생제와 달리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한다고 명시해 놓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도 내국인노동자와 동일하게 노동관계법을 적용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고, 단결권을 포함한 노동3권 역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무리한 단속도 문제다. 실적위주의 단속관행이 이주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집중단속기간을 정하고 단속할당제라고 해서 특정 기간 동안 몇 명을 잡아 넣도록 한다”며 “이 때문에 무리한 단속, 야간단속, 불심검문, 기숙사 침입 등으로 계속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 김정경 기자 jkkim@laborplus.co.kr

Minority   Report  06
 

[고용허가제 현황]

고용허가제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사업체가 적정 규모의 외국인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 고용허가제는 순수 외국인의 고용을 허가하는 일반고용허가제와 외국국적 동포의 고용을 허가하는 특례고용허가제로 구분됨

인력 취업 동향

 - 2011. 12월 말 현재 일반고용허가제 도입인원은 325,503명
 
- 고용허가제 근로자의 고용허용 업종은 제조업(88.4%), 농축산업(5.5%), 건설업(4.1%), 어업(1.9%), 서비스업(0.1%) 등 5개 업종

 - 일반고용허가제에 의한 고용허가 국가는 2011.12월 현재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베트남, 몽골,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파키스탄, 중국, 방글라데시, 키르기즈, 네팔, 미얀마, 동티모르 15개국임
 

* 자료제공: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
 


실질적인 노동권 보장이 필요할 때

이주노동자들은 이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용허가제를 넘어 ‘노동허가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허가제는 프랑스·독일 등 대다수의 유럽국가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로 사업장 변경이 자유롭다. 이주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사업장 변경이 자유로울 때에야 비로소 자기 의사에 반하지 않는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주노동자들도 스스로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노동 3권을 보장해야 한다. 우다야 이주노조 비상대책위원장은 “노조설립은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고, 우리 역시 우리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3권을 실현하기 위해 이주노조를 설립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멈추고 이주노조를 노동조합으로 인정해 달라”고 말했다. 
 

 

[메이저리티에 고함]

“수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이후에 한국사회에서 외국인 혐오증이 심해졌어요. 솔직히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고 무서워요. 한 사람이 저지른 일을 모든 외국인에게 떠넘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_(필리핀 / 체류기간 4년)

“한국말 어려워요.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아직 말 잘 못해요. 그래서 억울할 때 많아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도 우리 말(베트남) 잘 못해요. 똑같아요. 말 못한다고 무시하지 말았으면 해요.” _(베트남/ 체류기간 1년 8개월)

“한국 사람들 애국심 강합니다. 좋지만 너무 심할 때 있어요. 다른 나라 문화도 이해해 주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받아 줘야 해요.”_(베트남/ 체류기간 4년 6개월)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다는 건 노동자들에게 억울해도 참고 일하라는 거죠. 한국도 빨리 고용허가제에서 노동허가제로 바뀌어야 합니다.” _(필리핀/ 체류기간 6년)

“노동3권 보장해준다고 해놓고 이주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없도록 하고, 노동절도 당연히 쉴 수 있는데 회사는 못 쉬게 합니다.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이 현실에서도 지켜질 수 있어야 합니다.” _(태국. 체류기간 8년)

“한국에서는 외국인 안에서도 차별을 합니다. 미국, 유럽사람 좋아하고 우리는 싫어해요. 우리는 가난하고 어렵고 공부 못하고 냄새나고 더럽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잘못된 생각 고쳐야 해요.” _(방글라데시, 체류기간 3년)

“Stop crack down! 강제 추방부터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가족들까지 모두 피해를 봅니다."  _(인도네시아, 체류기간 4년)

“돈 없으면 우리 월급 제일 나중에 줍니다. 회사 어려우면 우리부터 잘리는 겁니다. 한국 노동자들과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월급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 생겨도 이야기 할 데가 없습니다. 공무원들은 사장 편입니다. 우리 말 안 들어 줍니다.” _(베트남, 체류기간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