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금융노동자 총파업 대오로
12년 만에 금융노동자 총파업 대오로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2.07.3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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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임금 받는다는 시선 의식…“임금인상 위한 파업 아냐”
우리금융·농협·산업은행, 1타3피 노리는 금융노조
[현장 1] 금융노조 총파업

금융노조가 7월 30일 총파업을 경고했다. 산별노조가 출범한 지난 2000년 총 파업 이후 12년만이다. 금융노조는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이 민주통합당의 한 축으로 참여하는 것에 대해 27개 회원조합 중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 왔다. 이번 총파업을 통해 조직 내 결집된 역량을 보여주고 그간의 활동을 통해 다져온 정치권 인맥을 활용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함이다. 헌데 금융노조는 총파업의 핵심 요구안이 그간 노동계의 일반적인 요구들과 그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금융노조 요구안, 조금 다르다?

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위원장 김문호)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요구안들을 2012년 금융 산별 임단협의 핵심으로 잡고 있다. 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회장 박병원)는 지난 4월 3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6월 8일까지 15차례에 걸친 산별중앙교섭을 가졌으나 뚜렷한 합의를 보지 못했다. 6월 말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안 역시 노사 양측이 받아들이지 않게 됨에 따라, 금융노조는 쟁의행위 수순에 돌입했다. 7월 11일 열린 파업 찬반투표에서는 산하 35개 지부의 조합원 93,042명 중 80,388명(86%)이 투표에 참여해 73,369명(투표자 대비 91%)이 찬성표를 던졌다.

금융노조의 올해 임단협 요구안 중 눈에 띄는 대목은 대학생 학자금 무이자 대출지원과 관련된 제안이다. 한국장학재단의 등록금 지원사업과 연계해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학생이 학자금 대출을 받을 때 1~4년간 500만 원 범위 내에서 대출이자를 지원하자는 내용이다. 금융노조는 대략 20만 명의 대학생을 지원 가능하다고 추산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 노사가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하는 등 세부 방안을 별도로 논의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은 “일각에선 고액임금을 받는 금융노동자가 파업을 통해 임금인상률을 높이려 한다는 평이 있는데 이는 사실왜곡”이라며 “금융노조의 올해 임금인상 요구안인 7%+α 는 교섭 전술상 설정된 목표며, 올해 타결된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사업기금으로 환원할 의향도 충분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에도 수십 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매출을 올렸으니 금융권 사용자들도 일정 부분 사회에 환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금융노조는 은행권에서 선도적으로 비정규직 제도를 없애나가자는 제안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계약직, 용역직을 포함해 지난 1995년 8,759명이던 국내 일반은행 비정규직 직원은 2010년 말 기준으로 32,302명으로 증가했다. 금융노조는 비정규직 신규 채용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2015년 말까지 비정규직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그에 앞서 복리후생 등의 지원 역시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으로 적용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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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노사도 사회적 약자 배려 나서야

그밖에도 우리금융지주, 농협, 산업은행 등 산하지부의 현안 문제 역시 이번 총파업을 둘러싼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금융노조는 해당 지부의 현안 해결 없이는 물러설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30일 총파업에 이어 정시 출퇴근, 중식시간 동시 사용 등 태업 투쟁, 8월 13일 2차 총파업 등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매각을 둘러싼 실랑이는 지난해부터 지속되고 있는 힘겨루기이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지주의 정부 지분 매각을 이미 두 차례나 시도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공적자금 회수의 극대화를 위해 조기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정권 말 졸속매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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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노조는 총선과 대선이 연이은 올해 급히 매각을 추진하기보다는 내년 새 정부 출범 후 다양한 국민여론 수렴을 통해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대명제를 우선순위에 두고 민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경남, 광주은행 등의 지방은행은 분리매각해야 하며, 사모펀드에 매각하거나 인수합병을 통한 메가뱅크 설립 추진은 고려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3월부터 신용부문과 경제부문 사업이 분리된 농협의 경우, 농수산식품부와 체결한 경영개선이행약정(MOU)을 철회하고, 농협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하라는 게 핵심 이슈다. 또한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는 산업은행의 민영화 역시 금융공공성이나 특수은행의 역할에 대한 고민 없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세 현안 모두 현 정권이 임기 내 치적을 위해 충분한 검토 없이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금융노조는 ‘관치금융 철폐’를 외치며 정권의 입김을 거부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것이 주로 ‘민영화’와 관련된 일임을 감안할 때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농협·산은 해결 없이 물러설 수 없다

