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니, 조강지처 버린 꼴"
“성공하니, 조강지처 버린 꼴"
  • 김정경 기자
  • 승인 2012.05.3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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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K2 키운 건 팔 할이 신발
그런 우리더러 인도네시아 가라니...
[현장 3] K2코리아 생산직 정리해고

ⓒ 김정경 기자 jkkim@laborplus.co.kr

지난 3월 8일 오전 8시 45분. 국내 아웃도어브랜드 K2코리아(대표이사 정영훈)에서 등산화를 만들어 오던 93명의 노동자들은 관리자로부터 장문의 문자 한통을 받았다. “급변하는 경제현실 속에서 브랜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것이며, 이에 따른 정리절차를 밟아 나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짧게는 4년 ,길게는 16년 간 정년 하나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일했던 평균연령 50세의 노동자들에게는 명예퇴직을 강요하는 문자이자, 사실상 해고통보였다.

처음에는 그저 황당했고, 이내 분하고 억울했다. 그래서 일주일 뒤인 3월 14일, 이들은 노동조합을 결성(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K2지회, 지회장 지영식)하고, 국내 생산라인을 유지하고 고용을 보장해 줄 것을 사측에 촉구했다.

노조의 저항과 여론 악화로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사측은 3차 교섭 자리에서 정리해고 철회와 함께 대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사측이 마련한 대안이이라는 것이 조합원들을 또 한 번 울렸다. 국내 생산라인을 계획대로 폐쇄하는 대신, 노동자들을 인도네시아 공단, 개성공단, 신발개발부, 직영점 판매직으로 전환배치 시키겠다는 것이다.

니나가라, 인도네시아!

ⓒ 김정경 기자 jkkim@laborplus.co.kr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생산라인 아래 뭉친 우리 용역경비 물리친 우리~”

노동절 바로 다음 날인 5월 2일 오후 5시 30분,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K2코리아 본사를 찾았다. 방금 일을 끝마치고 나와 피곤할 법도 한데 K2지회 조합원들은 정문 앞에 모여 ‘파업가’를 힘차게 부른다. 가만히 들어보니 가사가 조금 바뀌어 있다. ‘노조깃발’과 ‘구사대 폭력’ 대신 ‘생산라인’과 ‘용역경비’가 그 자리를 채운다. 이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개사다.

K2지회 소속 조합원 85명은 공장에서 신발을 만드는 생산직 노동자들이며, 정리해고 통보에 반발해 노조를 결성하자 사측은 경비직원을 대폭 채용해 그들의 활동을 감시하게 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해고통보를 받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작년부터 국내 생산 접는다, 인도네시아 간다는 둥 소문이 무성하게 돌았어요. 불안했죠. 우리가 사실이냐고 관리자에게 물으니까 그때 상무가 그러더라고. ‘자기 입에서 나오지 않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모두 소문이다.’ 그래놓고 3월 달되더니 갑자기 정리하는 거야.”

“배신감부터 들었죠. 우리가 어떻게 일해 왔는데요. IMF때 회사 힘들대서 월급도 동결하고 수당, 휴가도 다 반납하면서 시키는대로 열심히 일만 했어요.”

“K2가 지금은 잘 나가서 의류산업이 매출의 주가 됐지만, 사실 시작은 신발이었어. 우리가 만든 신발로 이만큼 큰 회산데. 지금 체제에서도 이윤은 나요. 근데 더 많이 남기겠다고 인도네시아로 간다는데... 지금 상황을 비유하자면 한 마디로 바람나서 조강지처 버리고 간 꼴이지.” 

사측은 5월 31일까지 국내생산라인을 폐쇄하고, 계속 고용을 원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에 한해서 전환배치 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조합원들은 “가족과 삶의 터전이 있는데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 주지 않고 무작정 인도네시아로 가라는 것”이나, “몇십 년 신발만 만들어 온 중년 여성들을 생소한 신발개발이나 판매 영역에 배치한다는 건 사실상 알아서 회사에서 떨어져나가라는 것과 다름없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그렇다면 조합원들이 바라는 건 무엇일까?

“국내 생산라인 유지해 달라는 거예요. 2~3년 전부터 사측이 자연감소 추진해 왔거든요. 그렇게 우리 좀 더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겁니다. 회사가 진짜 어렵다면 우리도 이 상황을 이해하고 인정할 것 같아요. 근데 자기들은 100억 넘게 배당 잔치하면서. 이건 아니라는 거죠.”

“이건 제 생각인데... 우리가 이렇게 막아도 (라인은) 정리 될 것 같아요. 사장님하고 이야기가 잘 되가지고 유지되면 좋고 안 되면 우리 그동안 너무 힘들었으니까 그것만이라도 인정받고 알아줬으면 한다는 거예요. 사장님이 직접 나와서 ‘그동안 고생 많았다. 미안하다’는 진심어린 말 한 마디면 좋은 방향으로 매듭지을 수 도 있는 문젠데….”

