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공동경영 7년 만에 파국
노사공동경영 7년 만에 파국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2.05.3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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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영 약속했지만 마지못해 약속 지켰을 뿐”
약속 지켜라 vs 경영권 간섭 마라
[현장 1] 골든브릿지 파업, 왜?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 2005년 당시 노조의 지지 속에 이상준 회장이 이끄는 골든브릿지는 브릿지증권을 인수해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을 출범시켰다. 이상준 회장은 ‘노사공동경영’을 약속했고, 청산 위기에 처한 기업은 노사의 공동경영으로 회생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2년 5월, 사무금융서비스노조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는 한 달 가까이 파업을 지속하고 있다. 골든브릿지 노사는 극한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노사공동경영으로부터 극한 갈등까지, 골든브릿지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노사공동경영으로 위기 극복

지난 4월 23일,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지부장 김호열, 이하 골든브릿지지부)는 단협 회복, 연차수당 지급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은 5월 21일 현재 29일째를 맞고 있다. 골든브릿지지부의 가장 큰 요구는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7년 전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이 출범하던 당시, 이상준 회장이 약속했던 ‘노사공동경영 약정’을 지키라는 것이다.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전신은 1954년에 설립된 대유증권이다. 대유증권이 1998년 영국계 리젠트퍼시픽그룹에 넘어간 뒤 상호가 대유리젠트증권으로 바뀌었다가, 2002년 일은증권을 합병하면서 다시 브릿지증권으로 변경됐다. 리젠트퍼시픽그룹은 브릿지인베스트먼트홀딩스(BIH)의 자회사다.

이후 BIH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사옥 매각과 유상감자 등을 통해 약 2,400억 원을 챙겼다. 그러나 BIH는 국부 유출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2004년에는 주주들의 이익실현을 핑계로 브릿지증권 매각을 추진했지만 노조의 반발과 금융감독위원회의 불허로 무산됐다.

매각이 무산되자 BIH는 청산절차를 진행하려 했고, 노조는 청산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당시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인 골든브릿지를 이끌던 이상준 회장은 노조의 요청에 따라 브릿지증권을 인수해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을 출범하면서 ‘노사공동경영 약정서’를 체결했다.

당시 증권노조 브릿지증권지부가 이상준 회장을 끌어들인 것은 이상준 회장의 노동조합 활동 경험 때문이었다. 1995년 당시 보험노련(이후 현 사무금융연맹으로 통합됨)의 상근간부로 활동했던 이상준 회장을 브릿지증권지부는 신뢰했다. 이상준 회장이 등기·사외이사를 노조 추천자로 선임하는 등의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노사 공동경영 약정서’에 서명할 때만 해도 노조의 선택은 틀리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약속은 깨지고 노사는 등 돌리고

하지만 7년이 지나는 동안 골든브릿지투자증권에서는 모든 게 반대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골든브릿지지부는 사측이 조합원의 탈퇴를 종용했다며 단결권침해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이에 대해 사측은 이의신청을 제기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1심에서는 골든브릿지지부가 단결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한 11명 중 1명에 대해 경영회의에 참석해 기밀을 취급한다는 이유로 사용자성이 인정된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골든브릿지지부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사용하지 않은 연차에 대해 연차수당 청구소송을 냈고, 현재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연차수당 청구소송에 참여한 조합원은 150명이며 금액은 15억 원에 이른다.

BIH가 브릿지증권 청산을 시도하며 직원들에게 2억여 원씩을 지급하겠다고 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노사공동경영 약정서를 체결해 공동인수한 결과 치고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처음 브릿지증권 인수 당시 노사가 체결한 노사공동경영 약정서에는 ESOP(우리사주신탁제도. 회사가 일정액을 출연해 펀드를 조성하고 자사주를 사들인 뒤 수익을 나누는 제도)를 통해 전 직원이 우리사주를 소유하도록 한다는 약속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인수 후 3년이 지난 2008년에야 지켜졌다.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은 2008년부터 3년에 걸쳐 50억 원을 우리사주조합에 무상출연키로 했다.