금융노조의 총파업을 두고 각계에서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노조 입장에서는 파업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금융노조는 이번 총파업이 7% 임금인상을 관철하기 위한 파업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고임금 노동자라는 인식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사용자 입장에선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은 자명하다. 금융사용자협의회 박병원 회장은 올해 산별교섭 상견례 석상에서 첫 마디로,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금융계임을 감안할 때 사회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상식 있는 교섭을 진행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우리금융, 농협, 산업은행 등의 현안 돌파를 위한 정치파업이라는 공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노조는 “법이 정한 절차를 모두 거친 합법적이고 정당한 쟁의행위”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금융노조의 한 관계자는 “2000년 총파업 역시 구조조정 만능의 정부 정책 수정을 요구한 정치투쟁이었다”며 “정책적으로 금융공공성을 강화하고 정부의 금융권 개입을 막기 위한 정치투쟁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파업의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전산인력 등 은행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필수 인력들은 파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제 타격을 거의 주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분분하다. 지난해 두 달여 파업을 가진 SC제일은행의 사례를 들기도 한다. 그러나 금융노조는 “35개 지부 8만여 명의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이번 총파업은 그 무게감부터 다를 것”이라며 “사용자들은 상당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2차 3차에 이르는 총력 투쟁도 준비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금융노조는 지난해에도 중노위에 조정신청을 하고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하는 등 총파업 수순을 밟은 바 있다. 그러나 신입직원 초임삭감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막판에 집중적인 교섭을 통해 의견차를 좁힌 바 있다. 올해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김문호 위원장은 “파업 돌입 시기를 앞두고 적극적으로 교섭이 이뤄졌던 작년에 비하면 올해는 사용자측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며 “심지어 임금인상 요구안에 대한 사측 제시안도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사실상 12년 만에 총파업 돌입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금융노조가 총파업을 성사시킬지 여부는 속단하긴 어렵다. 막판 집중교섭을 통해 의견차를 좁힐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금융노조의 총파업과 이후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물론, 재계에서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 금융노조는 7월 29일 긴급 지부대표자회의를 거쳐 30일 예고했던 총파업을 무기한 잠정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우리금융지주의 매각이 무산되고, 농협 노사가 마라톤협상을 거쳐 일정 부분 합의점을 도출했기에 파업 동력이 급격히 약화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0년 총파업 경과_ 100년 만에 금융 파업, 그래도 구조조정은 계속

구조조정이라는 삭풍이 몰아치던 1998년 정부는 당시 대동, 동화, 경기, 동남, 충청은행 등 5개 은행을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전격적인 인수합병이 이뤄지고 당시 산별연맹 체제였던 금융노련은 3만여 명의 조합원을 결집한 파업 투쟁에 들어가지만, 인원감축을 약간 줄이고 퇴직금을 올리는 수준의 양보교섭으로 마무리한다.

기업별노조 체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이유로 이후 개별은행 단위의 임단협 교섭이 각개격파되면서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현장을 강타한다. 1999년 말 기준으로 불과 2년 전 외환위기 직후와 비교할 때 은행 점포 5곳 중 1곳이 폐점하고(1,346곳) 일반은행 직원 4명 중 1명이 퇴직(34,709명)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응하고자 산별노조 건설이 추진돼 2000년 3월, 17개 기업지부 54,690명 조합원을 포괄하는 금융노조가 출범했다.

그해 6월 정부는 경제장관 간담회의를 열고 조흥, 한빛, 외환은행을 지주회사 아래 묶은 후 나머지 은행들도 합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금융노조는 즉각적으로 금융지주회사법 철회를 요구했고, 7월 10일 노정협상이 결렬되면서 11일 새벽 파업에 들어간다. 당시 산하 22개 지부와 산별 미가입 조직을 포함해 65,000여 명의 조합원이 참가했다.

11일 오전 5시부로 총파업에 들어간 이용득 당시 금융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금융노조 집행부는 집중 교섭을 벌이고 12시간 만인 오후 5시 경 타결에 이른다. 향후 정부 주도의 인위적 합병은 없으며, 관치 청산을 위한 훈령을 제정하고, 인원 감축에 대한 단협을 존중하는 등의 노정 합의문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총파업 이후에도 은행권 구조조정은 꾸준히 진행형이었으며, 노조가 이를 막아 세우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