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③-1 _ 전초전 벌어진 주식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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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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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금융자본 파상공세에 속수무책인 우량기업


KT&G - 아이칸 분쟁, 시작에 불과하다


“KT&G와 아이칸 사이의 분쟁은 시작에 불과하다. 한미 FTA가 타결돼 금융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국내 투자회사들은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회사들과 직접 경쟁해야 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에서처럼 다윗이 지혜를 발휘해 헤쳐나간다면 다행이지만 불행하게도 FTA 체결 이후 상황은 ‘신화’가 아니라 ‘현실 이다”
- K증권 애널리스트 P씨

 

아이칸의 행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후 막강한 월가의 금융자본이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정서법’이 통하지 않을 FTA 체결 후 KT&G나 포스코, 삼성전자, KT처럼 외국인 지분이 많은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이 대거 미국의 금융자본 손에 넘어가는 일이 현실화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투자분석사 A그룹 경제분석팀장


KT&G에 대한 미국의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의 ‘파상공세’가 점입가경에 이르렀다. 그간 경영참여 요구를 해오던 아이칸 측은 2월 24일 요구 수준을 올려 공개매수 제안에 나섰다. KT&G가 전 직원을 동원해 경영권 방어에 나섰지만 쉽게 돌파구를 찾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


대표적 공기업(담배인삼공사)이던 KT&G의 경영권 분쟁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2004년 12월 영국계 헤지펀드인 TCI는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지 않으면 다른 외국계 기관들과 연합해 경영진을 갈아치우겠다고 압력을 행사했다. TCI의 투기행위는 2005년 중반 유럽에서도 큰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이 분쟁에 국내 언론만큼이나 흥미를 보이는 것이 외신이다. 특히 <월스트리트 저널>과 <파이낸셜 타임즈>는 연일 아이칸이 한국에서의 ‘민족주의 정서’를 무릅쓰고 과연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해 흥미진진한 기사들을 내보내고 있다. 뉴욕과 런던 금융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문들이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의 한국기업 공략을 관찰하며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한미 FTA와 외자의 공격, 우연의 일치?
공교롭게도 아이칸의 KT&G ‘파상공세’는 한미 FTA 협상 공식선언과 거의 일치하는 시점에 이뤄졌다. 뿐만 아니다. 비슷한 시기 포스코도 미국계 자본의 공격을 받았다. 포스코의 최대지분 보유자인 미국계 펀드 ‘얼라이언스 캐피털 매니지먼트(ACM)’는 2월 10일 포스코 지분을 5.72%에서 6.86%로 확대했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ACM의 포스코 지분은 99만 3896주 (1.14%)가 늘면 2월 1일 국민연금으로부터 최대 주주 자리를 넘겨받은 SK텔레콤 지분 (248만13111주·2.85%)보다 2.4배 많아졌다.


ACM측은 보유 목적에 대해 ‘단순 투자’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증권가의 몇몇 애널리스트들은 “ACM의 포스코 지분 확대 추세는 KT&G의 칼 아이칸을 떠오르게 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포스코는 KT&G와 마찬가지로 민영화 과정에서 지분구조가 잘게 쪼개져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현재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1대 주주는 ACM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ACM이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꾸면 경영진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미국계 기업 사냥꾼들의 움직임과 한미 FTA는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을까.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외국인들의 우량기업 매집 시도는 항상 존재해 왔던 것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과는 우연히 시기가 일치한 것일 뿐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인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한미 FTA가 우리나라 시장의 ‘전면개방’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금융당국의 인식은 지나치게 안일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외국의 기관 투자자들과 헤지펀드, 투기자본의 한국 공략마저 ‘투자’로 보호해야 한다는 양자간 투자협정(BIT) 조항은 최근 외국 기관투자가들의 발 빠른 움직임을 직간접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외국자본 견제장치 무용지물 되나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외국자본에 대한 경계론이 퍼지던 몇 년 전과 전혀 차이가 없다. 지난 98년 금융시장 개방과 동시에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온 외국자본들이 우리나라 초우량기업의 경영권을 가져가고 6년 후 (주)SK와 소버린이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외자에 대한 경계론이 솔솔 퍼져 나올 때도 정부의 태도는 단호했다. 언론들도 ‘외자유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담아내기에 급급했다.


현재 KT&G 경영진으로선 동원할 만한 수단이 별로 없어 고민이다. 외국에선 적대적 M&A가 시도될 경우 황금주 행사 등 경영권 방어수단을 활용할 수 있지만 국내에선 법상 불가능한 까닭이다.


뒤늦게 외국자본을 견제할 수 있는 황금주 제도를 비롯한 여러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한미 FTA 협상 타결로 외국자본에 대해서도 ‘내국민 대우’를 보장하게 될 경우 이런 규제 장치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W증권사의 윤모 애널리스트는 “한미 FTA에 앞서 국내기업에도 외국과 동등한 방어수단을 갖는 등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월가의 금융자본 앞에서 우리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