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와 일상의 경계를 걷다
축제와 일상의 경계를 걷다
  • 김현정 기자
  • 승인 2012.07.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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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엑스포 누비는 패트롤의 하루
“두 달 새 6kg 빠졌지만 뿌듯함으로 일합니다”
[삶의 현장] 여수엑스포 전력 패트롤팀

대한민국의 ‘여수앓이’가 뜨겁다. 여수밤바다의 낭만을 노래하는 목소리는 파도소리처럼 마음을 적신다. 바다와 세계가 어우러진 여수세계박람회도 연일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래서일까? 도시의 공기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 싶으면 여수가 생각났다. 당장이라도 돌산대교의 아름다운 조명을 보러 여수로 달려가야 할 것만 같은 순간들이 유난히 많았다. 여수세계박람회를 찾은 사람도 400만 명을 넘어섰다. 사람들은 남쪽 끝의 바다에서 여수의 야경처럼 선명한 기억들을 만들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있다. 여수의 활력과 낭만을,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 낸 사람들. 빛과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한국전력 사람들이 있다.

축제를 만드는 숨은 손들

여수세계박람회(이하 엑스포)의 개막일은 지난 5월 12일이었다. 그러나 엑스포의 ‘무결점 전력확보’를 담당하는 한국전력 여수지사의 사람들은 이미 지난 3월부터 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철저한 준비에 돌입했다. 새로 전력 공급이 이루어지는 31개소에 대한 설비작업이 바쁘게 이루어졌고 기존의 무인 변전소도 한시적으로 유인 변전소로 전환됐다. 인원은 그대로지만 업무는 대폭 늘어났다. 그야말로 ‘비상 상황’에서 맞이하는 엑스포였다.

수많은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는 행사인 만큼 심리적 압박감도 상당하다. VIP인사들의 방문이 있을 때는 같은 업무라도 챙겨야 할 것들이 훨씬 늘어난다. 심지어 80개가 넘는 엑스포장 안의 맨홀 뚜껑까지 전부 막았다. 무게가 90kg에 달하는 맨홀 뚜껑을 열고 누군가 테러를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 빛나는 여수의 축제는 여러 사람의 땀과 고민 위에서 만들어졌다. 관광객들에게 여수는 지루한 삶을 장식하는 축제의 현장이었겠지만, 빛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여수는 그야말로 삶의 현장이다.

“늦둥이 딸을 못 봐서… 통화비가 30만원씩 나와요”

여수엑스포 전시장의 넓이는 25만㎡에 달한다. 아무리 다리가 튼튼한 관람객도 그 넓은 면적을 구석구석 누비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여수엑스포의 전력 공급을 책임지는 패트롤팀은 해야 한다. 주간과 야간에 한 명씩 배치되는 패트롤은 언제나 엑스포장 내부를 순찰한다. 패트롤의 임무는 각종 전기 설비와 시설물을 점검하면서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다.

덕분에 엑스포의 낮은 활기차다. 입장 시간 전부터 긴 줄을 만든 관람객들의 표정도 활기차다. 즐거움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넓은 엑스포장 내에서도 즐거움과 활기가 유독 넘치는 곳은 아쿠아리움이다. 큰 규모와 다양한 어종을 갖추고 있어 아쿠아리움의 대기열은 언제나 장사진이다. 햇볕이 뜨거워도 보통 2시간을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사람이 몰리는 시설인 만큼 패트롤의 입장에서도 신경 써서 점검해야만 한다. 아쿠아리움은 한국전력이 아닌 개별 기업의 시설이지만 필수적으로 전기를 써야 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 다른 시설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기적으로 점검을 하고 있다.

“오늘은 아쿠아리움 수전반을 점검해야 됩니다. 열화상 카메라로 보면 온도 차이가 5℃ 정도 나던데 6℃ 이상 차이가 나면 문제가 생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원래 일주일에 한 번씩 체크하던 것을 3일에 한 번씩 체크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한국전력 시설은 아니지만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시설까지 단전이 될 우려가 있어서 점검을 하고 있고요. 지금 점검하는 부분은 아쿠아리움 전체 전원공급과 관련된 부품이라 아마 교체가 필요할텐데, 그때도 저희가 안전 확보 차원에서 나와야죠.”
- 한국전력 광주전남본부 김웅래 패트롤

관람객들은 잘 느낄 수 없겠지만, 여수에서 평온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점이 서운하기도 하다.

“길 위에 노출된 개폐기 같은 곳들은 주로 오전에 점검을 하는 편입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사람이 많을 때는 관람객들한테 방해가 될까 봐요. 우리야 안전을 위해서 점검하고 체크하는 거지만 관람객들이 느끼기에는 이게 좀 거추장스럽거나 불편한 것 같아요. 우리 하는 일은 잘 되고 있을 때는 티가 안 나니까 좀 서운할 때도 있어요. 우리 일이 티가 난다는 건 이미 문제가 생겼다는 건데, 그건 또 안 되잖아요. 모든 게 원활하면 저야 스스로 뿌듯하지만 가끔은 누가 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저뿐만 아니고 전기 일 하시는 분들이 다 그러실 거예요.”