빨간 조끼를 맞춰 입고, 오늘도 부당함에 “투쟁”을 외쳤던 그녀들의 바람치고는 너무도 소박했다.

원빈의 미소 뒤에 가려진 것들

ⓒ 김정경 기자 jkkim@laborplus.co.kr
K2코리아는 등산화를 비롯한 등산용품 일체를 생산하는 국내 3위의 아웃도어 기업이다. 2007년 납세모범 기업, 2009년 한국산업브랜드파워 등산용품 부문 1위, 2011년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에 선정됐을 만큼 외부에 비쳐지는 브랜드 이미지또한 좋다.

하지만, K2지회 조합원들이 털어놓은 근로조건과 근무환경은 그늘진 K2코리아의 또 다른 얼굴이다.

생산직 노동자들은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하루 8시간을 일한다. 점심시간으로 1시간이 책정돼 있지만, 실제로 쓸 수 있는 시간은 40분뿐이다. 나머지 20분은 사측이 임의로 10분씩 나눠 오전, 오후 각각 1차례씩 휴식시간으로 배정했기 때문이다.

공장 내에서 점심을 먹을 공간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그래서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분진과 본드 냄새가 가득한 공장 바닥에 박스를 깔고 먹어야 했다. 한 조합원은 물은 되도록 마시지 않는다고 말한다. 쉴틈없이 돌아가는 제조공정에 맞추려면 화장실을 다녀 올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냉온풍기가 뭐야. 환풍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걸요. 더운 여름에 동료가 쓰러진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대책이라고... 김치 담는 큰 고무대야 있죠. 거기에 물이랑 얼음을 담아서 가져다줬어요.”

“왜 안전검사 같은 거 나오잖아요. 본드 만지는 사람은 냄새측정하고, 기계 다루는 사람은 소음측정하고 하는 거. 측정기를 우리 몸에 꽂아주고 가자마자 우리 관리자들이 들어와요. ‘당장 빼서 밖에다 내 놓으라고’ 그때 우리는 정년퇴직까지 할 생각으로 일해서 걸리지 않게 하려고 다음부터는 관리자들이 말하기도 전에 스스로 (측정기) 빼놓고 그랬어요.”

연차가 존재했지만 정작 이들은 아들이 군대를 갈 때도, 시부모님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딸아이가 대학을 졸업 할 때도 써 보지 못했다. 휴가 역시 공장이 돌아가는 상황에 따라 사측이 임의로 지정하곤 했다. 그렇게 공장에서 기계처럼 붙박여 매일 1,500족(3,000개)의 신발을 만들었다.

“하루 생산량을 개인이 담당해야 할 족 수로 나눠요. 1인 당 45족~48족을 해야 한다는 계산인데, 그 할당량 채우려면 진짜 숨 쉴 틈도 없어요. 관리자들은 생산라인에 초시계 들고 다니면서 재고, 안 나오면 추궁하고 그랬죠.” 

조합원들은 하나같이 손톱이 휘어져 있었고, 갑상선부터 근골격계 질환을 하나씩은 앓고 있었다. 직업병이라고 했다. 

“바보 같았죠. 그땐 야근도 재미있었어요. 자부심도 느끼고 열심히 일했는데…, 진짜 너무 순진했던 거죠.”

한 조합원은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노조활동, 가슴이 뛴다

조합원들은 ‘동지’라는 호칭이 아직도 낯설고 쑥스럽지만 그래도 처음 하는 노동조합 활동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 동안 찾지 못했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면서 자신감도 생겼고 하루하루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노동절 날, 대로랑 시청 앞을 행진하는 데, 정말 자유를 느꼈어요. 짜릿하더라고요. 와! 내가 언제 이런 걸 해 보겠냐 싶기도 하고. 출세했다 했죠.”

“이젠 유행가는 나오지도 않아요.(웃음) 새벽 3시에 일어났는데도 투쟁가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조합원들의 변화는 이 뿐 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치참여’에도 ‘연대’에도 눈을 떴다.

“노조가입하고, 처음으로 이번 총선 때 투표했어요. 남편이랑 같이 가서 우리 지지해줄 수 있는 후보로요.”

“우리 집회 때 중외제약(JW노조) 노조에서 연대하러 와 줬어요. 그래서 박카스 몇 박스 사들고 개인적으로 와이프랑 직접 찾아 갔었는데, 인도에 돗자리를 깔고 자고 있더라고요. 우리 자식 뻘 되는 아이들이. 마음이 너무 아팠죠. 그래서 우리 노조에서 떡이라도 한두 말 해 가지고 다시 찾아 가려고요.”

유월, 등산하기 좋은 계절이다. 오래 걸어도 발이 편안하다는 가벼운 등산화를 신고 산길을 걸을 때, 한번쯤은 편안한 등산화를 만들기 위해 불편한 노동을 하고 있는 그들을 떠 올려 봤으면 한다. 잡지가 나올 유월에도 성수동 K2 공장의 생산라인은 여전히 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