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사장님’ 아닌 ‘노동자’
우린 ‘사장님’ 아닌 ‘노동자’
  • 김정경 기자
  • 승인 2012.07.0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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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3권·법적 노동자성 인정 안 돼
열악한 근로환경 호소할 곳조차 없어
[2012 마이너리티리포트] 특수고용직의 노동

특수고용직. 이들에게 강제로 씌워진 ‘특수고용이란 가면’이 벗겨질 때, 우리는 ‘노동자의 맨얼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obrplus.co.kr


Minority   Report  07
고용허가제 현황

특수고용직이란

특정 사업주와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계약 또는 도급계약을 체결한 후 노동을 제공하며, 실적에 따른 수당을 받는다. 현행법상 개인사업자로 규정된다.

특수고용노동자에 관한 보고서 

   - 규모 : 58만 4천명 
 
  - 분야 : 덤프· 레미콘· 굴삭기 기사, 보험설계사, 간병인,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 교사, 택배, 퀵서비스 기사 등 
 
  - 성별 : 여(66.8%), 남(33.2%) 

  - 평균근로시간 : 주당 39.3 시간(정규직 45.1시간)  

  - 월평균임금 : 182만원(정규직 평균 272만원, 정규직임금의 65.4%)

  - 임금지급방식 : 실적급제(100%)

  - 사회보험가입비율 : 국민연금(4.3%), 건강보험(6.3%), 고용보험(6.7%)

  - 임금노동자 평균 : 국민연금(66.6%), 건강보험(69.7%), 고용보험(61.4),   

  - 기타근무조건 : 퇴직금(1.6%) 근로계약서면작성(41.6%)

- 출처 : 경제활동인구조사부가조사, 통계청(2012.3)


‘특’히 ‘고’달파서 특고(特苦)라네

ⓒ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
#1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김진성(가명) 씨는 매달 실적 압박에 시달린다. 요즘은 다소 덜해지긴 했지만, 회사는 설계사들에게 강제로 목표를 설정해주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추궁 한다. 가족, 친지를 비롯한 주위 알만한 인맥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다. 할 수 없이 진성씨는 지인들의 이름만 빌린 채 자신의 월급으로 새 보험계약을 체결한다.

계약이 성사됐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계약기간이 2년이 넘지 않았는데 해약이 될 경우, 받았던 수당을 회사에 도로 토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벌점까지 붙는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약사실을 숨기고, 남은 기간을 자기 돈으로 메운다.

동료들은 부당한 처우와 지나친 실적강요, 고객들의 성희롱에 시달리다 입사 1, 2년 만에 회사를 떠났고, 그 자리는 또 다른 신입직원들로 채워진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손해 보는 게 없다. 모든 책임은 설계사가 고스란히 떠안기 때문이다.

진성 씨는 ‘개인사업자’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자유는 없고 책임만 강요되는 노예같은 노동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하고 일한만큼 정당하게 수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 방문 학습지 교사로 일하고 있는 정유진(가명)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유진씨 역시 회사에서 할당해준 일정 회원 수를 채워야 한다. 신규 회원 유치는 하늘에 별따기지만, 기존 회원들의 이탈은 왜 이리 쉬운지. 이 때문에 유진씨는 ‘유령회원’을 만들어 내야했다.

구독을 끊은 학생을 구독중인 학생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물론 회원비는 유진 씨의 월급에서 나간다. 회원수에 따라 수수료가 달라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회비 대납부터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할 때마다 드는 교통비, 회원 유치에 사용되는 판촉비, 식대 등을 제하면 유진씨의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한 달에 겨우 60~80만원 정도. 남들 눈엔 허울좋은 ‘선생님’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스트레스와 피로, 돈 걱정에 하루하루가 전쟁같다.

#3 고은님씨(가명)는 서울소재 종합병원에서 간병노동자로 8년 째 일하고 있다. 은님씨는 환자의 이동부터 식사, 배변, 투약까지 입원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조하는 업무를 한다.  하루 24시간, 주 6일의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지만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을 받는다. 휴게공간과 휴식시간은 따로 없다. 병상 옆 간이침대가 은님씨의 자리지만 보호자들이 면회를 오면 내주고 병원 복도를 어슬렁거릴 수 밖에 없다. 환자의 생활이 우선이다 보니 식사시간은 대중이 없고, 자신의 건강을 돌볼 겨를도 없다.

직업병에 시달려도 산재보험 적용은 꿈도 꾸지 못한다. 가끔씩 ‘이건 아니다’ 싶지만, 간병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감독하는 곳도, 어려움을 호소할 곳도 없다. 은님씨는 우선 긴 노동시간과 저임금, 불안정한 고용 문제만이라도 현실적으로 개선된다면 간병노동자들의 숨통이 조금은 트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고

ⓒ 전국건설노동조합
특수고용직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개인사업자, 자영업자, 사장님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일컬어지고 있지만, 정작 ‘노동자’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일반 노동자들처럼 근로계약의 형태가 아니라 위임 또는 도급계약을 주로 체결한다는 점 ▲ 실적에 따른 성과급이 지급된다는 점 ▲ 근로시간과 장소에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문제는 노동자냐 그렇지 않냐는 여부에 따라 이들이 당면하게 될 노동 조건과 권리가 180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현재 법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노동자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인 노동 3권과 산재보험의 전면적인 적용을 받지 못한다. 이로 인해 장시간 노동, 저임금, 불안정 고용의 3중고에 시달리는 한편, 위험에 노출된 채 일하고 있다.