본래 광주전남본부에서 근무하던 김웅래 패트롤은 엑스포를 위해 3개월간 여수로 거처를 옮겼다. 바뀐 잠자리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고, 혼자 지내다보니 아침 식사는 거의 거른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늦둥이 딸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애들이 아빠를 찾는데 자주 못 보는 게 제일 마음에 걸리죠. 제일 힘든 게 가족들 못 보는 거예요. 아들이 둘 있고 열 살 터울의 늦둥이 딸을 하나 낳았는데 보고 싶죠. 얼굴은 못 보고 아빠는 찾고 그러니까 통화비가 30만원씩 나와요.”

엑스포장 안에서 근무하는 그는 아직 가족들과 엑스포를 구경하지 못했다. 두 달 동안 패트롤 업무를 수행하면서 몸무게는 6kg이나 빠졌다고 한다. 몸도 마음도 고생이지만 그래도 그는 “뿌듯하다”고 말한다. 여수의 활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Big O’를 보는 새로운 시각, 결론은 안전

여수엑스포는 밤에 더 빛난다. 어느 곳으로 시선을 돌려도 잘 만들어진 조명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이미 여수엑스포의 명물로 널리 알려진 ‘Big O’도 낮보다는 밤에 빛난다. 아름다운 여수엑스포장 안에서 야간 패트롤을 만났다. 주간 패트롤은 개장 이전인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임무를 수행하고, 5시부터 폐장시간인 11시까지는 야간 패트롤이 담당한다.

이날 엑스포의 밤을 책임진 사람은 한국전력 광주전남본부에서 여수로 파견 나온 지 63일째라는 여창훈 패트롤이었다. 주간-야간-비번의 스케줄로 패트롤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쉬는 날이라고 해도 일이 생기면 나와서 동료들을 돕는다. 정전 예방을 위한 한국전력 직원들의 업무는 사실상 휴일이 없는 셈이다. 얼마 전에는 여수에 비가 많이 오고 낙뢰도 떨어져 엄청난 긴장 속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수엑스포는 아무 사고 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준비 단계부터 현재까지 한결같은 자세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엑스포 때문에 특별히 새로운 일을 한다기보다는 원래 하던 점검, 설비 업무의 연장인데 항상 긴장을 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 낙뢰 떨어지고 비 오고 할 때도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걱정은 됐죠. 저기 ‘Big O’는 규모도 크고 여러 가지 장치도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어서 신경을 쓰고 있죠. 모터도 많이 쓰고, 물속에 있는 구조물이고, 전력소모도 굉장히 크니까요.”

‘Big O’를 보는 시선도 역시 다르다. 멋지다, 아름답다는 감탄사 대신 안전에 대한 걱정이 더 크게 다가온다. 전력에 문제가 생기면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안전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기를 다루는 작업 역시 언제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엑스포의 현장을 누비는 패트롤의 입장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도 결국 동료들의 안전에 관련된 문제였다.

“선로 유지 보수를 할 때 사람이 부족해요. 지금 인원이 홀수거든요. 세 명이에요, 한 조가. 고장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 두 사람, 한 사람 이렇게 찢어져서 가는데 안전상의 위험이 많아요. 인원이 짝수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직원들도 현장에서 짝이 있어야 안전사고가 덜 나니까. 생명이 걸린 문제잖아요. 태풍 오고 비와도 작업하는데 한 사람이 더 있어서 지켜봐주면 위험이 덜하겠죠. 누가 봐주면 좀 더 편할 것 같은데, 잡아줄 사람도 없고 심리적으로도 불안하죠.”

불안은 위험을 만든다. 패트롤은 축제의 안전을 지키는 사람이다. 패트롤의 불안은 축제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일터는 좀 더 안전해질 필요가 있다. 전기를 다루는 일에 위험이 따라오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 문제다. 쉽게 개선되지 않는 위험한 근무 환경은 환한 곳에 드리운 긴 그림자 같다. 여수의 야경처럼, 전력노동자들의 삶도 온전히 빛날 수 있도록 안전이 필요하다.

삶은 계속된다, 삶은 더 빛난다

여수엑스포는 8월 12일에 막을 내린다. 하지만 엑스포가 끝나도 여수의 삶은 이어진다. 엑스포만 바라보고 긴장을 늦추지 못하던 사람들도 가볍게 한숨 돌리고 이전의 업무로 돌아갈 것이다. 석 달간 집을 떠나있던 사람들도 가족과 함께 하는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축제의 자리를 일상이 채우겠지만 거기엔 새로운 기억이 더해진다.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여수의 여름을 빛냈다는 뿌듯함은 누구의 추억보다도 빛나지 않을까. 그래서, 축제가 끝난 여수의 삶은 예전보다 더 빛날 것이다.