골든브릿지지부는 “이마저도 당시 강하게 요구하자 그때서야 마지못해 실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실행방식을 놓고 충분히 논의하다 보니 시간이 걸린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골든브릿지 노사가 결정적으로 등을 돌리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 사측이 단협 일방해지를 통보하면서부터다. 당시 사측은 “노조가 단협을 이유로 인사와 경영권에 관여하려 한다”면서 “업계 수준에 맞는 노사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단협을 해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는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제도 정립을 요구한 것일 뿐, 업계 수준을 넘어서는 과도한 요구는 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단협해지의 효력은 통보 후 6개월이 지난 4월 16일에 발생했다. 단협 해지 통보 이후 노사간 대화의 진전은 없었다. 결국 골든브릿지지부는 지난 4월 23일부로 총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이후 노사간 대화의 자리가 두 차례에 걸쳐 만들어졌으나, 노사는 서로 간의 입장 차이만을 또다시 확인해야 했다.

파업 이후에도 노사간의 공방은 이어지고 있다. 사측은 “고객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대체인력을 투입하려 했고, 골든브릿지지부는 법원에 불법 대체근로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사측은 이에 맞서 핵심인력에 대해 쟁의행위 참여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상태다.

여기에 골든브릿지지부는 이상준 회장에 대해 5대 의혹을 제기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 부실계열사(골든브릿지저축은행) 부당 지원 ▲ 이 회장이 설립한 한-베재단 부당지원 ▲ 회사 리조트의 무단 점거 ▲ 브랜드 사용료 갈취 ▲ 법인카드 사적 이용에 대해 해명하라는 것이다.

▲ 김호열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이상준에 속았다

파업이 한 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지만 노사간 입장 차이는 좀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파업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골든브릿지지부는 “회사가 ‘노조파괴 전문가’로 알려진 창조컨설팅과 김앤장 법무법인을 앞세우고 있다0117고 주장한다.

표면적으로는 단협을 둘러싼 갈등으로 보인다. 골든브릿지지부는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의 통일단협(임금 2%+90만 원 인상, 단협 3개안 수정)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임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노조활동을 제한하는 7개의 요구안을 수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부단협에 있어서도 골든브릿지지부가 요구하고 있는 리테일본부 성과급제 개선과 제도 합리화, 복리후생 개선에 대해, 사측은 단협개정을 위한 쟁의행위 불가 및 위반 시 해고, 정리해고 시 노조와 사전 합의를 협의로 변경, 계열사 간 전적 및 원격지 발령 시 노조와의 사전 협의 및 본인 동의 조항 삭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사측의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통일단협 및 지부단협 해지는 취소하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노사공동경영 약정서를 체결할 만큼 사이가 원만했던 노사는 왜 이렇게 등을 돌리게 됐을까? 이와 관련 처음 브릿지증권 인수에 이상준 회장을 끌어들인 당사자이기도 했던 장화식 사무금융노조 사무처장은 “이상준 회장에게 완전히 놀아난 것”이라고 표현했다. “노조활동 경력을 믿고 이상준 회장을 끌어들였지만, 이상준 회장은 처음부터 엄연한 자본가였다”는 것.

장화식 처장은 “이상준 회장이 노사공동경영 약정서를 자청해서 들고 온 것도 당시 긴가민가했던 조합원들의 마음을 돌리려는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골든브릿지가 브릿지증권을 인수하던 당시, BIH는 “브릿지증권을 청산하면 직원들에게 2억여 원씩을 배분하겠다”다고 제안했고, 조합원들도 그런 제안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브릿지증권을 인수하기만 하면 당장 투자액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이상준 회장은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노사공동경영 약정서’였다는 것이다.

결국 브릿지증권을 인수해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이 출범했고, 노조는 약정서 상의 약속에 법률적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 이를 단협으로 체결했다는 것이 장화식 처장의 설명이다. 그런데 단협 상의 약속을 지키는 게 부담이 됐던 이상준 회장은 결국 지난해 단협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노조파괴 전문가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노조를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흘러간 데에는 이상준 회장이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을 출범시킨 이후 주변에서 이 회장을 추켜세우며 ‘떡고물’을 바랐던 과거 노조활동 당시의 선·후배와 동료들도 한 몫 했다는 것이 장화식 처장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이들을 피해 지난 2008년 필리핀으로 도피성 외유를 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상준 회장에 대한 노조의 믿음이 잘못된 것이었든, 혹은 이 회장의 성공을 부추기며 떡고물을 받아먹은 인사들의 잘못이든, 사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노사가 7년 전으로 돌아가 ‘노사공동경영 약정서’에 서명했던 초심으로 사태를 해결할 가능성도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위기극복 사례는 이처럼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골든브릿지 노사의 이번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든, 노사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원만한 합의를 바탕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바랄 수 없게 된 것으로 보인다. 상생의 노사관계를 만들고 이어가기 위해 노사 당사자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골든브릿지 사례는 타산지석의 교훈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