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창공의 여왕’을 찾아라
사라진 ‘창공의 여왕’을 찾아라
  • 참여와혁신
  • 승인 2012.07.04 16:21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멜리아 에어하트’ 실종 75주년
7월 2일부터 탐사작업 다시 시작

여성 최초로 대서양 횡단비행에 성공한 조종사, 아멜리아 에어하트. 미국 대공황 시기 실의에 빠졌던 사람들은 그녀의 비행에 꿈과 용기를 얻었다. 이 때문에 1937년 7월 2일, 세계일주에 나선 그녀의 소식은 큰 충격을 줬다. 미국 정부가 나서 수사를 벌였지만 비행기 잔해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그녀가 얼마간 생존하다가 사망했다’는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품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는 그녀가 사라진 지 75년이 되는 오는 7월 2일 에어하트의 흔적을 찾는 탐사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 영화 ‘아멜리아’ 공식 홈페이지

그녀가 사라졌다

“연료가 떨어졌다.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

남태평양 하늘을 날던 비행기 록히드 엘렉트라에서 미모의 여성 비행기 조종사가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이 소식은 미국 해안경비대 이타스카호로 전해졌지만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937년 7월 2일의 일이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은 여성 최초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였다. 23살 때 캘리포니아 롱비치 비행장에서 딱 10분간 타 본 비행기 때문에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바뀐 여성이다.

에어하트는 23년 인생 중 10분 동안의 짧은 시간 동안 경험한 비행 이후 ‘비행기는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녀는 곧바로 온갖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고 비행 수업을 받는 등 비행기조종사의 길에 도전했다. 뚜렷한 꿈이 있고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그녀는 남자들도 하기 힘들다는 비행수업에 빠르게 적응했고, 마침내 1922년 여성 최초로 고도 1만 4000피트(약 4276m) 비행에 성공했다. 1923년에는 국제 항공연합이 주는 비행사 자격을 취득하고 세계에서 16번째 여성 비행사가 됐다.

비행기조종사의 꿈을 이룬 그녀는 화려한 기록을 세우기 시작한다. 1928년에는 출판업자 조지 파트넘의 연락을 받고 2명의 남자 조종사가 운전하는 비행기에 탑승해 대서양 횡단에 성공했다. 세 사람은 미국 뉴펀들랜드에서 영국의 웨일즈까지 20시간 40분 만에 도착했고, 에어하트는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여자 비행사가 됐다.

1932년이 되자 에어하트는 자신의 손으로 ‘록히드 베가호’라는 비행기를 조종해 대서양을 건넜다. 미국 퍼틀랜드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14시간 56분 만에 북아일랜드의 한 농촌에 도착했다. 이 비행으로 그녀는 ‘최초 여성 단독비행’과 ‘대서양 최단 시간 횡단’이라는 두 가지 기록을 더 세우게 됐다. 1935년에는 하와이에서 캘리포니아까지의 쉬지 않고 날아 ‘하늘의 퍼스트 레이디’라는 별명도 얻었다.

39세가 된 에어하트는 1937년 6월 1일부터 적도 주변을 도는 긴 항로를 이용해 세계일주를 하는 계획을 세웠다. 항법사 프레드 누넌과 함께 록히드사의 쌍발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한 그녀는 6월 한 달 동안 대서양을 건너고 아프리카와 인도·미얀마·싱가포르·자바·오스트레일리아를 지난 후 뉴기니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하지만 뉴기니를 출발해 남태평양 키라바시의 작은 섬인 하울랜드로 향하던 중 실종되고 말았다.

ⓒ 영화 ‘아멜리아’ 공식 홈페이지
열정과 도전정신을 찾아서

사고 직후 미국 정부는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시체는 물론 비행기 파편이나 유품도 찾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사고 후 2주일이 지나자 에어하트를 찾는 일을 공식적으로 중단했다.

하지만 미국 전체의 영웅이었던 에어하트를 찾는 민간단체는 있었다. 초기에는 특별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몇 년 전부터 실종사건의 실마리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20년이 넘게 에어하트의 실종을 조사해온 미국의 비영리단체 ‘역사적 항공기 회수를 위한 국제그룹(TIGHAR)’은 하울랜드섬 남쪽 무인도에서 1930년대 신발과 알루미늄판 등을 근거로 실종된 두 사람이 ‘니쿠마로로’라는 섬에서 살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탐사팀은 이 섬을 10차례 탐사했고, 2010년 12월에는 여성용 화장품 갑과 거울 조각, 작은 미국산 병 등 1930년대 물건으로 보이는 것들을 찾아냈다.

올해 3월에는 에어하트를 수색하면서 찍은 사진을 분석해 추락 지점으로 보이는 장소를 찾았다. 에어하트 실종 1달 정도 후 영국 탐사팀이 남태평양의 키리바시 니쿠로마마섬 근처를 찍은 사진에서 비행기 착륙장치로 추정되는 물체가 있었던 것이다. 해안가를 찍은 흑백사진 왼쪽에 흐릿한 검은 물체가 수면 밖으로 나와 있었고, 이는 에어하트가 탔던 비행기 착륙장치의 받침대, 바퀴 모양과 같았다.

이런 증거들을 통해 TIGHAR은 에어하트와 누넌이 니쿠로마마 인근 암초에 불시착하고, 이 섬에서 1주일 정도 생존했다고 추정한다. 비행기는 높은 파도에 씻겨 바다로 내려갔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이런 근거를 토대로 릭 길레스피 TIGHAR 사무총장은 착륙 장소로 추정되는 주변의 심해를 탐사할 계획을 밝혔다. 탐사전문가와 과학자 등 20여명으로 구성된 팀은 니쿠로마마섬 일대는 인근 해역까지 멀티빔 소나, 원격 해양탐사 장치 등을 동원해 샅샅이 뒤진다는 것이다.

탐사팀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지원을 받고 있다. 클린턴 장관은 에어하트를 미국에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모델이라고 언급한다. 대공황에 허덕이던 전 세계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7월 2일 시작되는 탐사를 계기로 에어하트의 열정과 도전정신이 다시 한 번 세상에 지쳐있는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여자였지만, 비행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꿈을 꿨고 이뤄냈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또 도전했다. 끝없이 도전하는 그녀의 꿈과 열정을 통해 지금 우리 모습을 돌이켜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