전국건설노조 인천건설기계지부 이병기 부지부장은 “레미콘 회사들이 새벽에 물량을 요구하다보니 기사들은 보통 새벽 2시에는 집에서 나와야 한다”며 “이렇게 일하지만 1회전에 겨우 3만 5000원 받는다. 1억원이 넘는 레미콘 한 대 가격을 빼려면 최소 10년을 일해도 안 된다.”고 건설현장의 특수고용직들의 장시간, 저임금노동의 문제점을 이야기 했다.

한편 노조설립과 활동에도 제약이 따른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보험모집인노조는 지난 2000년 영등포구청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구청은 노동부로 문의를 했고, 노동부는 보험모집인노조의 설립신고를 반려했다. 보험모집인을 노동자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비록 설립신고는 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했던 설계사들이 하나 둘 노조로 직접 찾아왔고. 2003년에는 7,000명의 조합원이 모였다.

고성진 위원장은 “조합원이 계속 늘어가고, 회사 내에서 노조의 목소리가 높아지니까 회사들이 팀을 꾸려 노조를 없애는 활동을 펼쳤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개별적으로 노조탈퇴를 강요한다거나, 급여가 잘못 나갔다는 명목으로 설계사들의 통장을 걷은 뒤 조합비를 낸 사람을 색출하는 작업도 했다”며 그간의 노조 탄압을 이야기했다.

보험모집인 노조는 현재 30명 남짓의 조합원만이 남은 상태며 아직도 설립증을 교부받지 못하고 있다. 건설노조 역시 건설기계분과 내 덤프, 레미콘, 굴삭기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노조설립변경신고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한편 사측은 이 점을 이유로 건설노조의 합법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어 임·단협교섭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이 호소하는 이 같은 문제점은 자본이 특수고용을 선호하는 이유가 된다.

노조법 개정이 최선이다

ⓒ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

점차 범위와 규모가 커지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 이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법적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일이다.  

산재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지난 2008년 7월 1일부터 레미콘 기사,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보조원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4개 직군에만 국한될 뿐더러, 사업주가 보험료의 100%를 부담하는 일반산재와 달리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는 보험료의 5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이마저도 임의로 탈퇴가 가능하게 해놓고 있어 사실상 보험적용의 의미가 없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3월 한국 정부에 대하여 ▲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조합법에 따른 노동3권의 보장 ▲ 특수고용노조의 산별·연맹 및 총연맹 가입 보장 ▲ 건설노조와 공공운수노조에 대한 특수고용 노동자 조합원 배제 명령 철회를 촉구한 바 있지만 큰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 윤애림 교육선전팀장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 3권과 산재보험의 전면보장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노조법의 개정”이라며 “노조법 개정을 위한 입법화투쟁과 선전전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임을 전했다.

이런 취지를 담아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는 지난 5월부터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촉구 1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했으며, 공동투쟁을 시작한 화물연대와 건설노조 역시 특수고용노동자 문제 해결을 공동의 요구로 내세워 투쟁 중이다. 

[메이저리티에 고함]

“건설현장은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특수고용이란 이유로 산재보험료의 절반을 우리 스스로 부담해야 합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역시 사업주가 전액 부담하고, 적용을 거부한다거나 임의로 탈퇴를 강요하면 처벌받을 수 있도록 법이 더 강화돼야 합니다.” _레미콘 노동자, 남  

“장시간 노동에 잠 한번 편하게 못자면서, 감염의 위험 속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픈 사람 치료해 주는 병원이 사실 더 일하기 위험한 곳이에요. 간병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져야 한다고 보고, 간병인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보호조치가 마련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최소한의 생계비 보호도요. ”  _간병노동자, 여   

“동료들 거의 다가 한 가정의 가장들이고, 이 일이 아니면 당장 먹고 살기 막막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높은 수수료, 강제 보험, 회사에서 부당하게 강요하는 이런 저런 것들 다 떠안고 일할 수 밖에 없어요. 정말 사람으로서의 인격,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_ 대리운전노동자, 남

“ ‘특수고용직’이란 이름 자체부터 없어져야 합니다. 저는 학습지교사라는 직업을 택했던 거지 특수고용직을 선택한 적은 없습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특수고용직이라고 만들어 놓은 거죠. 정말 지긋지긋하게 따라붙는 ‘특고’, 진절머리가 납니다.” _학습지노동자, 여

“노동자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노동3권 우리도 당당하게 보장받고 싶습니다.”  _보험노동자, 여

“특수고용직하면 이름에서 뭔가 일반 노동자들이랑은 다르잖아요. 특별하고, 좋은 점이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안 좋은 것만 죄다 모아놓은 거죠. 종속성이 없다? 우리한테 자유 같은 건 없어요. 우리만큼 회사에 얽매어 있는 직업이 또 있을까 싶어요. 그냥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하고 싶어요.”  _보험노동자, 여

“건설현장의 시스템과 사고방식은 아직도 60~70년대에 머물러 있어요. 무엇보다 사업주와 관리자들의 태도가 바뀌어야겠지만, 노동자들의 태도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 가보면 자포자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일하는 동료들도 많습니다.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사실 누구도 그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해 주려하지 않거든요. 부당하고 부조리한 현실이 있다면 스스로 바꾸고 개선하려는 행동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_레미콘 노동자,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